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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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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5. 9. 14:18 횃불/1991년

난해구절 해설(1)

로마서 7:14-25

알버트 멕샤인

만일 로마서에서 가장 어려운 대목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가장 가능성 있는 대답은 7장 후반부가 될 것입니다. 이것은 그 앞 부분이 아무런 어려움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유사한 표현이 많고 특히 선과 악에 대한 빈번한 언급이 있는 이 후반부는 그것을 대하는 많은 사람들을 혼란케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닌데 왜냐하면 주석가들 조차 사도가 본문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에 대해 각각 견해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적어도 네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1) 바울은 여기서 구원받기 전의 자신의 상태를 묘사하고 있다.

2) 그는 구원은 받았으나 그리스도인으로서 새로운 삶을 다지기 이전인 신앙 초기의 경험을 진술하고 있다.

3) 그는 인간의 심령의 타락성을 자신이 얼마나 깊이 인식하고 있는지를 서술해 보임으로써 온전히 성숙한 성도가 자기 자신 안에 있는 죄성에 대해 깨닫게 되는 바를 묘사하고 있다.

4) 바울은 여기서 율법은 의롭게 하기에 무력한 만큼 거룩케 하기에도 무력하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상이한 견해들을 상고해 보기 전에 이 난해한 본문의 요지를 간략히 살펴보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14절에서 바울은 율법의 영적 속성과 죄에 노예된 자신의 상태를 밝힙니다. 그리고 그것들(악한 행동들)을 정죄하는데 있어 율법과 생각을 같이하는 자간의 의지와 반대되는 자신의 악한 행동들을 드러냄으로써 이 사실을 입증합니다(15~16). 이어서 그는 자신 안에 거하는 죄의 명령자로서의 역할과 그의 육신 안에는 선이 없다는 사실을 말합니다(17~18). 그리고 19절에서는 15절에서 말한 것을 약간 형태를 달리하여 반복하며, 자신은 선을 행할 수도, 악을 행하는 것을 저지할 수도 없으며 죄가 그의 주인이라고 말합니다. 그에게 있어 한가지 분명한 원칙은 자신이 자신의 의지가 행하기를 기뻐하는 선을 행하려고 할 때는 죄가 모습을 드러내어 그러한 소원을 거스려 치열한 싸움을 벌임으로써 자신이 죄의 권능에 노예된 것을 입증한다는 점입니다. 그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고 부르짖은 것은 조금도 놀랄 일이 아닙니다. 이것은 그가 좌절에 빠졌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는 승리는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보장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그에 대해 감사하고 있습니다.

 

견해 1)에 대하여

제법 많은 사람들이, 본문에서 언급된 사람이 원하는 선은 행치 않고 항상 원치 않는 악을 행한다는 사실을 근거로 그가 신자일 수 없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덧붙여 그들은 죄 아래 팔렸다는 것은 필경 구속 받지 못한 사람을 묘사하는 말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묻기를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라고 외칠 수 있습니까라고 합니다. 이러한 주장은 그럴 듯 합니다만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라고 한 22절 말씀에 의해 쓸모없게 됩니다. 이러한 고백은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에게서는 결코 나올 수 없습니다. 자연인은, 하나님의 율법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든지 간에, 때로 그것을 지켜보려고 안간힘을 쓸 수는 있을지언정 그 안에서 즐거워할 수 없으며 그것이 영적인 것임을 알지도 못합니다. 따라서 이러한 견해는 철회되어야 합니다.

 

견해 2)에 대하여

구원받은 사람들 대부분은 구원받은 이후에 내적인 싸움을 치룬 기억을 삼고 있는데 특히 그들이 거듭났지만 마음속에 악한 생각들이 일어나며 때로는 구원받기 전의 과실들이라고 생각하던 잘못을 범하는 자신을 발견할 때 그러합니다. 본문 24절의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는 구절은 아마도 그들의 그러한 경험을 가장 적절히 표현하는 말일 것입니다. 육신과 성령 사이에는 싸움이 있다는 것은 아무도 의문시할 수 없는 사실인바, 그것은 갈라디아서 5장의 주제이며 본문에서 다루고자 하는 바가 아닙니다. 바울이 여기서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하고 있는 바는 결코 그리스도인에게 사실이 아닌데, 그것은 아무리 연약하고 미숙한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그는 항상 악을 행하고 선은 행하지 않는 상태에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경험은, 그리스도안의 매우 어린 자에게 있어서도 전적인 패배와 실패일 수 없으며, 따라서 이 견해는 본문이 의미하는 바가 될 수 없습니다.

