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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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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0. 7. 18:26 횃불/1982년

애굽에서 가나안까지(12)

죤 리치

홍해

성도들 중에는 확고한 평강을 누리지 못하는 자들이 많이 있다. 때때로 그들은 명랑하고 행복하지만 어떤 때는 슬프고 낙심된 상태에 있다. 때로 그들의 확신은 충만하고 분명하나 어떤 때는 그들이 정말 주님의 소유가 되었는지 의심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의 눈을 갖고 그 안에서 기뻐하며 주께서 이루신 완전한 구원을 즐기는 대신에 기쁨이나 슬픔 등 그들의 감정과 기분에 얽매이며, 자신들의 체험에 의존하여 자신을 바라보며 산다. 이것은 여러가지 원인으로부터 일어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구원받을 때 모호한 복음이나, 그의 아들에 관한 하나님의 복음 중 일부만 듣고 믿게 된다. 그들은 궁극적인 안전(영생)에 관한 의심이나 두려움은 은혜에 대한 어떤 표시이며 또한 하나님께서 그의 성도들 안에 계심을 나타내는 가장 좋은 표시는 내재(內在)하는 악에 대하여 영원히 비통해 하는 것이라는 가르침을 받아왔다. 그러므로 그들은 계속적으로 몽롱한 분위기에서 살면서 자신의 경험과 성취, 그들의 내적 거룩성 혹은 부패 등을 골똘히 생각한다.

물론 이렇게 말함으로써, 신자들로 하여금 내재하는 죄를 가볍게 생각하도록 하거나 사단의 힘을 과소평가하도록 하는 것은 우리의 목적하는 바와 거리가 매우 먼 것이다. 우리가 매우 중요하다고 믿는 것은 모든 하나님의 성도들이 자기 안에 있는 육신의 특성을 알고 자기를 대적하는 마귀의 힘을 올바로 평가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동일하게 인식하는 것은, 이와 같은 것들에 관한 근심은 그것들로부터 승리를 얻지 못하며, 또한 그 승리-패배가 아닌 것, 자유-속박이 아닌 것은 하나님의 복음을 믿는 사람의 정상적인 상태라는 것이다.

로마서 7장의 후반부는 많은 사람의 경험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부활한 것을 아는 영혼의 매일의 체험이라고는 믿지 않는다. 만일 하나님께서 오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누가 나를 구원하랴 하는 것보다 더 높은 경지를 노래하도록 허락하시지 않았다면 어떻게 하나님께서 항상 기뻐하라고 그의 성도들에게 명하실 수 있었겠는가?

 

앞에서 언급된 내용들은 우리 앞에 놓인 신분과 믹돌과 바다사이에 장막을 구속받은 이스라엘의 위치와 경험을 따라 제시되었다. 비하히롯이 그들이 장막 친 곳이었는데, 그것은 자유의 열림이란 의미로써 그들에게 이것은 사실이었다. 그들은 아직도 애굽 변경에 있었고 또한 바로 왕국의 경계선 내에 있었다. 홍해가 그들 앞에 펼쳐졌고 광야는 그들을 둘러 쌌다. 그들을 잃었다는 생각으로 발광하고 노발대발한 바로는 육백여대의 병거를 몰고 희생을 만회(挽回)하려는 필사적인 노력으로 그들의 뒤를 급히 따라 달려 왔다. 백성들은 공포에 질려서 하나님께 울부짖었으니, 아직도 하나님께서 그들의 편이며 원수들을 대적하신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의 역사는 많은 어린 정도와, 전율(戰慄)하는 하나님의 백성의 경험과 또한 그 상태를 말해 준다. 당신은 그 가운데에 있는 자신을 발견하지는 않는지? 아마도 당신은 겨우 최근에야 죄인임을 깨닫고 내가 무엇을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까?”라고 물었을는지도 모른다. 그때에 당신은 죄인들을 위하여 죽으신 예수께로 눈을 돌리고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

