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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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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2. 26. 19:58 횃불/1989년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1)

R. G. 로포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공적인 사역 기간 중에 기도에 관하여 귀중한 교훈을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6 9-13절에 나와 있는 강론에서 주님께서는 기도의 방법에 관하여 아주 실제적인 조언을 제자들에게 하셨습니다. 이것을 묵상하면서 주님의 말씀이 우리의 공적인 기도와 사적인 기도생활에 관하여 어떠한 지침을 주는가를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그분은 제자들에게 기도의 필수적인 요소들을 가르쳐 주시기 전에 바리새인과 이교도의 관습을 경고하셨습니다. 그분은 위선자들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기 위해 억지로 꾸며내는 진실치 못한 기도를 경고하셨습니다( 6:5). 그분은 또 긴 기도를 만들어내기 위해 같은 말을 헛되이 반복하는 이교도들을 경고하셨습니다( 6:7). 이런 기도들과 비교하면서 그분은 은밀한 기도가 공개적인 축복을 가져온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치셨습니다. 또 그분은, 천부께서 우리의 필요를 우리 자신보다도 더 잘 아시기 때문에 같은 기도 자리에서 동일한 말을 여러 차례 반복할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다음에 주님께서는 그들의 특별한 상황에 적합한 기도의 모델을 대략 말씀하셨는데 이 기도에는 바리새인과 이교도의 기도에는 빠져 있는, 중요한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 기도의 말씀은 누가복음 11 1-4절에도 역시 나와 있습니다. 누가복음에서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의 요구에 답하고 계셨습니다. 그들은 고상한 소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기도하는 법을 알고 싶어했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그 당시의 제자들을 위해 주어졌음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님은 아직 돌아가시지도 않았고, 우리의 대제사장 역할을 하기 위해 하나님의 우편으로 승천하시지도 않았기 때문에 제자들에게 자기(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라고 가르치시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나중에, 십자가로 나아가시기 직전에 그분은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가르치셨습니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16:24).

우리 시대에는 우리의 마음에 짐을 주셔서, 주님 앞에서 우리의 필요를 표현할 수 있도록 하시는 분은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우리의 필요를 이미 아신다면 우리가 구태여 기도할 필요가 없지 않느냐고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의뢰하고 있다는 것을 듣기 원하시기 때문에 기도는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의 지속적인 기도생활은 종종 우리의 믿음이 어떻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에 어떤 특정한 사항들을 위해 기도하라는 짐을 지워주시는 것은 그분이 응답하시는 때에 우리의 영혼이 그분의 축복을 받기에 올바른 상태에 있도록 하기 위함이며, 그럼으로써 우리가 그분에게 합당한 영광과 감사를 틀림없이 드리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마태복음 6 9-24절에 나와 있는 말씀을 좀더 자세히 고려해보기 전에 주의해야 할 사실은, 주님께서는 이 기도가 수많은 사람들의 유일한 기도가 되도록 의도하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제자들에게 이렇게”(after this manner, , 이런 식으로)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지, 이 특별한 기도의 말을 매번마다 암송하라고 말씀하시지는 않았습니다( 6:9). 오늘날 이 기도의 말은 종교집회나 학교, 또는 장례식에서, 그리스도를 구주와 주님으로 알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암송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 기도의 말을 암송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 의미를 이해하지도 못할뿐더러 그것이 성취되는 것을 참으로 원하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주님이 경고하신 중언부언하는 죄를 짓고 있는 것입니다. 남을 비평하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우리가인식해야 할 점은 우리 자신도 어떤 특정한 문구의 의미를 모르는 채 그것을 사용하는 습관에 빠져들어가 그것이 상투적인 것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간구자의 자격과 태도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고 말씀하셨을 때( 6:9) 그분은 그들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근거로 하여 아버지께로 나아오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이 원칙은 오늘날에도 역시 사실입니다. 신약성경에는 약간의 예외가 나와 있긴 하지만 바울은 기도와 감사가 아버지께 드려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5:20). 오직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만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는 말은 하나님의 크심을 인정하는 표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때 그릇된 태도와 이기적인 요구사항들을 가지지 않게 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크심을 깨달은 백부장은 주님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칭찬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7:9). 우리가 기도할 때에 주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한다면 이것은 또 아버지께 영광을 돌립니다.

 

간구자의 열망

주님께서는 이틀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는 표현을 제자들에게 가르치시면서, 그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존귀케 해드리려고 애써야 할 것을 교훈하셨습니다(9). 제자들은 하나님의 이름이 무엇보다도 거룩히 여김을 받는 것을 간절히 보기 원하는 마음으로 기도 가운데서 이 표현을 사용해야 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간절한 소원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기 원한다고 기도는 하면서도 그분의 이름을 거룩하게 해드리지 못하는 생활을 할 때 우리는 위선자가 될 뿐입니다. 오래 전에 여호와께서는 에스겔에게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 장로들이 마음에 우상을 품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시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14:3). 그들은 하나님보다 우상을 더 좋아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해드리지 못했던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보다 물질이나 사람을 더 소중히 여긴다면 하나님께로부터의 응답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간구자의 포기

주님께서는 또 제자들에게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10), 이 말씀 속에는 하나님의 목적과 통치가 땅에서 확립되기를 바란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공적(公的)으로 섬기실 때에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일에 온전히 헌신되어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분은 또 자기 제자들이,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온전히 수행되는 것을 보고 싶어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이 영적인 간구를 정직한 마음으로 드리기 원한다면 우리는 마땅히 모든 이기적인 욕심들을 내어버리고 우리 자신의 뜻을 소멸시켜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그분의 시간까지 기다릴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때때로 우리는 참다 못하여,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안 들으셨거나 혹은 긍정적인 응답을 주시지 않으려 하신다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때까지 기다리면서 우리의 기도에 웅답하시는 과정 중에 나타나는 그분의 능력과 지혜를 분별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아버지의) 뜻이····이루어지이다라는 표현은, 우리가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응답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함을 상기시켜 줍니다. 이것은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나 말을 잘 듣는 아이, 또는 다른 개인적인 짐을 위해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할 때 어려온 일인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가장 큰 소원은 주님이 가장 큰 영광을 받으시는 때와 방법으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기를 바라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게다가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의 뜻에 헌신적으로 순종하는 삶으로 뒷받침이 되어야 합니다. 진실한 마음으로 “(아버지) 뜻이····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하는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들을 자신의 모든 영역에 실제로 적용하기를 기뻐하는 형제나 자매일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 것이 자신의 최고의 소원임을 증명합니다. 기도와 순종이 연결되어 있음은 다음과 같은 요한의 말에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요일 3:22).

주님께서도 다음과 같이 가르치셨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15:7). 우리가 그분의 말씀과 임재를 기뻐하고 있을 때 우리는 그분 안에 거하고 있으며, 이럴 때 우리는 그분의 뜻에 따라 구하게 될 것이고, 그분은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입니다. 다음 호에 계속 -

 

(1989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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