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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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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7. 8. 10:33 횃불/1993년

인간의 상태에 대하여(1)

 

1. 육체(flesh)와 몸(body)의 차이점

육체와 이란 용어의 차이점은 무엇이며, ‘몸의 구속은 무슨 뜻인지 설명해 주십시오.”

 

만일 질문자가, 예컨대 사용된 문맥에 따른 어휘의 다양한 의미를 소개해주는 바인(Vine)의 주해사전과 같은 훌륭한 헬라어 신약성경 사전을 참조해 본다면, 짧은 지면을 통해 해답을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아울러 영(Young)이나 위그램(Wigram)의 성구사전을 이용하여 각 단어의 모든 용례를 살펴보는 것이 아마도 다른 어떤 정형화된 답변에서 얻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어떤 대목에 사용되어 있듯이, 이 두 단어 사이에는 거의, 혹은 아무런 차이도 없습니다. 반면에 어떤 대목에는 그 둘 사이에 분명한 구별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고린도후서 4:10에는 ····예수의 생명도 우리 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라고 표현되어 있는 반면 다음 절의 병행구문에는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두 단어는 사실동의어입니다. 골로새서 2:23에도 동일한 예가 나오는데 몸을 괴롭게 하는 것육체 좇는 것이 그 예입니다.

문자 그대로의 의미를 취할 경우 은 조직된 전체로서 본, 인간의 물리적인, 혹은 물질적인 부분이며(살전 5:23 참조), “은 이 몸을 주로 구성하는 물질입니다( 24:39 참조). 그러나 각 단어는 전체 인간을 표현하는 말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 11:36, “육체” - 3:6).

때때로 이 두 단어 사이에 중요한 차이가 생기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상태로든 성향으로든 악()의 개념이 암시되어 있을 때입니다.

예를 들어 육체안에 라는 표현은 로마서 7:5 8:8,9에서처럼 구원받지 않은 자의 도덕적인 상태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데 비해 안에라는 표현은 결코 그런 의미로 사용되어 있지 않습니다. 후자의 표현은 고린도전서 5:3에서처럼 인간의 육체적인 실재를 가리키거나 고린도후서 5:10에서처럼 인간의 현재의 지상적인 삶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후자의 경우에만 국한된 사실이 아닌데, 골로새서 2:1과 빌립보서 1:24에서처럼 육체 안에라는 표현 역시 그러한 의미를 지닐 수 있는 것입니다

아울러 육체라는 표현에는 때때로 악한 성향의 의미가 내포될 수 있는데 특히 육체를 좇아등과 같은 문구에서 그러합니다. 반면에 죄의 몸”( 6:6), “이 사망의 몸”( 7:24), “몸의 행실”( 8:13), “육체의 죄의 몸”( 2:11, 우리말 성경에는 육적 몸으로 되어 있음-역주) 등등 그 의미가 분명한 몇몇 사례들을 제외하고는 그런 의미로 사용되어 있지 않습니다

몸은 종종 하나님을 위해서 사용될 수 있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으며( 12:1) 몸의 지체 역시 그러합니다( 6:12,13). 그러나 육체는 결코 그런 의미로 사용된 적이 없으며( 7:25 참조), 골로새서 3:5에 언급된 것은 그 지체로 여겨집니다. 게다가 성도의 몸은 성령의 전과 그리스도의 지체로 불리워지는 반면(고전 6:15,19), 성도의 육체는 성령을 거스리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5:17). 끝으로 성도의 몸은 값으로 산바 되었으며 “(고전 6:20), 우리 주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 그 충만한 구속을 기다립니다”( 8:23), 그 때 그분은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실 것이며”( 3:21), 그분께서 그렇게 하실 때 우리(우리의 몸뿐만이 아니라)가 그와 같게 될 것입니다(요일 3:2).

 

2. 모세의 몸에 대하여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몸(시체)에 대하여 사단과 더불어 변론했다는 기록은 어떤 의미로 이해해야 하는지요?”

 

우리는 신명기 34장에서 모세의 죽음에 대한 설명을 볼 수 있는데 거기에는 그의 공적인 장례에 대한 기록은 없고 대신 그가(, 여호와께서) 그를 벧브올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골짜기에 장사하였고 오늘까지 그 묘를 아는 자 없느니라”(우리말 성경에는 모세가····죽어···· 장사되었고라고 되어 있음-역주)라고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만일 오늘날 모세의 묘를 탐사할 수 있다면 그것은 빈 채로 발견되리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혹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의 첫 열매”(고전 15)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로 불리우는데 어떻게 모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할 수 있었겠는가? 라고 의문을 제기할 것입니다. 이것은 중요한 문제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부활하실 때까지는 어떤 사람도 진정한 부활(다시는 죽음을 맛보지 않는)의 기초 위에서 부활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만일 모세가 부활했다면, 그것은, 사렙다 과부의 아들과 수넴 여인의 아들, 나사로, 나인 성의 과부의 아들 등, 우리 주님의 부활에 앞서 부활한 신구약성경의 여러 경우들과 같이 다시 죽음을 맛보아야 하는 불완전한 부활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모든 사람들은 결국 다시 죽음을 맛보아야 했습니다.

