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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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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0. 8. 12:30 횃불/1982년

사망에서 생명으로

-김 인 수-(서대문 교회)

어느 여름방학 때의 일이다. 친구가 익사했다는 비보가 날아들었다. 갑자기 멍해지고 형언 못할 감정에 싸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죽음과 함께 모든 것이 끝나버리고 마는 것일까? 그렇게 친절하고 똑똑한 친구가 이제 겨우 열 여섯살에 영 못 올 곳으로 가버리다니!

이 때부터 죽음의 문제가 내게는 심각한 것이 되어버렸다. 이것이 어떤 때는 위로도 되었지만 무의미와 생의허무감을 주었다. 나도 죽어야만 한다는 이 분명한 현실에 나는 아무 대응책이 없었다. 남은 생애를 최선을 다하여 살아보려 했으나 회의감이 들어 매우 큰 곤경에 처했다. 당시는 고등학교 1년을 수료하고 자퇴한 후 혼자 공부하고 있었다. 혼자 문학 철학서적을 뒤지며 많은 상념에 잠겨 입시공부가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교회생활도 하고 있었고 금요일마다 대성빌딩에서 갖는 금요개척자 강연회에 참석하여 명사들의 강연을 듣기도 했다. 많은 감명과 자극을 받았지만 나의 문제는 다루어주지 않았다. 계몽소설들을 읽으며 주인공들의 헌신적 삶에 감동을 받고 나도 그와 같은 충동을 받았지만 깊은 마음 속의 이 회의를 떨칠 수 없었고 모든 것이 무의미해지는 것이었다. 상록수라는 책은 여러 번 읽었는데 읽을 때마다 감동을 받았다. 그러나 주인공의 삶의 마지막 장면이 죽음으로 끝난다. 거기에는 아무런 답이 없었다. 그 후 십년 가까이 교회생활을 충실히 하면서 부흥회에 여러 번 참석했다. 확신은 없었고 음성도 듣지 못했지만 하나님의 존재가 있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 어느 전도사가 이 작은 시계가 우연히 만들어질 수 없는데 이 우주가 저절로 생길 수 있겠는가? 외치며 풀었던 시계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나는 그 말에 동의했다. 창조주가 반드시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죄에 대한 의식이 확실해졌다. 그 이후로 죄를 짓지 않으려고 애를 쓰게 되었다. 양심의 판단에 따라 행동하려고 애를 섰다. 그러나 자주 실패하였다. 성경의 많은 교훈과 법들을 알게 되면서 점점 더 어려워졌다. 이해되지 않은 부분들이 너무 많았다. 마태복음의 산상수훈을 읽을 때마다 겁을 먹었다. 너무 높은 도덕율이었다. 그러나 가능한한 지키려고 애썼다. 나는 어느 날엔가는 이 모든 것을 완전히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본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했다. 그분도 지켰으므로 완성은 못해도 최선을 다하면 인정받을 것으로 합리적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점점 죄의식은 깊어지고 절망에 빠졌다. 생활은 확신이 없어서 분명치 못했다. 자신에 대해서 항상 불만이 많았고 어떤 결단을 내려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어떤 맹인 목사의 설교를 듣고 감명을 받았다. 그 간증을 듣고 많이 울었다. 그 생애는 거의 결사적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리고 부인의 헌신적인 봉사에 대하여 감명을 받았다. 설교의 성경내용은 야곱이 벧엘로 올라가는 내용이었고 제목도 벧엘로 올라가자였다. 아마 잊혀지지 않는 결사적인 설교였다. 나는 그 때 내 생활의 모든 면에서의 죄를 끊어버리기로 결심하였고 내가 옳다고 생각되면 무엇이든지 그대로 실천하기로 마음먹었다. 새벽에 일어나 산기도도 하고 아무튼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굳게 결심하였다. 내 기억으로는 일주일 동안은 잘 된 것 같다. 버스에서 걸인이 올라오면 주머니를 다 털어 주었고 미친 사람이 개울에 빠져 구경하고 있을 때 들어가 건져내었다. 그러나 오래가지 못하고 내 생활은 무너지고 말았다. 여인을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이미 간음했느니라 등의 법을 지킬 수가 없었고 유혹도 받았다. 마음속의 평안은 없었다. 다만 선이라고 생각해서 행동할 때에만 평안이 있었고 안되면 괴로웠다. 나는 자신이 약하고 신념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서 계속 교회생활과 노력의 생활을 계속했다.

직업은 교직을 택하기로 마음먹고 대학에 입학했다. 그 후에도 종교생활과 독서를 많이 한 편이다. 그러나 짐은 점점 더 무거웠다. 나는 이상적인 교사가 되는 것을 원해서 그 길로 정진했다. 졸업 후 큰 꿈을 안고 1969년 3월 1 첫 부임지에서 교사의 생활을 시작했다.

