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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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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0. 26. 12:47 횃불/1984년

보디발의 아내

성에 의해 흔들린 여인( 39:1~20)

흔히 일컬어지기를 환경은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됨됨이를 드러낸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사실은 보디발의 아내에게도 해당합니다.

첫눈에 보아도 보디발의 아내는 여성이 원하는 모든 것을 소유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내적으로는 비어 있는 삶의 목적이 없는 여인이었습니다. 그녀의 손아귀에서는 너무나 많은 시간이 남아돌았습니다. 그녀는 일을 인생의 전부로 여기는 남자에게 결혼했습니다. 성경은 그들의 자식들에 대해 언급하지는 않지만 만일 있었다면 그 자식들은 보 모에게 맡겨져 돌봄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녀의 남편이 그녀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에 아마 그녀의 감정은 상했을 것입니다. 공허한 삶은 어떤 성취감을 희구(布求)하고, 텅빈 마음은 만족을 갈구하기 마련입니다. 결국 보디발의 아내는 자기 마음 속에 있었던 욕망을 표현하게 되었습니다.

요셉의 매력은 그의 신체적인 용모 때문만이 아니라 그의 내적 성품의 아름다움과 의로움과 성실함에 있었다는 것을 그녀는 알아채지 못했을까요? 그에게 있어서의 특별한 점은 바로 하나님과 가까이 동행하는 삶이라는 것을 그녀는 깨닫지 못했을까요?

깨닫지 못하고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왜냐 하면 그녀는 한번만이 아니라 되풀이해서 자기 자신과 요셉을 욕되게 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자기 자신과 자기 몸을 요셉에게 내어 던져 오직 섹스에서만 만족을 얻으려 했습니다.

창조시에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2:24). 그러므로 성욕은 하나님에 의해 결혼의 따뜻함과 보증과 사랑 안에 영원토록 포함되었습니다. 이것은 한 몸이 되는 것은 사랑의 결과이어야만 한다는 그분의 명령을 생각해 볼 때 분명해집니다. 부모를 떠나 새로운 가정을 시작하는 것은 성적인 사랑의 극치를 위한 적절한 환경을 마련해 줍니다. 이 선행 조건이 먼저 만족되지 않는 한 섹스란 한낱 소실해버리는 정욕이요, 인간을 형편없는 짐승의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욕정에 불과합니다. 이것은 자기 비난과 외로움과 수치를 초래합니다. 이렇게 되면 더 큰 외로움이 생겨납니다. 왜냐하면 육욕에 대한 더 심한 갈망이 자리를 잡기 때문입니다. 결국 완전한 파멸이 오게 마련입니다. 그것은 불행의 악순환입니다.

요셉은 즉시 그 유혹을 올바른 관점에서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결코 그것을 가볍게 보지 않고 그것을 죄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그녀의 남편을 무척 존경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가장 큰 관심사는 바로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得罪)하리이까?” 요셉의 말은 옳았습니다. 음행과 간음은 하나님 보시기에 죄입니다. 혼외(婚外)의 모든 성행위는 하나님께서 혐오하시는 죄입니다.

부도덕은 지옥으로부터 직접 오는 치명적인 흉기로서 그것에 탐닉하는 사람을 멸망시킵니다. 요셉은 하나님과 동일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이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무엇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해 드리는지 잘 알았습니다.

부녀와 간음하는 자는 무지한 자라 이것을 행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망하게 하며 상함과 능욕을 받고 부끄러움을 씻을 수 없게 되나니”( 6:32~33). 솔로몬은 이 말씀을 나중에 기록했지만 요셉은 이 원리를 이미 이해하고 있었으며, 이것을 보디발의 아내와의 난국(亂局)에 적용했습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모른다는 것은 이유가 되지 않았습니다. 다른 모든 사람처럼 그녀도 양심 깊은 곳에 도덕적인 기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하나님께서 창조시에 인간에게 주신 생명의 법칙을 범하고 있었습니다( 2:14~15). 요셉이 그녀를 거절한 후 그녀가 진실을 왜곡했을 때 그녀는 이것을 증명했습니다. 그녀는 자기가 범하려 했던 부도덕을 요셉에게 뒤집어씌웠습니다. 요셉의 성품의 순결함을 증명하는 그의 재빠른 벗어남은 그녀를 더 한층 부채질하여 그녀의 마음을 더욱 뒤틀리게 만들었습니다. 그의 웃사람이었던 그녀는 아무런 주저함이 그의 출세를 파멸시키고 그의 선한 명성을 더럽히려고 결심했습니다.

