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Recent Post

theWord Bible Software

Category

2012. 12. 13. 21:50 횃불/1988년

회복

- 윌리암 맥도날드

타락의 형태들

우선 우리는 도덕적인 타락을 언급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성적인 죄악을 저지르는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예를 들면, A라는 어떤 사람이 있다고 가정합시다. 결혼한지 15년이 넘는 이 사람은 교회에서 활동적이었습니다. 그는 한 가지를 제외하고는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다를 바 없었는데 그것은, 그가 여자들한테 지나치게 친절하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는 구변이 좋았으며, 그의 태도는 상대방의 마음을 편하게 만들었으며, 그의 손은 상대방을 쓰다듬기를 잘하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사업차 집을 멀리 떠나 있는 동안 일은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그 후부터 그는 교회 집회에 빠지는 일이 잦았습니다. 가정에서도 그의 태도는 예전과 같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사람들은 그가 예전과는 달리 냉담해지고, 무관심하며, 영적인 일에 반응이 별로 없다는 것을 눈치챘습니다. 그 때까지 그는 모든 것을 비밀로 숨겨 왔던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탕자와 같은 형태의 타락을 들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B라는 어떤 사람을 가정합시다.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보호와 양육을 받으며 자란 이 사람은 해병대에 입대하기 바로 전 해()에 구원을 받았습니다. 통제 받던 가정생활을 벗어나는 것은 그에게 큰 해방감을 주었습니다. 그는 재미있게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해병대에서 생활하는 동안 그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이리 저리 휩쓸려 다니면서 그들이 하는 일에 한 몫을 담당했습니다. 이것은 B라는 사람의 참 모습이 아니었으며, 그 자신도 그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마음속 깊은 참에는 죄의식과 불만족감이 있었습니다.

C라는 사람은 지적(知的)인 타락자였습니다. 그는 성경학교를 졸업한 후에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그가 대학에 들어가게 된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군대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서였으며, 두 번째 이유는 인정받는 대학에서 학위를 취득하고 싶어서였습니다. 그는 철학을 전공으로 택했습니다. 그러나 첫 달이 채 지나기도 전에 그의 신앙은 심각하게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성질이 좁고 급하며 비판적인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단순성을 잃어버리고 의심과 억측으로 가득 채워졌습니다.

그리고 술 취하는 타락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D라는 사람은 단순히 사교적인 목적으로 술을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손님들과 함께 저녁을 먹을 때 칵테일을 가져가 그들과 함께 마셨습니다. 하지만 가정과 사업의 압박이 커짐에 따라 그는 술을 마심으로써 도피구를 찾았습니다. 어느덧 그는 습관적으로 술을 마시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기가 원할 때는 언제든지 술을 끊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교회와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생각할 때면 그는 몹시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위로를 얻기 위해 그는 또 한 잔의 술을 들이 킵니다.

또 다른 형태의 타락자는 불신자와 결혼하여 부담과 좌절 가운데에 있는 사람인데 이것은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하는 타락입니다. 예를 들면, E라는 사람은 만나는 사람마다 주님을 전하던 훌륭한 그리스도인 처녀였습니다. 이러한 그녀에게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약혼자와의 교제에 있어서 그녀는 쓰라린 실패를 맛보아야 했습니다. 그녀가 약혼자와 3주 동안 사랑을 나눈 후에 그녀의 약혼자는 구원을 받았다고 고백했습니다. 하지만 결혼을 한 후에 그녀는 그것이 무의미한 고백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 사이에 공통적인 사항들은 거의 없었으며, 가정에서는 분쟁이 그치지 않고 일어났습니다. 자녀들은 신경질적이고 반항적이었으며, 그녀의 남편은 그녀와 자식들에게 관심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대부분의 저녁 시간을 자기 친구들과 함께 보내고 있으며, 그녀는 집에 앉아 이것저것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곤 했습니다. 그녀는 결혼한 후에 몇년 동안은 집회에 참석하려고 노력했지만 이제는 그나마 포기한 상태입니다.

그 다음에는 또 사업적으로 타락한 자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어떤 큰 죄를 범하지는 않았을지라도 사업에 너무 몰두되어 있는 탓으로 가정이나 주님을 위해 시간을 거의 내지 않습니다 그들은 말씀을 읽거나 기도하는 일을 거의 하지 않으며, 교회에 가끔씩 참석하는 것도 그저 형식에 불과합니다. 이생의 염려가 그들의 영적인 활력을 빼앗아 갔던 것입니다. 그들은 탐욕과 물질주의의 희생자들입니다.

