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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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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1. 20. 12:14 횃불/1986년

너를 책망할 것이 있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2:4)

주님께 책망을 받는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처음 사랑을 버렸다는 책망처럼 큰 책망은 없다. 우리의 마음과 생활에서 그리스도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사라지지 않았는가? 예수 그리스도를 처음으로 믿고 영접하던 그 때의 사랑이 시들어 가고 있지 않는가? 처음 사랑을 버린 것보다 더 큰 비극은 없다.

위의 성경 말씀은 예수님께서 친히 에베소 교회를 향하여 하신 말씀이다. 에베소 교회는 대단히 유명한 교회였다. 그 교회의 역사를 읽는다면 가장 놀라운 일들을 많이 한 교회였다는 것을 알 것이다. 당시 세계에 큰 영향력을 가졌던 교회였다.

사도행전 19장에 에베소 교회에 관한 기록이 나온다.

바울이 에베소에서 전도하는 동안 큰 역사들이 나타났다. 부흥의 불길이 일었다. 평범하게 보아 넘길 수 없는 성령의 특별한 역사가 나타났다. 수 많은 사람들이 죄를 회개하고 주 예수를 믿었다. “믿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복하여 행한 일을 고하며 또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그 책을 모아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사르니 그 책 값을 계산한즉 은 오만이나 되더라” ( 19:18-19). 은 오만이라면 오늘날의 화폐로 큰 재산이 될만한 금액이다. 그렇게까지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 19:20)을 떨칠만큼 참된 부흥이 일어났던 교회였다. 이 부흥의 불길은 3년동안 계속되었다.

에베소 교회는 광활한 지역을 가지고 있었다. 로마 제국이 아시아를 지배하기 위하여 특별히 개발한 대도시였다. 부의 중심이었고 동시에 방종의 도시이기도 하였다. 사치와 죄악이 관영한 도시였다. 그런 속에서도 에베소 교회는 물들지 않고 굳게 서 있던 교회였다. 죄악에 도전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복음을 전하였다. 지옥을 향해 돌진하는 마귀의 세력을 가로막고 죽어가는 영혼들을 구원하는 군대였다.

에베소 교회는 또 역사를 자랑할만한 교회였다. 에베소 교회에서 일했던 분들은 모두 초대 교회에서의 최대의 인물들이었다. 그런데 이 교회가 주님의 엄하신 경고의 말씀을 듣게 된 것이다.

예수님은 경고하기에 앞서 먼저 이 교회를 칭찬하셨다. 주님은 사랑이시다. 정죄하고 책망하시기 전에 칭찬으로 시작하신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라고 말씀하셨다. 무슨 일이나 주님의 눈을 피하지 못한다.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이시다. 우리의 친구나 식구들이 알지 못하여도 주님은 아신다. 주님은 우리 자신에 관하여도 모르시는 것이 없다. 우리의 일거 일동에 관심을 가지시는 분이시다. 상한 심령을 알아주시며 환난의 날에 지켜주신다. 고독한 영혼을 찾아주시며 풍랑 속의 반석이 되어주신다. 우리가 겪는 파란곡절 많은 인생의 모든 일에 있어서 알아주시고 돌보아 주시는 주님이시다.

에베소 교회는 하나님을 위하여 일한 교회였음에 틀림없다. 게으른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었다. 부지런한 성도들로 차있었다. 보통 교회 안에는 세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첫째는 부지런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주님을 사랑하여, 모든 일에 일선에 서서 일한다. 둘째는 발작적인 사람들이다. 이들은 일할 때에는 남의 의견도 무시하고 최대의 열심으로 돌진한다. 그러나 곧 싸늘하게 식어버린다. 셋째는 게으른 사람들이다. 가능한 한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에게만 짐을 지우려는 사람들이다.

 

나는 네 행위와 수고를 아노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수고는 행위와는 다르다. 수고에는 피와 땀과 눈물이 있다. 중보의 기도가 있고, 하나님을 위하여 봉사하려는 애탐이 있다.

 

내가 네 인내를 아노라고 주님은 덧붙이셨다. 인내라는 헬라어 원어는 지속성이 있는 인내를 말한다. 그들이 하는 수고는 즉시로 결과를 나타내든지 않든지간에 변함이 없었다.

에베소 교회는 극심한 가난과 박해와 환난을 겪으면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고 주님을 사랑하였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고전 15:58).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을 아노라고 하셨다. 그들은 정통 신앙을 지켰다. 신앙을 사수하기 위해 싸웠다. 교리적으로 보수 신앙에 견고히 서 있었다. 신앙이 무엇인가를 잘 알고 있었다.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고 하셨다.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은 교회였다. 개인 영광을 구하지 않았다. 역경 속에서도 견디고 게으르지 않고 계속 주님을 섬겼다.

에베소 교회야말로 얼마나 아름다운 교회인가! 일하는 교회, 인내하는 교회, 정결한 교회, 정통 수호의 교회, 용기 있는 교회, 이타주의 교회였다. 교회가 자랑할만한 모든 좋은 점을 다 가진 교회였다. 그런데 주님은 이 교회를 향하여 책망할 것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너희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2:4).