그러나 사단은 그냥 있지 않는다. 바로처럼, 사단은 당신의 영혼에 압력을 가하고, 과거를 들먹이며 미래를 어둡게 한다. 사단은 당신이 사단의 것이라고 말하며 당신은 사단의 일을 했으므로 사단의 삯을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당신의 상태는 그리스도 밖에 있을 때보다 분명히 더 나쁘게 될 것이다. 전에는 그와같은 어려움을 겪지 않았는데 이는 마귀가 자기의 소유로 조용히 잡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지금은 죄, 사단, 죽음이 가까이 압박하여 괴롭히며 또 겁주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당신도 애굽에 머물러서 조용히 마귀의 일을 하였더라면 하고 거의 원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가(사단) 곧 다시 당신을 마치 자기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당신 주위에 있는 다른 이들은 기뻐한다. 그들은 기뻐 노래하지만 당신은 괴로워할 수 밖에 없다. 아마 그들은 당신에게 약간의 동정을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당신의 경우를 이해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즉시 자유 안으로 통과하였으며, 하나님의 복음의 충만한 빛을 받고 그들의 구원의 노래를 불렸다.

그러나 당신같은 사람에게는 그러한 노래가 없다. 왜냐하면 애굽에는 노래가 없으며, “믹돌과 바다사이에도 찬양이 없기 때문이다. 구원의 노래나 승리의 함성이 들려지기 전에, 홍해에 예표된 주의 구원이 알려져야만 한다.

 

이스라엘에게 하달된 말씀을 보라.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14:13,14).

떨고 서 있던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한 얼마나 놀라운 말씀인가! 주님께서 전쟁을 맡으셨다! 그분이 자신을 그들과 원수 사이에 두셨다. 바로와 이스라엘 사이엔 더 이상 문제될 것이 없었다 이제는 바로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과의 문제이다. 그들은 가만히 서서 볼 뿐이었다. 또한 그것은 우리들에게도 마찬가지인데 왜냐하면 예수께서 우리 우편에 계시기 때문이다.

 

그가 우리와 원수 사이에 서시었네,

그리고 친히 우리 대신 죽으셨네.”

 

모세가 지팡이를 바다 위로 내밀자 즉시 바다의 물이 갈라졌다. 큰 과도 사이로 한 길이 열렸고 물은 양편으로 수정 벽처럼 서 있었다. 이것은 주님이 행하신 것이요, 분명히 그들의 눈에 기이한 것이었다.

이스라엘 자손을 명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라는 것이고 다음 명령이었다. “또한 믿음으로 저희가 홍해를 육지같이 건넜다는 것은 물이 없었을 뿐 아니라 마른 땅위로 걸었다는 것이다. 그들의 발이 닿는 곳은 단단하고 안전했으며 발자국이 남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믿음으로만 걸을 수 있는 통로였고 믿음으로 그들은 맞은편 해변에 도착하기까지 한발 한발 밟고 나아갔다.

그때 원수들이 돌진해 왔다. 그러나 애굽의 세력은 완전한 파멸의 모습으로 빠져 들어갔다. 먼저, 검은 구름이 덮이고 병거바퀴들이 부숴졌으며 또한 마지막으로 바로의 강한 군대 주위로 죽음의 물결이 밀려 왔으니, 이로써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원수들을 대적하여 그들을 위해 싸우셨음을 그들로 깨닫게 하셨다.

승전은 완결되었고 애굽인은 한명도 구원얻지 못했으나 이스라엘 자손은 한명도 잃지 않았다. 아침 해가 바다 위에 비쳤고 바로의 군사들은 물밑에 수장(水葬)되었으며 구원받고 구속받은 노예들은 앞쪽 강변에 서서 여호와의 구원을 돌아보며 기쁨으로 승리의 노래를 불렀다.

이것이야말로 죄인이 단번에 이겨내는 힘있는 투쟁의 모습이요 보다 큰 승리이다. 바로는 사단의 상징이요 애굽은 이 세상의 상징으로써 사단은 세상의 지배자이다. 홍해는 죽음을 말해주며 사단 왕국의 경계선으로 그의 마지막 가장 큰 요새이다. 장막을 친 땅, “믹돌과 바다 사이는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하여 그들을 위해 기록된 주의 구원의 충족성을 아직 모르는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는 상태이다.

