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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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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5. 9. 14:16 횃불/1991년

웃시야

 

이미 제시된 대로 웃시야의 통치는 여러 가지 면에서 그의 부친과 흡사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통치 기간은 아마샤 때뿐만 아니라 여호사밧 시대 이후의 어떠한 왕보다도 더욱 번영을 누렸습니다. 그가 왕위 승계했을 당시 여로보암 2세는 이스라엘 북부를 이미 얼마간 통치해 오고 있었으며, 수리아 사람들에 대하여 이미 승리를 쟁취하기 시작했음에 틀림 없습니다. 이것은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사해) 바다까지그 땅의 북쪽 및 동쪽 변경(邊境)이 회복되리라는 요나의 예언의 성취였습니다(왕하 14:25). 그렇다면 역대하 25:6~8을 살펴보면서, 유다의 왕이 거의 동시에 홍해상의 엘롯과 애굽변방에 이르기까지 서쪽 및 남쪽 변경을 회복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흥미롭지 않습니까? 이와 같이 이스라엘의 국경은 일시적이긴 했지만 거의 다윗과 솔로몬 시대와 비슷하게 사방으로 확장되었습니다(왕상 8:65과 비교).

하지만 고난을 당하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이 당시 베풀어진 은혜는 여로보암과 웃시야에 의해 그릇된 대우를 받자 금새 철회되고 말았습니다. 요나의 선교 원정 대상이었던 앗수르 사람들이 몇 년 안되어 북쪽 왕국과 남쪽 왕국 모두에게 내린 하나님의 징계의 도구로 사용되었고, 그 이후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전의 소유권과 세력을 두 번 다시 회복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솔로몬을 제외하고 이스라엘이나 유다의 어떠한 왕도 웃시야만큼 다양한 관심과 업적을 가져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은 신분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1) (대하 26:1) (2) 전사(戰士, 6) (3) 건축가(6, 9, 10) (4) 농부(10) (5) 기사(奇士, 15). 하지만 이 모든 것에도 만족하지 못한 그는 또 (6) 제사장까지 되려 했으나(16) 이로 인해 결국 (7) 문둥이로 그의 생애를 마감해야 했습니다(21).

솔로몬에 찬하여 다루고 있는 앞의 어떤 장()에는, 그의 계보를 따르는 왕들이 위대한 자기 조상의 지혜로운 훈계, 곧 잠언과 전도서에 제시된 훈계를 따를 수도 있었고, 아니면 적어도 그의 나중 생애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그 훈계와 늘 일치하지는 않는 그의 행실을 모방할 수도 있었다는 것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나쁜 쪽으로 선택을 내렸던 왕들이 여럿 있었으며, 웃시야도 여기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일반적 인 통치 성격상 솔로몬을 열렬히 모방했던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홍해의 항구였던 엘롯은 역대하 8:17에서 솔로몬의 왕림(枉臨)에 관하여 언급된 이후 더 이상 언급되지 않다가 역대하 26:2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웃시야가 엘롯을 건축하여유다에 돌렸더라라는 표현으로 서술되어 있습니다. 아마 웃시야 왕의 목표는 엘롯을 자기 선조처럼 동방으로 항해하는 출발점으로 삼는 것이었으리라 여겨집니다. 전국적인 규모로 이루어진 그의 건축업과 농업에 있어서도 역시 그의 선조에 대한 의도적 모방이 있었던 것 같으며, 심지어 그처럼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던 성전 침입에 있어서도 같은 기미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는 역대하 5장에서 있었던 성전 헌당식 때에 솔로몬이 차지했던 두드러진 자리를 기억하고 그리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만일 웃시야 왕이 잠언 16:18의 다음과 같은 경고와 및 그 밖의 다른 비슷한 경고들을 유념하기만 했더라면 우리는 16~21절의 슬픈 기록을 보지 않아도 좋았을 것입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통치 초기에는 웃시야도 그의 조부 요아스처럼 선한 사람의 지도와 도움을 받았습니다. 5절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읽을 수 있습니다. “(웃시야가) 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아는 스가랴의 사는 날에 하나님을 구하였고 저가 여호와를 구할 동안에는 하나님이 형통케 하셨더라.” 이 스가랴에 관해서는 여기의 언급 외에 더 이상알 말이 없으나 우리는 이 절로부터 그가 좋은 영향을 끼쳤으리라는 것과 그 영향이 하나님의 묵시에 의지한 것이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와 같은 사람은 틀림없이 겸손한 사람이었을 것이며, 그에게 영향을 받은 사람도 역시 겸손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스가랴의 죽음으로 그 영향이 중지되자 웃시야 왕은 다른 많은 왕들처럼 스스로 서 있을 능력이 없었고, 그 마음의 교만을 드러내고야 말았습니다.

