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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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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3. 6. 07:06 횃불/1990년

이스라엘과 유다 왕들에 관한 고찰 (4)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

윌리암 로저스

열왕기상 13장에는 여로보암의 전기(傳記) 가운데서 흥미로운 일화 하나가 기록되어 있는데 그것은 여로보암 왕 자신에 관한 것이라기보다 그 왕을 책망하려고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사자(使者)에 관한 것입니다.

이 사건이 여로보암에게 있어서는 마지막으로 회개할 수 있는 기회였었다고 말한다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입니다. “여로보암이 이 일 후에도 그 악한 길에서 떠나 돌이키지 아니하고 다시 보통 백성으로 산당의 제사장을 삼되라는 표현은 그 당시까지만 해도 회개할 기회가 있었음을 시사합니다(33, 12:31과 비교) 그러나 이 일이 있는 직후 얼마 안되어 아히야가 그와 그 가족에 관하여 선포한 무서운 장래는, 이제 더 이상 회개할 가능성이 없음을 암시합니다.

12장의 마지막 부분과 13장의 처음부분이 얼마나 서로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는지를 주목해 본다면, 13장의 처음부분에 제시된 사건들이 우상숭배의 새 중심지 낙성식(落成式) , 곧 여로보암이 벧엘에 세운 우상을 봉헌할 때 일어났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12:30의 다소 기묘한 표현은 벧엘의 성소가 준비되기 전부터 단(Dan)의 성소가 이미 사용되어 왔음을 암시합니다. 그 이유는 아마 벌써부터 거기에 있던 종파(宗派) 때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거기에는 모세의 손자 게르손의 아들 레위인 요나단 이래로 제사장들이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18:30). 이것은 또 12:32의 다음과 같은 말씀에 대한 설명이 됩니다. “그 지은 산당의 제사장은 벧엘에서 세웠더라.” 단에는 제사들, 즉 고분고분한 요나단의 자손들이 이미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공급을 필요로 했던 곳은 주로 벧엘이었습니다.

이 모든 사항들을 염두에 둔다면 우리는 왜 이 8월의 절기(節期)가 요나단의 다른 혁신들보다 더욱 두드러졌었는지, 그리고 왜 여로보암 왕 자신이 제사장의 일을 수행하고 있었는지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12:32~33, 13:1,4). 이 모든 장면은 솔로몬의 성전 낙성식을 흉내 내려고 그의 편에서 행했던 시도였던 것입니다. 성전 자체는 한 해 전 8월에 이미 완성되어 있었지만 실제의 낙성식은 초막절 전에 시작하여 초막절 기간 동안 있었습니다(6:38, 8:2, 65, 66). 그것은 기껏해야 미미한 모방에 불과했겠지만 단이 박살 나고, 왕의 손이 마른 것은 그의 보잘것없는 자기과시를 완전히 망쳐버렸으며, 이 광경은 적어도 그 낙성식에 참석한 몇 사람들에게 아주 대조적인 다른 장면, 곧 솔로몬의 낙성식 기도 끝에 불이 하늘에서부터 내려와서 그 번제물과 제물들을 사르고 여호와의 영광이 그 전(殿)에 가득했던장면을 틀림없이 연상시켰을 것입니다(대하 7:1).

13장의 후반부에서 유다에서 온, 이름이 밝혀 있지 않은 그 하나님의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읽으면 우리는 그에 대하여 동정의 마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그는 보내심을 받은 사명을 충실히 수행했으며, 이미 여로보암의 분노에 직면했던 것처럼 또 그의 우호적인 말에 대해서도 굴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어려운 임무를 마치고 지친 몸으로 귀가 중에 있는 그에게 늙은 선지자가 다가가 원기를 회복하는데 몹시 필요한 음식을 함께 나누자고 유혹했습니다. 그 하나님의 사람은 자기가 출발하기 전에 직접 받은 지시를 취소하는 멧세지를 그 늙은 형제”(30)가 하나님께로부터 틀림없이 받았다고 믿었으며, 이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물론 잘못을 범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 사람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빛을 따라 행하기를 원하시지, 우리보다 더 오래된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다른 사람들이 가지고 있노라고 스스로 주장하는 것을 따라 행하기를 원치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의 실패를 강하게 정죄하면서도 다른 하나님의 사람인 바울이 여러 선지자들 및 다른 형제들의 설득에 굴복하지 아니하고 바로 자신에게 비추어진 빛을 따라 예루살렘까지 여행하기를 고집했던 점을 같은 어조로 정죄하는데 이것은 좀 이상한 현상이 아니겠습니까( 20:22, 21:11~14)? 만일 바울이 그들에게 설득 당했더라면 하나님의 길에서 벗어났을 것입니다.

그 늙은 선지자는 적어도 한 가지 이상의 동기를 가지고 그런 신의를 저버리는 행동을 했으리라 여겨집니다. 그 중 한 가지는, 하나님이 자기(늙은 선지자) 대신 그를 불러 사용하신 것에 대한 시기심이 틀림없이 작용했을 것이고, 또 그가 대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은 호기심도 작용했을 것입니다. 혹은 유다에서 온 선지자가 종래 취해오던 입장에서 벗어나게 함으로써 그의 멧세지를 무력하게 하려 했던 악한 동기조차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여간 그 늙은 선지자 자신은 벧엘의 낙성식에 직접 참석할 수 없었는지, 혹은 직접 참석하기를 꺼려했었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자기 가족들은 참석하도록 허락했는데(11), 이것은 분명코 명예스러운 일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늙은 선지자 자신의 간증에는 악영향을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그 늙은 선지자의 본을 따라서, 부모인 자기는 체면 때문에 감히 참석하지 못하는 자리에 자기 가족들은 빈번히 참석하도록 허락하고 있는데 이것은 참으로 볼품없는 양육 방식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반면에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이 그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사후(死後)에는 존귀하게 된 것은 주목할만한 사실입니다. 이것은 수세기 후 그의 예언이 요시아에 의해 성취되었을 때(왕하 23:17~18) 그를 기념하는 비석이 여전히 남아 있었던 사실로 입증됩니다. - 다음 호에 계속

 

(1990 9월호)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