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Recent Post

theWord Bible Software

Category

2012. 12. 9. 16:03 횃불/1988년

당신의 사고 방식을 바꾸세요

- 조오지 산체스 -

죄의식과 침울한 느낌으로부터 벗어날 방도는 없을까요?”

어떻게 하면 부정적인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사람들과 상담을 할 때 저는 이와 같은 질문을 계속 받습니다. 그들의 질문은 근본적으로 다음과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제 생각을 통제하고 새로운 마음가짐을 개발할 수 있을까요?”

어렸을 적의 경험들을 포함하여 우리가 지금까지 겪어온 경험들은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 경험들은 나중에 생활 가운데서 부딪치게 되는 여러가지 상황들에 대하여 우리로 하여금 일정한 방향으로 반응하게 만듭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아버지로부터 적극적인 애정의 표현을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와 같은 표현을 해야 할 필요성을 가지고 있는 지금 갈등을 겪고 있으며, 또 어떤 사람은 자기는 지금까지 어떤 일이라도 잘할 수 없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요즈음 확신이 결여된 마음으로 열등감과 싸우고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애정을 쏟던 사람에게 깊은 상처를 입고 이제는 어떤 사람이라도 믿지 못하는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긍정적인 경험들도 있기 마련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어렸을 적에 사랑과 인정과 지지와 격려를 경험했기 때문에 성장해 감에 따라 사람들과 환경에 더 쉽게 적응할 수 있습니다.

사고 방식이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사람들에게는 해방감과 새로운 자유를 경험하기 위해 변화가 필요하며, 이 새로운 자유는 진리와 그것을 적용하는 법을 아는 것으로부터 옵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8:32). 긍정적인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그것을 실제로 활용함으로써 그것을 더욱 개발하고 강화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실은 우리의 사고 방식과 습관이 건설적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과 우리가 계속적으로 패배 당해 온 반응으로부터 해방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일입니다.

이제 이와 같은 상황에서 우리의 전형적인 사고 방식이 무엇인지를 살펴본다면 첫째로, 우리는 마음가짐을 바꾸어야 할 필요성을 인식합니다. 그것은 개인에 대한 마음가짐일 수도 있고 환경에 대한 마음가짐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마음가짐을 바꾸기 위해 기도에 의지합니다. 그는 그 기도의 결과로 자신의 마음가짐이 바뀌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변화가 기도를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가르침을 받아 왔습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나면 하여튼 어떤 일이 일어나며 우리의 마음가짐이 바뀐다는 것입니다. 혹 우리는 그렇게 말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 말 속에는 성경을 읽고 기도하면 어떤 신비한 과정이 일어나고 마음가짐이 변하게 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그 개념 속에 어떤 진리가 내포되어 있다는 것을 인식합니다. 무엇보다도 성경이 그렇게 말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 개념 속에 진리가 내포되어 있다는 것을 압니다.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 ( 119:91). 우리의 사고 방식을 참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패턴에서 결과를 얻으려고 부단히 애를 쓰고 있습니다. . 그들은 기도로 도움을 구하지만 마음가짐에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들은 근본적으로 동일한 활동과 계속 씨름합니다. 이와같은 일이 일어나면 어떤 패배의 패턴이 형성되기 시작합니다.

물론 이 때 원수는 이 점을 이용하여 비난하기 시작합니다. “보았지? 그 밖의 어떤 것이 잘못되어 있음에 틀림없어. 그렇지 않다면 너의 마음가짐이 변했을 지야. “그래서 사람들은 더욱 깊이 보고, 더욱 열심히 기도하고, 주님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더 오래 가집니다. 그런데도 마음가짐들 중에서 많은 것들이 여전히 바뀌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은 대인관계에 있어서 우리가 계속적으로 직면하게 될 진짜 문제입니다.

이 문제를 고려함에 있어서 우리는 소위 네 스스로 하라고 말하는 기독교의 여하한 개념이라도 신중히 피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서 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우리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내면 깊은 곳에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오해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저는 이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라는 잠언 4:23 말씀과 기타 다른 성경 말씀들을 근거로 하여 우리는 사람들보고 그들의 마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득 채우라고 격려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득 채워지면 채워질수록 그들의 행동과 사고 방식이 더욱 많은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우리는 믿습니다. 이것은 역시 참된 개념입니다. 그러나 변화를 경험하려면 우리는 리의 마음을 가득 채우는 진리들을 실행해야만 합니다.