그런데 첫날부터 나는 좌절에 빠졌다. 나의 모든 이론은 맞지 않았다. 나의 이상과 너무 거리가 멀었고 하루의 생활이 숨통이 막혔다. 나는 고립되었고 대화가 잘 통하지 않았다. 나 자신에 대해서도 더욱 실망하게 되었다. 도무지 다 마음에 걸리는 것이다. 나는 열등교사가 되고 말았다. 모든 일이 남보다 다 느렸다.  그럴 것이 도무지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왜 그렇게 걸리는 게 많은지 정신이 없었고 매월 꼴찌를 기록했고 근무성적도 꼴찌였다. 그렇다고 사직할 수도없는 처지였다. 한학기가 지나자 나는 소화불량에 걸리고 말았다. 먹으면 소화가 안되는 것이다. 너무 양심과 주위사람의 억압 속에서 생활하다가 신경성 위장병이 된 것이다. 집안의 우환까지 겹쳐서 나는 그대로는 살아갈 수가 없었다. 나는 하나님을 만나야겠다고 결심 하였다. 많은 부흥사들이 하나님을 만났다는 간증들이 생각났다. 나는 일주일간 금식기도를 결심하고 텐트를 들고 불암산 기슭에 자리를 잡고 금식기도를 시작했다. 그런데 맹송맹송한게 도무지 기도도 안되고 하나님도 나타나지 않았다. 아마 그때는 전능한 하나님이 나의 이 어려운 건강상 가정상 그밖의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해달라고 기도한 것이 주 목표였다. 나의 죽음 문제와 죄의 문제는 그 때는 잠재해 버렸던 것 같다. 나는 곤고한 가운데 일주일을 마치고 하산했다. 가족들과 교회에서는 나의 믿음을 인정해 주었다.

그러나 내게는 아무 변화가 없었다. 그후로 나는 모든 것은 나의 노력에 달려있다고 생각하고 뛰기 시작 하였다. 낮에는 직장에 밤에는 야간 대학에 나갔다. 이젠 고민하지 않기로 하고 뛰기로 마음먹었다. 돈버는 기회나 즐기는 기회도 포기하지 않았다. 결혼할 사람도 약속이 되었고 순조롭게 되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1971 3월 초에 갑자기 눈이 노랬다. 기운이 없고 몸이 이상했다. 진단결과 과로로 인한 급성 간염이었다. 그 후로 3개월간 나는 꼼짝 못했다. 나는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참으로 곤고했다. 이제는 죄책도 없어졌고 죽음의 공포도 없었다. 그냥 불안하기만 했다. 이제는 건강도 잃었고 이상도 사라졌다. 희망이 끊어진 것 같았다. 다시 하나님께 기도했다. 나를 좀 살려 달라고 말했다. 3개월 후 나는 회복되었다. 나는 다시 나의 죄와 죽음의 문제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 친구가 찾아왔다. 변화된 자신에 대해서 간증하고 성경을 펴서 보여주었다. 그 때 나는 성경을 상당히 알고 있었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잘 듣지 않았다. 나는 정말 그에게 자신이 변화되었느냐? 평안하냐고 물었다. 그는 분명하고 자신 있게 대답하였다. 나는 그 이상 대화하지 않았다. 그 후로 몇번 찾아왔다. 그러나 나는 변화가 없었다. 어느 날 초대장이 왔다. 1973 1 8~12일까지 청년수양회 초청이었다. 나는 여러 번 망설이다 아내의 권유도 있어서 참석하기로 했다. 둘째 날 저녁 집회였다. 창세기 12장의 내용으로 세상을 떠나라는 강력한 권유를 받았다. 설교자의 간증과 성경말씀은 내게 큰 충격을 주었고 설교를 다 듣고 난 후 나는 결심하게 되었다. 만약 내가 그 어떤 확실한 것을 얻게 된다면 모든 것을 버리겠다고, 그러나 확신은 오지 않았고 마음이 답답하기만 했다. 나는 이번 기회를 놓치면 영영 신앙 문제는 해결될 것 같지 않았다. 나는 상담을 요청했다. 나는 나의 마음의 수수께끼를 물었다. 왜 나는 옳은 줄 알면서도 못하는가, 왜 죄를 짓는가? 였다. 수많은 해답들을 읽고 들었지만 풀리지 않았던 숙제였다. 그때 상담자는 시편 51 5절을 폈다. “죄악 중에 출생했다는 귀절이었다. 그 때 문제는 해결되었다. 왜 내가 죄를 범하고 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나는 내가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안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구원 받는지를 물었다. 요한복음 5 24절 말씀을 했다.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다····라는 선언을 읽었다. 나는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아무리 봐도 영생을 얻었다는 것이다. 나는 그 말을 즉시 받아들였다. 내가 고민하던 죄의 문제는 이사야 4422절의 말씀으로 해결되었다. 나의 마음이 눈 같이 양털같이 된 사실을 보게 되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다고····나의 미래의 문제도 해결되었다. 요한복음 10 27, 28. “내가····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선행을 쌓으려는 노력, 완전을 향한 노력은 영생과 관계없고 나는 아무 것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에베소서 2 8,9절에 명시되어 있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나는 이 선물을 기꺼이 받았다.

그때가 1973년 1월 9 8의 대화에서 얼어난 일이다. 나는 그때 그리스도와 대화했던 것이다. 나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다. 바로 그날, 영원히····

 

(1982 9월호)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