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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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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1. 18. 18:20 횃불/1986년

그리스도인의 모임

24장 영문(營門)

J. R. 리틀플라우드

그런즉 우리는 그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11:13)

. 히브리인들의 논쟁

우리가 항상 잘 기억하고 있어야 할 사실은 히브리서가 히브리인들 곧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중년 때까지 유대교 속에서 성장하다가 그리스도와 기독교로 돌아온 유대인들에게 기록되었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그때까지 배우고 실천했던 것들 즉 성전과 회당과 유대교의 가르침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기가 몹시 어려웠습니다. 게다가 정통파 유대인들이 그들을 설복하여 그들로 하여금 유대교에 그대로 남고 기독교를 포기하도록 하기 위해 강력한 논증을 제시했습니다. 그들은 말하기를 기독교에는 언약도 없고, 희생 제사도 없으며, 제사장도 없고, 성소도 없고, 제단도 없다고 했습니다.

 

. 히브리인들의 논쟁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답변

히브리서는 대부분 그와 같은 논쟁에 대한 답변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언약이 없다고요?  그 사도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새 언약에 대해 기록했습니다( 8:6,8). 이 언약에 관해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증과( 7:22) 중보(中保)가 되셨습니다( 8:6).

희생제사가 없다고요? 구약의 희생제사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었으므로 해마다 죄를 생각나게 했으며, 결코 죄를 없애지 못했습니다( 10:1-4). 이 얼마나 심각한 기소장(起訴狀)입니까! 그러나 그리스도의 죽음 안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죄를 없게 하는희생제사를 가지고 있으며( 9:26). 그 대속의 가치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인들은 영원한 속죄를 가지고 있으며, 그 영속(永續)하는 가치로 인해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드리심단번으로 족한 것입니다( 10:10)

제사장이 없다고요? 이제 한 말에 중요한 것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라 그가 하늘에서 위엄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 8:1).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은 이와 같은 주장을 결코 할 수 없습니다. 그는 오직 일 년에 한번만 여호와의 존전으로 들어갈 수 있었으므로( 9:7) 그의 일은 결코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 들어가셨습니다”( 9:12).

성소가 없다고요?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오직 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9:24). 이와같은 논증은 주님께로 돌아온 유대인들에게 기독교가 유대교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대단히 잘 설득했을 것입니다.

제단이 없다고요? 천만에 말씀입니다. “우리에게 제단이 있는데 그 위에 있는 제물은 장막에서 섬기는 자들이 이 제단에서 먹을 권이 없나니”( 13:10)이 제단이 누구인지는 13절에 구체적으로 나와 있습니다. “그런즉 우리는 그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그분이 바로 이 제단의 희생제물이심은 물론 그 제단도 되시는 것입니다(10). 아직까지도 구약의 희생제물을 가져오는 유대인들은 참예할 권리가 없습니다. 이것은 무슨 뜻일까요? 율법을 지킴으로써 구원을 얻으려는 그들은 그리스도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 그리스도인의 분명한 위치에 대한 권면

히브리서 저자는

1. 기독교가 유대교보다 비교할 수 없는 우월성을 가지고 있음과

2.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전히 유대교 밖에 계신 것을 증명했습니다. 그분은 성문 밖에서죽으셨습니다( 13:12). “그러므로사도는 기록하기를 여러분이 만일 그분과 함께 계시려 한다면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야 합니다라고 했던 것입니다( 13:13). 여기에는 상호 관계가 있는 두 가지의 원칙이 있습니다.

인간들이 만든 체재로부터의 분리 - “그런즉 우리는····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밖에 계신 그분과의 동일시 - “그런즉 우리는····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히브리서 저자는 그가 영문 밖이라고 부른 그 위치에 관련된 것을 가리키기 위해 구약의 예화들을 사용했습니다. 그 예화들은 우리가 그분과 동일시해야 함을 4중적인 방법으로 나타내고 있으며, 그것들은 또한 반박할 수 없는 축적적(蓄積的) 논증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1. 죄를 위한 희생제물이 되신 그분과 동일시

이는 죄를 위한 짐승의 피는 대제사장이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고 그 육체는 영문 밖에서 불사름이니라”( 13:11). 구약을 참조한 이 구절은 속죄일과 속죄제물을 진() 밖에서 불태우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16:27). 우리가 영문() 밖에 계신 그분에게로 나아가라는 권면을 받을 때 거기에는 두 가지의 중요한 원칙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a) “영문 밖에 계신 그분과 그분의 속죄하는 희생제사와의 동일시

(b) 죄와 죄인들로부터의 분리-”영문 밖에서

 

2. 죄악으로부터의 분리에 있어서 그분과 동일시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13:12). 이 말씀은 구약의 출 33:7과 금송아지의 사건을 참조한 말씀입니다. 모세가 그 산에서 하나님께로부터 지시를 받고 있는 동안 백성들은 아론에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일어나라 우리를 인도할 신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32:1). 그들의 외침 소리를 들은 아론은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로다.” 그는 대단히 공들여 만든 종교적 가식을 가지고 그 끔찍한 우상 숭배를 에워쌌습니다. 그는 단을 쌓고 여호와의 절일(節日)”을 만든 후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습니다( 32:5,6). 그런데 우리가 신중히 관찰해야 할 사실은 아론의 조직이 속죄제를 마련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신약적 언어로 표현하자면 그는 십자가에 대해 이야기하며, 주님의 만찬을 지키며, 그리스도의 아름다우심을 극찬하며. 그분을 통한 평화를 선포하면서도 죄를 위한 속죄 희생제사가 없는 조직을 가지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그와 같이 조직을 꾸미는 종교적인 면판(面板)에 의해 속고 있는 것처럼 아론의 시대에도 그러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속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백성이 부패하였도다”( 32:7). 모세도 속지 않았습니다. 그는 진문(陣門)에 서서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그에게로 나아오라고 외쳤습니다( 32:26). 이것은 우상숭배의 죄악과 그것과 관련있는 종교적인 가식으로부터의 분리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모세가 장막을 취하여 그것을 진 밖에 치자 여호와를 앙모하는 자는 다 진바깥 회막으로 나아갔습니다”( 33:7). 이것이 바로 그분과 동일시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분의 편에 서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지는 멧세지도 우리 자신을 모든 종교적인 가식과 죄악으로부터 분리하고 그것에서 단호히 나와 여호와의 편에 서는 것 곧 우리 자신을 영문 밖에 계신 그분과 동일시하라는 것입니다.

