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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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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6. 26. 11:09 횃불/1993년

예수님은 왜 오셨는가?

 

만일 누가 가서 우리의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고후 11:4).

 

초대 교회가 어떻게 시작되어 진행되었는가는 사도행전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오순절 이후 처음은 예수님의 실제와 하나님의 아들되심을 강력하게 반대하는 세력에 대항하여 복음이 전파되었으므로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자들은 대부분 구원을 받았던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교회사가 진행되면서 조금씩 달라지는 것을 보게 된다. 사단이 교회 앞에서 교회에 대항할 뿐만 아니라 교회내부에 들어와서 교회를 교란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가운데에도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는 사람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그들은 입술로만 고백한 자들이었다). 그러한 일들은 거짓 전도자들이 교회에 들어와서 시작된 것으로 생각된다.

실제로 고린도교회에서 이러한 일이 일어났던 것이며 본문으로 택한 고린도후서 11 4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러한 내용을 지적하고 있다. 그들은 다른 예수를 전파하고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 13:8)하시건만 어찌하여 다른 예수가 나타났는가? 예수님이 변하셨는가? 아니다! 사람들의 생각 속에서 사단이 변화시키는 것이다.

이번에는 다른 예수에 오염되어 있는 자들의 일면을 생각하여 보고자 한다. 잘못된 부분들을 알기 위하여 먼저 예수님이 어떤 분인가, 왜 오셨는가를 생각해 보기로 하자. 그러하면 어떻게 잘못되었는가를 알기에 용이하리라.

 

예수님은 왜 오셨는가?

첫째로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였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1:21).

예수님은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다. 그것은 인간들의 죄가 멸망의 지옥에 가는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지옥의 형벌을 받는다는 것은 성경의 중심 가르침 중 하나인 것이다.

다른 예수를 믿는 사람들의 특징은 그들이 죄에서 해방된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들에게 왜 예수님이 죽으셨느냐고 물으면 우리 죄를 인하여 죽으셨다고 답변한다. 그러나 그들의 대부분은 죄가 용서되었다는 사실을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은혜는 무엇인가? 죄를 지음으로 절망적 상태에 빠져서 지옥에 갈수 밖에 없는 죄인이 죄를 용서받고 천국의 소망 중에 기쁨이 충만 된 것이 아닌가!

그리고 이 죄 용서받은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기독 신앙의 본질인 것이다. 이것이 없다면 당신의 신앙은 다이아몬드가 빠져버린 빈 상자같은 것에 불과하다

예수님 앞에 나왔던 수많은 사람들이 죄를 용서받고 기뻐하지 아니하였는가? 우물가의 여인, 세리장 삭개오, 소경 바디매오 등 수많은 사람들이 구원의 주님을 찬양하였던 것이다. 마태복음 9 1절에서 8절까지에 기록된 중풍병자는 죄와 병에서 씻음 받은 사실을 똑똑히 볼 수 있지 아니한가?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9:2).

독자여! 이 글을 읽는 독자여.

그대의 죄에서 확실하게 해방받은 경험이 없다면 그대는 다른 예수를 믿고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수십년간 교회에 다니면서 기도할 때마다 죄사함에 대한 믿음과 확신이 없이 공로없는 죄인은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끝을 맺고 있다. 이것이 얼마나 잘못된 표현인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의 고통을 받으셨음은 인간의 모든 죄악을 인하여 죽으심이 분명하거늘 왜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죄에서 해방을 받지 못하였는가? 그들은 분명 다른 예수를 믿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선 너를 해방하였음이니라”( 8:1,2).

죄에서 해방”, 이 얼마나 기쁜 소식인가? 죄의 구렁에서 평생을 노력하여도 헤어 나을 수 없는 죄인이 해방을 받은 것이다. 어떤 찬송가 저자도 죄에서 해방받은 기쁨을 이렇게 전하고 있다.

주의 말씀 받은 그날 참 기쁘고 복 되도다

이 기쁜 맘 못 이겨서 온 세상에 전하노라

기쁜 날 기쁜 날 주 나의 죄 다 씻은 날

늘 깨어서 기도하고 늘 기쁘게 살아가리

기쁜 날 기쁜 날 주 나의 죄 다 씻은 날.”

 

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찬송인가! 이 얼마나 놀라운 고백인가! 만약 기독교에서 이 죄 용서받은 기쁨이 사라진다면 기독교는 생명이 없는 삼류 종교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죄인을 죄에서 해방시키기 위한 것이었음을 명심하기 바란다.