이사야가 하나님의 놀라운 모습을 보고 그것을 6장에 묘사한 그 사건은 웃시야 왕의 죽던 해에일어났었다고 진술되어 있으며, 그 장면은 바로 웃시야가 범죄한 성전이었습니다. 문둥이 왕의 최근의 죽음과 및 그의 범죄와 형벌에 관한 기억은 그 선지자의 마음 속에, 자기는 그처럼 거룩하고 위엄 있는 장소에 있을 사람이 못 된다는 것을 느끼게 하였고, 급기야 그로 하여금 다음과 같이 소리치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이 부정한 입술은 레 13:45을 참조해 볼 때 문둥병자의 부정한 입술을 가리킴)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이 경험과 및 그 왕에게 닥쳤던 심판으로 말미암아 형성된 개념들은 여기저기 이사야서 전체에 걸쳐 우리 눈에 들어옵니다. “부정한 자에 관한 언급은 다음과 같은 구절에 제시되어 있습니다-35:8(우리말 성경에는 깨끗지 못한 자로 나와 있음-역주), 52:1,11, 특히 64:6(이 구절의 부정한 자더러운 옷은 그 선지자의 마음에서 직유(直喩)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1:5~6에 사실적(寫實的)으로 묘사된 그 만족의 모습 역시 여러 진행 단계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문둥 상처들로 뒤덮인 사람의 모습인 것처럼 보입니다. 반면에 이사야가 여호와를 무려 25번씩이나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로 호칭하는 것을 감안할 때 웃시야의 운명과 이사야의 환상이 그의 심령에 얼마나 강력한 인상을 심어 주었었는가를 우리는 실감할 수밖에 없습니다(“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란 명칭은 이사야서 외의 다른 성경말씀에 나오는 것을 모두 합쳐도 일곱 번에 불과합니다).

웃시야에게 작별을 고하기 전에 흥미로운 점 또 한 가지를 언급하고 싶습니다. 그의 이름은 여호와의 힘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이것이 역대하 26:8,15,16강성하여라는 언급의 근저(根底)를 이루는 것 같습니다. 그의 또 다른 이름 아사라”(열왕기하의 그에 관한 기록에서는 그가 흔히 이 이름으로 칭해져 있음)여호와의 도움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이것은 역대하 25:7,13,15에 더욱 분명하게 암시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두 이름에 대한 히브리 원명은 아살”(azar)이기 때문이며, 이 이름으로부터 아사랴라는 이름이 합성되었습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역대기에서는(대상 3:12의 계보에 나오는 것을 제외하고) 아사랴라는 그의 이름이 전혀 사용되지 않다가 역대하 25:17에 가서야 그 이름이, 그를 저지시켰던 제사장의 이름으로 언급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웃시야가 겸손히 행하며, 여호와를 구하는 동안에는 여호와의 힘이 웃시야의 도움이 되었지만 그가 강퍅하게 그 마음이 교만하여지자그것은 그를 대적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실제적으로 체험한 사람은 비단 그 문둥이 왕만이 아닐 것입니다. ♠ 다음 호에 계속

 

(1991 7,8월호)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