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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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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7. 8. 10:32 횃불/1993년

그리스도인의 육신

-이 원 재

1. 그리스도인의 육신과 속사람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7:18).

성경에서 육신은 육체라는 뜻이 있지만 로마서 7장에서 말하는 육신의 뜻은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타락한 본 성품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죄사함을 받았지만 육신에는 타락한 본 성품이 있습니다. 구원받았지만 죄를 범하고 불순종하는 것은 육신이 타락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5:19~21).

속사람은 거듭난 새로운 성품을 말합니다. 속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하지만 육신은 세상 것들을 좋아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속사람과 육신의 싸움으로 갈등하게 점으로 사도 바울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라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고 탄식하였습니다.

왜 구원받았는데 죄를 범하게 되는가? 처음 기쁨은 왜 사라졌는가? 세상 것들을 사랑하고 자꾸 넘어질까? 이러한 문제들은 육신 때문에 오는 것들입니다. 육신의 소욕대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을 육신에 속한 자, 속사람이 성령님의 지배를 받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을 신령한 자라 합니다.

 

2. 육신의 정체

1)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 아노니”( 7:18).

그리스도인의 본 성품을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육신에는 선한 것이 없으므로 육신으로 선을 행하거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육신의 힘으로 선을 행하려고 하다가 실망하게 됩니다. 독아지에 들어있는 물이 위에서 보기에 깨끗한 것 같지만 독아지를 흔들면 밑바닥에 깔려있던 더러운 찌꺼기들이 독의 물을 더럽게 합니다. 육신 안에 들어있는 추한 성품이 드러나면 주님의 보혈을 의지하지 아니하고는 주님 앞에 설 수 없는 자인 것을 깨닫게 됩니다.

 

2) 육신은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능력이 없노라”( 7:18).

선을 행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선을 행할 능력이 육신에는 없습니다. 오른뺨을 치면 왼뺨을 돌려댈 수 있습니까? 겉옷을 달라하면 속옷까지 벗어줄 수 있습니까? 오리를 가기를 원할 때 십리를 가줄 수 있습니까? 육신은 선을 행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3)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도다”( 7:19).

그리스도인들이 선을 행할 줄 알았다가 실망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처음 구원받았을 때 형제 자매들이 천사같이 보였는데 형제 자매들의 실수와 흠이 보이면 구원받은 자가 저럴 수 있을까? 하며 형제 자매들의 실수를 용납하지 못하고 실망하며 실족까지 합니다.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자신의 연약함과 실수가 들어남에 따라서 자신을 용납하며 성도들의 약점을 용납하게 됩니다.

 

4)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8:7).

육신에 들어있는 것이 악하므로 그 생각도 악합니다. 하나님의 뜻과 반대가 되는 자기 생각에 가득차 있습니다. 베드로는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실 것을 말씀하셨을 때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 하리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자신의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 돌아가시는 하나님의 뜻을 인간적인 자기 생각으로 말렸습니다.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라고 꾸짖으셨습니다. 베드로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생각이었습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의 뜻과 다르므로 우리 자신의 생각대로 살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려 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자기를 따르려면 자신을 부인하고 따르라 말씀하셨습니다.

 

5)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8:8).

육신은 돼지와 같습니다. 돼지는 본 성품이 더럽고 지저분한 것들을 좋아합니다. 돼지 주인이 돼지를 목욕시켜 깨끗한 곳에 두어도 며칠 못가서 더러워집니다. 또 다시 목욕시켜 깨끗한 곳에 두어도 다시 더러워 집니다. 돼지는 왜 이럴까? 돼지는 왜 더러워질까? 돼지는 왜 지저분한 것을 좋아할까? 돼지 주인이 더러워지는 돼지 때문에 실망하거나 고민한다면 돼지의 성품을 모르는 자입니다. 실망할 수 밖에 없는 육신 때문에 실망하며 주저앉아 있다면 육신의 본 성품을 모르는 자입니다. 돼지는 돼지입니다. 양이 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본 육신의 정체를 알고 인정하고 승리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3. 육신으로 오는 손해

1) 육신으로 죄를 범한다”( 5:19~21).

