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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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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3. 13. 10:04 횃불/1990년

베다니의 마리아(4)

-J.R. 밀러-

슬플 때 주님의 발 아래서

이제 마리아의 삶의 두번째 장면을 보기로 합시다. 그 행복한 가정에 슬픔이 찾아왔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오라비가 죽었습니다. 그 집은 참으로 애정 깊은 가정이었습니다. 두 누이와 오라비는 서로를 위해서 살았습니다. 지극히 성스러운 친밀함이 그들의 삶을 연결지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라비가 죽었을 때 누이들의 가슴은 매우 쓰라렸습니다.

 

애도자의 예배

장례식 후에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마르다는 주님을 맞이하려 고 나갔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마리아를 부르셨습니다.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와서 보이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이 말씀에서 우리는 그녀가 예수님의 발 아래에 있는 모습을 다시 보게 되는데, 이번의 경우는 마리아가 굉장한 슬픔에 싸여 있을 때입니다. 그녀가 어떠한 위로를 그 곳에서 찾았는지 당신은 압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와 함께 우셨습니다. 그리고 영생의 복된 소망을 나타내는 말씀을 하셨고, 또 잃어버렸던 오라비도 다시 살려 주셨습니다.

주님의 발 아래에서 울고 있는 여성의 모습에 당신의 생각을 계속 집중시키고 싶습니다. 슬픔의 기간에 참된 위로를 주님 외의 다른 곳에서는 얻을 수 없다는 것은 아무리 이야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마리아의 생에 있어서 이 두번째 모습은 그녀가 첫번째 일을 겪지 않았더라면 결코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당신에게 상기시키고 싶습니다. 만일 마리아가 그리스도의 발 아래에서 배우는 자로서 주님의 말씀을 흡수하고,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사랑과 믿음과 평강의 교훈을 배우지 않았더라면, 슬픔 속에서 위로를 찾으러 그리스도의 발 아래에 갈수 없었을 것입니다. 마리아가 예수님 없이 어떻게 슬픔을 감당할 수 있었을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슬픈 나날들을 대비한 빛

모든 젊은 여성들이 유쾌한 나날 가운데서 어두운 나날을 위하여 예비하는 빛을 찾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하려고 할 때, 저는 현재 그들의 즐거운 생활에 어떠한 조금의 그림자를 던지려고 하는 의도는 아닙니다. 만일 당신이 미국의 켄터키주에 있는 거대한 맘모스 동굴 안으로 들어 가려고 한다면, 안내자는 당신이 아직도 바깥의 햇볕 아래에 있을 동안에 당신의 손에 등잔을 들려 줄 것입니다. 당신이 초목이 푸릇푸릇한 언덕 아래로 걸어갈 동안에는 등잔의 빛은 흐리고 가물하게 비추어서 아무 쓸모 없는 것 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그 커다란 동굴 속으로 들어섬에 따라서 불빛은 어두움 가운데서 환하고, 아름답게 비쳐지게 되고 당신은 비로소 등잔의 가치를 깨닫게 됩니다. 현재 그리스도의 위로의 등잔은 아마도 쓸데없이 보일지 모르나, 언젠가 당신에게 어두움이 드리워지고, 세상의 어떠한 빛도 당신의 여정에 비추어지지 않을 때, 이 하늘의 등잔은 가장 반가운 존재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모습-슬픔의 날을 그리스도의 발 아래서-을 당신의 마음 속에 간직하십시오. 그것은 당신의 영혼에 밤중이 다가올 때, 어디로 가야 할 지를 가르쳐 줄 것입니다.

 

감사의 봉사

감사하는 마음을 지니고 하는 봉사가 마리아의 삶에 있는 세번째 모습입니다. 우리는 다시 한번 마리아에게 익숙한 모습을 봅니다. 그때는 예수님께서 죽으시기 바로 이·삼일 전입니다. 나사로는 다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예전의 가정 생활이 화목했듯이 지금도 역시 그런 분위기가 어려있습니다. 누이들의 마음은 커다란 감사로 넘쳤으며, 그러한 감사는 그들의 사랑하는 사람을 죽음에서 되살아나게 해준 친구를 주빈으로 모시는 잔치에서 보여졌습니다. 예수님과 나사로는 나란히 식탁에 앉았습니다. 마르다는 언제나 그러 하듯이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오래 전부터의 자리-예수님의 발 아래-에 있는 마리아를 다시 한번 봅니다. 이번에는 자기의 삶을 그토록 축복해 준 주님을 높이는 감사의 태도로 그곳에 있습니다.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이 일은 이 글을 읽고 있는 젊은 그리스도인 여성들도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당신에게는 당신의 사랑하는 주님의 발을 씻기 위하여 가져올 옥합이 있습니까?

