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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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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3. 13. 10:00 횃불/1990년

이스라엘과 유다 왕들에 관한 고찰⑦

아 사

-윌리암 로저스

역대하 14,15,16장의 아사왕의 이야기는 성공과 실패, 강건과 연약으로 뒤섞여 있으며, 이러한 연고로 그의 삶은 우리 자신의 경험과 매우 흡사합니다. 그는 하나님과 교제하지 아니했으며(16:7), 자기를 위해 망령되이행했으며(9), 자기를 책망한 선지자에게 노를 발하였으며(10), 몇 백성을 학대 하였습니다(10).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사의 마음이 일평생 온전하였더라고 일컬어질 만한 사람이었으며(15:17), 그가 죽었을 때는 가히 유다의 어떤 왕보다도 더 명예롭게 장사되었다 하겠습니다(16:14).

그의 이야기 가운데에는 우리를 격려하는 것도 많이 있지만 우리에게 엄숙한 경고를 발하는 실책들도 있으며, 그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그의 강점처럼 보이던 것, 곧 하나님께 대한 신뢰에 있어서 그는 실패했습니다(14:11 18:7,12을 비교).

2) 그의 말년(末年)이 가장 나빴습니다.

3) 그는 적어도 두 가지 죄악을 먼저 시작했으며, 이것은 후세대 사람들에 의해 종종 반복되었습니다. 그 중 한 가지는 자기 형제들과 싸울 때에 외부의 도움을 구했다는 사실입니다(16:2-4). 또한 한 가지는 자기에게 하나님의 멧세지를 전하는 사람을 핍박하고 심지어 옥에 가두기까지 했다는 사실입니다(10).

40년 이상이나 되는 그의 긴 통치 기간은 다음과 같이 3기로 구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처음 10년간의 평안한 시기, 에디오피아(구스) 사람들과의 전쟁으로 시작하여 이스라엘 왕 바아사와의 전쟁에 이르기까지 계속된 성공과 번영의 긴 시기(14:9-16:1), 그의 실패들로 말미암아 초래 된 마지막 5년간의 고통의 시기(16). 그러나 이 세 기간에 발생한 모든 사건들 속에서 우리는 일상적인 일련의 원인과 결과를 추적해 볼 수 있습니다. 각 사건들은 앞에 일어난 사건들의 당연한 결과였던 것입니다.

역대하 14:1에서 아사의 통치는 평안한 시대와 더불어 시작됩니다. 그는 이 호기(好機)를 활용하여 종교개혁을 시작했고(3-5), 자기 나라를 방어할 준비작업을 했습니다(6-8). 그러나 이 후자(국방작업)는 얼마 안되어 시험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구스(에디오피아) 사람 세라가 군사백만 명을 이끌고 그 나라를 침공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비상사태를 맞이하자 아사는 하나님께 부르짖어 구원과 승리를 얻었습니다(9-15). 이 구원과 그 직후 선지자 아사랴를 통해 그에게 전달된 격려의 말씀(15:1-7)은 아사를 자극하여 다시 개혁 사업을 시작하게 했습니다(8-18). 이것은 아사 왕 자신과 그 백성에게 명백한 축복을 안겨 주었으며, 그 결과 수많은 사람들이 그 축복을 함께 나누려고 북쪽 왕국에서 유다로 넘어왔습니다.

이처럼 많은 국민들이 나라를 이탈하자 이스라엘 왕 바아사가 자극을 받아 그것을 방지할 조처를 취하기에 이르렀고, 그 결과 전쟁이 뒤를 따랐습니다(16:1). 이 전쟁 중에 아사가 여호와께 도움을 구하지 아니하고 수리아(시리아) 왕에게 구한 것은 오랜 기간의 번창으로 인해 아사가 마음이 해이해졌음을 입증합니다(2-4). 이렇게 하여 이제 그는 예전에 받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성질의 멧세지를 하나님께로부터 받게 되는데(7~9), 이 멧세지 중의 하나가 그를 몹시 격분케 하여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자(使者)를 옥에 가두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비록 그가 자신의 분노를 다른 방법으로 터뜨릴 수 밖에 없었을지라도 그때에 아사가 또 몇 백성을 학대하였더라는 기록이 추가되어 있는데 (10) 이것은 솔로몬의 이야기에서 주목해보았던 것처럼, 하나님을 떠나는 성도는 하나님의 백성도 떠나게 되어 그들의 복지에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게 된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 또 하나의 예입니다. 16:12에서 그의 발이 병든 것은 여호와의 명백한 징계였는데도 아사는 그의 위대한 조상이 잠언 13:11-12에 제시한 대로 그 문제를 바라본 후 여호와께 구하지 아니하고 의원들에게 구하였습니다.” 하지만 잠시 후에 죽음이 그를 덮친 것으로 미루어 그의 경우에는 의원이 아무 소용없었음을 증거합니다.

