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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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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0. 7. 07:51 횃불/1982년

애굽에서 가나안까지(11)

죤 리치

구름기둥과 불기둥

 

죄인으로서 우리는 한 구주를 필요로 하며, 포로된 자로서 우리는 한 구원자를 필요로 하며, 또한 순례자로서 우리는 한 안내자를 필요로 한다.

사랑의 하나님은 그분의 거룩한 처소에서 잃어버린 상태에 있는 우리를 보시고 그분의 아드님을 우리의 구주와 구원자로 주셨으며 또한 그분의 성령님과 말씀을 우리의 안내자로 주셨다. 아버지, 아들 그리고 성령님께서는 우리의 구원 사역에 관여하고 계시며 또한 우리를 저 건너편 안식의 본향으로 데려가는 일을 하신다!

 

광야의 끝 에담에 장막을 쳤으나, 가나안 본향과 그들 사이에 펼쳐질 노정의 한 걸음 앞도 모르고 있던 그들에게 구름기둥이 내려옴을 보았을 때 그들의 마음이 얼마나 기었겠는가! 요청하지도 않았고 기대하지도 않았다고 말할 수 있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인도자가 되시기 위하여, 또한 그들과 동행하시고, 그들을 보호하시고, 그들의 동반자가 되시기 위하여 구름기둥으로 강림하셨다.

비록 그 길이 멀고 황량하며 광대하고 무서운 광야의 위험이 에워싸고, 또한 독사와 전갈들이 우글거린다 해도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시는 한 무엇이 문제가 되겠는가! 한걸음마다 그리고 모든 위험마다 하나님께서 잘 알고 계시다. 따라서 그들이 하나님께서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따르기만 한다면 만사가 형통할 것이다.

 

낮에는 구름이 모든 장막 위에 덮개가 되어 더위로부터 그들을 가려주었고 저녁이 되면 그것은 불기둥이 되어 그들에게 비춰주었다( 105:39). 그리하여 그들은 결코 어둠 속에 있지 않았다. 밤에 여행하는 것도 낮처럼 쉬웠으니, 이는 주 하나님께서 빛을 주심으로 거기엔 밤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스라엘의 목자로서, 하나님은 얼마나 미쁘심으로 또한 사랑하심으로 안내하는 일을 수행하셨는가!

신명기 32 10~12절은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 마치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그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여호와께서 홀로 그들을 인도하셨고 함께 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더욱 복스런 사실은, 그들의 실패, 그들의 불평 그리고 그들의 죄가 하나님을 멀리 내쫓을 수도 없었으며, 그들로부터 구름기둥을 거두시도록 만들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그 기둥은 그들이 여행하던 사십년간 계속 그들과 동행했고 마른 요단강 바닥을 통하여 승리의 행군을 할 때도 그들 위로 배회하였고 결국엔 그 땅의 성전의 영광 중에서 안식을 찾았다.

! 이 하나님께서 영원토록 우리 하나님이시다.

 

구름의 세 가지 위치는 우리를 위하시는 하나님,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을 말해 준다.

홍해에서 구름은 그들의 원수들과 그들 사이에 서 있었다(14: 19,20).

그들이 사막을 걸어 나갈 때 구름은 그들의 앞에서 나아갔고 쉴 곳을 찾아주었다( 9:17).

또한 성막에서 구름은 그들 중에 머물렀다( 40:34)

여호와는 그들의 인도자이셨으며 또한 왕이셨다. 명령은 하나님의 일이었으며 복종하는 것은 백성들의 일이었다. 그분은 목자이셨으며 그들은 그분의 양들이었다.

또한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삭막한 사막을 건너 이스라엘을 인도하신 그분은 우리를 홀로 있게 버려두지 않으신다. 그분은 우리에게 그분의 성령과 그분의 말씀을 주셨다. 사막같은 날들이 끝날 때까지 그분의 성령과 말씀은 우리의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되신다. 그 빛 가운데 우리는 무사히 그리고 안전하게 걷게 될 것이며, 바로 하나님과 함께 걸을 것이다.

