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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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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0. 16. 09:12 횃불/1983년

애굽에서 가나안까지(23)

정탐꾼들의 사명

존 리치

언뜻 보아서는 가나안 땅을 정탐하기 위하여 열두명의 정탐꾼을 보낸 것이 주의 명령인 것처럼 보이나 신명기 1 22절과 민수기 13 1-3절까지를 비교해 볼 때 그것은 사람의 뜻에서 연유된 것이 확실하다.

너희가 가까이 와서 너희 각인이 말하기를 우리가 우리 앞에 사람들을 보내어 그들로 땅을 정탐하게 하자.”

또한 파견의 목적이 무엇이었나를 우리가 기억할 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신과 무시의 결과였음을 확증해 줄 뿐이다. 후에 그들이 왕을 요청했을 매 허락해 주신 것처럼 하나님은 그들의 소원을 들어주셨다. 그러나 정탐꾼들의 파견이나 왕을 요구한 것 모두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다.

그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한 여호와의 목적이 먼저 모세에게 알려졌을 때에, 그리고 모세를 통하여 백성들에게 알려졌을 때 강렬한 어조의 말씀이 들렸었다.

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려 하노라”(3:8).

 

그들은 이미 그들에게 성취된 이 결정적인 약속의 첫째 및 둘째 부분을 가졌다. 그들은 애굽으로부터 구원을 받았고 인도되어 나왔다. 그들은 이제 앞으로의 남아있는 문제도 성취하실 신실하신 하나님을 잘 알아 볼 수 있었으며 이를 행하시는 그분을 믿고 전진해 나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는 대신에, 또한 그분의 말씀을 믿는 대신에, 그들은 정탐꾼을 보내어 그 땅이 무슨 땅인지 보도록했고, “그것이 좋은지 나쁜지, 비옥한지 박한지알아보도록 한 것이다( 13:18-20),

이것은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우리는 가나안 땅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으며 사람을 보내서 확인해야만 하겠다는 것이다. 참으로 그 땅은 좋다고 주님은 말씀하셨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좋은지 나쁜지 알아보기 위해서 사람을 보낼 것이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말씀하셨지만 우리는 그것이 비옥한지 박한지 보아야겠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 가운데 있었으므로 정탐꾼들이 악한 보고를 갖고 돌아왔을 때 그 백성들의 태도를 알아보기는 어렵지 않았다. 그들은 불신의 보고를 완전히 신뢰하고 받아들이며 하나님을 불신할 마음을 갖추고 있었다. 이것이 인간의 마음이다.

 

돌아온 정탐꾼들은 그 땅에 대해서 반대하는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젖과 꿀이 흐른다는 증거가 그들로부터 튀어 나왔다. 그러나 그 증거와 함께 그 땅을 쟁취할 때 당해야 할 장애나 원수에 대한 과장된 표현도 즉시 나타났다. 거기서 그들은 옹벽도성과 거인을 보았고 또한 자신들을 메뚜기 같다고 말했다. 하나님에 관해서나 그분의 약속에 관해서는 전혀 한마디도 없다. 그들은 하나님을 생각지 않았으며 내가 너희를 그 땅에 들여보내겠다는 그분의 약속도 마음에 두지 않았다. “그들은 밀지 않음으로 인하여 들어 갈 수 없었다.”

그들이 서로 말하기를 우리가 한 장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14:11)고 하였다. 그들의 마음은 이미 애굽에 있었고( 11:5), 또한 그 발은 마음이 있는 곳으로 곧 따라갈 것이다.

그들은 가데스바네아, 곧 좋은 땅의 바로 경계에 있었다. 그 땅의 좋은 열매들이 그들의 목전에 있었고 주님께서 그들을 그 땅에 들여보내 주시며 그 땅을 그들에게 주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들은 등을 돌리고 거절하였다. 이것은 그들의 역사상에 있어서 하나의 위기였다.

주님은 그들의 불평과 광야의 실패 중에도 꾸준히 참고 그들과 함께 하셨다. 그러나 그 약속의 땅에 대한 고의적인 거부나 그분의 말씀에 대한 불신의 담대한 선언 등은 그분이 심판하시고도 남음이 있다. 모세의 중보가 없었다면 하나님의 의로우신 진노가 단숨에 그들을 살랐을 것이다.

믿지 않던 백성들은 그들의 선택에 의해 광야에 남게 되었다. 그들은 40년이란 긴 세월 동안 광야를 헤매야만 했고 거기서 또한 죽어 장사되어야만 했다. 그들의 자손들은 들어가서 땅을 차지할 수 있었으나 그것을 멸시한 자는 죽어야만 했다.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한 엄위한 교훈이 여기에 있다. 그 좋은 약속의 땅은 그리스도 안의 모든 성도들에게 부여된 광대한 영적 축복의 유산을 상징한다( 1:3), 그러나 그것을 소유하기 위하여 그 땅을 밟아야만 한다. 그것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고 발로 많아 소유하는 것이다.

한 나라의 지리에 대한 지식과 그 땅 위에 서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늘의 것들에 관한 이론적인 지식은 있지만 그것들을 전혀 소유하지 못하거나 적게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영적인 축복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아낙 자손의 장소에도 가보아야 하며 옹벽도성에도 가보아야 한다. “포도거인은 동시에 발견되며 만일 우리가 그 중 하나를 취하려면 다른 자와 싸우지 않으면 안된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미치지 못한다. 축복을 원하지만 싸우기를 두려워한다. 포도는 달지만 거인들이 강하기 때문에 그들을 대항하는 대신 영적 축복을 모두 멸시하고 세상으로 타락하여 갔다.