우리는 아사의 생애 가운데서 일어난 이와 같은 사건들을 통해 이 글에서 다루는 것보다 더 많은, 영구한 가치를 지닌 교훈을 얼마든지 더 찾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중에 몇가지 만이라도 촛점을 맞추고 싶습니다. 그 중 하나는 14:11에 나오는 아사의 기도입니다. 이것은 단지 한 구절에 기록될 정도로 짧은 것이긴 하지만 너무나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에 그것에 손을 대는 것이 곧 그것을 망치는 일이 될 것입니다. 그 기도는 여호와께 어떠한 신뢰를 표현하고 있으며, 또한 어떠한 마음의 겸손을 드러내고 있습니까! 이 때쯤 아사는 상당히 크고 잘 갖추어진 군대를 소유하고 있었을 텐데도 불구하고 그는 이것을 의뢰하지 아니하고 자기 하나님을 의뢰하여 다음과 같이 부르짖었습니다 우리가 주를 의지하오며 주의 이름을 의탁하옵고···· 원컨대 사람으로 주를 이기지 못하게 하옵소서.” 그리고 12-15절에 묘사된 구원이 그의 기도와 유사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에 놀랄 사람이 있겠습니까?

여호와께서····· 쳐서 패하게 하시니 ·····이는 여호와 앞에서와 그 군대 앞에서 패망하였음이라.”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들을 위하여, 그리고 자기 백성들과 함께 행하신다는 이 개념은 15:2에서 승리한 왕에게 대한 아사랴의 멧세지의 근저(根底)를 이루었는데 거기에서 그것은 약속과 경고로 동시에 사용되었습니다: “너희가 여호와와 함께하면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실지라 너희가 만일 저를 찾으면 저가 너희의 만난바 되시려니와 너희가 만일 저를 버리면 저도 너희를 버리시리라.” 이것은 다윗이 70년 전에 솔로몬에게 주었던 것과 동일한 멧세지인데(대상 28:9) 오늘날이라고 해서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아사는 그 약속이 사실임을 입증했고, 나중에는 그 경고 역시 사실임을 깨닫게 됩니다.

또 한 가지 언급하고 싶은 점은 아사가 태후(太后)(옷룹)였던 자기 모친 마아가에 게 취했던 확고한 태도입니다(15:16), 그 전에 사람들은 우상을 숭배했던 이 여인의 일평생 동안 그녀의 비위를 맞춰줌으로써 그녀를 망쳐놓았습니다. 그녀의 이름이 언급되는 여러 곳에서 살펴볼 수 있는 대로(왕상 15:2,10,13, 대하 11:20,21,22, 13:2, 16:16) 그녀의 이름 철자가 여러가지로 나타난다든지, 또는 그녀와 관련된 친척관계들이 여러가지로 나타나는 현상은 우리를 다소 혼란스럽게 만들지만 그 여러 구절들을 종합해볼 때 그녀는 압살롬의 고명 딸 다말의 자녀였던 것 같습니다(삼하 14:27). 이 다말은 과거에 기브아 사람 우리엘과 결혼하여(대하 13:2) 낳은 자기의 딸의 이름을 그 증조 할머니, 곧 그술왕의 딸이자 압살롬의 어머니였던 마아가를 따라 지어 주었던 것입니다(대상 3:2). 이것은 그녀가 역대하 13:2에서(그녀의 실제 아버지였던) “우리엘의 딸로 불려짐과 동시에 역대하 11:20 등등에서는 (그녀의 할아버지였던) “압살롬의 딸로 불려질 수 있었던 배경을 설명해 줍니다. 만일 사무엘하 14:27에 나오는 압살롬의 세 아들이 후사를 남겨 놓지 않고 일찍 세상을 떠났다면(삼하 18:18을 참조해 보면 아마 그랬던 것 같습니다) “압살롬의 딸이란 표현은 그녀가 자기 모친 다말을 통해 그의 유일한 자손이었을 것이라는 점과 바로 이 때문에 그녀의 이름이 그의 이름과 연루되어 있을 것이라는 점을 암시합니다

마아가는 자기 남편 르호보암의 통치시와(대하 11:21-22) 자기 아들 아비야의 통치시에는(대하 13:2)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많이 했습니다.

이런 탓으로 그녀의 손자 아사는 그녀가 오랫동안 차지해 왔던 왕가(王家)의 최고 지위에서 그녀를 폐위하고 그녀의 애지중지하던 우상을 쳐부수는 일에 평소보다 더욱 확고부동한 태도를 취해야만 했을 것입니다. 사랑과 마찬가지로 개혁도 가정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왕이, 디모데전서 3:1-5에 감독이 되려는 사람들에게 제시된 것처럼, 먼저 자기 집을 잘 다스리지 못한다면 어떻게 자기 신하들을 바로 잡을 수 있겠습니까?

-        다음 호에 계속

 

(1990 11월호)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