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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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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7. 9. 15:55 횃불/1993년

제단을 쌓으라(2)

O. J. 깁슨

 

또한 이 제단의 기능은 무엇입니까? 이 제단은 어떤 면에서 우리에게 축복이 됩니까? 첫째는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과의 교제를 즐길 수 있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 자체로서 만족과 기쁨을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 나아가기를 좋아하는 것입니다. “나는 5분이 늦었으므로 5분만 하나님과 시간을 가진 다음 빨리 가야겠다. “만일 이렇게 하나님을 대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존귀히 여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아십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즐거워하는지 하나님께서 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지도 아십니다. 혹시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에게 권태스럽지는 않는지요?

시편기자는 말하기를, 사람들이 내게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자고 말할 때에 내 마음이 기뻤다고 했습니다( 122:1). 이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라 즐거운 일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와같이 하나님과 관계를 가질 때 하나님께 말씀을 드릴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 앞에서 나는 주님을 믿습니다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내 삶에 있어서 확실하신 분이십니다. 주님이 저와 함께 교제해 주시는 것이 체가 매일 주님과 동행하는데 있어서 절대로 필요합니다. 저는 주님의 축복이 없으면 이 하루를 지낼 수가 없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저는 때로는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똑같은 말을 합니다. 여러분은 아침에 집 밖에 나설 때 벌거벗은 채로 나설 수 있겠습니까? 그런 모습으로 길거리로 나갈 수 있겠습니까? “말도 안돼!”하고 비명을 지르실 것입니다! 왜 못하십니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교제하지 않은 채 문 밖에 나설 때 그와같은 마음을 가지시는지요? 여러분은 사람의 얼굴을 보기 전에 하나님의 얼굴을 먼저 보십니까? 아침식사를 거르더라도. 우리는 때로 우리 자신의 얼굴을 보는데는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도, 자신을 위해서는 30분을 보내면서 하나님을 위해서는 5분도 보내지 않는 것입니다. “, 나는 내 베개와 좋은 교제를 가졌다!” 여러분은 주님과 교제하는 것보다 침상에 들어가는 것이 더 좋습니까?

모슬람 교도들에게 모스크라는 것은 그들의 기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아침 5에 일어나서 아침 식사를 거르는 한이 있어도 기도를 합니다. 모슬람 교도들이 그러한 기도 시간을 소중히 여길진대,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더더욱 그릴만한 이유를 갖고 있지 않습니까? 저들은 거짓 하나님을 믿고 있는데 비해 우리는 참 하나님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들은 거짓 선지자를 따르는데 비해 우리는 참 선지자를 따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모슬람 교도들보다 더 열심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느 날 몇몇 모슬람 교도들이 이스라엘 국경에서 차에 다이나마이트를 가득 싣고 밀고 나아갔습니다. 그들은 이 폭탄과 함께 자폭하기를 꺼려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유대인만 죽일 수 있다면 그들 자신은 죽어도 좋다고 했습니다. 그날 밤 TV보도에서 이 모슬람 교도들의 증언이 흘러나왔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가리켜 광신적이라고 비난할 지 모르나, 여러분이 여러분의 영적인 삶에서 승리하기를 원하면 그들의 광신적인 것을 여러분의 열심으로 바꾸셔야만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세상에서 공산주의가 그러한 세력을 얻게 된 비결이 무엇입니까? 공산주의가 사람들에게 축복이 되기 때문입니까? 공산주의는 사람들을 독재체제에 가둬두는 것이며, 이에 사람들은 잔인한 지배를 받지 않습니까? 그러나, 한 때는 이 공산주의가 세계의 삼분의 일을 지배했습니다. 어떻게 그들은 그러한 지배를 성취할 수 있었습니까? 그것은 공산주의에 그들의 삶을 헌신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똑같은 방법으로 주님 앞에 헌신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침에 하나님과 만나기 위해서 일어나지도 않습니다. 이것은 삶의 연약을 말해 줍니다.

