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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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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2. 9. 15:59 횃불/1988년

우리는 어디에 충성을 바쳐야 할까요?

윌리암 맥도날드

만일 여러분이 다음과 같은 말을 듣는다면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제 부모님은 이 교파에 속해 있었어요. 저는 이 교파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이 교파 안에서 죽을 거예요.” 여러분은 아마 다음과 같이 생각하실 것입니다.

저는 그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렇다면 그 말이 왜 틀렸습니까?”

그는 자기 교파가 옳으며, 앞으로도 항상 옳을 거라고 추측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요? 그렇다면 그는 어떤 교파나 그룹에 충성해야 합니까?” “저는 그가 어떤 교파에도 충성을 바쳐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완전한 교파가 없기 때문입니다. “

그럼 한 가지만 더 묻겠는데요.

그 사람이 어떠한 교파나 그룹에도 충성하지 말아야 한다면 누구에게 충성해야 합니까?”

그 사람은 주님과 그분의 말씀의 원칙들에게 충성해야 되지요.”

물론 그렇습니다! 이것만이 유일하게 올바른 대답입니다. 어떤 기독교의 교파나 그룹에 변함없는 충성을 바치는 것은 잘못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교파나 그룹에 예속되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것들은 거의 필연적으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하기 마련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교회에 충성해야 할까요? 우리는 각각의 교회를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판단해야 합니다.

또 하나의 문제가 제기될 수 있습니다. 만일 내가 어떤 특정교회에서 충성하고 있다면 신약성경의 본을 따르는 것처럼 보이는, 다른 교회들이나 그리스도인 그룹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요?

반드시 우리의 충성은 처음부터 끝까지 언제나 주님과 그분의 말씀의 원칙에 드려져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어떤 그리스도인 그룹이 진리를 독점하여 신약성경 전체를 고수하기 때문에 잘못된 길로 들어서지 않을 것이라고 맹목적으로 추측해서는 안됩니다.

모든 세대들은 교파적, 당파적인 사고방식으로 빠져들어가는 위험을 경계해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역사를 살펴볼 때 성령님의 큰 역사(役事)가 계속 있어왔는데 이럴 때에 어떤 일정한 진리들이 전통과 형식주의, 의식주의의 잡석(雜石)으로부터 회복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첫 세대, 곧 그와 같은 성령님의 활동의 때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당면 문제에 관계된 성경의 원칙들에 관하여 이상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에 이어지는 제2, 3 세대는 이미 이루어진 체재를 그대로 답습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부모가 그 체재 가운데에 있었고, 그들 자신이 그 안에서 성장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면 자기 선배들이 따랐던 본에 관한 성경적 근거에 대하여 참된 확신이 쇠퇴되기 마련이고 그것에 대한 무지가 증가하기 마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님의 활동에 관한 대부분의 역사는 다음과 같은 일련의 단어들로 잘 묘사되어 왔습니다. 사람···· 운동···· 기계···· 기념···· 어떤 운동이 시작될 때에는 특별한 방법으로 성령님께 기름 부음을 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에 의해 다른 사람들이 진리 안으로 인도됨에 따라 그 운동은 발전합니다. 그러다가 2, 3세대쯤에 가서 사람들은 당파적인 체재를 기계적으로 정확하게 따라갑니다. 그러나 결국에 가서는 생명 없는 교파적 기념비 밖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몇 명의 그리스도인에게왜 당신은 지금 다니는 교회에 속해 있으세요?”라고 묻는다면 성경적인 대답을 분명히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리라고 생각합니까?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교회의 진리에 관하여 무지가 널리 퍼져 있기 때문에 그 주제에 관해서는 일반적으로 확신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자기가 알지도 못하고 이해하지도 못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강한 확신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신약성경적인 건전한 교회에 속해 있는 사람들은 자기가 왜 그 교회에 속해 있는지 압니다. 그들은 사람이나 설교를 따라다니는 사람들이 아니라 복음과 교회에 관한 진리 안에서 터가 잘 다져진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들은 모든 것을 말씀에 따라 판단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교회 안의 어떤 특정 그룹에 변함없이 헌신하지 않습니다. 주님을 욕되게 하는 비성서적인 풍조가 발전되면 그들은 성경을 따라 모이는 사람들을 위해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구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신약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는 교회에 관하여 중대한 진리들 몇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몸의 연함(하나됨)

가장 분명한 진리들 중의 하나는 그리스도의 몸의 연합(하나됨)입니다. 따라서 모든 믿는 자들은 이 진리를 증거하는 일에 책임이 있습니다( 4:4). 우리는 함께 모일 때에 이 진리를 실제적으로 표현해야 하며, 우리의 행위나 말이 그것을 부인해서는 안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교파나 교단들이 한 몸의 진리를 부인한다는 것을 분명히 보고 있습니다. (고전 1:10-13, 3:3). 교단은 그리스도가 나뉘었다는 인상을 주므로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를 잘못 나타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와 같은 현상을 분명히 보는 우리는 침례교회, 루터교회, 감리교회, 감독교회 등등의 교파 명칭을 거절합니다.

