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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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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0. 12. 11:31 횃불/1983년

교양머리

이춘원

일평생 교역(敎役)을 하시다가 소천하신 소생의 아버님께서는 철부지 청소년 시절의 필자를 향하여 교양머리 없는 녀석 같으니라구!” 이렇게 중종 꾸짖으셨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니 그 때의 아버님의 꾸짖음과 훈계는 내게 있어서 평생 잊지 못할 사랑의 권면이셨습니다.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저의 아버지의 서재실 벽에는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로 시작이 되는 에베소서 6:1-4절까지의 성경 구절이 붓글씨로 크게 써 걸려 있는 것이 지금도 눈앞에 생생히 보이는 것 같습니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는 말씀에 이르러는 붉은 색 연필로 그어 놓으신 것을 보니 남달리 자식들의 양육에 관심이 많으셨습니다.

아비들아하고 지적한 말씀을 보니, 자녀 양육에 있어서 어머니는 물론 아버지의 책임이 무엇보다 먼저 전적으로 중요하다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아버지, 혹은 남편이 한 달에 한번씩 월급 봉투나 전해주는 배달부로 전락(轉落)한 것은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돈벌기에 바쁜 아버지는 자녀들과 함께 대화하고, 함께 놀고, 함께 식사할 틈조차 없을 정도 입니다. 자기 자녀가 몇 학년 몇 반인지. 담임 선생의 이름도 모르고 다만 세상 교육은 일반 학교에, 신앙 교육은 교회에, 가정 훈육은 아내에게 맡겨 버리는 것이 아버지의 현실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것 이상의 존재요, 아주 중요한 책임을 담당하고 있는 한 가정의 주인입니다 목자요, 장로요, 교사요, 인도자입니다.

 

노엽게 하지 말고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는 말은 그들을 격노(激怒) 시키지 말라는 뜻입니다( 3:21). 심히 성내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릴 뿐만아니라 연약한 아이들의 마음과 몸을 낙심케 하고 비틀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않고 잘 키울 수 있는 길을 무엇일까요?

① 자녀들 앞에서 너희들은 내가 낳았으니 내 것이다하는 부권(父權)을 남용치 말 것입니다.

사실 자녀는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내가 잠시 맡아서 하나님의 뜻대로 그들의 영혼과 몸과 생활과 온 인격이 온전히 성장할 때까지 양육해 줄 뿐입니다. 부모는 자녀 교육의 담임자요 대리자요 인도자입니다.

② 어린이는 어린이의 마음과 그 세계에서 이해되고 받아들여져야 마땅합니다. 어린이를 억지로 어른답게 만들려는 것은 마치 어린 새 싹을 잡아 뽑아 빨리 자라 꽃 피게 하려는 것과도 같습니다. 어린이는 어린이로 이해하고 동정하고 관용하며 보살펴 주는 넓은 교육적인 마음이 널리 부모님들에게 필요합니다. 엄한 명령보다는 아빠의 자애스런 선도가 아이를 옳은 길로 나아가게 합니다. 책망보다 격려가 더 큰 일을 하게 합니다. 쉴새없는 꾸지람과 금하는 것과 엄격한 군대식 교육보다는 아이의 편에 서서 그들과 함께 어울리며 부드럽게 선도해 주는 인격적인 사람의 훈육이 중요한 것입니다. 위에서 보다는 아래서 자녀들과 함께 살고 함께 인도하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산 교육!

③ 자녀를 노엽게 하고 실망케 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부모의 편애(偏愛)에 있습니다.

나에게는 주님이 주신 네 아이들이 있습니다. 맨 끝에 낳은 어린 아이 시몬이를 가장 사량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은연중 생긴 큰 아이들의 불평과 시기와 실망을 본 후로는 나 자신을 반성케 되었습니다. 사실 편애는 자식들을 어리석게, 비뚤어지게, 그들의 마음과 인격과 세계를 좁고 옹졸하게 만듭니다. 편애는 넘어지게 하는 함정입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이삭이나 야곱의 가정의 비극은 그 부모의 편애에 기인하는 것이 아닐까요.