우리는 이와같이 연약한 삶을 살 때 다른 사람을 주님 앞에 인도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조용한 시간을 가질 때, “하나님, 나는 하나님의 축복을 필요로 합니다라고 말합니까?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훈계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감동이 필요합니다. 오 주님, 오늘 주님 없이는 제가 성공적으로 이 하루를 살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만날 때 이와같이 말씀드리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하나님과 만나지 않는다는 것은 그 반대의 상황이 벌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도의 유명한 전도자 가운데 박싱이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인도에서 하나님께 크게 쓰임을 받은 종입니다. 그는 수백개의 교회를 세웠습니다. 제가 인도를 방문했을 때도 그는 78세의 노구(老軀))로 여전히 전도하고 있었습니다. 이 박싱은 매일 저녁 이러한 기도를 했습니다.”제가 주님을 기쁘시게 했나요, 주님이 저로 기뻐하셨나요.” 이것이 박싱에게는 아주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하루를 반성해보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초청하여 자기의 삶을 살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어떤 일을 했습니까? 제가 영원한 의미를 가진 어떤 일을 오늘 하루 동안에 행했습니까?” 우리는 종종 기도의 골방이란 말을 사용합니다. 이 골방은 개인적으로 하나님과 단 둘이서 만나는 장소를 의미합니다. 사람들이 웅성대는 장소에서는 그러한 시간을 가질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 모든 소음을 뛰어넘어야 합니다. 하나님과만 함께 교제해야만 합니다.

저는 젊었을 때 많은 사실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주님께서 골방에 들어가서 기도하라고 말씀하시면 저는 집에 있는 골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곳에 널려진 물건들을 한쪽으로 제쳐놓고서는 거기서 무릎꿇고 기도했습니다. 여러분은 당신이야말로 우둔한 젊은이군요라고 말하실지 모르나 저는 주님께서 골방에 들어가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골방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후에 저는 그것이 하나님과 조용한 시간을 가지라는 뜻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이와같은 주님과 교제하는 시간을 소홀히 하고 있다면 그것은 여러분이 주님 앞에 이렇게 말씀드리고 있는 셈입니다. “하나님, 저는 하나님과 만나기에는 너무 바쁜 사람입니다. 전화를 드릴 수 있지만 너무 바빠서 잠시 정지신호를 넣겠습니다.” 어떤 젊은이가 저에게 말하기를, “저는 하나님에게 잠시 정지신호를 해놓았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어떤 친구와 통화를 하는데 그 친구가 한 10 여분간 정지신호를 해놓는다면 여러분은 그 시간을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릴 수 있겠습니까? 저는 그런 상황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도 그것을 좋아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정지한 상태에 있는 것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처사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위대한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모든 신 위에 뛰어난 신이시며 만왕의 왕이 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그분을 모독적으로 대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오 주님, 하나님보다 더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공부할 일이 많습니다. 할 일이 이렇게 많습니다. 시간이 나면 주님을 만나보겠습니다. 학교를 졸업한 다음에, 또 제가 결혼한 다음에, 또 우리 애들이 다 성장한 다음에, 그 때 하나님 앞에 아마 시간을 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때 가면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들이 평생을 통해서 하나님을 박대하는 그런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왜 주님 앞에 이렇게 말씀드리지 않겠습니까? “오 하나님, 저는 하나님과의 교제가 없이는 오늘을 살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저는 필요합니다.” 왜 하나님 앞에 이렇게 말씀드리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주님을 위한 조용한 제단을 쌓지 않는 한 그와 같이 말씀드릴 수 없을 것입니다

모든 패배하는 그리스도인은 매일 이와같은 하나님과의 교제의 시간을 가지지 않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그들의 생활가운데 하나님의 성령님의 역사가 결여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왜 자신이 그런 상태에 처해 있는지를 모르는 것입니다. 이 제단은 아무 시간에 드려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날마다 기도하고 성경을 읽습니다. 항상 시간을 갖습니다. 일정한 양의 성경을 읽습니다. 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님에 대한 경의를 표합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말할 때 하나님께서 위에서 들으시고 잘 했다고 점수를 표해놓는 것이 아닙니다. 주일 학교에서 하듯이 딱지를 붙여놓는 것이 아닙니다. 주일 학교에 오면 선생님들이 아이들에게 암송구절을 내줍니다. 그리고 다음 주일에 그것을 외우면 별 표시를 붙이게 해 줍니다. 참 착한 아이라는 표시로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도 그와같이 대하신다고 생각하십니까? 그와같이 습관적인 삶을 산다고 해서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을 듣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여러분을 영접하시는 것이지 여러분의 장점을 보고 여러분을 영접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보혈 때문에 여러분을 영접해 주시는 것이지 다른 이유로 여러분을 영접해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이 조용한 제단을 쌓는 것은 하나님과 가까이 사귀기 위한 것입니다. 여러분의 영적인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 인도를 받기 위해서, 또한 능력을 얻기 위해서, 또한 여러분의 삶이 하나님 앞에서 의미있는 삶이 되게 하기 위해서, 또한 여러분이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조용한 시간을 가지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좋은 표시를 얻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영접을 받는 길은 예수님의 피밖에는 없습니다.

