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Recent Post

theWord Bible Software

Category

2012. 11. 20. 12:17 횃불/1986년

성경은 해답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미리 정해 놓으셨다면 인간의 행위에 대해 어떻게 책임을 물으실 수 있습니까?

 

흔히 칼빈주의(Calvinism)와 아르미니안주의(Arminianism)라는 명칭들과 관계 있는 이 예정자유 의지간의 문제는 오래된 신학적 논쟁거리로서 결코 완전히는 해결될 수 없는 문제인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유한한 인간의 마음이 무한하신 하나님의 지혜를 다 이해한다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건전한 마음을 지닌 모든 사람은 여러 종류의 결정 사항들을 대하고, 결정을 내리는 일을 계속 자각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결정을 내릴 때 자신의 통제를 벗어난 여러 가지 인자(因子)들이 자신의 결정에 영향을 미쳤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사실 이와 같은 모든 인자들을 분석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자신이 내린 특별한 결정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을 판명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결정은 실제로 우리 자신의 결정이었고 따라서 우리는 그것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우리가 내린 결정은 미리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은 언뜻 보기에 모순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물의 속성에 있어서 어느 정도 본질적인 사실입니다. 이 문제 자체는 하나님을 믿고 안 믿고에 관계 없는 사항입니다. 우리는 비슷한 문제를 과학의 영역 안에 있는 결정론(determinism)과 비결정론(indeterminism, 자유 의지론) 간의 싸움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많은 과학자들이 믿는 바는 만약 모든 입자들의 모든 특성이 어민 일정한 순간에 결정될 수만 있다면 그 모든 입자들의 모든 차후 위치를 산출하는 일이 이론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이며 따라서 모든 사건들은 우주가 시작될 때의 최초의 상태에 의해 근본적으로 결정되었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저 유명한 불확실성의 원리가 말하는 바는 어떤 순간에 어떤 입자의 소재와 위치를 측정하는 것이 이론적으로 항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 입자의 장래 행동을 결코 예언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견지에서 볼 때 모든 입자들은 자유롭습니다.” 이 모순은 빛의 이중적인 속성이라는, 잘 알려진 문제에도 역시 반영됩니다. 즉 빛은 파장운동과 입자 운동을 하며 이것은 외관상 상호 배타적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심리학적인 영역에서는 행동주의(behaviorism)”라는 용어를 각 사람의 행동은 직접적으로 자기가 통제할 수 없는 유전적·환경적 인자에 기인하고 있다고 가르치는 학문 체계에 종종 적용합니다. 때문에 각 사람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성을 지닌 각 사람은 이와 같은 주장을, 자기가 적어도 어느 정도까지는 결정을 내릴 자유와 자신의 행동을 통제할 자유를 가지고 있다는 심리학적 자각과 비교해 보아야 합니다.

이 기초적 역설의 만족하고 유일한 해결은, 우리가 한 번에 동전의 한 면만을 볼 수 있을지라도 동전의 양면은 실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두 평행선이 무한의 거리에서 결국 함께 만난다는 이치와 흡사합니다.

따라서 인간이 스스로 결정을 내리고 자신의 의사대로 행동한다고 주장하면서 동시에 하나님께서 어떤 측량할 수 없는 방법으로 그와 같은 것들을 미리 정하셨다고 인정하는 것은 모순적이라기보다 상호 보완적입니다. 비록 우리가 이 역설을 완전히는 이해할 수 없다 할지라도 우리는 믿음으로 그 두 가지 면을 다 받아들일 수 있으며 영원의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분명하게 하시리라고 믿고 그것에 맞게 행동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결정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은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영원한 구원을 받아들일 것인가 거절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다른 모든 결정들과 그것에 상응하는 행동들은 이 결정에 공헌하든지 이 결정으로부터 유래하든지 둘 중의 하나에 해당합니다. 예정과 자유 의지의 관계는 이 문제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 끌려나옵니다.

한 가지 사실은 아주 확실하다고 여겨집니다. 곧 성경은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로운 의무가 지상 최대로 중요한 결정의 성분들이라는 것을 가르친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이 강조하는 바는 인간 편에 있는 죄악의 범세계적인 사실입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로마서 3:10,19).

성경은 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온 세상 모든 사람들의 죄악을 대속하기에 합당할 만큼 보편적이고 유효하다고 강조합니다.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요한일서 2:2).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히브리서 2:9).

하나님께서는 이 큰 구원을, 단순히 믿고, 합당치 않은 자에게 주어지는 선물로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들에게 거저 주신다고 말씀 안에 약속하셨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로마서 6:23). “또 원하는 자는 값 없이 생명수를 받으라”(요한계시록 22:17).

그리고 각 사람은 잘못된 결정의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합니다.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있느니라”(요한복음 3:36).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데살로니가후서 1:7-8).

따라서 분명한 사실은 모든 사람은 예외 없이 구원 받기를 원하기만 한다면 단순한 믿음으로 나아와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함으로써 구원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음과 같은 주 예수님의 말씀을 읽게 됩니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요한복음 6:44),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요한복음 15:16). 복음이 전파될 때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사도행전 13:48).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여 거듭난 사람은 자기가 자발적으로 그렇게 했다는 것을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더 신중히 숙고해 본다면 그는, 예를 들면 자신의 가족 배경, 친구, 개인의 어려움, 자기가 들었던 멧세지와 간증, 자기가 읽었던 성경 말씀 등등이 모두 다 자신의 결정에 기여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 다음에 그는 자기가 실제로 결정을 내리기 오래 전부터 하나님께서 자신의 삶가운데 역사하고 계셨음을 보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마치 그가 끝없는 벽 가운데에 나 있는 단 하나의 큰 대문 앞에 와 그 대문 위에 다음과 같은 글씨가 새겨져 있는 것을 보았던 것과 같습니다.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는다”(요한복음 10:9). 그래서 그는 자발적으로 그 초청을 수락하여 그 문으로 들어갔던 것입니다.

그런데 문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놀라우리만치 감사하게도 그는 한 없이 뻗어있는 장려한 낙원 안에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자기가 들어온 대문을 뒤돌아보았을 때 대문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그 대신 그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벽 위에 아름답게 새겨져 있음을 보고 놀랍니다.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했다”(에베소서 1:4).

비록 우리가 현재의 유한한 이해력을 가지고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심을 둘러싸는 비밀을 완전히는 해결할 수 없다 하더라도(사도행전 2:23)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을 구주와 주님으로 인정한 우리가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예정을 입었다는그분의 확신으로부터(에베소서 1:11) 큰 기쁨과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반면에 아직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출생부터 사망에 이를 때까지 (예수 그리스도처럼)완전히 거룩하고 완전히 무죄한 삶을 살든지 아니면 회개하는 믿음으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우리를 의롭다 하기 위해 다시 살아나신 분께로 나아가든지 하는 문제가 인간의 책임으로 남아 있습니다. 왜냐하면 다음과 같은 말씀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한복음 3:15).

 

(1986 12월호)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