 

3. 그분의 배척받으심과 동일시

그런즉 우리는 그 능욕을 지고 영문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13:13). 논증은 축적적(蓄積的)입니다. 13:11에서의 강조점은 바깥에서 죄를 위한 희생제물이 되신 그분과 우리의 동일시에 있습니다. 12절에서의 강조점은 우리가 아직 그 바깔에 있을지라도 죄악과 악한 가식으로부터의 분리에 있어서 그분과 우리의 동일시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구절에는 바깥에 계신 그분의 능욕을 지는 것 그분의 배척받으심을 함께 나누는 것에 대한 개념이 첨가되어 있습니다. 이 구절은 다윗이 사울을 피해 아둘람 동굴 속에 숨었던 때를 참조하고 있습니다(삼상 22:1,2). 고난 당한 자와 빚진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 장관이 되었는데 그와 함께한 자가 4백명 가량이었습니다. 이 얼마나 모임의 구성물을 잘 보여주는 아름다운 그림입니까! 지금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으신 자 주 예수님께서 배척을 받고 계신 것처럼, 그때 그들 가운데에도 하나님께 기름부음을 받은 배척받는 왕이 있었던 것입니다. 환난 당하는 자와 빚진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다윗에게로 나아왔습니다. 여러분은 죄인에 대한 묘사 중 이것보다 더 함축적이고도 정확한 묘사를 읽어 보신 일이 있으십니까? 환난 당하는 자, 빛진 자, 마음이 원통한 자! 이것과 똑같은 사람들인 우리는 구원을 얻기 위해 그분께로 나갔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했을 뿐만 아니고 또 다른 일을 했습니다. 그들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 장관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모임에 대한 얼마나 아름다운 예시(豫示)입니까! 전에 환난 당하고, 빚지고, 마음이 원통했던 사람들이 그분께로 모여들어 그들 가운데 있는 주님의 자리를 그분에게 내어드린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에게는 헌신된 한 추종자가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요나단이었습니다. 이 요나단은 아둘람에 없었기 때문에 다윗의 배척 당함을 함께 나누지는 못했지만 요나단이 그를 자기 생명같이 사랑했습니다. “요나단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연락(聯絡)되어.”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다윗을 심히 기뻐하므로”(삼상 19:1). 요나단은 다윗에게로 가서 그가 왕이 될 것을 인정하고 그와 언약을 맺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아둘람에 있는 다윗과 함께 거하여 그의 배척당함을 함께 나누지 못했기 때문에(삼상 23:16-18) 결국 길보아산의 싸움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됩니다(삼상 31:1,2,6). 만약 그가 다윗과 함께 아둘람에 있었다면 그와 같은 슬픈 운명은 맞지 아니했을 것입니다. 그 누구든 이 진한 여운을 남기는 인간의 이야기를 읽고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삶과 너무나 비슷한 유사점을 관찰하고 나서, 그들은 조만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도 패자(敗者)가 될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4. 그분의 영광과 동일시

이것은 미래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슬픔과 고난을 당하고 있지만 잠시 후면 상급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는 영구한 도성이 없고 오직 장차 올 것을 찾나니”( 13:14). 논증은 아직도 축적적(蓄積的)입니다. 다윗의 배척 당함을 함께 나누었던 사람들은 영구한 도성 밖의 아둘람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보좌에 오르게 되었을 때, “자기와 함께한 종자(從者)들과 그들의 권속(眷屬)들을 다 데리고 올라가서 헤브론 각 성에 거하게 하니라”(삼하 2:3). 게다가 그들은 다윗의 왕국에서 명예를 얻게 됩니다. “다윗이 기스의 아들 사울을 인하여 시글락에 숨어 있을 때에 그에게 와서 싸움을 돕는 용사 중에 든 자가 있었으니”(대상 12:1). 다윗의 배척 당함을 함께 나누었던 사람들은 혜브론의 성읍들로 인도된 후 그 왕국에서 다윗의 장수들이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에게 귀한 교훈을 주지 않습니까? “참으면 또한 함께 왕노롯할 것이요”(딤후 2:12). 그날에 그분께서 다음과 같이 우리에게 말씀하신다면 그것을 듣는 우리 영흔은 얼마나 감격에 떨겠습니까! “잘 하였도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19:17).

그러므로 단 한번의 희생으로 우리 죄를 위해 영원한 제사를 드리신 그분과 우리 자신을 동일시하고 종교적인 가식으로 옷입은 모든 죄악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분리하고 그분의 배척 당하심을 함께 나누기 위해, “우리는 그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갑시다. 그러면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함께 나누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주님은 지금 배척을 받으시며.

세상에 의해 부인을 당하시며.

많은 사람에 의해 아직도 무시를당하시고 계십니다.

오직 소수만이 그분을 보좌에 앉혀 드렸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이제 곧 영광 중에 오실 것입니다!

그 시간은 점점 가까와지고 있습니다.

면류관을 쓰는 그 날은 조만간에 닥칠 것입니다.

 

(1986 10월호)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