 

예수님께서 에베소교회의 좋은 점들을 들어 칭찬하신 것은 바로 이 책망을 하시고자 하심이었다. 즉 이러한 칭찬할만한 일들이 있는 반면에 있어야 할 가장 중요한 일 한 가지가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게 하고자 하셨다. 마르다는 예수님을 위하여 좋은 것을 많이 차리기 위하여 수고했다. 그러나 마리아에게는 꼭 있어야 할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가졌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마리아는 오직 예수님의 발 앞에 앉아 있었다. 방언을 하며, 예언하는 은사를 받으며 모든 믿음을 가졌다 할지라도 사랑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바울은 말했다.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전 13:3).

예수님께서 바로 이 결점을 에베소 교회에서 발견하셨던 것이다. 의사가 사람에게서 암을 찾아내듯, 건축가가 건물의 위험한 결함을 발견하듯 예수님께서 에베소 교회에서 놀랄만한 결점을 찾아 내셨다. 그것은 음흉하고 간사하여 얼핏 보아서는 알 수 없는 결점이었다. 교회의 생명을 점점 좀먹어 가며, 능력을 떨어뜨리고 마침내 빛을 잃게 할 중대한 결함이었다.

이제는 주님이 그들의 첫 사랑의 위치에 있지 않았다. 이것은 교회가 문둥병에 걸린 것과 같은 일이다. 아픔도 느낄 수 없으나 점차 생명을 좀먹고 마침내 병이 퍼져 교회로 하여금 죽게 하는 무서운 병이었다. 에베소 교회에서 촛대가 떠나가고 말, 비참한 일이었다. 사실 에베소 교회에서 촛대가 옮겨간 이후 다시는 촛대가 켜지지 못했다.

 

첫 사랑이 무엇일까? 젊은이가 그의 애인에게 가지는 첫 사랑이다. 7월의 아침처럼 싱싱한 사랑이요, 힘 있는 사랑이다.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사랑이다.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사이에 이루어지는 사랑은 사랑 중에서도 최고의 사량이다.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은 무엇에도 비교할 수 없는 숭고한 사랑이다.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만큼 강한 사랑이 세상에 있을 수 없다.

우리가 처음 그리스도를 믿었을 때에 느꼈던 그 사랑을 기억하는가? 우리가 죄를 깨닫고 용서함을 받고 감격하던 그 감격을 기억하는가? 우리가 주님의 제자가 되도록 소명 받던 그 날을 기억하는가? 그 시간, 그 장수 그 경험을 기억할 수 있는가? 주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얼마나 느꼈으며 주님을 위하여 얼마나 일하고자 했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극히 귀하게 여기며, 하나님 말씀을 감격 속에 들었다. 다윗처럼 온 종일 여호와의 집에 머물러 있기를 원했다. 성경 말씀을 연애 편지 읽듯 탐독하였다. 무슨 일이든지 주님을 봉사하고자 동분서주하였다.

기도는 생명같이 귀한 것이었다. 항상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교통하고자 하였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결혼생활에 있어서 첫 사랑이 죽으면 비참한 일이다. 마음이 갈라지고 애정이 식어서 서로 남을 대하듯 냉냉하게 되면 그 가정은 파괴되고 만다. 더구나 교회 안에서 믿음의 식구들끼리 이렇게 되면 더욱 더 슬픈 일이다. 그리스도인들의 마음 속에 너무나 잡다한 것들이 가득 차 있어서 그리스도는 밀려 나오게 되고 만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더 이상 사랑할 수 없다.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셔들일 수 없게 되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갈보리의 고통을 겪으셨고 우리를 살리시고자 하여 죽으시고 우리의 영혼의 구원을 위하여 음부에까지 내려 갔었다. 그런데 우리의 사랑이 식어 주님을 이방인 대하듯 하게 된다면 주님의 마음은 한없이 슬프고 찢어질듯 아프실 것임에 틀림없다.

그리스도를 향한 우리의 불타는듯한 사랑과 열정이 식고 주님에 대한 간증은 메말랐다고 느낀다면 우리의 믿음은 지금 빛을 잃은 것이다. 물없는 배와 같다. 생명력을 잃었다. 그리스도에 대한 첫사랑을 잃으면 우리는 그리스도에게서 버림을 받는다. 우리의 삶의 목표가 비뚤어지고 마는 것이다.

첫 사랑을 잃은 표가 무엇일까?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것을 등한히 여기게 된다. 그 말씀의 진리대로 순종하는 생활이 중단된다. 기도의 열의가 식는다. 조용한 중에 주님과 교제하던 경건한 시간이 없어진다. 세상의 쾌락에 따르는 생활이 자라난다. 교회 생활에서 떠난다. 내 잘못은 보지 않고 남의 흠만 찾아내게 된다.

이러한 일들이 우리의 신앙생활 속에 나타나고 있지나 않는지 살펴보자. 하나님 앞에 나가 우리의 생활을 숨김없이 살펴보자.

잃은 생명을 위하여 얼마나 수고하고 있는가? 잃은 생명에 대한 사랑이 없으면 주님을 사랑할 수 없다.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2:5).

여기에 세 가지 중요한 말씀이 나온다. 생각, 회개, 옮기리라의 세 마디 말씀을 주님께서 하셨다. 성령께서 우리의 가던 길을 멈추게 하시고 생각하게 하신다. 과거를 생각하고 지금의 형편을 살피게 하신다. 만일 지금의 우리의 생활이 지난날보다 그리스도에게서 멀어졌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면 지체하지 말고 회개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에게서 촛대를 옮겨가실 것이다.

주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첫 사랑을 다시 찾게 하옵소서.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1986 12월호)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