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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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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2. 24. 13:01 횃불/1989년

그리스도의 형상

온유

성경에서 가장 오해를 받는 단어들 중의 하나는 온유입니다. 온유한 사람에 관하여 내리는 20세기의 정의(定義)는 너무 줏대가 없고 겁이 많아 자기 자신을 변호하지 못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이런 식으로 묘사하면 사람들은 혐오감으로 돌아섭니다. 하지만 이것은 성경에 나오는 온유의 정의가 아닙니다. 성경에 나오는 온유는 다음과 같이 묘사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다루심에 대해서는 반항하지 않고, 인간의 불의에 대해서는 보복하지 않는 태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듯 제 자신도 불의를 보면 화가 치밀어 오르며, 특히 그 불의가 저에게 겨누어질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생애의 상표(商標)는 온유였습니다. 그분은 사람들에게 대적을 받으실 때에도 입조차 열지 않으셨습니다. 베드로는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벧전 2:20-23).

온유는 또 모세의 특성 중의 하나였습니다.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랑보다 승()하더라”( 12:3). 미리암과 아론은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는 모세의 권위에 다음과 같이 도전했습니다. “하나님은 오직 당신한테만 말씀하지 않으셨다. 어째서 당신만이 이 백성들을 인도하느냐?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말씀하신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온유가 대개 그리스도인 인도자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특성이라고 생각합니다. 때때로 그렇기도 하지만 여러분은 때때로 전혀 예상치도 않은 곳에서 그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몇 년 전 어느 토요일 오후에 저는 필라델피아 교외에 있는 어느 교회 건물에서 수양회 프로그램을 짜고 있었습니다. 토요일 오후의 교회 건물은 쥐죽은 듯이 적막했습니다. 다른 사람과 저는 모든 방들을 들여다보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을지, 그 크기를 재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강당으로 들어갔을 때 우리는 복도를 쓸고 있는 건물관리인을 만났습니다. 우리가 강당으로 들어서자 그는 우리를 올려다보았으며, 우리는 그에게 자신을 소개한 다음 이렇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지내십니까?”

괜찮게 지냅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더 나은 생활을 하고 있을 거예요.”

그 때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놀랍군. 저 사람은 돈을 많이 벌지는 못할지라도 인생을 즐거운 눈으로 보고, 자기 직업과 가족에게 만족하는군:

우리는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으며, 저는 그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결혼 하셨어요? 가족이 있으세요?”

그렇습니다. 저에게는 아내가 있어요. 하지만 좀 아프죠.”

, 그러세요? 그것 참 안됐군요 어디가 편찮으세요?”

그러자 그는 6개월 전에 일어났던 사건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 때 12살 난 자기 아들이 자전거를 타다가 조심성 없는 운전수의 차에 치어 즉사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본 이웃 아이들이 자기 집으로 달려와 그 사실을 알려주자 그는 사고 현장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는 자기 아들이 죽었다는 것을 즉시 확인하고 운전수가 눈물을 억제하지 못한 채 흐느끼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가 그에게로 다가가 그를 위로하고 있는데 경관이 다가와서 말했습니다. “아니, 아들이 저렇게 죽었는데도 당신은 울지 않으세요? 이 사람을 위로하다니 도대체 당신, 뭘 하고 있는 거요?”

그 관리인이 대답했습니다. “경관님, 만일 이와같은 일이 2주일 전에만 일어났었더라면 저는 울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난 일요일 밤 교회에서 복음전하는 분이, “여러분 중에서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고 자기가 영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아시는 분이 계시면 지금 그것을 공적으로 알리시기 바랍니다라고 말씀하셨을 때 저는 뒷줄에 앉아 있던 제 아들이 앞으로 나가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시인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 다음에 그 관리인은 경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제 아들이 오늘 어디에 있는지를 압니다만 이 사람은 어려움을 당할 게 아니겠습니까?”

그 관리인은 말을 계속 이었습니다.

하지만 제 아내는 하나님이 저에게 주신 믿음을 갖고 있지 못해요. 제 아내는 그리스도인이긴 했었지만 경건한 그리스도인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 일을 견디다 못해 지금은 정신병원에 있어요. 제 아내를 정신병원에 두려니까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요. 제가 버는 것은 모두 그리로 들어가는군요. 게다가 주 정부에서는 제가 제 봉급으로 제 딸을 돌볼 수 없다고 생각한 모양이에요. 그래서 저는 할 수 없이 제 딸을 다른 가정에 양녀로 보낼 수밖에 없었지요. 그런데 저에게 정말 가슴 아프고도 어려운 점은 딸이 다른 사람을 아빠라고 부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낮 시간에는 여기서 일을 하고, 밤에는 제 아내를 방문하여 아내의 빨래거리를 집으로 가져와 그것을 빨고 다림질을 한 다음, 저녁을 지어 먹습니다. 그때쯤이면 잠자리에 들 시간이 되죠. 다음 날 아침에는 자리에서 일어나 여기로 일하러 옵니다. 이게 제 생활이죠.”

저····저는 가까스로, 더듬거리며 말했습니다. “제리와 제가 형제님을 위하여 뭐라고 기도해 드릴까요?”

글째요····우리 가족을 다시 결합시켜 주시라고 하나님께 기도해 주시겠어요?”

저는 기도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기도를 드리고 싶긴 했지만 눈물부터 터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리 형제님이 기도하시죠.”

그래서 제리가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도 세 문장을 끝마치기도 전에 결국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그 때쯤 저는 기도를 끝마칠 수 있었습니다.

바로 여기에 하나님의 다루심에 대해 반항하지 않고 순복하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자기 아들은 조심성 없는 운전자의 차에 치어 죽고, 아내는 정신병원에 있으며, 자기 봉급은 모두 입원비로 지불되어야 하고, 혼자 살면서 자기 아내의 빨래를 대신하며, 자기 딸마저 다른 사람을 아빠라고 부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괜찮게 지냅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더 나은 생활을 하고 있을 거예요.”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 이것이 바로 온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삶과 성품으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 다음 호에 계속 -

 

(1989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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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