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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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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6. 25. 12:29 횃불/1993년

길 진리 생

송 은 희

고교 시절에 인생과 죽음에 대해 쓴 수필을 읽은 적이 있었습니다. 사춘기의 감상으로 읽게 되었지만, 인생에 대해 고심하다 불가해(不可解)’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자살한 일본인 청년의 죽음은 저에게 사뭇 인생의 의미를 묻는 질문이었습니다.

종교에도 관심이 없었고 사후에 대해서도, 가끔 의문을 가진 적은 있었지만 그리 심각하게 생각해 보지도 못했던 저는 그 일본인 청년과 같은 답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불가해. 우리 인간이 삶과 죽음의 문제를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그리고 꼭 알아야 될 필요는 무엇인가? 살아갈 날 동안만 성실히 살면서 적당히 양심에 거리끼지 않는 한에서 세상의 즐거움을 누리며 사는 것일 뿐이다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이런 저에게 주님은 저의 이런 생각이 틀렸음을 알게 해주셨습니다. 얼마나 저의 삶이, 아니 모든 사람들의 삶이 잘못되어 가고 있는지를요.

 

아버지의 죽음으로 어린 나이의 저는 인간의 존재와 죽음 앞에서 한없이 울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저 얼마 전 저와 얘기하고 웃던 아빠는 죽음이란 이름으로 제 곁에 더 이상 계시지 않았습니다. 다시는 볼 수도, 얘기할 수도 없다는 사실이 저를 그토록 울도록 만들었고, 슬픔이라는 것으로 죽음을 인식하게 했습니다.

아버지의 죽음 후 남겨진 우리 33녀의 학업과 부양을 위해 어머니는 갖은 수고와 고생을 하셔야만 했고, 우리 형제들 또한 어렵고 힘들게 학창시절을 보내야 했습니다 이 가난이 모든 불행의 시초 같아서 돈만 풍족하다면 모든 것이 행복해지리라 생각되었던 때였습니다. 그러나 조금은 나아진 환경과 오빠들의 결혼으로 가족간의 갈등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 사람 사는 것이 제가 생각했던 것처럼 그리 쉽지 않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저를 괴롭게 했던 것은 저의 앞길을 한없이 가로막는 대입의 실패였습니다. 어려운 환경으로 대학을 진학한다는 것이 무리이기는 했지만 힘들게 학교를 다니면서 선생님의 도움과 사랑을 너무나 많이 받아 온지라 꼭 선생님이 되어 저도 그런 훌륭한 선생이 되리라 마음먹게 되었고 또한 그 일을 하면서 앞 날을 살아간다면 정말 행복하리라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직장을 다녀 첫 급여를 받던 날, 그 허무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고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슬프고 괴롭게 느껴졌던지 저는 다시 공부를 시작하리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독서실에서 사무일과 공부를 함께 하면서 누구의 도움 없이 어렵게 준비했던 대입을 또 다시 실패하게 되었을 때는 모든 것이 다 끝난 것 같은 절망에 빠졌습니다.

이렇게 저의 상황이 좋지 못하다 보니까 친구들의 기쁨을 기뻐해주지 못하고 오히려 질투와 시기로 저의 마음은 가득해서 저를 더욱 괴롭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이 좋지 않을 때는 남의 기쁨은 오히려 자신에게 더욱 더 큰 슬픔이 되는 것을 보면서 인간은 철저히 혼자라는 것과 이기적인 동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 자신을 미워하리만큼 실망했고 산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나 켰습니다.

복음을 듣기 전의 저의 상황은 이러했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어렵게만 느껴졌던 모든 일들 가운데서 주님께서 저를 인도하셨다는 것을 지금은 알 수 있습니다. 저의 마음을 낮추시고 준비시키셔서 주님은 기다리고 계셨던 것입니다

 

제가 있던 직장에는 참으로 저의 마음을 끄는 한 분이 계셨습니다. 그분이 다른 분들과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는데, 다른 사람들과 화목하면서도 그들과는 분리된 그 무엇인가를 소유하고 있는 듯 했습니다. 함께 생활하면서 쌓인 그분에 대한 신뢰는 제가 복음에 귀를 기울일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동안 예수, 교회라고 하면 제가 세상에 속했던 이유였겠지만 공연히 말 꺼내는 것조차도 싫어하던 저로서는, 그분에 대한 신뢰로 인해 그분이 말씀하시는 것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그분은 바로 주님의 피로 거듭난 형제이었습니다.