하늘의 가나안의 경계선상에서 믿음의 생활과 주의 말씀의 철저한 훈육과 순종의 축복을 사모하고 있는 성도들은 얼마나 자주 눈에 띠는지! 그러나 그때엔 십자가를 져야만 한다. 친구들이 대적할 것이며 세상이 헐뜯을 것이다. 세상의 것들을 잃을 수도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의 믿음을 시험하는 옹벽도시거인들이 있다. 이것들을 계산하지 않았다 해도 그들이 성경을 읽었다면 주께서 하신 말씀을 알았을 터이니 곧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9:23)라고 하시지 않는가!

그러므로 그들은 다양한 형태로 세상으로 돌아갔고, 계속 불행한 낙오자로서, 타인에게 거치는 존재로서 또는 스스로 영원히 잃은 자로서 살다가 그들의 생을 마쳤다. 이 불신 군중에 대한 그 이상의 역사는 기록되지 않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기록하실 가치조차 인정하지 않으신다. 그들이 좋은 땅을 멸시한때부터 실제 가나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38년간의 지친 배회시간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고 단지 유월절을 범한 자들에 대한 돌질과 고라와 그의 무리들의 범죄와 멸망뿐이니, 타락하고 반역하는 백성의 모습은 역사적으로 볼 때에 기독교계의 타락상과 배교를 상징하는 것들이다( 10:28, 11).

 

불신 군중 앞에 담대히 서서 살아계신 하나님께 대한 자신의 신앙을 고백한 두 신실한 사람에게로 돌이킨다는 것은 마음에 안위가 된다. 갈렙과 여호수아는 그 땅을 정탐하도록 뽑힌 열두 사람들 중에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나머지 열명의 사람과는 다른 영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들은 약속하신 하나님께서 신실하신 분임을 굳게 믿었다. 그들은 주님을 전적으로따르도록 준비를 갖춘 사람들이었다( 14:24).

갈렙은 45년 후 그의 발이 가나안 땅에 섰을 때 내 마음에 성실한 대로 그에게 보고하였다”( 14:7)고 고백하였다. 아마 그는 소경된 채로 가나안 땅을 통과했어도 그것이 여전히 좋은 땅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는 그가 본 것으로부터 정보를 얻지 않았고 그의 주의 말씀이 그의 중심에 있었다. 그는 하나님을 믿었으니, 그 땅에 관해서뿐만 아니라 그곳으로 인도하실 하나님의 능력을 또한 믿었다.

그는 옹벽도성을 보았고 장대한 아낙자손도 보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 위에, 모든 것보다 크신 살아계신 하나님을 보았다. 그는 하나님이 승리를 능히 주실 수있다고 믿었으며, 또한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고 증거하였다. 이것은 교만이나 자만의 말이 아니었다. 이것은 믿음의 말이었다. 이것은 주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니 그들을 두려워 말라”( 14:9)는 격려를 받은 말씀에 분명히 드러나 있다. 복된 간증이다!

또한 그것이 불신 군중에게 아무런 효력을 나타내지 못했다 하더라도 하늘의 하나님은 이를 가치있게 보시고 보상하셨다. 열 명의 불신 정탐꾼들은 광야에서 죽어갔지만 갈렙과 여호수아는 생존했다(14:36-38). 또한 그들은 자기 형제들이 멸시한 그 땅으로 그들을 인도해 주겠다고 하신 주님의 약속을 받아들였다.

이 약속이 성취되기까지 사십년이란 긴 세월을 기다려야만 했으니, 이렇게 해서 믿음에 인내를 더했다. 그들은 반대하는 사람들과 나란히 서서, 한 사람씩 그들 옆에 낙오되는 것을 보면서 광야를 걸어갔지만 그 약속이 실패되지 않을 것을 알았다.

 

여호수아 14 6-15절에 기록된 결과를 읽는 것은 얼마나 복스런 일인가! 또한 나이든 전사들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만나는 모습을 보면서, 갈렙의 입술에서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한 그의 감동어린 간증을 듣는 것이란! 아직도 원수들을 내어 쫓으시는 주님을 의지하고, 팔십 오세의 고령에도 근력이 왕성하여 청년 때와 같이 전쟁을 치를 수 있는 씩씩하고 믿음직스런 모습으로 올라가서 그의 기업을 차지할 준비를 갖추고 서 있다.

헤브론(이는 교제를 의미한다)이 그의 기업이 되었고 그로부터 그는 세 아낙자손을 몰아 내었으니, 그들은 전 민족에게 위협을 가하던 자들이었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우리도 여기서 하나님은 자기를 의지하는 자들에게 언제나 신실하시며, 축복과 교제의 길은 주께서 명하신 모든 것을 순종하고 충성하는 길임을 배우도록 하자.

 

항상 하나님 편에 선 자를 이기게 하시니

패배할 기회가 그에겐 없다네.

희생하여 승리한 사람에 겐

하나님의 뜻이 가장 달콤하다네.

 

(1983 7,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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