이것을, 우리의 사고 방식을 바꾼다는 개념에 적용하는 법을 이해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바울의 말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 12:2) 우리 각 사람은 어떻게 하면 내 마음을 새롭게 할 것인가?”라는, 몹시 중요하고도 실제적인 이 문제에 대해 해답을 찾아야 합니다.

()을 예화로 사용해 보겠습니다. 산에 비가 내리면 빗물은 아래로 흘러 없어져 버립니다. 그런데 이 빗물은 무엇을 통해서 흘러내립니까? 개울을 통해서입니다. 처음에는 이 개울이 조그만 것이었다가 비가 자꾸 내리면 내릴수록 점점 깊이 패여 갑니다. 그러다가 결국 깊은 시내가 될 수 있습니다.

이제 이 예화를 우리의 사고 방식과 비교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우리가 어떤 일정한 선을 따라 오랫동안 생각하면 할수록 우리의 사고 방식은 점점 강해지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어떤 일정한 방식으로 반응을 할 때마다 우리는 그 사고 방식을 강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렇게 해서 우리의 습관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산 위에 있는 개울을 제거하려 한다면 우리는 불도저를 가져다가 그것을 덮어버릴 수 있습니다. 또 우리는 개울이 시작되는 곳에 조그만 댐을 지음으로써 다음에 비가 내릴 때에는 개울이 진로를 바꾸도록 유도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정신적인 불도저로 우리의 생각을 덮어버릴 수는 없지만 우리의 마음 속에서 어떤 생각이 시작될 때에 댐을 만들 수는 있습니다. 우리는 그 생각을 거부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나는 그와 같은 생각을 하도록 나 자신을 용납하지 않겠다.”

그러나 마음 속에 댐을 만드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못합니다. 다시 말해서 안돼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가 못하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또 자신의 생각을 위해 새로운 진로를 마련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저 생각을 억누르지만 말고 생각의 방향을 재조정해야 합니다. 우리는 부정적인 사고 방식을 긍정적인 사고 방식으로 바뀌어야만 합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바울의 말에서 이것에 관한 좋은 예화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도적질 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하지 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4:28). 도적(盜賊)은 어떻게 하면 도적이 되는 일을 그만둘 수 있습니까? 더 이상 도적질을 안한다면 해결이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도적질을 안하는 것이 해결책의 일부가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습관에 대해 안돼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성경은 도적이 변화를 받기 위해 직업을 얻고 정직하게 돈을 벌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비로소 그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소유를 나눠줄 수 있으며. 이렇게 할 때 아마도 그는 도적질하려는 유혹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야 비로소 그 해결의 과정이 완전해지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습관은 그것을 더 이상 하지 않으려는 의지의 행위에 의해 다루어집니다. 그러나 이 사고 방식의 번화가 온전해지려면 그 의지는 부정적인 습관을, 이것에 대응하는 건설적인 행동으로 대치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고 방식을 바꾸기 위해서는 우리가 다음과 같이 두 가지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 분명해집니다. 첫째로 우리는 댐을 만들어야 합니다. , 나쁜 생각들을 거절해야 합니다. 둘째로, 우리는 생각의 흐름의 방향을 재조정하여 새로운 사고 방식을 개발해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 결국에 가서는 옛날의 사고방식이 흐릿해질 것입니다. 그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지는 모르지만 흐려질 것이며, 우리의 생각을 통제하는 일에 영향을 점점 적게 미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인식해야 할 사실은 이와같은 일이 그저 헌신적인 묵상과 경건한 기도에 의해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의지의 행위에 의해서 일어난다는 점입니다. 묵상과 기도가 필수적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우리는 이것을 넘어서 의지의 행위에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바울은 이 주제에 관하여 위엣 것을 생각하라는 유익한 권고를 우리에게 하고 있는데( 3:2), 이것은 의지의 행위를 수반하는 선언입니다. 생각하는 주체는 바로 여러분입니다.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3:5),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버리라”(8), “너희는···· 을 옷입고”(12). 사고 방식을 바꾸는 것은 그저 댐을 쌓음으로써 벗어버리는일일 뿐만 아니라 또한 새로운 방식을 만듦으로써 입는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생각을 그저 억누르기만 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건전하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다시 유도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5절에 나온 죽이라는 표현은 무슨 뜻을 지니고 있을까요? 옛날의 사고 방식은 자연적으로 사멸하지 않습니다. 만약에 이것이 자연적으로 사멸하기만 한다면 이것은 놀라운 일일 것이고 우리는 이 욕망이나, 저 유혹 따위를 두 번 다시 갖게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기 때문에( 17:9), 그리고 육은 육이고 정욕은 성령님을 거스리기 때문에 이와 같은 싸움은 끊임없이 이어집니다. 따라서 죽이다라는 표현은 끊임없는 행위를 요구합니다. 리는 옛날의 사고 방식이 고개를 들 때마다 그것을 죽여야 합니다. 우리가 부도덕한 생각을 단번에 죽이고 그것을 더 이상 생각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부도덕한 생각은 끊임없이 떠오를 것이며, 그럴 때마다 우리는 상류에서 댐을 막아 그것을 즉시 멈추게 해야 합니다. 그때 그때마다 그렇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 나쁜 생각들을 많이 죽이고 새로운 생각들을 많이 입으면 입을수록 우리의 생각들이 나쁜 방향으로 흐르는 경향은 점점 줄어들 것입니다.