이 밖에도 많은 형태의 타락이 있습니다. 사랑에 실망했거나 어떤 크나큰 역경을 당하는 어떤 사람들은 냉랭하고 육신적으로 되기도 합니다. 그들은 이와 같은 것들을 하나님의 뜻으로(겉으로는 불행해 보이지만 실상은) 축복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불행으로 받아들여 샐쭉해지고 침울해져서 영적인 열정을 잃어버립니다. 어떤 사람들은 용서하지 않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어떤 사람에게 피해를 당했으며, 다른 사람들도 그것을 압니다. 하지만 그들은 용서하고 잊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복수심을 갖게 되고, 자비가 없는 바리새인처럼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믿는 자라 할지라도 서로 용서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아버지로서의 용서를 베풀지 않으십니다( 6:14~15. 이 말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해 우리의 죄를 용서하셨고, 이것을 믿는 사람들은 자기 자녀로 삼아주셨지만 자녀들이 서로 용서하지 않을 때 자녀들을 용서하지 않으신다는 뜻임. 따라서 자기에게 잘못을 범한 형제를 용서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이것으로 인해 지옥에 가지는 않지만 아버지이신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지게 됨 - 역자 주).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가정에서의 끊임없는 불화로 말미암아 잘못된 상태로 빠져들어갑니다. 어떤 사소한 불일치로 인해 가정의 평화는 박살납니다. 남편과 아내 사이에 존재하던, 외교관과 같이 예의 바른 관계는 단절되고, 가정제단은 더 이상 계속되지 않습니다. 서로 다정하게 대화조차 나눌 수 없는 마당에 함께 기도한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 되고 말 것입니다. 어느 한 쪽도 양보하거나 굴복하려 하지 않습니다. 양쪽이 다 잘못된 상태에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서로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상과 같은 것들 외에도 잘못된 사례는 얼마든지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다음과 같은 죄로부터 생겨납니다 -불순종, 부도덕, 사랑의 결핍, 용서하려 하지 않는 마음, 세속성, 탐욕 등등.

상기(上記)한 예들을 보면서 어떤 사람들은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그처럼 멀리 주님을 떠날 수도 있을까 놀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다음의 예들을 보신다면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1) 다윗은 도덕적으로 타락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간음과 살인이라는 죄를 지었습니다(삼하 11:1~27).

(2) 노아는 하나님의 심판의 홍수에서 구원을 받은 후에 술 취하는 죄를 지었습니다( 9:20,21).

(3) 롯은 사업적으로 타락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소돔 성에서 위신과 재물을 구했습니다( 13:7~ 11,19:1~28).

그러나 이 사람들은 모두 주님과의 교제의 회복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조차 회복을 받을 수 있었다면, 방황하는 어떠한 참 그리스도인도 회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타국에서

영적인 타락의 초기 증상 중의 하나는 성경 위에 먼지가 쌓이게 하는 것입니다. 말씀에 일정한 시간을 규칙적으로 드리는 것은 더 이상 중요하게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하루쯤 거른다고 해서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고요? 하지만 그 하루가 이틀이 되고 며칠, 또는 한 주일이 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다가 결국 성경공부를 완전히 포기하고 마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에 대해 구미가 당기지도 않으며, 필요성도 더 이상 느끼지 않습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에는 이 기도가 영적 생활의 필수적인 부분을 형성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이 중단된 상태입니다. 기도생활이 가끔씩 이어지다가 어느덧 완전히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하여간 기도가 다소 애매모호하게 보이고 알 수 없는 막연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지역교회의 집회에 참석하는 문제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면 이 점에 있어서도 역시 점점 소홀해지기 시작합니다. 설교는 흥미없는 것이 되어 버리고, 많은 사람들이 종교적인 위선자들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집회에 전혀 참석하지 않는 것이 차라리 나은 것처럼 생각됩니다. 얼마 안되어 다른 그리스도인들이 그의 상태를 눈치채고 그와 교제를 나누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그는 그들을 교묘히 피합니다. 다른 그리스도인들 앞에서는 몹시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교회 밖에서 우정과 쾌락을 찾는 얼이 점점 많아집니다. 처음에는 자기 어머니가 항상 세상적이라고 말씀하시던 일에 참여하는 것이 다소 거북하게 느껴지지만 얼마 안되어 자제력을 잃어버리고 그 점에 있어서 놀라운 균형과 능숙을 계발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의 구원의 기쁨은 사라진 지가 이미 오래입니다. 그는 과거에는 주 예수님에 관하여 지적(知的)이면서도 열정적으로 말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한 때 그는 그리스도인의 가슴 속에서 용솟음쳐 나오는 기쁨을 노래하곤 했었습니다. 그는 지금도 가끔씩 노래를 하긴 하지만 그것이 찬송가가 아닐 때도 있습니다.

이제 그는 삶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아마도 그에게는 잘 되는 일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는 모든 불운이 자기에게만 닥치는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잠시만이라도 사태가 잘 돌아간다면 좋을텐데 그렇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마구 화풀이를 합니다. 한 때는 그도 상냥하고 친절한 때가 있었지만 지금은 무뚝뚝하고 시무룩합니다.

