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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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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2. 12. 16:14 횃불/1988년

당신은 구원받은 것을 아십니까?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요한일서 5:13).

 

당신은 당신이 영생을 얻은 것을 아십니까? 당신은 그리스도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함을 얻은 일이 있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구원받았다고 말하면 그것을 건방지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구원을 받았는지, 받지 못했는지를 확실히 알아야만 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의심하기에는 너무나 중대한 문제입니다. 의심하고 죽는 것이 영원히 버림받는 것을 뜻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 구원 문제를 등한히 하는 것은 너무나 위험한 일입니다.

설사 당신이 스스로 당신은 관계없다고 생각할지라도 당신 자신을 검토해 본다는 것은 잘 하는 일입니다. 당신은 구원의 소망을 어디에다 두고 있습니까?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보낸 두번째 편지에서 이런 권면을 하였습니다.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고후 13:5).

당신은 사도 바울이 자기 검토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그것을 깨달을 때까지 이 말씀을 거듭 읽어 보십시오. 「너희 자신을 시험하라」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이것은 우리 개개인과 관계가 있는 것이며 또 우리 개개인이 친히 알아야 할 문제입니다. 자신을 검토해 보며, 확증하며 또 스스로 알고 있어야 하는 목적은 자기의 구원 문제를 분명히 알게 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도록 도와 주며 또 그 문제를 더 확고히 세워 주려는 데 있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확고부동한 것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깊이 파고 계시의 반석 위에 집을 짓는 것입니다. 이런 종류의 집(믿음)만이 의심과 공포의 폭풍이 불어 닥칠 때라도 무너지지 않고 견고히 서 있을 집입니다.

바울과 요한은 다같이 우리가 구원받은 것을 스스로 알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말씀에서 우리가 구원받은 것을 스스로 알 수 있게 하여 주는 원리 몇가지를 생각해 봅시다.

 

누구든지 믿는 자마다

요한일서 5 1절이 누구든지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믿음은 머리로만 알고 있는 믿음, 또는 역사적인 사실을 믿는 믿음과는 다른 것입니다. 이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과 그분께서 하신 일을 확신하는 믿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자신과 그분께서 하신 일을 확신할 때 당신은 담대히 사람들 앞에서 그분을 당신의 주님이요 구주라고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만이 의에 이르게 하는 마음으로 믿는 믿음입니다( 10:9,10). 이러한 믿음이 없이는 당신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 없습니다( 11:6).

이러한 믿음은 하나님께로부터 와서 진실로 우리의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가 되시는 하나님 안에서 끝납니다( 12:2). 이러한 믿음만이 우리를 구원하여 하늘나라에 들어가게 해 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이 없는 까닭에 사람들은 그리스도에게서 떠나가거나 뒤로 물러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베드로로 하여금 군중들이 그리스도를 버리고 돌아갈 때 이러한 고백을 하게 하였습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요한 6:68) 이것은 길이 험하므로 사람들이 그를 버릴지라도 흔들리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기꺼이 그 위에 서 있게 하여 주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계시로 인하여 오는 것이며 또 이러한 믿음만이 사람들을 죄에서 구원하여 줍니다. 이러한 믿음만이 또한 우리를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지체로 만들어 줍니다. 그리고 이것이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유일한 교회입니다.

저는 또한 성령의 계시가 없이는 아무도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여 드리고 싶습니다. 성령이 계시지 않는 곳에는 계시란 없습니다. 죄의 가책이 없는 곳에는 회개란 없습니다. 회개가 없는 곳에는 믿음이란 없습니다. 믿음이 없는 곳에는 생명이 없고, 또 생명이 없는 곳에는 교회나 그 회원들은 다 불신세상과 똑같이 죄와 허물로 죽어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교회나 설교는 사람들로 구원받게 하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가지게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게 하는데 있어서 절대적인 필수조건입니다. 인간의 인격이나 지식이나 지혜가 아무리 매혹적이고, 아무리 설득력이 강할지라도 성령님을 대신 할 수란 없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는 생명을 줄 수 없는 죽은 신조나 교리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것이 현대 교회의 대다수의 사람들이 거듭남의 체험에 이르지 못하게 된 이유입니다. 산 믿음이 되지 못하는 그러한 사람들의 믿음은 하나님의 능력이 아닌 사람들의 지혜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2:4,5에 말씀하고 있는 말의 뜻입니다. 거기에 이르기를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 하였습니다. 요한일서 5 1절에 대한 믿음이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하여주며 또 새 출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가족에 들어 오게 하여 주는 것입니다.

 

새 출생

당신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것을 스스로 알 수 있게 하여주는 두번째 원리는 새 출생 그 자체입니다. 참다운 회심은 언제나 결과적으로 새로운 출생을 가져다 줍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신 말씀의 뜻입니다(요한 3:3). 이 새 출생은 마침내 새 생명을 얻게 합니다. 이것은 새로운 윤리 강령이나 개혁에 대한 채택이 아니라 새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가리켜서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하였습니다(고후 5:17). 이전 것은 지나가고 모두가 새로워진 것입니다. 새로운 출생으로 말미암아 사람 안에 하나님의 생명이 들어오는 것은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것과 같이 분명한 사실입니다. 사실상 이것은 성경에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것에 비유하고 있습니다(요한 5:24,11,25,26, 6:4, 2:1, 2:12,13,31 등등). 새로운 출생을 하기 전에는 우리는 하나님과 그의 말씀과 그의 백성과 그의 나라와 하늘 자체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자입니다. 대신 우리는 죄와 세상과 자아와 세상 사람들에 대해서는 살아있는 자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 속에 들어오실 때 우리는 세상에 대해서 못쓰게 되고 또 세상은 우리에게 대해서 못쓰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가 지니고 있는 타락한 아담 근성으로 인해서 유혹을 받고 영향을 받아 지나치면 잠시 뒤로 물러가는 일까지 있지만 우리는 다시 평안한 마음으로 세상과 짝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의로운 심령이 옛날의 롯과 같이 소돔(세상)의 더러운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고통을 받기는 할 망정 이 허망한 세상을 다시는 결코 사랑할 수 없습니다(벧후 2:8. 요일 2:15~ 17). - 다음 호에 계속

 

(1988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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