이것은 수년 동안 감옥에 있게 되는 아주 어려운 시련을 요셉에게 갖다 주었습니다. 틀림없이 그는 그 부정직한 고발로 인해 대단히 상처를 입었을 것입니다. 아마 그는 또 버려진 느낌을 받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보디발은 그 사건의 진상을 조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보디발은 그의 아내도 믿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는 틀림없이 요셉을 죽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보디발의 아내는 무언가를 잃어버린 반면에 요셉은 아무 것도 잃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녀에 관해 더 이상 아무것도 들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그녀가 크나큰 죄를 저질렀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행위에 대해 아무런 후회나 슬픔의 빛도 보이질 않고 용서를 구하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녀에게 삶의 참 만족과 기쁨을 주시기를 그렇게 원하셔서 요셉이라는 사람을 통해 그녀의 삶에 손을 대셨지만 그녀는 조금도 하나님에 관해 알기를 원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만일 그녀가 그 후에라도 자신의 성적인 욕망을 죄로 인식했다면 그것에 승리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녀는 요셉의 처음 거절 후에 자신의 마음과 몸에 대한 통제력을 다시 되찾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녀는 요셉에게 그의 삶을 지배하시는 하나님에 관해 질문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나태한 시간들을 더 유익한 것들로 채울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녀는 생의 가장 귀중한 선물인 시간을 아무렇게나 사용했기 때문에 게으름은 곧 그녀가 범한 죄악의 어버이가 되었습니다. 게으름은 그녀의 악한 생각에 양분을 공급해 주는 좋은 토양이 되었습니다. 그녀가 자신의 악한 생각에 굴복하고 나자 그녀는 실제의 행위로 죄를 지으려는 욕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행위는 생각의 열매이므로 그녀의 생각은 타락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됩니다.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은 그리 특별한 것이 못됩니다. 사단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기 때문에(벧전 5:8)오늘날의 수많은 사람들도 그와 똑같은 유혹을 받고 있습니다. 사단의 성격은 결코 바뀌지 않습니다.

보디발의 아내는 자신의 악한 유혹이 죄로 성장해가도록 그대로 내버려두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욕망을 제어하기는커녕 오히려 그것으로 하여금 자신을 꾀어 실제의 죄를 짓도록 방치했습니다( 1:14~15). 그녀는 전혀 자신을 바로잡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유용하게 보낼 수 있는 시간과 지성과 잠재력을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녀에 관해서는 어떤 좋은 말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녀가 아무런 좋은 인상을 남기지도 못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은 비극입니다.

 

질문-이 이야기와 살전 4:3~7에 나와 있는 경고의 말씀을 비교해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이 자신의 몸에 관해 어떠한 태도를 취하기를 원하실까요?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7)

얼마 전에 저의 집 현관의 벨이 고장이 나서 희미한 소리만 들릴 뿐이었습니다. 기술자를 불러서 살펴보았더니 거미줄이 그 안에 감겨 있어서 벨 소리를 잘 내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일을 통하여 성도들의 복음의 벨 소리를 무디게 만드는 방해물들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성도의 어떤 좋지 못한 습관, 방종. 지나친 우정, 오락, 게으름, 교만,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 자기본위, 칭찬받기를 지나치게 좋아하는 것, 이기적인 동기, 규모없는 무질서한 삶. 억지 등등은 그와 같은 방해물이 되는 것입니다.

만일 성도가 그와 같은 방해물을 제거하지 않는다면 세상 사랑들은 성도들의 삶을 통해 들려오는 우렁찬 복음의 벨 소리를 듣기가 힘들게 될 것입니다.

 

(1984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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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