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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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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7. 9. 15:54 횃불/1993년

사단의 왕국 주재 천국 선교사

김리라(서울북부교회)

새학년이 시작된지 며칠이 지났음에도 민철이는 여전히 얼굴이 어둡다.

오늘은 책상 앞에 앉더니 기어이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는 모습을 보이고 만다. 며칠 동안 새로워진 환경에 선뜻 적응을 하지 못하여 볼멘 소리로 내뱉곤 하던 아이의 말을 기억하고 있는 터라 이유를 익히 알고 있음에도 나는 짐짓 모르는 체 말을 건냈다

이게 웬 일이야. 사나이 대장부가 눈물을 보이다니···· 무슨 일이 있었니?”

얼굴이 벌개진 아이는 한숨을 뱉어내듯, “4학년 때가 그리워 조그맣게 말했다.

나는 푸훗 웃음이 터지려는 걸 가까스로 참았다. 이 아이는 제 감정을 이따금 이런 식의 간지러운 표현을 사용하여 거침없이 말하므로 익숙하지 못한 사람에게 참기 어려운 웃음을 유발시키는 다정다감한 기질을 소유하고 있다. 그러나 새 학년이 되어 달라진 선생님, 달라진 급우들, 달라진 환경이 힘겨워 슬픔과 고민에 쌓여 울고 있는 아이 앞에서 그 표현이 아무리 간지럽기로 어미가 웃을 수야 없는 노릇이었다. 지금 이 아이가 당면한 현실은 얼마나 곤혹스러운가 말이다.

나는 이 아이를 어떻게 달랠까 난감하였다.

“4학년 때 친하던 애들이 한 두명이라도 있다면 좋겠는데·····

아이는 손바닥과 손등으로 연신 눈물을 닦아내며 중얼거렸다.

지금은 아이를 위로할 생각에 난감해 있지만 나 역시 옛날에 이런 경험이 있었다.

3학년 때까지 분반에 의한 반편성이 없이 같은 아이들끼리 배우다가 4학년 때부터 여아반, 남아반이 나뉘어야 했으므로 3년 동안 정들었던 급우들이 그야말로 뿔뿔이 갈라지고 말았던 4학년의 첫날, 나는 책상에 머리를 쳐박고 아마 한나절도 더 헉헉대며 울었던 듯 싶다. 그때의 막막함, 황당함, 외로움, 슬픔이라니····

나의 옛날을 생각하자 민철이의 곤혹감이 그대로 내 마음에 전해져서 나는 가슴이 저려왔다.

왜 인간은 어릴 때부터 이렇게도 많은 크고 작은 이별과 그리움과 안타까움에 시달리며 살아야 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막내인 민철이를 사랑하는 만큼 나는 새삼스레 인생의 쓰라림이 아프게 저며옴을 느꼈다.

나의 못된 기질인 염세와 허무에 다시금 빠져들 뻔하다가 나는 문득 조카 주은이가 생각났다. 1년여 전 엄마 품에 안겨 공항의 개찰구로 들어가면서 왁 터뜨리던 그 아이의 고함같던 울음을.

그 울음은 태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까지 1시간여를 계속했다던가. 그러고도 낯선 환경 때문인지 수개월여를 변비로 고생한다 했었다 생후 불과 2년 밖에 안된 어린 아이가 무엇을 안다고.

귀에 쟁쟁한 주은이의 울음소리를 생각하다가, 낯선 땅에 갑자기 살게된 갖가지 크고 작은 갈등들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린 아이였기에 아예 신진대사의 불통으로 표출해냈던 것이리라고, 나는 그 아이의 변비의 원인을 문득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전에는 엄마의 잘못된 육아의 원인일거라고들 식구들끼리 이야기했었는데.

나는 민철이를 위로하기 위해 주은이 이야기를 들려 주기로 했다. 사촌들과 어울려 그렇게도 밝고 귀엽게 놀던 주은이가 갑자기 만나게 된 낯선 환경과 그 속에서 견디어야 했을 외로움, 피곤함, 당혹감, 그리움, 막막함등을····

이야기를 하면서 나는 이전에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던 해외 전도자들의 정신적 어려움을 일면이나마, 또 조금이나마 좀더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가 있을 것 같았다.

민철이도 주은이의 처지를 이해하는 듯 했다.

네가 생각하고 있는 어려움쯤이야 정말 새발의 피지?”

내가 농담 섞어 질문하자 민철이는 밝아진 얼굴로 끄덕였다. 그리고 그러니까 정말 주은이를 위해 기도해야 되겠지?” 했더니 다시 심각해진 얼굴로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런 민철이의 눈물 뒤에 밝아진 눈동자를 들여다보다가 나는, 나와 같이 냉랭한 마음의 소유자가 민철이와의 대화를 통해서나마 잔도자 가족들의 외로움을 이만큼이라도 짐작할 수 있다면 우리의 간고와 질고를 아시는 주님께서는 얼마나 더 그들의 사정을 하감하고 계실 것인가 생각했다. 그러다가 가슴이 철렁했다. 아니, 주님께서 아시는 전도자들의 고통은 나처럼 안일한 삶 속에서 막내 아들의 아픔을 통해서나 겨우 미루어 짐작하는 이런 류의 것일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분은 이천년 전 본향인 천국을 떠나 이 세상에 오시지 않았던가. 주님의 본래의 집, 그 천국이 대체 어떤 곳인가, 어둠이 없는 기쁨의 나라, 밝음의 나라···· 아니 상상도 안되는 그 나라에 대한 어줍잖은 표현일랑 차라리 집어치우고, 한마디로 죄와 관계 없는 곳이 바로 천국인 것이다. 그곳에서 사단의 왕국이랄 수 있는 로마가 지배하고 있는 비좁고 더러운 나사렛, 그 죄악의 거리에 오셔서 독사의 새끼들, 회칠한 무덤들과 같은 죄인들 속에서 삼십년을 부대끼며 사시다가 죄인의 모습으로 죽임을 당하신 것이었다

전도자의 고통이 문제가 아니었다. 민철이의 아픔쯤이야 더욱 문제일수가 없었다. 주님께 생각이 미치자 나는 아예 허허 실소가 나오고 말았는데 그 끝에 눈물이 왈칵 솟구쳤다.

간고와 질고를 모두 겪으셨다더니 이미 주님은 사단의 왕국 주재 하늘나라 선교사로서의 삶을, 그나마 그 끝에 끝도 모를 고통의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삶을 삼십년 이상 사셨던 것이다.

나는 로마제국 지배하의 나사렛 땅에서 주께서 얼마나 외롭고 고단하고 막막하고 곤혹스러우셨을까를 생각하며 참을 수 없는 울음이 치밀어 민철이에게 눈치 채이지 않고자 애를 먹었다.

격정이 지난 뒤 민철이에게 사단의 왕국 주재 천국 전도자이신 주님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음은 물론이지만, 민철이로 인해 고작 인생의 쓰라림이나 반추할 뻔했던 시간은 주은이를 미쳐 주님께 생각이 머무름으로써 급기야 가슴 벅찬 찬양의 밤이 되고 말았다.

, 우리를 위해 모든 간고와 질고를 겪으신 예수님, 당신을 진실로 찬양합니다. 아멘.

 

(1993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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