 

모든 믿는 자들은 다 한 지체들임

우리가 지지해야 할 두 번째의 중대한 진리는, 모든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이며, 그렇기 때문에 서로 지체가 된다는 사실입니다(고전 12:12-26). 따라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우리의 형제와 자매로 인식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하는 것이 항상 쉬운 일은 아닙니다. 인간들은 서로간에 장벽들을 쌓아왔으며,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몸에 충성하기보다는 자기 속해 있는 교파에 더 충성합니다. 그들은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사람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 가운데에는 종종 구별되고자 하는 바램이 있으며, 또한 교회 진리나 다른 어떤 진리의 일각(一角)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자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하는 것과 꼭 같이 하지 않는 사람들과 친근하게 지내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종종 발견합니다. 우리에게는 다른 사람들이 어느 정도라도 하나님의 진리로 인도되는 것을 기뻐하는 대신, 섬김에 있어서 우리와 달리 하고 있는 그들의 방식들을 크게 확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와 거의 비슷한 교회 질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더 신랄하게 다툴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이렇게 할 때 우리는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이라는 진리를 어찌 실제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무엇보다도 우리 는 그들이 그리스도에게 속해 있는 것으로 인해 그들을 사랑해야 합니다(요일 4:11). 그들의 가르침이나 실천에 있어서 그들이 여러 가지 면으로 우리와 다르다고 해서 이것이 그들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또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삼상 12:23). 이것은 우리가 모든 사람들에게 갚아야 할 빚이며, 특히 믿음의 가족들에게 갚아야 할 빚입니다.

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귀한 진리들을 그들과 함께 나누려고 노력해야 합니다(딤후 2:2).

그렇다고 이 말이 곧, 우리가 계획적으로 양들을 도적질하는 정책을 취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들을 우리 교회로 이끌어낼 목적으로 다른 복음적인 그룹으로 침투해 들어가서는 안된다는 뜻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개인적인 접촉을 가지면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그들에게 그리스도가 주님의 백성들의 모임의 중심이라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는 할 수 있는 한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충분히 성장시키기 위해 우리가 그분에 관하여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모든 사람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1:28, phillips)

우리는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며, 그들을 세워주려고 노력해야 할 뿐만 아니라, 또한 그들로부터 배워야 합니다(고전 12:21). 우리는 우리가 모든 진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영적인 유익을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모든 지체는 몸의 다른 부분에 공헌할 수 있는 어떤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돕지 못하도록 막는,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장벽들은 그것이 아무리 그럴듯하게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뜻에 위배됩니다.

또 우리는 비판이나 시기, 질투, 한담(閑談), 험담. 판단하는 일을 삼가해야 합니다( 6:37). 각각의 믿는 각 사람은 하나님의 청지기입니다. 우리는 때가 이르기 전, 곧 주님께서 오시기 전에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고전 4:5). 바울은 다음과 같이 힐문했습니다. “남의 하인을 판단하는 너는 누구뇨 그 섰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제 주인에게 있으매 저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저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니라”( 14:4). 그리고 베드로가, 주님께 대한 요한의 섬김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 때, 주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21:22).

우리는 방법이나 동기 여하를 막론하고 그리스도가 전파될 때마다 기뻐해야 합니다. 바울은 빌립보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어떤이들은 시기와 분쟁으로, 어떤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 이들은 내가 복음을 변명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 줄 알고 사랑으로 하나 저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전치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 그러면 무엇이뇨 외모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내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1:15-18).

그렇다고, 우리가 모든 참 그리스도인들을 몸의 지체들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 곧, 우리가 그들의 정책과 실천들을 채택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을 계시하시는 대로 그것을 순종해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어떤 체재 안에서 구원을 받았을 때 우리는 그 체재는 사랑하지 않고서도, 그리고 그 체재의 일부가 되지 않고서도 거기에서 구원받은 사람들을 사랑할 수는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자신의 나아가야 할 길이 관계되는 한 우리는 변함없이 성경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나 다른 그리스도들이 관계되는 한 우리는 참을성 있고 너그러워야 합니다.

-다음 호에 계속

 

(1988 2월호)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