말씀에 관하여 기록되기를,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119:105)라고 하였고 또한 성령에 관하여는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 리니····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16:13)라고 하셨다 만일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것 외에 아무 다른 모사를 알려 하지 않고 또한 다른 안내자를 찾으려 하지 않는다면 그 얼마나 축복된 일이겠는가!

 

또한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심오한 주제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치는 바에 당신의 주의를 촉구하고자 한다.

1. 성령님의 인격과 사역

2. 성경의 권위와 충족성

 

성경을 펴서 이 중요한 주제에 관하여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를 살펴보자.

 

1. 성령님의 인격과 사역

다른 보혜사”, 즉 주 예수께서 떠나시던 밤에 약속하신 분은 하나의 신성을 가진 인격체이시며 어떤 종교인들이 부르는 것처럼 어떤 감응력이 아니다. “영원하신 영()”을 하나의 감응력으로 부른다는 것을 생각해 보라.

부활하신 분께서 감람산에서 승천하신 후 열흘만에, 주께서 하나님의 오른편에 좌정하신 후에 성령께서 강림하셨다. 구름기둥의 때처럼 그분은 백성의 안내자로 오셨다. 그리고 그때 백성들이 그분에게 불충성하고 가치없는 자로 증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과 함께 하셨던 것처럼 그분은 그날부터 지금까지 여기 계시며 또한 우리 주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그분은 우리와 영원토록 함께 계실것이다( 14:16).

우리가 자격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광야 40년의 실패 기간동안 시은소 속죄의 피 위에 구름이 머물렀던 옛날, 그분이 그들을 한시도 떠나지 않았던 것처럼, 완성된 구속에 근거하여 성령님도 우리와 함께 사시는 것이다.

 

한 죄인이 복음을 믿을 때 그는 즉시 성령님으로 인침을 받는다( 1:13). 하나님은 그에게 자기 인을 치시고 너는 나의 것이라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영은 그 안에 사시고, 그의 영과 더불어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시고 또한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신다( 4:6). 그분은 장차 을 영광의 계약이시고 몸의 구속의 보증이시다(고후 1:22, 1:14).

이 내주하시는 성령님으로 인하여 우리는 예배드리게 되며, 또한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성도의 마음 안에 감동된 예배만이 하늘 아버지께 열납된다( 4:23,25, 3:3).

 

2. 성경의 권위와 충족성

그분은 우리의 교사이시다( 16:14, 요일 2:27). 그분의 가르침이 없다면, 하나님의 말씀은 감추어진 보화가 될 것이다. “하나님의 것들은 하나님의 영 외에 알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고전 2:11). 이것이 인간의 교만함을 낮추게 한다. 이것은 그의 기교나 지혜를 제쳐놓고, 그의 자랑하는 지식을 쓰레기로 버리게 한다.

 

그리스도 안의 어린 아이 (갓 구원받은 자)는 단순한 눈과 단순한 마음으로 성령님의 가르침에 의존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탐구하기 위해 앉아 있을 때, 이 세상 대학에서 가르쳐 주었던 모든 철학보다도 실제로 더 많은 하나님의 진리를 배우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깊은 것들이 지혜로운 자들과 능한 자들에게는 감추어지고 어린아이들에게 나타났다. 이것은 격리된 성도들에게도 위로를 주고 있다. 그는 어느 외딴 지점에 따로 있어서 형제들로부터 밀리 떨어져 있을지도 모르며 성도들의 교제와 가르침을 받는 일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불평할 필요가 없다. 그는 홀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해석자중 가장 뛰어나신 분이 그와 함께 계시니, 곧 하나님의 영이시다.