 

견해 3)에 대하여

성숙한 성도는 인간 본성의 타락성에 대한 통찰력을 갖고 있다는 것은 매우 일리 있는 주장인바, 성도는 자신의 마음 상태와 사람들의 연약에 대해 깊이 알면 알수록 자신 안에 있는 악의 깊이를 보다 절실히 의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본문이 말하는 바와 상당히 거리가 먼데 왜냐하면 내면의 악을 인식하는 것과 매일의 삶에서 그 악을 행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잇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본문의 핵심되는 강조점이 행동에 있으며, 그 행동들이 원문에는 각기 뜻이 다른 세 단어로 되었으나 흠정 역(the Authorized Version, 또는 King James Version이라고도 부름-역주) 에는 모두 행하다”(do, 한글 개역성경도 마찬가지임-역주)로 옮겨져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15절 상반절, 17, 18절 및 20절에 나오는 동사는 해 내다’(work out)는 뜻이며, 15절하반절, 16, 19절 상반절 및 21절에 나오는 동사는 실행하다’(perform)는 뜻이며, 그리고 15절과 19절의 중반에 나오는 동사는 행하다, 혹은 실천한다’(do, or practice)는 뜻입니다. 이처럼 본문에 나오는 동사들이 실제적인 행위에 강조점이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바울이 여기서 영적인 통찰력을 언급하고 있다는 주장은 잘못된 주장임을 알 수 있습니다.

 

견해 4)에 대하여

앞서 언급한 견해 중 세 가지가 거부되었으므로 이제 우리는 마지막 네번째 견해를 알아보고 그것이 본문의 난점을 해결해 줄 것인지 여부를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7장 전반부에서 바울은 바리새인이었던 자신에게 미친 율법의 영향을 진술하고 있는데 그런 점에서 거기에서는 과거시제가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14절 이후부터는 시제가 현재로 바뀌는데, 그런 점에서 분명 시제상의 차이가 있긴 합니다만, 그렇다고 바울이 이제 현재의 경험을 진술하고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이 네번째 견해가 옳을진대 본문은 바울이나 그밖의 어떤 사람의 경험을 애기하는 것이 아니라 신자의 안에 있는 새로운 성품이 율법을 성취하기에는 무력하다는 점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밝히면서 그는 구조의 희망을 잃지 않았음을 보게 되는데 왜냐하면 그는 7장 끝에 감사의 표현을 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분별하기에는, 본문은 율법이 신자를 성화시키는데 아무 쓸모없다는 사실을 얘기하고 있으며, 아울러 8장에서 성령의 능력을 진술하기 위한 도입단계가 되어 줍니다. 우리는 육신을 이기려면 결단이나 의지력 이상의 그 무엇이 필요하다는 엄연한 사실을 더디 깨닫는 듯 합니다.

 

본문 전반에 걸쳐 마음과 의지는 줄곧 율법과 관련돼 있으나 육신은 줄곧 악과 관련돼 있습니다. 바울은 내 속에 거하는 죄”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 “이 사망의 몸등의 표현을 썼는데 이는 중생 자체가 우리를 육신의 악한 원리로부터 건져주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명백히 암시해 줍니다. 이 악()은 그 힘이 너무 강해 새로운 성품은 성령의 능력을 떠나서는 그것을 결코 물리 칠 수 없습니다. 그런가 하면 율법의 의로운 요구들은 성령을 좇아 행하는 모든 사람 안에서 성취된다는 사실 또한 동일하게 사실입니다( 8:4).

본문을 그리스도인의 경험을 묘사하는 대목으로 간주하는 많은 사람들은 주님이 오실 때까지, 혹은 우리가 죽음을 통해 몸에서 벗어날 때까지 죄에 대한 승리는 결코 없으며, 25절의 바울의 감사는 몸의 구속을 염두에 둔 표현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8:2),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8:4)는 말씀들을 살펴볼진대 우리는, 승리는 우리의 현재의 경험이며, 그것은 우리 자신의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거하는 거룩한 능력에 의한 것임을 알게 됩니다. 모든 내적 싸움은 주님께서 오시는 때에, 혹은 우리가 죽음으로 몸을 떠나는 때에 끝이 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 없는 사실입니다만 그러나 우리는 그 사이에 육신의 명령에 복종하도록 내버려져 있지 않으며, 또한 우리의 실수를 내주하는 죄의 불가항력적인 권능 탓으로 돌릴 수도 없습니다. 근심치 않는 성령의 능력으로 행하는 사람들은 육신의 정욕을 이루는 것으로부터 건짐을 받습니다.  -다음 호에 계속-

 

(1991 7,8월호)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