유다서에 기록된 사건은 지상적인 수준에서의 모세의 부활을 가리킨다고 생각됩니다. 만일 그가 증인들 중 하나라면 그는 다시 죽을 것입니다. 진정한 부활 후에는 아무도 육체적으로 죽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거룩한 산 위에 펼쳐진 장면에 추가적인 완전함을 더해 줍니다. 주님께서 가운데 계셨고, 그 옆에 결코 죽음을 통과하지 않을 사람들을 대표하는 엘리야와 부활한 자 모세가 있었습니다.

사단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모세의 불완전한 부활에 대해서는 합법적으로 이의를 제기할 수 있었으나, 모세가 일시적으로 죽음의 상태에서 벗어난데 대해서는 아무런 합법 적인 이의도 제기할 수 없었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입니다. 만일 모세가 증인들 중 하나라면 그의 죽음은 진정한 죽음일 것입니다.

 

3. 인간의 구성요소에 대하여

인간은 속성상 이중적입니까, 아니면 삼중적입니까? 만일 후자라면 영과 혼은 어떻게 구분됩니까?”

 

데살로니가전서 5:23이 증거하듯이 확실히 인간은 삼중적인 존재입니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전되기를 윈하노라.”

() 불링거(Bullinger) 박사는 인간이 이중적인 존재 -영과, 혼을 구성하는 몸의 결합체-임을 입증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그것은 지지할만한 견해가 못됩니다.

왜냐하면, 만일 그렇다면 위의 표현은 영과 몸, 즉 혼의 순서가 될 것이며, 그리고 죽음시에 인간의 실체(personality)는 해체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후자는 이른바 영혼의 수면이란 교리보다 훨씬 해로운 교리입니다. 영과 혼은 인간의 정신적인 측면을 가리키는 것으로 때로는 영으로, 때로는 혼으로 불리웁니다. 그 둘은 구분되는 것이긴 하나 혼과 영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4:12)라는 식의 수사법적인 의미로만 분리될 수 있을 뿐 결코 서로 분리된 것으로 간주되지는 않습니다.

영은 고차원적인 부분으로 그것으로 인간은 이해하며(고전 2:11, 우리말 성경에는 알다로 되어 있음), 보이지 않는 것과 접촉합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4:24). 혼은 인간의 정신적의 측면의 다른 부분으로 그것(인간의 정신적인 측면)을 몸과 연결시킵니다.

혼은 원하고 사랑하고 슬퍼하는 등등의 기능을 합니다. “내 혼(우리말 성경에는 영혼으로 되어 있음-역주)이 내 속에서 낙망이 되므로( 42:6; 삼상 18:1, 21:4, 삼하 5:8).

인간의 실체(personaity)는 때때로 혼과 연결되기도 하며(예를 들어,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혼이라”(우리말 성경에는 여덟 명으로 되어 있음-역주) - 벧전 3:20), 몸과 연결되기도 합니다(예를 들어, “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스데반의 몸을) 장사하고” - 8:2). 여기서 스데반은 보다 차원 높은 의미에서 무덤에 있지 않고 방금 그가 자신의 영혼을 의탁한 그분과 함께 있었습니다.

 

4. 중간상태에 대하여

만일 우리가 죽는 그 순간 우리 주님의 품으로 들어간다면 실제 몸으로(bodily) 들어가는 것일까요? 만일 그렇다면 어떤 종류의 몸으로 들어갈까요? 만일 이러한 즉각적인 들어감이 사실이라면 부활이란 과정이 불필요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이것을 데살로니가전서 4:15~17과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을까요?”

 

확실히 성경은 죽는 그 순간 신자가 그리스도의 임재 안으로 실제 몸으로들어간다고 가르치지 않으며, 사도바울은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라고 매우 분명하게 말합니다( 1:13)

그러나 그는 그러나 내가 육신에 거하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고 덧붙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은 육신에 거하는 것이 아니며 따라서 실제 몸으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몸은 무덤 속에 놓인 채 부활을 기다리며 잠자는 것입니다.

이어서 고린도후서 5:1~8에서 사도는 다시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묘사하고 있는데, 그는 그러한 욕망이 큰 나머지 그러한 불완전한 상태에서 조차도 그리스도와 함께 있기 위해 심지어 기꺼이 육체와 분리된 상태로 들어가기를 원할 정도였습니다.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8).

데살로니가전서 4:15~17은 또 다른 문제, 즉 주님의 강림하심에 대해 묘사하고 있는데, 잠자는 성도들(, 그 몸은 잠자고 그 영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와 함께 데리고 오실)의 부활과 살아있는 성도들의 변화가 그 내용입니다.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은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하기 위해 함께 끌어 올려질 것입니다. 이것은 완성된 상태일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2:2~4은 인간의 영이 의식적으로, 그리고 지적으로 몸과 따로 존재할 수 있다는 분명한 증거를 보여줍니다. 바울은 위로 끌어 올려졌을 때 자신이 셋째 하늘에, 그리고 낙원에 있다는 것을 온전히 알았으며, 말로 형언할 수 없는(인간이 표현하도록 허락되지 않은) 소리를 들었으나, 그럼에도 두번씩이나 자신이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말할 수 없노라고 증거하고 있는데, 이는 그가 영이 몸을 떠나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믿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1993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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