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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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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6. 7. 11:32 세상은

“자살”에 관한 칼빈주의자의 뒤틀린 해석

바이블파워     

그리스도인의 자살을 칼빈주의적으로 해석하면 틀린 해석이 된다. 자살자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성경이 가르쳐주고 있다. 하나님의 계획을 무산시킨 그는 구원은 잃지 않지만 모든 상을 잃어버리게 된다.
▲ 그리스도인의 자살을 칼빈주의적으로 해석하면 틀린 해석이 된다. 자살자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성경이 가르쳐주고 있다. 하나님의 계획을 무산시킨 그는 구원은 잃지 않지만 모든 상을 잃어버리게 된다.

“칼빈주의자가 인간의 구원에 관해 판단할 자격이 있는가?” 죄인이 성경의 구원에 관해 판단할 자격이 없는 것만큼, 그들에게도 구원을 판단할 자격이 없다는 것이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최근 한 칼빈주의 교수가 ‘자살자 유가족 위로예배’라는 데에서 유가족을 위로하기 위해 참으로 가당치 않은 신학적 해석을 늘어놓았다. 언론에 따르면, 지난 23일 라이프호프 기독교자살예방센터 주최로 열린 ‘제3회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롬 12:15), 자살자 유가족을 위한 위로예배’ 1부 순서인 자살예방세미나에서 고신대학원 기독교윤리학 신원하 교수는 “자살이 하나님의 주권을 침해하는 큰 죄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자살한 사람이 이것으로 인해 영원한 저주에 처한다는 주장은 신학적으로 충분한 근거가 없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신학”적으로 충분한 근거가 없다는 것인가? 신 교수는 “전통적으로 개혁교회는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에 따라 택자와 유기자를 정했다는 ‘예정 교리’와, 구원으로 택함받은 성도는 결코 그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성도의 견인 교리’를 견지해 왔다”며 “이러한 견인 교리에 비춰 볼 때, ‘사망이나 생명이나 환란과 위험이나 칼과 마찬가지로…’ 등의 말씀처럼 자살이라 하더라도 결코 택한 자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떨어지게 할 수 없다고 교리적으로도 판단할 수 있다”고 했으니, 그가 말한 “신학”이란 “칼빈주의 신학”이었던 것이다.


칼빈주의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창세 전에 하나님께 택함을 받아 구원받기로 예정된 사람은 그가 자살을 하든 안 하든, 선하게 살든 악하게 살든 구원받을 것이 분명하다. 창세 전에 버림받아 지옥에 가기로 예정된 사람은 그가 무슨 악을 저질러도, 무슨 선한 일을 해도 지옥에 갈 것이 분명하다. 이처럼 허무하고 몰상식하고 이 세상의 악을 팽창시키는 교리가 어디 있는가? 지금 그들은 인간들에게 그들 멋대로 살다가 죽으라고 촉구하는 것과 다름 아니다. 하나님께서 영원 전부터 구원받을 자와 지옥에 갈 자를 그분의 주권으로 다 정해 놓았으니 교회도 필요 없고 복음도 필요 없고 눈에 보이는 대로 마음대로 살다가 죽어서 하늘나라에 가거나 지옥에 가거나 하라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것은 선을 위한 인간의 모든 기본적인 노력마저도 짓뭉개 버리고, 악을 억제하려는 모든 노력의 고삐를 끊어 악으로 더욱 치닫게 만드는 교리이다. 이 세상에 교회가 존재하며 죄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바르게 살게 해야 할 이유를 없애 버렸으며, 인간이 왜 선하게 살아야 하는지, 인간에게 왜 하나님이 필요한지,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왜 흘려져야 했는지, 그 모든 이유를 없애 버리는 사악한 교리이다. 한마디로 칼빈주의는 기독교계의 악의 축이자, 죄인들을 지옥에 던져 넣는 치명적인 독소인 것이다. 다음의 말씀이면 그들의 거짓 교리는 초토화된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의 지식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기를 원하시는데 칼빈주의자들은 왜 그렇지 않다고 하는 것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모든 사람”을 위한 죽음이요 “모든 사람”의 구원을 위한 죽음이었다. 『그러므로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심판이 모든 사람에게 임하여 정죄에 이른 것같이 한 사람의 의로 말미암아 값없는 선물이 모든 사람에게 임하여 생명의 의롭다 하심에 이르렀느니라』(롬 5:18). 말씀이 이처럼 명백한데도 성경을 억지로 풀다가 자신과 듣는 이들을 함께 멸망으로 몰아가는 자들을 주님은 『무식한 자들과 견고하지 못한 자들』(벧후 3:16)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들은 성경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는 자들인데 누구에게 성경을 가르치겠다고 나선 것인가? 성경을 틀리게 가르치는 자들이 하나님께 부름받은 종들이란 말인가?