만일 그가 성령님을 근심시키지 않고 능력 안에 살고 있다면, 성령님은 그의 영혼에게 하나님의 비밀들을 열어주실 것이며, 또한 이렇게 배운 것은 쉽게 잊어버리거나 흘려버릴 수 있을 것이다. 이론적인 지식은 값이 싸며, 또 적은 수고로 쉽게 얻을 수 있다. 그것은 쉽게 얻어지며 또한 쉽게 가버린다. 그러나 조용하고 작은 성령님의 음성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의 마음을 그 안에 거하게 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바는 많은 성도들 가운데 배운 사람만이 성경을 해석할 수 있다는 사상이 잠복되어 있는 것인데 이에 따르면 그들이 헬라어나 히브리어를 조금 공부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공인된 원리들을 남다른 권위로 가르쳐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 주위에 존재하고 있는, 거짓 사역과 사제직을 인정하는 원인이 된다.

사제직이 만발한 조직체는 단지 안수받고 기품있는 사제만이 말씀을 해석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사람들은 이를 믿고 있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심하게 주장하지 않으나. 그러나 악의 원인이 거기에 있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은 일반인에게는 봉인된 책이며 세상 대학에서 교육받은 자만이 성경의 해석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우리의 예배에서뿐만 아니라 우리의 걸음과 매일의 생활에서 성령님의 인도를 받는 것은 우리의 특권이다. 매일 매일 그분의 인도하심을 체험하기 위해, 우리의 의지를 부숴뜨리고 통회하는 심령을 가져야 한다. 그리스도의 주되심(그의 우리에 대한 절대적인 권위) 즉 우리의 뜻의 포기는 우리생활의 각 부분에서 실제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그분의 말씀만이 우리의 상담자가 되어야 한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은 항상 본성에 반대되고 육신에게는 싫증이 나게 한다. 그것은 믿음만이 걸을 수 있는 길이다. 예수께서 통과하신 길을 기억하라. 요단강에서 침례를 받으실 때부터, 그분은 성령에 이끌리어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고 또한 마지막으로 십자가의 고만을 겪으셨다.

 

사랑하는 성도여, 하나님의 성령께 당신을 인도해 주시기를 요구할 때, 당신은 그러한 길로 지날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그것은 자신을 부인하고, 시련과 고난을 당해내는 것을 의미한다. 아울러 여기서 우리는 오늘날 자주 거론되고 있는 가짜 영에 주의해야 할 것을 어린 신자에게 촉구하는 바이다. 그것은 이 심히 축복된 실체에 대한 사단의 모조품이다. 위장된 거룩 아래에서 행해지는 모든 의심스럽고 경건치 못한 일들이 성령의 인도로 간과(看過)되는 경우가 있다. 신자들이 구원받지 않은 자와 결혼하고, 그들과 동업을 하며 그들과 함께 성찬식에 참여하고는 인도하심을 받았다고 말하면서, “그것이 그들 마음에 임했다고 한다. 그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거짓이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은 항상 말씀과 조화되며 어떤 경우에도 말씀과 상반(相反)되지 않는다. 성령님은 항상 성도들을 말씀에 순종하도록 인도하시며 그것을 부정하도록 하지 않으신다. 성령께서 어떻게 사도를 감동하시어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말씀하시고 성도들에게 이를 불순종하도록 인도하시겠는가? 젊은 신자는 이를 숙고해야 할 것이다.

기록된 말씀이 허락하지 않는 길이나 사업은 성령의 인도하심이 아니다. 육신의 뜻이 그 길을 밟을 때, 마귀가, 이것이 주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길이라고 믿도록 만들기는 쉬운 것이다. 우리가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는 길은 우리 자신에게 이것을 행하는 것이 하늘 아버지께서 명하신 것인가? 말씀에 그렇게 되었는가? 어디에 기록되어 있는가?”묻는 것이다.

이렇게 주님께 그리고 그분의 은혜의 말씀께 잡혀서 성령의 능력 안에서 걸을 때에 우리는 안전하게 인도될 것이다. 이 땅의 어두운 날들은 그분의 임재와 동시에 사라질 것이다. 거기는 슬픔이 없다. 우리 앞에는 우리의 본향이 있고, 또한 그 길은, 비록 험할지라도 밝은 길이다.

즐거운 소리를 아는 백성은 유복한 자라 여호와여 저희가 주의 얼굴 빛에 다니며”( 89:15).

 

(1982 6월호)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