그 형제님이 복음을 말씀하실 그 당시에는 모든 것이 생소하기는 했지만 알 것 같다가도 저 혼자 돌아가는 길에는 언제나 혼란으로 아무것도 잡히지가 않았습니다. 또 저의 앞길이 제가 믿든 믿지 않든 두 갈래 길로 예비되어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두려움으로 가득차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에겐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정말 하나님이 계신지? 왜 저와 예수님이 관계가 있는지? 지옥이 진짜로 있는지? 한낱 종교로만 생각했던 기독교가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의심 등이 저를 너무나 혼란스럽게 했습니다.

평소에 하나님의 존재를 알려고도 또 계시다고도 생각지 않고 이 세상 것만 생각하며 살았던 저에게 가장 믿기 어려운 것은 하나님의 존재였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1:1).

이 말씀을 얼마나 되뇌이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왜 모든 것이 참조가 되어서 존재했어야만 했는지도 이해가 안되리만큼 제 시야는 가리워져 있었습니다.

또 예수님이 저의 죄를 위하여 죽으셨기 때문에 믿기만 하면 하늘나라에 갈수 있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믿는 것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습니다. 저의 죄인 됨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 죄를 위해 죽으셨다는 예수님께 조금도 감사의 마음이 들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두 달 가까이 시간이 나는 대로 복음을 듣는 가운데 저는 하나님의 존재나 예수님에 관한 모든 말씀이 사실인 것 같아 믿기로 했지만, 아니 믿고 싶었지만 믿어지지는 않고 또 어떻게 믿는 것인지 가슴만 답답해질 뿐이었습니다.

이러던 중 ‘90년 청년 캠프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였는데, 서로가 예수님을 영접한 이야기로 자정이 넘는 줄도 모르고 이야기하는 그 자매님들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게 보였고, 그 알 수 없는 평안함과 기쁨을 저도 깨닫고 싶었습니다. 저도 꼭 구원받고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캠프가 이틀이 지났는데도 아무런 진전이 없어 제 마음은 답답해 눈물을 흘릴 지경이 되었습니다. 또 말씀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부터 시작해서 최초의 범죄, 그 결과로 세상에 죄가 들어와 모든 사람이 죄인된 것, 그로 인해 죽어야 마땅한 인간들, 그래 저 예수님이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것,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그 죄 값을 다 치르신 것까지 쭉 말씀해 주셨는데 그 말씀을 들으면서 그렇게 계속 들어오고, 수없이 되뇌였던 말씀이 믿어진 것입니다.

모든 만물을 하나님이 만드셨으며, 이 어머어마한 우주 속에 하나의 피조물에 불과한 저를 발견했고, 왜 제가 그토록 원하지 않는 죄가 저를 괴롭게 하는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죄인으로 태어나서 그 죄 가운데 어쩔 수 없이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저를 구원하시려고 예수님은 그 십자가를 지신 것이었습니다. 이제야 저의 마음은 진정으로 예수님께 감사드릴 수가 있었습니다.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올 자가 없느니라”( 14:6).

전에 들었던 이 말씀이 제일 먼저 떠올랐습니다. 왜 예수님이 길이 되시고 진리가 되시고 생명이 되시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로 죄인인 우리를 인도하기 위하셔서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은 하나님께로 가는 길이셨고, 내가 믿지 않았던 그 20여 년의 시간 동안에도 저의 구원은 이미 2,000년 전에 이루어져 있는 진리였으며, 죄 값을 다 치르시고 저를 죽음에서 건져 영원한 생명을 주신 예수님은 바로 저의 생명이신 분이셨습니다.

교만하다 생각했던 그 예수님이 바로 저의 구주가 되신 줄 어찌 알았겠습니까

불가해라고 마지막 말을 남긴 청년의 죽음은 헛된 것이었습니다. 인생의 문제, 죽음의 문제는 풀 수 있는 문제이었기 때문입니다. 진리되신 주님을 만난다면 말입니다.

진리의 기둥이 되어 제 안에 서 계신 주님으로 인해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합니다. 자기 영혼의 수고를 만족히 여기시는 주님의 수고와 사랑에 감사하며, 오직 주님만을 기쁘시게 하는 저의 삶이 되고 싶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 영광이 저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1:4).

 

(1993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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