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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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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7. 9. 15:54 횃불/1993년

부부 생활의 조화를 이루는 길

이 춘 원

우리의 신체가 중요한 자양분을 섭취하지 못하면 건강과 수명을 연장할 수 없는 것처럼 결혼 생활 내지 부부 생활 역시 이 행복해질 수 있는 원리와 그 분위기를 떠나서는 이뤄지지 않습니다. 아름다운 결혼 생활은 결혼을 함으로써 시작이 되는 것이 아니고 서로간에 깊은 이해와 조화있는 분위기 속에서 이뤄집니다. 금슬이 좋은 행복한 부부나 화락한 가정의 모습을 보면 거기에는 반드시 원만한 이해와 애정어린 조화가 있습니다.

이것이 없거나 부족할 때 결혼 생활이 불행하여지거나 가정 생활에 파탄이 오게 됩니다.

일찍이 베드로는(우리는 그를 사도요 장로로 흔히 알고 있지만 동시에 그는 한 가정을 다스리고 인도하며 또한 부인을 사랑하고 아끼는 아주 인자한 남편임을 잊을 때가 있습니다만은)

남편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벧전 3:7).

여기서 말씀하는 지식이나 알라는 것은 이론적인 성경 지식이 아니라 아내 전체를 인식하고 이해하는 것이니, 항상 아내에게 세심하게 마음을 쓰고 필요한 것을 실제적으로 보살펴주고 심리적으로나 신체적으로도 연약한 여자임을 깊이 알아 소중히 대해 주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만일 남편이 일방적으로 남자의 입장과 성격대로만 몰고 간다면 달려가는 마차의 두 바퀴 중 하나는 빠져버리고 말 것입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달리던 마차가 어떻게 되는가를····그 결과는 파멸이니 명약 관화한 사실입니다.

 

호랑이와 곰에게

결혼한 여자로서의 부인된 자매들이 기쁨이 없는 것은, 남편이 하나님의 말씀을 무기로 삼아 아내에게 순종을 강요하는데 종종 그 원인이 있습니다. 그러나 순종하라고 하기 전에 우리 남편된 형제들이 깊이 깨달아야 할 사항이 있다면 그것은 희생적인 뜨거운 사랑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께서도 먼저 전적인 사랑을 베푸시고 그 후에 교회에 대한 순종을 말씀하셨습니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5:25).

사랑과 경외심이 없는 복종은 율법적인 굴복이 됩니다. 의문(儀文)에 속한계명과 그 행동에는 새 생명의 기쁨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남편들이 아내에게 무엇을 요구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주고 내어놓으십시오. 수직 관계가 아닌 수평적인 친구의 다정한 우애를 나누십시오. 아내가 하루종일 가정 안에서, 그 좁은 닭장과 같은 곳 안에서 얼마나 많은 일에 시달렸을까를 생각해 보십시오. 별로 표시도 없는 똑같은 일들(밥하고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임신하고 해산하고 양육하고 남편과 자녀들의 뒤를 돌보고 전화 받고 시장 가고 공과금 내고 손님접대하고 가계부 쓰고 세탁하고 정리하고 만들고 내버리고 외출한 식구들을 기다리고 걱정하며) 속에서 다람쥐 체바퀴 돌리듯이 동일한 일을 하고 있는 상머슴을 생각해 보십시오.

여보, 수고했소! “ 이 한 마디면 행복해질 일을, 귀가하자마자 소, 닭보듯 아내에 대한 관심도 없이 신문이나 찾고 TV나 보고 있는 남편이라면 그 아내가 얼마나 불행해지겠습니까? 연애 시절이나 신혼생활 몇 개월은 그런대로 깨가 쏟아졌는지 모르지만, 부부 사이에 별 대화가 없고 어떤 관심과 이해와 동정도 없다면 그 생활이야말로 물 없는 사막이요 황량한 광야가 아니고 무엇이리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남편이 아내에게 계속적인 애정과 작은 것에도 깊은 이해를 가지고 부드럽게 대해주는 자세입니다. 아침 햇살에 빛나는 풀잎의 영롱한 이슬 방울처럼 아내를 청순하게 만드는 방법은, 애뜻한 정을 표현해 주고 음식에 양념을 치듯이 때때로 아내의 입장에 서서 아내를 칭찬해 주고 격려해주는 것입니다.