④ 사랑과 훈계로 자식을 기르되 끝까지 불순종할 때에는 채찍으로 징계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는 것은 그들이 계속 잘못하고 멋대로 자라도 그냥 방임해 두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성경은 이런 경우 자식에게 징계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초달(楚撻 /회초리로 때리는 일)을 참아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 하느니라”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혔으나 징계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 쫓아내리라” “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하게 버려두면 그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 “네 자식을 징계하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평안하게 하겠고 또 네 마음에 기쁨을 주리라”( 13:24, 22:15, 29:15,17).

아이도 아담의 후손으로 죄인입니다. 순진하게 보여도 온갖 죄의 근성이 그 속에 있습니다. 사랑과 이해에 넘친 훈계와 징계가 그 죄를 깨우치고 바른 길로 나아가게 합니다.

채찍이나 아무런 징계를 하지 않는 부모는 그 자식을 버리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함부로 채찍과 주먹을 휘두르는 부모는 그 자식을 병들게 합니다. 그러나 사랑의 훈계로 써 필요한 경우, 이유를 밝혀 주고 합당히 징계하는 채찍이 자식의 영혼을 음부에서 건집니다.

 

주의 교양과 훈계로

자녀 양육의 기준이나 방법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부모의 육신적인 생각과 계획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자식을 양육하는 것입니다. 부모의 것을 계속 주입시키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을 그들에게 보여주고 가르쳐 주는 것이 현명한 양육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부모 자신들이 먼저 주님을 잘 믿고 잘 배우고 잘 본받아 행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주님의 생명의 말씀과 사랑에 넘친 마음과 겸손한 인격을 자녀들이 배워 실천할 수 있도록 인도하고 양육해 주는 것이 가장 훌륭한 도리입니다.

교양(敎養)이란 말은 헬라어 Paideia의 번역으로서 주로 심신을 발달시키는 행동적인 훈육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훈육, 훈련, 단련이란 뜻이 있습니다.

자녀들의 심신 양면의 온전한 발달(성장)을 위하여 수시로 교정해 주고 수련시키고 과오를 고백하고 앉고 설 때와 가고 못 갈 곳을 알려주고 모든 사회의 어느 영역에서나 승리할 수 있도록 그리스도인으로서의 합당한 인격을 구비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는 것이 자녀의 교양 교육의 목적이자 방법입니다.

그런데 자녀를 교양으로 양육하되 또한 훈계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훈계라는 단어는 헬라어 nouthesia라는 명사를 번역한 것으로 아이에게 마음을 두고 말씀으로서 교육 곧 훈계하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같은 정신과 인격을 소유할 수 있는 비결은 자녀들의 어린시절부터 주님의 사랑과 말씀으로서 가르치고 또 훈계하고 편달해 줄 때 이를 수 있는 것입니다.

필자는 감히 모든 부모들에게 간곡히 부탁을 드립니다.

勳 자식을 육신의 밥으로만 먹이지 말고 세상 교육으로만 하지 말고 영적인 양식인 주님의 말씀으로서 계속 먹이십시오.

勳 매일 최소한 한번 이상 온 가족이 잠시라도 함께 모여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찬송하는 교제 시간을 가지십시오. 작은 가정 교회를 이루십시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징계)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 3:14-17, 6:4-9).

 

양육하라

양육(養育)이란 단어는 헬라어의 ektrepho라는 동사에서 온 말로 자녀들의 영과 혼과 몸을 육성하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영혼과 몸의 올바른 성장은 주님의 은혜와 진리 안에서의 교육 곧 주님의 말씀대로 가르치고 행하는 교양과 훈계로서 가능한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남겨줄 가장 큰 유산이 있다면 그것은 주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은 자녀 교육의 기본적인 지침서입니다. 말씀은 생명이요 인격입니다.

뜨거운 사랑과 선한 믿음과 겸손한 인격을 소유한 부모와 그 주님의 말씀의 교양과 훈계로서 자녀를 잘 양육한 부모에게는 현세와 내세에 약속이 있습니다. 넘치는 복이 있습니다.

 

(1983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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