 

봉사의 기회

그리스도의 발은 상쾌하게 고통을 덜어주는 당신의 향유 때문에 더 이상 지치고, 쓰라리며, 피를 흘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당신 주위에 있는 모든 이들은 틀림없이 당신의 온유한 사역이 그들에게 심히 감사한 축복이 될 주님의 사랑하는 사람들이며, 자녀들입니다. 쉼을 필요로 하는 고통스러운 손과 피곤한 발이 있습니다.

거의 모든 그리스도인 여성들에게 주어져 있는 아름다운 봉사를 할 기회들을 생각해 봅시다. 그녀는 맨 먼저 자기의 가정에서 할 일을 찾습니다. 눈에 쉽게 띄는 커다란 봉사를 찾아서 눈이 저 멀리를 바라보는 동안에 아주 가깝게 놓여 있는 의무를 놓치는 끊임없는 위험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이에 대해 말했습니다. “끊임 없이 밖에서 활동하는 아주 많은 사람들이 가정에서는 매우 쓸모가 없음은 굉장히 유감스럽습니다.” 가정에서의 상냥한 기질과 희생정신, 매일의 생활에서 일어나는 모든 작은 일을 거들려는 자세는 주일학교 봉사 및 주님의 일과 충돌하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의 기름의 향기가 제일 먼저 꼭 퍼져있어야 할 곳은 가정입니다. 당신의 따뜻한 사랑과 사려 깊고 희생적인 봉사는 먼저 가사에 지친 어머니와 가정을 책임지고 있는 아버지와 유혹 받기 쉬운 시기의 동생과 집안에 있는 아이들과 잠깐 들른 손님들과 집안 일을 도우러 온 일하는 사람에게 영향을 끼칩니다.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젊은 그리스도인 여성이 거하고 있는 모든 집은 끊이지 않는 아름다운 사랑의 생활의 향유 냄새로 가득 차야만 합니다.

 

선함의 향기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온 집안을 가득 채웠던 향기는 바깥으로 풍겨나갔습니다. 사랑으로 자기집을 축복하는 젊은 그리스도인 여성은 어디를 가나 축복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 봉사는 멀리에 있거나 온 세상이 찬사를 보낼만한 눈에 확 띄는 행동에 있는 것이 아니고, 아무의 눈에도 띄지 않으나 하나님께서는 주의를 기울이시는 조용하고, 품위 있는 작은 일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당신이 방문을 하여 위로할 아픈 이웃이 있습니다. 힘겹게 수고하며 염려하는 그녀를 위로하며 힘을 북돋워주는, 돈이나 선물이 아닌 작은 친절한 행동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당신이 일주일에 한 두 시간, 책을 읽어주고, 자신이 결코 볼 수 없는 굉장히 아름다운 세상에 대하여 이야기해줄 수 있는 장님인 여자가 있습니다. 일상 생활에서 가정의 참된 행복을 맛보지 못했거나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하여 듣지 못한 어린아이가 있습니다. 당신은 이 돌봄을 받지 못하는 어린아이가 구원을 얻는데 도움이 되도록 그 아이에게 그리스도와 같이 친절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와의 접촉

희미 하고 광택을 잃은 한 개의 오팔이 상자에 있습니다. 그것은 한 순간 따뜻한 손에 쥐어졌습니다. 그랬더니 무지개 빛깔의 영롱한 빛을 반사하면서 빛났습니다. 우리들 주위에는 어린아이든지 또는 나이가 들었든지 간에 영원한 생명을 드러내주는 내재하는 빛남이나 영적인 광채가 없이 냉정하거나 아름답지 않게 보이는 사람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러나, 일단 따뜻한 인간의 사랑의 손길이 닿기만 해도 그들 안에 숨겨져 있는 영적인 아름다움이 발산될 수 있습니다. 여러가지 경우에 있어서 젊은 그리스도인 여성의 손은 바로 이 무미 건조하고, 윤택이 없는 영혼에 닿아서, 그들을 찬란한 생애로 바꾸기를 원하는 하나님의 손입니다.