카텐을 새로 했거나 그림을 벽에 걸었거나 새 옷을 입었거나 했을 때 아내 쪽에서 여보, 어때요?” 하고 묻기 전에 남편 쪽에서 먼저 관심을 보이십시오. “! 아주 산뜻한데.” “아름답고 멋져!”, “당신은 미인이야!” “집안이 환해졌어!” ····· 등등 얼마든지 칭찬해 줄 것이 많습니다. 이렇게 하면 많은 돈을 못 벌어다 주는 남편일망정 아내를 기쁘게 해줄 수 있습니다. 행복이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운 곳에 있는 것입니다. 마음 속에 있고, 말 한 마디에 좌우되고, 눈빛 하나로 결정이 되는 것이 사랑이요 행복입니다.

미처 손이 가지 못해 집안 정리가 좀 안되고 애들이 늘어놓았다고 할지라도 남자가 못 본 척하고 잘한 한 쪽을 크게 보고 칭찬해 줄 수 있는 아량이 있는 큰마음의 소유자가 바로 좋은 남편입니다. 퇴근하자마자 아내를 나무라고 계속 잘못된 것만 지적한다면 아내는 위축되고 의욕을 잃고 병이 생기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음식 솜씨가 좀 못해도 오늘 된장국 맛 일품인데!. 당신 음식 솜씨가 최고야!” 한다든지 당신 그 옷, 참 어울리고 예쁜데이렇게 칭찬해 준다면 그 격려가 도리어 아내로 하여금 음식을 잘 만드는 전문 요리사로 만들 수도 있고, 가정을 정신적으로 풍부하게 만들뿐더러 경제적으로도 풍요롭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하루 종일을 시장 봐다가 정성껏 찌개를 만들어 놓았는데 겨우 한다는 말씀이(소리가) “맛이 왜 이래. 음식 솜씨는 용국이 엄마가 최고더라하는 식으로 친구 마누라와 비교만 한다면 결국 아내는 열등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비굴해지고 침울한 환자처럼 될 것입니다.

아내의 심정을 잘 이해해 주는 남편이 훌륭한 남자요 좋은 부군입니다. 조그만 일에도 졸장부처럼 화내고 인색하고 완고하게 아내를 대하는 남편이 아니라 아내의 연약함을 이해하여 도와주고 그 감정적인 요구까지도 자세히 인식하고 있는 남편이 너그러운 인격의 소유자입니다. 몰이해, 비관용, 무지, 폭력, 큰 소리, 모진 성격, 일방 통행, 약자 앞에서의 우월감, 여자를 성적으로만 대하는 동물성, 무조건 여자에게서 만이 무엇인가를 섬김 받으려는 이기심 등등은 아내를 불행하게 하고 결혼 생활을 병들게 하며 가정을 파괴합니다.

사나운 호랑이 밑에서 양이나 토끼가 살 수가 없습니다. 미련한 곰이 허공에 달아놓은 돌을 제 머리로 디려받다가 죽는 격입니다

이해와 관용과 칭찬과 격려하기를 아끼지 않는 남편은 연약하고 부족한 아내라고 할지라도 얼마든지 좋은 아내, 훌륭한 아내로 만들 수 있습니다.

  

염소와 딱다구리에게

여자의 아름다움은 육체적인 형상 이전에 그 생명의 밝음과 그 인격의 부드러움과 그 입술의 합당한 덕담에 있습니다. 여자의 주름잡힌 이마가 남자의 거울이 아니라 그녀의 아름다운 심령이 남자의 노래의 제목입니다. 참된 아름다움이란 늙고 병들어 썩어질 육체 덩어리가 아니라, 생명 의 환희와 인격의 겸손함이 이목구비와 몸 전체와 삶 전체를 통하여 나타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비로소 여자가 여자다울 수 있는 소이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아내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 이는 혹 도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위를 봄이라”(벧전 3:1,2).