처음에는 새로운 죄를 짓기가 높은 장애물을 넘어야 하는 것처럼 그에게 몹시 어렵습니다. 하지만 일단 그것을 넘어서면 그 장애물은 낮아지고 그것을 넘는 일이 다시는 어렵게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 다음부터 그는 차라리 모든 일을 다 해버리자고 결심합니다

그는 자기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일련의, 꽤 복잡한 합리화 과정을 거칩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는 자신의 요즈음 삶의 방식을 지지해 주는듯한 성경 말씀까지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다른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심이 좋은 것 같이 보여도 사실은 자기보다 더 나쁜 일들을 하고 있다고 그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다른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있는 문제는 그들이 너무 율법적이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자기 부모는 자기가 어렸을 적에 자기에게 너무 엄격했었다고 생각합니다.

죄를 다 범하고 나서 그는, 어떤 죄들은 사랑 가운데서 행해졌기 때문에 실제로는 죄가 아니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는 검은 것을 희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그는 비참합니다. 그는 이처럼 생활하는 것이 어떠하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결코 행복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것을 결코 인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는 훌륭한 배우로서 겉으로는 태평한 듯 가장할 수 있습니다. 그는 부서진 마음으로 자신의 내면적인 비참함을 고백하는 일을 좀처럼 할 것 같지않습니다.

그는 이중적인 생활을 계속하면서 그것을 완전히 감추려고 늘 노력하지만, 그것이 노출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은 그의 뒤를 성가시게 따라다닙니다. 심지어 그는 자기를 보호하려고 입 막음 돈이나 뇌물을 사용하기도 할 것입니다.

때로는 혐오스런 상황 속에 처해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깜짝깜짝 놀랍니다. 가정에서라면 심하게 나무랐을 상황들을 이제는 그냥 참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가장 가련한 그리스도인 친구들조차 자기보다 훨씬 더 나은 상태에 있다는 것을 실감하며 자기는 올무에 빠져 있다는 것을 느끼지만 그것을 온유하게 잘 참습니다. 언어생활에 있어서도 다른 사람들에게 주목거리가 될 만큼 그는 대단히 변해 있습니다. 경건치 못한 친구들 중에서 몇이 그에게 다음과 같이 비난하는 것은 매우 좋지 않은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네가 여기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너는 점잖게 말을 했었는데 지금은 그게 뭐냐? 그게 무슨 말버릇이냐 그처럼 방탕한 난봉군에게 이와 같은 비난을 듣는 것은 그에게 깊은 상처를 줍니다.

그런데 가슴 아픈 일은 이것뿐만이 아닙니다! 전도할 수 있는 기회들을 잃어버리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그는 너무나 많은 친구들이 깊은 영적 필요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보지만 그가 그들에게 뭐라 말할 수 있겠습니까?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그에게로 와서 주님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활짝 열어 놓는 질문들을 하지만 그의 입은 꼭 봉해져 있습니다. 한 때, 그는 적으나마 영적인 도움을 줄려고 한 두 번 정도 가까스로 애를 썼었지만 어면 사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그것을 믿는다면 너는 여기서 뭘하고 있니?” 그 다음부터는 아예 말을 안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그는 생각합니다.

이 모든 것 중에서 아마도 가장 충격적이라 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적어도 한 번쯤은 불신자조차 거의 가지 않는 장소에 갔었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정신이 아찔하기만 하지만 그것을 자기 속에 비밀로 꼭꼭 덮어둡니다.

그리고 사랑이 어떻게 미움으로 변했는가를 생각할 때 그는 깜짝 놀랍니다. 또 죄 가운데 살고 있는 자기 배우자를 생각할 때, 그는 예전에 고백했던 사랑만큼이나 큰 증오로 자기 배우자를 미워하는 것입니다(삼하 13:15).

삶은 단조롭게 변해가는 것같이 보입니다. 그는 여느 때보다 더욱 열심히 일을 하지만 무엇 하나 제대로 되는 것 같지 않습니다. 돈은 손과 호주머니에서 자꾸 새어 나갑니다. 예를 들면 차 사고가 나서 수리비용이 든다든지, 또는 아파트에서 누전으로 인한 화재가 이상야릇하게 발생한다든지 해서 예기치 않던 지출이 자꾸 불어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의료비도 역시 자꾸 올라갑니다 그는 정기적으로 의사를 만나 일련의 검사를 받아왔습니다. 지금까지 이렇다 할 문제는 발견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고통은 여전히 남아있으며, 다른 증상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기가 처한 상황들이 곧 바뀔 것이라는 희망가운데서 살아갑니다 사태가 항상 이렇게 나쁘게 진행되는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서 말입니다. 어떤 H라는 사람이 죽으면 문제가 해결되겠지 생각하고 결코 오지 않는 그 사람의 장례식을 기다리지만 그것은 결코 오지 않습니다. 그는 간혹 가다 자신의 장례식이 문제를 해결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까지 합니다. 그는 모든 것을 끝장내 버릴까라는 생각까지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 까지나 상상에 그칠 뿐입니다.  다음 호에 계속 -

 

(1988 6월호)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