 

둘째로 예수님은 인간을 멸망의 지옥에서 건지러 오셨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3:16)

이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예수님은 사람을 멸망의 지옥에서 건져 영생하는 천국으로 인도하시기 위하여 세상에 오신 것이다. 그래서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천국의 소망과 기쁨 가운데 고난을 달게 받으며 순교까지도 기쁘게 당하였던 것이다. 그들이 담대히 순교 당했던 것은 영생의 소망이 그들 심중에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6 47절에서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라고 약속하셨다. 바울은 에베소서 2 8절에서 구원을 얻었나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1 18절에서 구속된 것은 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유다는 유다서 13절에서 얻은 구원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표현들은 모두 과거형으로서 이미 구원받은 것을 신자 자신이 확실히 알고 있음을 말해준다. 여기서 알고 있다는 뜻은, 분명한 증거(요일 5:10)도 없이 맹목적으로 구원받은 것을 주장하고 있는 사람은 포함될 수 없음을 지적하여 주는 것이다. 요한은 요한일서 510절에서 참으로 믿는 신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다고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만나본 수 많은 사람 중 상당한 경력을 가진 자들에게 당신이 만약 지금 죽는다면 천국에 갈 준비가 되어있는가라고 물어 보았다. 이에 대한 답변은 죽어 보아야 알지 어떻게 아느냐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중 얼마는 갈 수 있다고 증언하기에 어떻게 분명한 확신을 얻었느냐?”고 물으면 정확한 증거의 답변은 흐리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들이 왜 왔는가? 분명하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분명히 신뢰하지 못하던가 아니면 다른 예수를 믿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어느 때에도 불분명한 말씀은 하신 적이 없으시다. 모든 문제는 물론이요 특히 영생의 문제는 더욱 그러하셨다.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10:28).

이 영생에 대하여 잠시 묵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영생은 요한일서 2 25절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것이 영생인 것이다.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요일 2:25).

그러므로 영생은 한번 얻으면 영원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주님의 약속에 의한 것이지 결코 나의 노력이나 공로가 아니기 때문이다. 계속 잃었다, 얻었다 하는 성질의 것이 결코 아니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들은 자주 잃어버릴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필자는 이런 사람들을 많이 만나보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속죄를 믿음으로 단번에 얻어지는 이 영생은 모든사람에게 천국의 소망을 줄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도 담대함과 평안의 신앙 생활을 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주님의 초림도, 죽으심도, 또한 죽으신 지 삼일만에 부활하심도, 승천하심도 그리고 주님의 다시 오시는 재림도 영생이 목적인 것이다. 영생이 빠진 기독교는 알맹이 빠진 종교일 뿐이다.

 

세번째로 예수님은 잃어버린 죄인에게 평안을 주시러 오신 것이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리라”( 14:27).

예수님은 죄의 짐을 지고 고통당하는 인생들을 불쌍히 여기시어 고통에서 평안한 안식을 주려고 오신 것이다.

, 독자여! 모두에게 멸시와 천대와 손가락질을 받던 요한복음 4장의 우물가 여인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시라. 사람들을 피하던 그가 사람들에게 찾아가서 힘차게 전도하는 모습을 보시라. 주님으로부터 죄를 탕감받은 삭개오의 기쁨을 보시라. 그는 얼마나 기뻤던지 재산의 절반을 구제하고 모든 토색한 것을 갚겠다 하지 아니하였는가? 이와 같은 사실들이 회개를 통한 기쁨과 평안이 아니겠는가!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죄인에게 평안을 주러 오신 것인데 오늘날 수많은 기독인들이 이러한 기쁨에 동참하지 못함은 왠 말인가?

! 독자여, 모든 인생은 죄인이다( 3:10).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다( 7:20). 요한복음 8장의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은 이 시대 우리를 나타내고 있다. 바로 우리 자신을 나타내고 있음을 독자들은 깨달으시라. 우리 중에 누가 나의 거룩함으로 다른 사람을 정죄할 자 있단 말인가? 인간 중에 누가 간음하지 아니한 자 있겠는가? 음란한 마음을 갖지 아니한 인간이 있겠는가? 우리 모두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용서받을 수 없는 더러운 죄인임에 틀림 없는 것이다. 누가 이 여인에게 평안을 줄 수 있었는가? 오직 예수님 뿐이시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8:11).

이것이 주님의 결론이요 용서의 말씀이셨다. 죽음의 자리에서 벗어난 이 여인의 평안을 생각해 보시라. 죄를 용서받은 이 여인의 기쁨이 어떠했겠는가? 필자가 믿기로 이 여인은 주님 나라의 기쁨에 동참하였으며 천국에 가면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독자여! 이 여인이 누렸던 기쁨에 동참하지 아니하겠는가? 신약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증인들이 누렸던 죄 용서 받음의 기쁨을 누리기를 원치 아니하는가? 그들은 속죄의 기쁨에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처럼 뛰고 기뻐하였다( 4:2, 16:34).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을 죄에서, 멸망에서 건지려 이 세상에 오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속죄를 인하여 멸망의 지옥에서 해방받은 사람에게 큰 기쁨이 있음이 당연하지 아니한가? 예수님을 믿는 그대에게 이 기쁨이 없다면 그대는 다른 예수를 믿고 있음이 분명하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요일 5:13).

 

(1993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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