아내가 남편과 조화를 이루며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첫 비결은 주님이 주신 남편에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순종은 아름답고 순복은 진실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불신하는 남편이라도 말없이 착한 마음으로 아름답게 실천하는 아내의 어진 행동을 보고 하나님을 믿게 될 것입니다. 남편들은, 아내가 하나님을 어떻게 섬기기에, 그녀의 남편 섬기는 것이 그렇게 훌륭한가를 관심있게 봅니다.

그러나 만일 아내가 아내답지 않고 성경에서 가르치는 여성답지 않을 때 남편의 불만은 쌓이게 됩니다. 그것이 남자가 세상 밖에서 당하는 어려움과 중복될 때 가정 안에서 그 폭탄이 심히 크게 터질 우려가 있습니다.

남편에게 바가지를 긁을수록 여자의 영혼은 상하게 되고 남자의 수명은 단축됩니다. 그럴수록 남편은 가정이 싫어지게 되고 다른 여자들에게 눈을 돌리게 되고 살아가겠다는 의욕을 잃게 됩니다. 내 남편과 다른 집의 남편을 비교하는 것은 금물입니다. 누구는 얼마나 월급을 많이 타온다느니, 값비싼 양복장과 멋진 옷을 남편이 선물을 했다느니, 당신은 언제나 말단 공무원 신세를 면하느냐느니···· 이런 식으로 자기 남편과 남을 비교하고 들볶는다면 남자들의 자존심은 걸레같이 되고 맙니다.

비교하는 잔소리와 계속 헐뜯는 소리와 쉬지 않는 입술은 남편의 감정을 극도로 상하게 하고 의기소침하게 만들고 세상에서 패배하게 만듭니다. 심지어는 남들 앞에서 남편의 흉을 보고 떠들어대면서 기뻐하는 어리석은 여자들도 있습니다. 누어서 침을 뱉는 격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딱다구리처럼 계속 나무를 찍어대면 안될 것이니, 이는 그 나무가 병들거나 죽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기는 몇 마리의 벌레를 잡을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남편과의 원만한 이해와 동정 가운데서 애정 어린 즐거운 부부 생활을 이루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혹시 남편의 귀가가 늦었어도, 돈을 조금 벌어와도, 고등 교육을 못 받았어도, 키가 작아도, 남자답지 못한 일을 해도, 주변머리가 없어도, 성격이 거칠어도, 술담배를 못 끊었어도 아내된 당신은 그 남편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것이 현명한 태도입니다. 이해와 관용은 부부 생활을 다시 하나되게 하는 비결입니다. 칭찬과 격려는 힘을 잃고 집에 돌아온 남편에게 큰 활력소가 되고 내일 아침 세상에 나가 다시 힘있게 뛸 수 있게 하는 영양소입니다. 남편으로 하여금 가정보금자리에서 푹 쉬게 하고 아내와 대화를 즐겨하게 만들고 건강하고 행복스런 부부 생활을 영위하게 하는 길은, 지금까지 부부관계를 병들게 했던 잔소리와 비평과 간섭을 버리는 것입니다.

아내들이여! 정욕과 우상과 월권과 횡포로 남편과 나라를 망하게 한 악처 이세벨을 기억하십시오. 남편에게 일생동안 악평을 퍼붓고 심지어는 설거지 통의 물을 퍼붓기까지 한 문호 톨스토이와 철인 소크라테스의 비참한 최후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이 세상에서 위인이 된 것이 악처들의 공로 때문인지는 모르나 그들의 슬프고 암담한 객사와 사형은 그 미련한 여인들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리고 부부지간의 조화 있는 성(sex) 생활의 이해와 협조, 만족과 선용, 몸과 마음을 주고 받는 일이 어떻게 교제되느냐에 따라서 원만한 부부 생활의 행복이 좌우될 수도 있다는 현실적인 사실을 부부 쌍방이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 생활에 대하여 그리스도인 부부들이 바리새인과 같은 의식적인 죄를 짓지 말고 참된 지식을 갖고 솔직한 자세로 나오는 것이 필요합니다.