 

믿는 독자여, 잠시 갈보리라는 곳으로 눈을 돌리고 또 그 가까이 있는 동산 안의 빈 무덤으로 눈을 돌려서 당신을 위하여 무엇이 완성되었는지 심사숙고 해 보도록 하라. 모여드는 원수들과 어둠의 세력들을 주시하고 또한 주 예수님께서 그들을 어떻게 만나시고 영원히 패배시키셨는가 지켜보도록 하라. 그 광경은 당신에게 영원한 평안을 줄 것이며 만일 의심과 두려움이 당신을 엄습하면 십자가가 그것들을 멀리 쫓아내 줄 것이다.

 

거기에서 세상은 갖가지 형태와 차이를 보여 주었다, 세상은 종교적, 정치적, 그리고 세속적으로 그 십자가 주위에 나타났다. 하나님께서는 갈보리 십자가의 때까지 세상을 시험기간으로 두셨으나 십자가 위에 정죄를 결정하시고 선고를 내리셨던 것이다. 동일한 복된 사역으로 인하여 성도는 이 악한 세상으로부터 구원을 받으며, 또한 십자가로 말미암아 심판에 이르지 아니한다.

 

홍해가 애굽과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가로 놓여있는 것과 같이 십자가는 믿는 자와 세상 사이에 서 있다. 그것은 영원토록 사단으로부터 분리시키는 함락될 수 없는 견고한 장벽이다. 당신은 이것을 알고 마음으로 그것을 믿으며 그러한 사실과 같이 행하는가? 주님과 함께 부활하여 더 좋은 생을 영위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이 세상에 대하여 죽은 자로 자처(自處)하고 있는가?

사단 역시 자기의 모든 능력으로 그곳에 있었다- “생명의 주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가 갈보리에서 만난 것이다. 그것은 여자의 후손과 사단 사이에 있었단 결정적인 쟁투였다. 사단은 죽음의 권세를 갖고 있었으며 그것이 자기 왕국의 요새였다. 히스기야와 같은 믿음의 사람도 죽음이 가까이 다가왔을 때 통곡하였다. 그것은 인적미답(人跡未踏)과도 같다. 왜냐하면 아무도 죽음을 통과하여 세상에 부활한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 죽음의 요새에 들어가셨고 잠간동안 정복당한 듯이 보였다. 생명의 주께서 무덤 속에 누워 계셨고 무덤 문은 돌로 닫혀졌다. 흩어진 양무리와 기뻐하던 세상은 사단이 그날 이겼다고 말하는 듯 했다. 그러나 그의 명백한 승리는 잠간뿐이었다.

예수께서 죽음의 창살을 부서뜨리신 것이다. 돌도, 감시도, 봉인한 것도 생명의 주를 붙들어 두기에는 헛된 것일 뿐이었다. 그분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셨다( 2:14). 사단의 머리는 으스러졌다. 그는 자신의 요새에서 패망하였다. 그의 힘은 부서졌고 그의 왕국은 정복당했다.

주님은 진실로 부활하셨다! 죽음의 열쇠는 주님의 손에 있다! 죽음과 사단의 세력을 넘어선 생명을, 그분의 모든 백성을 위해 그분은 쟁취하신 것이다. 가장 연약한 성도라도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을 가지고 있으며, 영원토록 그 생명을 소유한다. 사단은 결코 믿는 자를 다시 붙잡아 둘 수 없으니 그는 흑암의 권세로부터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사람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졌기 때문이다( 1:13). 그리스도께서 살아 계시듯이 믿는 자도 살아 있으며 그분으로 말미암아 그는 정복자 위에 서게 된다. 승리는 완결되었고 주의 구원은 확실하다.

의심하는 자여, 지금 조용히 서서그것을 바라보라.

 

(1982 7,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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