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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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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0. 8. 12:26 횃불/1982년

애굽에서 가나안까지(13)

-. 리치-

구속의 노래

우리 하나님께 찬양함이 선함이여 찬송함이 아름답고 마땅하도다”( 147:1, 92:1).

그러나 하나님을 찬양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모르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나 하나님을 딱딱하고 준엄하기만 하며 힐문하고 착취하는 분으로 알고 그분에게 감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애도(哀悼)하는 마음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하며 속박된 영혼에게 찬양을 요구하는 것은 조롱하는 것과 같다.

찬양의 소리가 죄인의 입술에서 터져 나오거나 감사의 기도가 하나님께 드려지기 전에, 구원이 먼저 알려지고 체험되어져야 한다. 즉 먼저 구원이 성취되고 받아들여져야 한다. 찬양이 시작되기 전에 모든 문제는 해결되어야 하며 앙심은 안식을 얻어야 되고 마음은 채워져야 한다.

 

이 모든 것은 출애굽기 15장에 있는 노래에서 볼 수 있다. 그것은 성경에서 첫번째로 기록된 노래로, 구원받은 백성들이 부른 노래이다. 또한 그들이 노래를 부른 때는 구원받은 직후였으며 그것은 그들이 구원받음으로 인하여 생기는 당연한 결과였다. 이 모든 것을 아는 것은 좋은 일이다. 오늘날엔 울어야 할 사람들이 노래하는데, 그것은 노래라기보다는 신음이란 말이 오히려 보다 진실한 마음의 표현이리라.

 

14장에서는 이 노래하는 무리가 공포 중에 있었던 것을 보았는데 그들의 원수들이 무서운 힘으로 그들을 둘러왔으며 그들은 두려움 가운데서 울부짖었고 노래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어떻게 임박한 죽음 앞에서 노래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원수는 패배하였고 그들은 승리를 얻은 것이다. 그들은 보았고그들은 믿었다. “ 그리고 그들은 노래했다”( 14:31, 15:1).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주를 찬양하였다”( 106:12).

이 때가 바로 찬양을 할 수 있는 때이며, 그것은 구원받은 이후이지 이전이 아니다. 그 발이 먼저 끔찍한 웅덩이와 수렁으로부터 빠져 나왔고 그 다음에 새 노래가 입가에 넘쳐 흘렀다.

탕자도 먼저 자기 아버지의 사랑의 입맞춤을 받고 나서야 즐거워하기 시작했다.” 빌립은 어두운 사마리아로 내려가서 그리스도를 전하였다. 그리고 백성들은 말씀을 믿고 이어서 그 성에 큰 기쁨이있었다( 8:8). 가사 지대의 광야에서 에디오피아 내시가 주님을 믿은 후 흔연히”(기쁨으로) 자기의 길을 갔다( 8:39). 이 모든 이야기는 동일한 순서를 보여준다. 구원이 먼저 오고 구원의 기쁨과 노래가 뒤따라 오는 것이다.

사랑하는 독자여, 당신이 진정으로 이 노래에 동의한다면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다”, “그는 나의 구원이 되신다라고 말할 수 있는가? 불경건한 자도 나의 구주에 관해 말할 수 있고 또한 귀신들린 빌립보의 소녀처럼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보여주는 사람에 관해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아직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못한 상태에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구원받은 자가 가장 좋아하며 제일 먼저 부르게 되는 노래의 내용은 예수님은 나의 것, 나는 그분의 것이다. 그는 다윗이 노래한 것과 같이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18:2)라고 할 수 있다.

얼마나 많은 나의 00이시요가 나오는가! 그것은 지극히 개인적이며 모두 확실한 것이다. “구원 얻기를 바란다는 말이나 확실할 것이라는 가정이 전혀 없다. 모든 것이 확증된 것이다. 홍해 강변에서의 노래 또한 그렇다.

 

또한 이 새 노래의 제목을 보라. 그것은 모두 여호와에 관한 것, 즉 그분의 영광, 그분의 능력의 위대함이다.

주는 나의 힘이시요 노래이시다.”

주는 전쟁에 능한 자시다.”

그분은 영광스럽게 승리하셨다.”

자신들에 관한 말이나 자신들이 한 일에 관한 말은 한 마디도 없다. 이것이 찬양이다. 그리고 하늘의 새로운 노래는 영원히 찬양을 받으실 합당한 분은 어린 양이시다가 될 것이다. 자신의 경험이나 성취를 노래하는 것은 찬양이 아니다. . 이것들은 결국 변할 수 있는 것이며 불완전하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히 동일하시다. 그분의 영광들은 변할 수 없는 것들이며 또한 하늘 아버지의 귀는 자녀들의 찬양 소리를 들으시려고 항상 열려 있다. 찬양은 하나님의 사람과 은혜에 대한 깨달음으로 채워진 마음으로부터 흘러 넘친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구원을 향유한 사람으로부터 온다.

 

매주일, 종교적인 남녀의 무리들도 시와 찬미를 부를지 모른다. 아마 가장 정통적인 용어를 사용할지도 모르며 가장 매혹적인 음악을 사용하고 가장 완전한 준비와 화음으로 부를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구원받은 사람들이 아니라면, 그들이 주의 구원을 본 일이 없다면, 그들이 홍해를 통과하지 않았다면, 그 모든 것들은 하나의 엄숙한 가짜에 지나지 않는다.

영혼은 죄와 허물로 죽은이상 찬양을 할 수 없으니 죽은 자는 주를 찬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115:17). 그것은 찬양이란 구실로 하늘의 하나님께 가장 무엄한 모욕을 드리는 것이다.

메시아의 고난에 관한 극히 엄숙한 광경이 음악에 담겨져서 수많은 무심한 죄인들이 부르게 되고, 더욱 많은 사람들이 즐기고 있다! 하나님 아들의 죽음의 고통이 대중적인 형태로 유치되어 악한 자들의 취미에 영합하고 죽임을 당하신 분과 살인자들이 만나게 될 그날을 망각하게끔 그들의 양심을 무디게 만들고 있다. “심판 날의 광경이 노래로 바꿔지고 음악의 반주와 함께 불려진다. 하나님의 구속받은 사람까지 공개된 수치에 관해 분명치 못할 뿐 아니라 그들로부터 분리되려고도 하지 않는다.

! 만일 그 성스럽지 못한 노고로 그렇게나 무참하게 그들이 못 박았던 그분의 마음의 부드러움을 그들이 생각할 수 있다면! 만일 그들이 어두움의 구렁텅이를 기억할 뿐 아니라 자신의 것으로 소유하기 위하여, 그리고 자기를 버린 세상으로부터 그들을 성별 시키고자 당하신 주님의 고뇌를 기억한다면, 얼마나 놀라운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

 

사랑하는 그리스도인들이여! 우리는 여러분에게 이를 심사숙고 하도록 간청하는 바이다. 우리는 특별히 구원받은지 얼마 되지 않은 성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다. 하나님께로부터 엄숙한 책임을 위임받고 있는 여러분들은 이런 어둠의 일들에 대하여 분명한 태도를 표명하도록 권고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양 무리 중 어린양들의 발이 악한 자의 길로 이끌리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즉 종교적인 오락을 통하여 마귀의 궤계에 빠지고, 그렇게 할 수 없을 때엔 다른 경우를 통하여 나쁜 길로 빠지는 모습을 보았다.

어떤 경우엔 마귀가 가면을 쓰지 않고 나타나나 어떤 경우엔 빛의 천사로 둔갑하고 나타나 주의 집에서 노래하는 사람의 직분을 행사하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대상 9:33)

 

(1982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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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