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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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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 30. 12:24 횃불/1989년

어린 그리스도인들이 제기하는 질문들

분리라는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닙니까?

- 데이비드 뉴얼 -

주 예수님께서는 대제사장으로서 드리는 기도 가운데에서, 자기 백성들이 세상 가운데에 있기는 하지만 세상에 속해 있지는 않다는 사실을 분명히 표현하셨습니다( 17:11,16). 우리는 전자에 관해서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을 배척하는 사회에 살고 있으며, 구주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날마다 어깨를 맞댄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 뿐만 아니라(고전 5:10) 오히려 필요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려면 그렇게 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17:18).

하지만 우리가 동시에 기억해야 할 사실은,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 속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늘의 시민권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세상일에 관계되는 한 그는 단지 나그네와 행인일 따름입니다. 우리의 집은 영광 가운데에 있으며, 우리를 데려가시려고 곧 재림하실 그 선생님을 우리는 기다리고 있습니다( 3:20-21)!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에게 분리되라고 말씀하시며 (고후 6:17), 또한 주위의 흑암 가운데서 구별되라고 말씀하십니다( 2:15-16). 요즘 세대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들 중의 하나는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을 구별하기가 몹시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이며, 제가 우려하는 바는 이 현상이,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이 구원받은 성도들의 생활방식을 모방하는 것에 인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이 분리되지 않은 것에 기인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이제 하나님을 위해 살려고 분리하기로 과감히 결심한 한 사람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자연히 떠오르는 그 인물은 바로 다니엘입니다.

 

다니엘의 처지 ( 1:1-7)

기원 전 605년에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감자기 옮겨진 청년 다니엘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전혀 낯선 땅에 와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그를 둘러싸고 있던 사회는 그를 바벨론 사람으로 만들려고 갖은 수단을 다 강구했습니다. 다니엘의 마음을 더럽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대한 그의 선한 간증을 망가뜨리기 위해 사용했던 그 수단들을 잘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바벨론으로 이주해 온 이후로 그의 생활 중에서 가정(1-2)과 교육(3-4)과 식사(5)와 이름(6-7)의 네 분야가 변해 있었습니다. 그 새로운 생활방식을 좇게 하려고 이 젊은이에게 어떤 압력이 가해졌겠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세상도 모든 젊은 그리스도인들을 그 악하고, 무익하고, 냉혹한 틀 속으로 집어넣으려고 갖은 애를 쓰고 있습니다( 12:2). 세상은 주 예수님을 용납하지 못했던 것처럼 참된 그리스도인들도 용납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15:18). 가슴 아픈 일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안다고 고백하는 사람들 중에 세상의 끊임없는 요구에 결국 굴복해 버린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데마는 엄숙하면서도 가엾은 경고를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딤후 4:10).

하지만 다니엘은 다른 사람이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에게는 하나님의 미소가 인간들의 찌뿌림보다 더 중요했습니다. 비록 그의 새 처소는 바벨론이었을지라도 그의 마음은 예루살렘에 있었으며 ( 6:10), 혹은 그가 3년 정도의 대학과정을 통해 우상을 숭배하는 나라의 철학을 믿도록 세뇌교육을 받았는지 모르겠지만 그의 마음은 성경말씀으로 충만해 있었으며( 9:2),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다니엘(“하나님은 나의 심판자라는 뜻)에서 벨사살(“벨의 왕자라는 뜻)로 바꾸었을지라도 그는 이것에 구애됨이 없이 자기를 나 다니엘이라고 칭했던 것입니다( 8:15).

그러므로 젊은 그리스도인들은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은 재물과 부요를 약속하며 여러분에게 구애함으로써 여러분의 순례생활을 포기하고 물질적인 만족 속에 안주하라고 설득할 것입니다. 하지만 마태복음 6:19의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세상은 그 무신론적, 진화론적, 인본주의를 가지고 여러분을 공격하여 하나님의 말씀의 절대성과 무오류성에 대한 여러분의 단순한 믿음을 조롱할 것입니다. 그러나 창세기 1:1의 말씀을 굳게 붙드시기 바랍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다니엘의 뜻을 정함”( 1:8-16)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8).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왕의 진미를 먹는 것이 왜 나쁜 일이었는지 그 이유가 성경에 제시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아마 이것은 우상에게 바쳐졌던 제물이었을지도 모르며( 34:15), 아니면 그것에 피가 섞여 있었을지도 모르며( 3:17), 아니면 그것이 유대인의 율법에 비추어 볼 때 부정한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11). 하여간 다니엘은 그것을 거절했으며, 이것은 마치 그가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과 일반이었습니다: “내가 만일 이 음식을 먹는다면 혹시 나의 하나님의 율법을 범할 위험성이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안전한 편을 택하고 싶기 때문에 차라리 음식을 전혀 손대지 않겠다.”

하나님께서는 구별되고자 하는 다니엘의 소원을 존중하셨으며 (9,15), 그의 비타협적인 태도는 다른 젊은이들에게 영향을 주어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진리를 고수하게 했습니다(11,12, 3:6-18).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의 분리를 인정하시고 축복하셨습니다.

 

다니엘의 형통(17-21)

우리가 이미 살펴본 대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충성된 종을 축복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하나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이 여기기때문입니다(삼상 2:30). 다니엘이 십대였을 때 취했던 태도는 그의 나머지 생애를 위해 견고한 토대가 되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다니엘 1장은 그가 바벨론에서 오랫동안 섬겼다는 언급과 더불어 끝나고 있는 것입니다(21). 심지어 세상까지도 그의 삶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1:19, 2:48). 다니엘은 타협을 통해서는 하나님의 진리가 고수되지 못한다는 것, 그리고 분리 없이는 타협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좋은 귀감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위해서라면 남다른 태도를 취할 준비가 되어있습니까?

 

(1989 12월호)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