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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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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2. 22. 15:15 횃불/1990년

이스라엘과 유다 왕들에 대한 고찰

미련한 아들

윌리암 로저스

이미 살펴본 대로 여로보암은 이 당시 하나님의 백성들을 크게 황폐시킨 일에 대하여 많은 책임을 지니고 있으며, 북쪽 지파들의 하나님께 대한 배교에 대하여 특히 그러합니다. 하지만 그 혼자만 그러한 죄를 저지른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얼른 훑어보기만 해도 분명해지는 사실은 르호보암 역시 그 유치하고 성급한 오만 때문에 많은 악영향을 끼쳤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잠언에서 내 아들아라는 표현으로 시작되는, 매우 실제적인 권면을 대할 때에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곧, 우리가 그 표현을 하나님이 자기 자녀들에 게 말씀하시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함과 동시에, 솔로몬이 그런 권면들을 기록할 때 그의 마음 속에 무엇이 있었나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그의 마음속에는 그런 권면들과 그 비슷한 다른 권면들이 자기 친아들 르호보암에게 미칠 영향을 염두에 두고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은 관점이 정당하다는 사실은 4장에서 사용된 표현으로 확인할 수 있는데 거기에서 잠언 기자는 자기 자녀들에게 아비의 훈계를 제시하면서(1) 자기는 자신의 부친 다윗의 가르침을 그들에게 넘겨주고 있다는 것을 분명 하게 언급했습니다(3~4). 흥미로운 점은 지혜를 얻으며 명철을 얻으라는 교훈인데(5), 솔로몬은 통치를 시작할 당시 그가 원하는 바는 무엇이든 주시겠다는 여호와의 말씀에 대해(대하 1:7) 지혜와 명철을 구함으로써 여기 잠언 4장에 기록된 다윗의 충고를 그대로 따랐던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잠언 4장의 중대한 권면,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23)도 역시 다윗이 역대상 28:29에서 내 아들 솔로몬아 너는 네 아비의 하나님을 알고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섬길지어다라고 했던 경계를 솔로몬이 자기 자녀들에게 넘겨주는 권면으로 간주해도 좋을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르호보암이 주의하기만 했더라면 그로 그 어리석은 일을 하지 못하도록 막아주었을 어떤 권면들이 잠언 속에 있을까요? 마음에 떠오르는 한 가지 말씀은 잠언 17:14, “다투는 시작은 방축에서 물이 새는 것 같은즉 싸움이 일어나기 전에 시비를 그칠 것이니라인데 이 말씀은 비단 그에게만 적용될 뿐 아니라 그 비통한 사건에 어떤 식으로든 연루되었던 모든 사람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이 말씀이 얼마나 옳은 것인가는, 몇 마디의 거친 말이 어느 새 맹렬한 홍수가 되어 그 앞에 있는 것들을 싹 쓸어가 버린 사실에서 분명히 확인할 수 있으며, 그 이후로 다른 많은 경우에서도 동일하게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르호보암의 경우에 있어서는 잠언 15:1의 말씀이 더욱 적절하다고 여겨집니다: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르호보암 왕이 백성들에게 대답할 말에 관하여 노인들에게 먼저 조언을 구했을 때 그들은 잠언 15:1을 근거로 하여 다음과 같은 충고를 했던 것 같습니다: “왕이 만일····좋은 말로 대답하여 이르시면 저희가 영영히 왕의 종이 되리이다”(왕상 12:7) 하지만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그의 부친의 조언이든, 그가 자문을 구했던 경험많은 노인들의 조언이든, 그 젊고 완고한 왕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정해진 시간이 이르자 그는 포악한 말로 백성에게 대답하여”(13)