 

사역의 형태

일이 어떠한 특별한 형태일 것인가 하는 것은 상관이 별로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당신의 자녀들이 무엇을 하여야 적합한지를 아십니다.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채워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당신은 어디를 가든지 간에 축복이 될 것입니다. 아마도 모든 젊은 그리스도인 여성이 자기의 기도로 삼기에 알맞은 짧고, 아름다운 기도가 여기 있습니다.

나와 접촉하는 모든 영혼들마다 -

아주 미세한 접촉이라도 -

그곳에서 어떤 좋은 것을 얻게 하소서,

작은 은혜와 친절한 생각을,

아직 느끼지 못한 어떤 포부와 약간의 용기를,

어두워져 가는 하늘을 밝히는 한 줄기의 믿음을,

더욱 더 가해지는 생활의 고통을

헤쳐 나가기 위한

자욱한 안개를 벗어난 자은 하늘의 광채를,

이 생애를 가치 있게 하고

하늘을 더욱 확실한 기업이 되게 하기 위해서!”

 

죠지 · 맥도날드는 말합니다: “만일 내가 장미 빛 노을의 촉감을 어떤 남자나 혹은 여자의 삶에서 느끼게 할 수 있다면, 나는 하나님과 함께 일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처럼 아름다운 일을 하면서 사는 삶은 유행만을 좇으며 공허하고, 이기적인 삶을 살면서 세상에 아무런 축복을 남기지 않고 하루를 보내는 것보다 확실히 낫습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사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마리아는 향유를 붓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기를 기다리지 않고 미 리 그것을 부었다는 이야기는 언제나 저에게 아름다운 감동으로 남아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친구들이 죽고 나서야 비로소 향기를 발하게 하기 위하여 사랑의 옥합을 깨뜨립 니다. 어떤 사람이 이렇게 썼습니다 우리는 마치 이별, 포옹, 흐느낌과 신음, 한밤중의 뒤척임, 황혼의 슬픔, 마음이 어두운 정오, 이 모든 것은 지나가 버린 땅에 이미 도착한 것인양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우리의 곁을 지나고 있는 친구나 이웃이 곧 가버려서, 우리의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온유한 일들을 하려고 할 때는 이미 때를 놓치게 된다는 사실을 잊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사람들이 우리 곁을 지나가 버린 후에 다만 눈물로써 우리의 부끄러운 사랑을 표할 것이 아니라 고난의 한가운데 있는 그들의 지친 발에 부을 향유를 미리 가져와야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당신의 친구나 이읏의 관에다 보낼 꽃을, 그들이 살아있는 동안에 삶의 험준한 여정을 밝게 하고, 슬픔과 외로움을 덜어주기 위해 미리 보내십시오.

 

봉사의 보답

마리아를 기념하는 일은 그 사랑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되풀이하여 말하는 사람들에게 또한 격려가 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온 천하에 어디에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그래서 그 이야기는 그리스도의 생애의 마지막 부분의 기록 가운데 씌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몇 세기를 걸쳐서 내려오는 동안에도 마치 어제 일어났던 일처럼 새롭게 남아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왜냐하면 그 일은 그리스도를 위해서, 그분에 대한 사랑으로 행해졌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행해진 어떠한 아름다운 일도 잊지 않으시는데, 이 일은 바로 그런 의미에서 기억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어느 것도 잊으시지 않을 것입니다. 부드러운 진흙 위에 떨어진 양치류 식물과 잎사귀와 꽃이 아주 오랜 세월 동안 그 안에서 굳어져서 바위 속에 박혀진 것을 사람들은 가서 망치로 바위를 깨서 자국을 찾아냅니다. 모든 선과 잎, 맥과 접혀진 흔적이 완전한 형태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당신이 그리스도를 위해 한 어떤 작은 일일지라도 잊혀지는 듯 보이나, 하나님의 생명 책에 기록될 것이며, 그들의 이야기는 후세에 천사들과 사람들에 의해 잊혀질 것입니다.

 

(1990 11월호)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