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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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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2. 25. 13:34 횃불/1990년

이스라엘과 유다 왕들에 대한 고찰

훈계와 모범

- 월리암 로저스 -

지난 호에서는 솔로몬이 전혀 다른 두 가지 모습으로 소개되었습니다. 그 중 하나는, 만약 의 아들이 잠언서에 제시된 솔로몬의 훈계를 주의하기만 했더라면 그 훈계가 초래 했을 결과, 곧 그 큰 반역이 미연에 방지되었을 것이라는 사실이 언급되어 있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솔로몬의 행실이 정작 그 반역을 초래한 주원인이었다는 사실이 지적되어 있는 것입니다. 나중에 밝혀지듯이 르호보암은 자기 부친의 선한 충고를 받아들이기 보다는 오히려 악한 본을 좆았으며, 이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상고해본 재난들을 초래했던 것입니다.

자기 조상의 훈계를 따를 것인지, 아니면 악한 행실을 그대로 답습(踏襲)할 것인지, 선택의 기로(岐路)에서 있었던 것은 비단 르호보암 뿐만이 아니라 그의 뒤를 계승한 유다 열왕(列王)도 다 그러했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많은 왕들이 르호보암처럼 옳지 않은 길을 선택하고 말았습니다. 이 왕들의 실패를, 잠언서와 전도서에 포함된 지혜로운 격언들과 각각 비교해보고 또 그들이 이 말씀들 중에서 자기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해 줄 수 있는 말씀들을 어떻게 찾을 수도 있었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흥미로운 공부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자기 선조 솔로몬의 비행(非行)에 얼마만큼 영향을 받아 그의 행실을 재현하고자 했었는지를 추적해 보는 것도 역시 흥미로운 공부가 될 것입니다. 이와 연관된 사항들을 차후로 충분히 다룰 생각입니다만 여기에서는 두 왕에 대해서만 주목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솔로몬처럼 노년에 그릇 행했던 아사 왕에 관해서는 그 때에 아사가 또 몇 백성을 학대하였더라고 기록되어 있는데(대하 16:10~12) 이것은 바로 그의 선조에 관하여 일컬어졌던 좋지 않은 평가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그의 백성들 학대는 솔로몬과 거의 동일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열왕기상 15:22에 언급된 대로 그가 하고 싶었던 일을 위하여 역군(役軍)”을 불러 일으켜 한 사람도 모면하지 못하게한 사건과 연관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그는 하나니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멧세지를 거역함으로써 전도서 4:13에 기록된 것과 같이 늙고 둔하여 간()함을 받을 줄 모르는 왕의 표본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그의 아들 여호사밧은 여러 방면으로 신실하긴 했지만 잠언 1:10에 다음과 같이 제시된 솔로몬의 훈계를 한번 이상 불순종했습니다. “내 아들아 악한 자가 너를 꾈지라도 좇지 말라”(대하 18:1~3, 19:2등을 참조). 그러면서도 그 역시 솔로몬을 무척이나 모방하는 자였습니다. 왜냐하면 여호사밧도 솔로몬처럼 다른 왕들과 연혼(連婚)하였으며(대하 18:1과 왕상 9:19을 비교), 국고성(國庫城)을 건축하였으며(대하 17:12과 왕상 9:19을 비교), 오빌에서 금을 취하려고 선척을 제조했기 때문입니다(왕상 22:48과 왕상 9:26~28을 비교).

그러나 솔로몬의 훈계와는 대조적으로 그의 행실이 남겨놓은 영향들 중에서 가장 나쁘면서도 가장 주목할 만하다고 여겨지는 것이 열왕기하 23:13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솔로몬이 아스다롯과 그모스와 밀곰을 숭배하려고 예루살렘 근처에 세웠던 산당(山堂)이 그때까지 무려 약 360년 동안이나 보존되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아사와 여호사밧과 다른 왕들은 우상숭배적인 산당들을 온 땅에서 헐어버렸으며, 심지어 히스기야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여호와께서 숭배를 받으시는 곳들까지 파괴해 버렸던 것입니다. 하지만 솔로몬이 이미 세운 것들에 감히 손을 대는 사람은 요시야 때까지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런 까닭에 여로보암의 우상숭배와 솔로몬의 우상숭배를 말끔히 제거해버린 공로가 요시야에게 돌아가는 것입니다(왕상 23:13,15).

르호보암이 14세에 왕위에 나아갔다는 기록이 열왕기상 14:21과 역대하 12:13에 나오는데 이것은 솔로몬의 행적을 암시적으로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실입니다. 열왕기상 11:42과 역대하 9:30에 따르면 솔로몬의 통치기간은 40년이었습니다. 따라서 그가 르호보암의 모친이었던 암몬 여인 나아마와 결혼한 것은 그가 왕위에 오르기 전, 다윗이 아직 살아있을 동안이었음이 틀림없습니다. 이러한 사정들을 참작할 때에 다윗은 자기 아들의 마음상태에 관하여 걱정하고 있었으며, 이것은 적어도 한 번 이상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가 역대상 28:9에서 내 아들 솔로몬아 너는 네 아비의 하나님을 알고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섬길지어다라고 경고했을 때, 그리고 역대상 29:19에서 또 내 아들 솔로몬에게 정성된 마음을 주사라고 기도했을 때, 다윗은 젊은 자기 아들이 그 점에 연약하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 까닭은 솔로몬이 이미 암몬 여인을 아내로 맞이한 상태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의 초기 통치 시절에는 그의 손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연약성이 더 이상 발전되지 않았을 것이며, 이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성전이 건축되고, 다른 일들이 성취되자 그에게 죄에 빠질 시간이 생겼으며, 열왕기상 11장에는 그가 어느 정도까지 타락되었는지 기록되어있습니다. “왕비들이 그 마음을 돌이켜 다른 신들을 좇게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이 그 부친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치 못하였을때에 드디어 다윗이 자기아들에 관하여 가졌던 염려와 두려움이 현실로 나타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잠언 4장의 처음 부분에서 솔로몬이 자기 부친의 가르침이었다고 말했고, 23절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로 전달했던 그 중대한 교훈을 정작 솔로몬 자신은 더욱 주의하지않았던 사실은 얼마나 비극입니까!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 다음 호에 계속 -

 

(1990 7,8월호)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