그들의 노를 격동시켰고, 그의 조부(祖父) 시절에 한 번 외쳐졌던 그 외침이 즉시 외쳐지기에 이르렀습니다. “우리가 다윗과 무슨 관계가 있느뇨 이새의 아들에게서 업()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너희의 장막으로 돌아가라어리석은 한 마디 말이 르호보암으로 하여금 자기 나라의 절반 이상을 잃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잠언 15:1의 말씀은 우리의 성경 속에도 여전히 들어있으며,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라는 말씀은 기록될 당시나 지금이나 여전히 사실입니다. 우리는 그 말씀을 종종 인용하며, 또 그 말씀이 액자 속에 넣어져 그리스도인의 가정에 걸려 있는 것을 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말씀을 실증할 기회가 주어졌을 때 우리는 얼마나 실패를 잘합니까? 우리에게 행한 일이나 우리에 관한 말로 인해 생겨나는 노여움이 우리의 반응이 되지 잠언 15:1유순한 대답이 우리의 반응이 되지 않으며, “유다 사람의 말이스라엘 사람의 말중에서 어느 쪽이 더 강경한지 서로 겨루었던 것과 비슷한 현상이 신속하게 이어지는 것입니다(삼하 19:43)

그런데 과연 누구에게 책임이 있었는가? 하는 질문에 답함에 있어서 고려해야 할, 또 다른 아주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앞 장(왕상 11)이 보여주는 바는, 그 재난의 주요 원인이 바로 솔로몬 자신이었다는 것과 그것은 그의 죄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의 일환으로 그에게 이미 선고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11~13). 그뿐만 아니라 그것은 그 죄의 당연한 결과, 즉 그가 심은 것을 거두었다는 사실입니다. 솔로몬은 이방의 여인을 사랑한 까닭에 그녀들이 자기의 우상을 숭배할 수 있도록 큰 신전들을 지어 주기에 이르렀으며, 이것은 또 그로 하여금 백성들을 징발하여 강제노동을 시키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모습은 그가 극구 피했던 일로써 그의 통치 초기에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열왕기상 9:20~22에서 분명히 확인할 수 있는데 거기에서 그는 그 땅에 남아 있던 타민족의 자손들에게만 노역(勞役)을 부과했었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역대하 2:17~18과 열왕기상 5:15에 따르면 그 숫자는 15만 명이 넘었으며, 열왕기상 5:13~14에 언급된 이스라엘 자손들의 비상근(非常勤) 노역은 열왕기상 9:22에 암시된 대로 이방 민족의 노역을 감독하는 것이었음에 틀림 없습니다

열왕기상 4:20에는 유다와 이스라엘이 먹고 마시며 즐거워하였다라고 언급되어 있는데 이것은 그 당시의 솔로몬 통치 중에는 열왕기상 12:4에 언급된 사항과 유사한 불평의 씨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반면에 그 불평이 사실무근(事實無根)이었을 가능성은 거의 희박합니다. 따라서 처음에 솔로몬이 좋은 영적 상태에 있을 때, 그리고 하나님의 집을 건축하는 중에 있을 때 공적으로 존귀한 지위에서 쓰임을 받던 자들은 나중에 그가 이방 아내들에 의해 변심하여 그녀들의 우상 신전을 건축할 때에는 무거운 짐에 짓눌려 있는 자신들을 발견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 솔로몬의 사례(事例)는 거의 예외없이 범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진리의 한 단면을 보여 주고 있는데 그것은 곧,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성도는 하나님의 성도로부터 멀어져 그들의 유익에 거의 무관심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과 관련하여 또 한 가지 주목되는 점은, 그들이 르호보암의 부친에 의해 무거운 멍에를 메게 되었다고 비난하자 그는 그 멍에를 거두는 대신 14절에서 그것에 동의했을 뿐더러 오히려 한 술 더 떠서 내 부친은 채찍으로 너희를 징치(懲治)하였으나라는 말을 스스로 지어내어 그것에 더했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그는 또 가장 어리석은 일을 저지르고 말았는데 그는 반역자들에게 사람을 보낼 때에 그들에게 용납될만한 사람을 보낸 것이 아니라 역군(役軍)의 감독인 아도니람을 보냄으로써 예상했던 대로 즉시 그들의 돌에 맞아 죽게 만들었던 것입니다(18). - 다음 호에 계속 -

 

(1990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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