바울은 우리보고 건전하고, 긍정적이고, 영적인 사고 방식을 개발하라고 명령합니다( 3:12). 우리는 나쁜 생각들을 벗어버림과 동시에 어떤 긍정적인 사고 방식을 입어야합니다. 참된 변화가 있기 위해서는 이 두 단계가 필수적입니다. 우리는 변화된 도적의 예화를 이미 살펴보았습니다( 4:48). 동일한 단락에서 바울은 벗어 버리고”, “입는것에 관해서 또 다른 유익한 예화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는 거짓을 버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다음에 곧 이어 그는 참된 것을 말하라고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 4:25). 거짓말하던 사람은 거짓말을 그만두고 즉시 진실을 말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여기에서도 우리는 벗어버리고,” “입는두 단계를 분명히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사고 방식은 우리 속에 너무나 깊이 뿌리를 박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 사고 방식을 유발시키는 자극이 무엇인지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것을 미처 알기도 전에 우리의 옛 사고 방식 중의 하나가 작동을 시작하여 언덕 아래로 달려 내려갑니다. 우리는 자극에 빨리 반응합니다. 예를 들면, 우리는 벽 난로라는 말을 듣는 순간 곧 하나의 상()을 봅니다. “해안이란 말은 우리의 마음에 어떤 특별한 그림을 즉시 떠오르게 합니다. 이와 같은 말들이 즉각적인 사고 방식을 유발시키는 자극들입니다.

이 외에도 나쁜 사고 방식을 작동시키는 깃들은 많이 있습니다. 이와 같은 부정적인 사고 방식이 작동되자마자 우리는 성령님을 통하여 우리를 각성시켜주시도록 하나님께 구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정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사항은 이것이 전부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사고 방식을 바꿔 주시도록 하나님께 구할 때에 우리는, 그분이 우리에게 책임이 있다고 이미 말씀하신 사항에 대해 그분보고 해주시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 관계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하나의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저는 저 사람을 사랑하게 해주시라고 문자 그대로 몇 개월 동안이나 기도해 왔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저는 저 사람을 사랑할 수가 없어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보고 무엇을 하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것은 할 수 없다에 관계되는 문제가 전혀 아니고 하지 않겠다에 관계되는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상대방이 우리의 원수이든지 아니든지, 우리에게 나쁘게 대하든지 나쁘지 않게 대하든지 간에, 이유를 불문하고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의 느낌이 어떻든지 간에 하나님의 명령은 우리가 그 명령에 순종하여 자기 의지의 행위로 말미암아 실제로 사랑을 표현하라는 것입니다(고전 13:4-7). 그리고 우리가 실제의 행위로 순종해 가노라면 우리의 감정은 그것에 알맞게 반응할 것입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13:34). 문제는 할 수 있다가 아니라 하지 않겠다입니다.

다음 호에 계속

 

(1988 2월호)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