인간이 자살을 해도 지옥에 가지 않는 유일한 경우는 그가 이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죄값을 대신 치러 주신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영접한 경우이다.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한 순간 그는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침례를 받아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되었고(『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한 성령에 의하여 우리 모두가 한 몸 안으로 침례를 받았으며 또 모두가 한 성령 안으로 마시게 되었느니라』- 고전 12:13), 한 번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들어가 그 지체가 된 이상 그 몸에서 결코 빠져 나올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는 우리가 그의 몸과 그의 살과 그의 뼈의 지체임이라』(엡 5:30).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하신 것처럼 그 몸의 지체가 된 성도들도 영원하며 아무도 그들의 구원을 취소시킬 수 없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현재의 일들이나 다가올 일들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어떤 다른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떼어 놓을 수 없으리라』(롬 8:38,39).


주님께서는『너희 자신을 돌아보라. 이는 우리가 이루어 놓은 것들을 잃지 아니하고 온전한 상을 받으려는 것이라.』(요이 1:8)고 말씀하신다. 성도가 자살하여 성령님이 거하시는 “성도 자신의 몸,” 즉 『하나님의 성전』(고전 3:16)을 스스로 파괴해 버렸다면, 구원은 잃지 않지만 그가 지상에 살면서 『자기 몸으로 행한 것들』(고후 5:10)로 받는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의 상을 상실하게 된다. 『만일 어떤 사람의 일한 것이 불타 버리면 그는 손해를 당하리라. 그러나 그 자신은 구원을 받게 되지만 불에 의해서인 것처럼 그렇게 되리라.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영께서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만일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께서도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이는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며 너희는 그 성전이기 때문이라』(고전 3:15-17). 성도가 자살, 곧 “자신을 살인하면” 천년왕국에서의 유업이 없게 된다. 『이제 육신의 일들은 분명히 나타나나니 곧... 살인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내가 전에 말한 바와 같이 미리 말하노니 그런 짓들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할 것이라』(갈 5:19-21).


사도 바울은 『우리가 자신에 차 있으니 정녕 몸에서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것을 오히려 더 원하노라.』(고후 5:8)고 했지만 그것이 정녕 “자살”을 통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 때문에 우리가 애쓰는 것은 거하든지 떠나 있든지 그분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를 바라는 것이라.』(고후 5:9)고 함으로써 이 육신의 몸 안에 거하는 동안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를 원한 것이다. 자살은 결코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에게 권고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것이 너희가 드릴 합당한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상과 일치하지 말고 너희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써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입증하도록 하라』(롬 12:1,2). 주님께 드려진 거룩한 산 제물은 자살하지 않는다. 자살은 결코 거룩한 일이 아니다. 자신의 몸에 관한 하나님의 거룩한 계획을 무산시킨 자에게 주어질 상은 아무것도 없다. 주님은 우리의 몸을 의의 병기로 드리라고 하셨지 불의의 병기로 생을 마감하라고 하지 않으셨다. 『또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 로 죄에게 내어주지 말고 다만 너희 자신을 죽은 자들로부터 살아난 자들처럼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롬 6:13).


순교자와 자살자의 다른 점은, 순교자는 주님을 첫째로, 자신을 맨 마지막으로 사랑한 성도인 반면, 자살자는 자신을 첫째로 사랑하고 주님을 조금도 사랑하지 않은 죄인이라는 것이다. 교회는 교인들에게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그러나 교회가 세상을 사랑하다 보니 그곳 교인들도 세상을 사랑하다가 많은 슬픔으로 자신을 찔러 버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자살자들의 열매는 쓰다. 유가족이 감당해야 할 슬픔은 쓰디쓰다. 성경이 주는 위로와 훈계는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성도는 결코 자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주님의 죽으심의 본을 따라 자신도 진리를 위해 살다가 죽기를 원할 뿐이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눅 9:23).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