여러분이 습관적으로 그러한 시간을 가지는 것은 교회에 와서 말씀을 듣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설교자의 말씀을 듣고 돌아가서 실생활에 그 교훈을 적용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린 경우를 가리켜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내 보낸다고 묘사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귀머거리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적이 있습니다. 그들은 듣는 표시로 야릇한 소리를 냅니다. 나는 당신과 함께 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적용하기 위해서 듣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보고 계십니다. 여기에 앉아계신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을 다 감찰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영적인 생활에 있어서 그저 습관적으로 그렇게 하고 있는지를 하나님은 아십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실 때 그러한 모습을 정죄하셨습니다. 그것은 텅 빈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형식적인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의식적인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위선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항상 집회에 나왔습니다. 항상 거룩한 일을 다 행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떠나 있었습니다. 주님은 그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의식을 원하고 계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무슨 일이든지 급히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그것을 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과 급히 상대하는 것을 하나님은 원치 않으십니다.

 

제가 이 오랜 여행을 끝내고 집에 돌아가 제 아내를 만날 경우 이렇게 제 아내에게 말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보, 내가 내일부터 2부터 4까지 2시간을 당신에게 드릴께요. 좋은 생각이지요? 당신이 알다시피 나는 매일 바쁘잖아. 그래, 내가 2시간은 내 줄께.” 제 아내는 이 말에 좋아하지 않을 것입니다. 제 아내는 제가 자기를 사모하고 있었는지, 그리워하고 있었는지를 알고 싶어할 것입니다. 제 아내는 제가 항상 이것을 해라, 저것을 해라고 시키는 그런 대상이 되지 않기를 원합니다. 한국에서도 그런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종이에다 오늘 할 일을 적어 주고는 의무라고 강조하는 경우 말입니다. 제 아내는 제가 그녀와 시간을 함께 보내기를 원합니다. 내가 자기와 함께 하기를 원하는지를 알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이것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이 일에 대해 매우 민감해 계십니다. 만일 여러분이 주님과 시간을 가지고 있다면, 이 제단의 삶에 관해 조심스럽게 검토해보시기 바랍니다.

다음 이야기를 잘 들어보십시오. 그리스도인의 90%의 사람들은 하나님과 정규적으로 날마다 시간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90%의 사람들보다 나머지 10%의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더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 90%의 사람들은 그들에게 필요한 능력과 기쁨을 상실한 것입니다.

여러분의 제단을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엘리야처럼 이 제단이 어떻게 되었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다 허물어져 있는지, 다 흩어져 있는지, 다시 수축을 해야 할 필요가 있는지 등등의 문제에 대해 어떤 대책을 세워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불이 하늘로부터 내려오기를 원한다면 그에 대해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신앙생활이 어디에서부터 잘못 되었는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제단을 처음 쌓은 때로부터 생각해보셔야 합니다. 처음 그 일을 시작한 때부터 생각해보셔야 합니다. 시작을 했다가 도중에 그만두었을 수도 있습니다. 언제 그 시간을 중단했는가, 또 왜 그것이 중단되었는가,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 그것은 여러분의 영혼에 아픔을 가져왔을 것입니다. 영적으로 병든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여러분이 건강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어떤 조처를 취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이 조용한 제단을 쌓는 일을 계속하려면 그에 대해 분명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이것이 매일 최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입니다. 또한 목적에 있어서 견고하시기 바랍니다. 다시 말하면 오늘 내가 하나님과 교제를 가지지 않고서는 집 문을 나서지 않겠노라고 결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약속을 했기 때문에, 주님께서 나를 기다리고 계시기에, 정한 시간에! 주님으로 하여금 기다리지 않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영적인 친구들을 찾으십시오. 주님과 개인적인 제단을 쌓고 있는 친구들과 만나십시오. 그들과 만나기 위한 계획을 세우십시오. 매일 성경을 읽고 실천하는 법을 배우십시오. 또한 마음으로부터 기도하는 법을 배우십시오. 여러분이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들의 이름과 기도제목들을 적어놓으십시오. 또한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자가 되십시오. 친구와 함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또 함께 나누시기 바랍니다. 또한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이 조용한 시간이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나는 이와같은 삶을 또 다시 사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 나는 영적으로 병들어있다. 나는 소홀히 하고 있다. 나는 불신하고 있다. 이제 나는 극적으로 나의 삶에 변화를 가져오겠다.” 하나님과 만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날마다 말씀하시는 그 음성을 듣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길이니 그 안에서 걸어가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을 잘 이해하셨습니까? 제 이야기가 확실히 전달되었습니까? 혼동되지는 않았습니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 있는 자다!

 

(1993 6월호)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