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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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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3. 13. 10:03 횃불/1990년

저는 모임들을 좋아합니다!

 

(제목에 나오는 모임들이라는 표현은 성서적인 지역교회들을 일컫는 말임-역주. )

저는 모임들을 좋아합니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우리의 문화에 반()하는 것처럼 들릴지 모르겠습니다. 모임들을 비난하고, 모임들의 모든 허물과 실패를 드러내는 것이 인기 있는 일이 되어가고 있으며, 항간에는 모임의 단점들을 거드럭거리는 태도로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누군가가 나서서 모임의 장점들을 말해야 될 때라고 생각하며, 제가 그 일을 하고 싶습니다. 제가 왜 모임을 좋아하는지 그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매주일마다 떡을 떼는 일(주의만찬)을 통해서 주님을 기념하기를 좋아합니다.

50년 동안 저는 매주일마다 만찬상 앞에서 주님을 기념하기를 힘써왔으며, 이 일에 매력을 잃은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주님만이 우리를 사로잡으시며, 예배의 중심이 되시는 집회에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습니다. 다른 종류의 교제를 나누기 위해 모임을 떠난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저는 만찬예배를 정말로 그리워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그들이 모임을 떠난 것은 저를 슬프게 합니다.

 

모임은 저로 하여금 애정을 느끼게 합니다.

그 이유는 에베소서 4:12이 다른 어떤 곳에서보다도 더욱 실천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전하는 자로, 혹은 목자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은사들은 성도들을 세워 봉사의 일을 하도록 주어졌습니다. 저는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이 복음을 설득력 있게 전할 정도로 성장한 것을 보았으며, 평범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말씀을 전하되, 그들의 머리가 아닌, 가슴에 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헌신된 자매들이 하나님을 위해 자녀들을 양육할 뿐만 아니라 다른 자매들과 어린이들을 가르치고, 자기 남편과 함께 수고하면서 그의 사역을 도우며, 국내와 국외의 전도자들의 사역을 지원하며, 환자들과 고통 당하는 자들을 방문하며, 성도들과 낯선 사람들을 동일하게 접대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청년들이, 일반 교회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방법으로 자기 은사를 활용하도록 격려 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복음적인 유명한 인도자들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에베소서 4:12에 대하여 입에 발린 말을 하고 있으며,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실천하는 모임의 방식에 대하여 칭찬하기 까지 합니다.

 

모임의 자랑거리 중 하나는 성직자와 평신도로 구분되어 있지 않고 동일한 자격으로 섬기기를 고수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카리스마적(charismatic)인 설교자가 아니라 그리스도 자신을 중심으로 모이는 것은 그 원칙에 있어서나 실천에 있어서 모두 성서적입니다. 신약성경의 가르침은 일인(一人)사역이 아니라 복수장로제입니다. 그런데도 이것을 가르치고 실천하는 모임들은 기독교사회에서 언제나 눈에 티처럼 취급 당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모임에 속해 있으면 어느 정도라도 비난을 면할 수 없으며, 모임과 그 운명을 같이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감수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저는 각 모임이 오직 주님께만 책임을 지는 자치권이 있다는 사실을 좋아합니다.

 머리(그리스도)와 그 몸(교회) 사이를 가로막는 어떠한 지상본부도 없으며, 인간적으로 임명된 성직자단도 없으며, 그 어떠한 조직도 없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모임들을 자유주의나 다른 교훈, 또는 독재권에 넘어가지 않도록 막아줍니다.

 

모임들의 재정 정책으로 대부분의 교제 가운데서 일 주일에 단 한 번의 연보시간이 있는 것은 특기할 만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팡파르나 구걸함이 없이 거두어진 그 단 한번의 연보는 지역교회의 경비와 국내와 국외 사역을 충분히 지원합니다. 전통적으로, 전임 사역자들은 자신의 필요를 공급받기 위해 그것을 광고하는 일이 없이 오직 주님만을 바라봅니다. 세상은 기독교의 일반적인 행습(行習)을 보고 교회가 원하는 것은 오직 당신의 돈이다라고 말하는데 모임들에 관해서는 그런 말을 할 수 없습니다.

 

모임들은 설혹 거대한 교회들을 이루는 기회를 제한 받는 한이 있어도 필요시에는 경건한 징계를 행사하는데, 저는 이것을 대단히 귀중하게 생각합니다. 모임들은 모임의 크기에 따라 그 교제를 판단하지 아니하고 그 지체들의 거룩성에 따라 판단합니다.

 

모임의 문서사역은 탁월한 것이 되어 왔습니다. 아마 이것은 복음이 전파되는 현장에 주된 기여를 해왔을 것입니다. 다아비(Darby), 켈리(Kelly), 맥킨토쉬(Mackintosh), 바인(Vine), 그 밖에 다수의 사람들이 그 유익하고 깊은 영향을 온 세상에 끼쳤습니다. 몇 년 전에 어떤 기독교대학의 도서관원이 형제들의 모임에 속한 저자들의 도서목록 편집을 시도했다가 그 끝없는 작업에 두 손 들고 말았습니다.

 

저는 모임의 전도활동에 관해서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 활동은 지역교회 지체들의 숫자에 전혀 비례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또 다른 이유로 모임들을 좋아하는데 그 중에는 전혀 뜻밖의 것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 교회, 저 교회를 수 년 동안 전전하다가 최근에 모임의 교제로 들어온 어떤 자매는 모임으로 오게 된 것을 기뻐한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이 여성해방운동의 시대에 기이하게 들리는 말이었습니다. 모임들만큼 자기비판을 많이 하는 단체는 없을 것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들이 불필요하게 각성하여 모임을 떠날 정도로 자기비판을 지나치게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비판은 칭찬 뒤에 올 때 최선이 됩니다. 이제는 우리가 그 두 가지를 균형있게 조화를 이루어야 할 때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전술한 사항에 만족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저는 복음전파에 있어서나 모임의 인도자들의 개발에 있어서 개선해야 할 영역들이 있음을 인식 합니다. 성경의 원칙들은 변함없이 준수해 나가면서도 방법들은 때때로 변경해야 할 필요성도 인식합니다. 우리 모임의 어떤 성도들과 또 젊은이들은 이 일에 합당한 관심을 갖고 있으며, 그들의 말도 들을 필요가 있다는 것을 저는 동의 합니다

그러나 구조대를 큰 소리로 부르는 대신 우리는 소매를 걷어 부치고 문제들과 맞닥뜨려야 합니다. 모임에 반대투표를 던지거나 혹은 아예 모두 단념해 버리는 탁상공론적 장군들보다는 건설적인 일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그리고 모임에서 지원을 받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라도 충성을 나타내야 하며, 은혜를 악으로 갚는 행위는 그 어떤 모양이라도 피해야 합니다.

 

(1990 11월호)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