성적인 사랑은 성경적으로 볼 때 합당한 것이고 거룩한 것입니다. 부부지간에 몸과 마음을 서로 주고 받는 것이 동침이고 그 열매가 기쁨이요 행복이요 서로 보충하고 의지하며 하나되는 것이요 그 결과로 자식들이 선물로 주어지고 가정의 기반이 잡혀갑니다.

부부지간은 옷을 벗을 때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초월하는 황홀한 지식의 경험적인 일치입니다. 사랑이 손짓하면서 부를 때 그대는 애기처럼 응답하십시오. 안기십시오.

구원을 받은 어떤 부인 자매가 불신 남편과 무려 십년 이상을 한 집 안에서 살면서도 분방하고 있다는 고백을 들었습니다.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잠시 분방할 수는 있지만, 그 자매의 이런 자세는 성도의 가질 믿음의 본이 결코 아니며 도리어 그런 고자세는 주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아주 고지식하고 완고하다 못해 자기 스스로 죄악을 남편에게 끼치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매의 믿음과 심령을 거룩히 유지하는 것이 아니며, 그런 교만한 자세로서는 결코 남편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할 수가 없습니다. 외식을 버려야 합니다.

사랑과 진리와 거룩은 구호가 아닙니다. 그것은 생명 안에서 실천하고 인생에 적용해야 될 성질의 것입니다. 진리가 기본적인 원칙과 관계가 있다면 지혜는 실천적인 생활과 관계가 있습니다. 진리 앞에서는 외투가 불필요합니다. 결혼을 하고 부부지간이 된다고 해서 행복해지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실제적인 삶을 통하여 서로의 연약하고 부족한 것을 보충하고, 서로의 다른 성격과 생활 태도와 욕망을 깊이 이해하고 관용하며, 부부가 함께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의 화음(Harmony)이 조화되도록 늘 노력하고 또 그 부부라는 악기가 녹이 쓸거나 줄이 축 늘어지지 않도록 계속 조율하는 것이 바로 부부 생활입니다. 부부가 진심으로 서로를 한 몸 한 마음으로 뜨겁게 사랑하되 결코 사랑을 강요하거나 속박해서는 안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자원하여 종노릇하되 수직적인 명령을 내리는 군주가 되지는 마십시오. 사랑은 율법 이전의 것이니까요.

부부가 한 집 안, 한 이불 속에서 함께 살되 때로는 기도와 사색과 영혼의 쉼을 위하여 주님 안에 홀로 거하도록 자유를 주십시오. 인격과 개성, 여가와 취미, 그리고 영혼의 자유와 소망은 존중히 여겨야만 하니까요. 특히 신앙의 호흡은 절대로 간섭하거나 침해되어서는 안되는 영원한 생명의 자유스런 맥박이니까요. 사람의 심장이 멈추듯이 사랑하는 이의 영혼의 고동소리가 비참하게 끝나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결혼한 부부들이여!

남성과 여성으로서의 원초적인 사랑에만 머무르지 말고 남편과 아내로서의 인격적인 사랑으로 나아가십시오. 또한 이 짙은 혈육에 속한 가족적인 애정으로만 자족하지 말고 그 사랑과 이해와 관용의 폭이 이웃에까지 미칠 수 있도록 도덕적인 인류애를 실천하십시오. 또 그리고 이 사랑이 윤리 도덕에서 끝나지 말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조건없는 희생적인 온전한 사랑에 근거하여 실천됨으로써 부부생활 내지 가정 생활이 윤택한 조화를 누리고 이 사회와 온 세계가 풍요로움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1993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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