육신의 소욕을 따르므로 죄를 법합니다. 죄를 지으므로 자기 정죄에 빠져나는 왜 이럴까? 구원받은 것이 아닐까?”라며 구원받은 것까지 의심하게 됩니다. 육신의 소욕으로 죄를 범했을 때 즉시 죄를 자백하고(요일 1:9) 주님의 십자가의 피를 의지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단의 송사와 자기 정죄에서 해방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의 소욕을 따르지 아니하고 육신의 소욕을 따르므로 죄를 범하게 됩니다. 말씀과 기도로 주님과 교제 가운데 성령님의 소욕을 따라야 합니다.

 

2) 성령님을 근심시키거나 소멸시킨다( 4:25~30).

육신의 소욕을 따르므로 성령님을 근심시켜 드리므로 내 안에 평안함이 없어지고 대신 세상의 염려와 근심이 들어와 마음이 강퍅하게 됩니다. 말씀을 보아도 깨달음이 없고 기도가 막히며 세상 것들을 좋아하게 됩니다.

 

3) 육신의 게으름과 나래

육신은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르고 좀더 눕자며 잠자기를 좋아합니다. 육신은 더 편하고 싶고 더 자고 싶고 더 맛있는 것을 먹고 싶고 더 좋은 환경에서 살고 싶습니다. 육신의 욕구는 끝이 없습니다. 밑터진 독처럼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습니다.

 

4. 하나님께서 왜 육신의 성품을 그대로 두셨는가?

그리스도인이 죄를 범하지도 않고 넘어지지 않게 완전하게 구원하시지 아니하셨는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가나안 땅에 살고 있는 열국을 다 좇아내지 아니하시고 일부러 몇 나라를 남겨 두셨습니다( 3:1~6). “이는 이스라엘이 그 열조의 지킨 것 같이 나 여호와의 도를 지켜 행하나 아니하나 그들로 시험하려 함이라 하시니라”( 2:22). 이스라엘은 남겨둔 가나안 족속들로 인하여 그들의 죄에 빠질 것인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것인가 선택하여야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이 이 땅에서 유혹도 시험거리도 대적도 없이 완전한 상태라면 좋겠습니까? 이 땅에서 완전한 상태로 구원을 받았다면 주님을 섬김도 경외함도 상급도 없습니다. 이 세상은 많은 시험과 고난이 있는 장애물 경주장과 같습니다. 육신과 사단과 이 세상이 그리스도인들의 대적들입니다. 육신의 연약함과 싸워서 승리하고 사단의 대적에서 승리하며 세상의 유혹에서 승리할 때 영광과 상급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육신의 연약함을 그대로 두시고 어려운 세상에 두신 것은 이러한 큰 뜻이 있는 것입니다. 육신이 있는 동안에 주님을 섬기고 상급을 벌 수 있는 기회입니다.

 

5. 육신을 이기는 삶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빗진 자로되 육신에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살리니”( 8:12,13)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는다는 뜻은 육체의 죽음이 아니라 영적으로 주님과 상관없는 삶을 말합니다.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라는 의미는 성령으로서 몸의 행실을 극복하여 이기면 주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산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능력은 자신의 힘에 있지 않고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님이십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 주님의 명령입니다.

 

1) 성령충만함을 받으라

성령충만함을 받기 위해서 방언이나 환상이나 신비적인 체험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은 인격이십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이 매일매일 말씀과 기도로 주님과 교제할 때 성령충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성령님의 충만이 한번 충만했다고 계속 충만하는 것은 아닙니다. 매일매일 주님과 교제하는 삶을 살며 성령님을 근심시켰을 때 즉시 자백하여 성령충만을 회복 받아야 합니다. 성령충만은 예수 그리스도로 내 마음이 충만한 것이며 성령님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2) 의의 병기로 드리라

또한 너의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6:13).

그리스도인의 몸을 주님께 드림으로 복음전파, 봉사, 기도, 성도의 교제, 모이기를 힘쓰는 일에 사용되어져야 합니다. 몸이 게으름 가운데 있을 때 육신의 소욕을 따르게 되어 육신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3) 성령의 소욕을 따르라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5:16,17).

그리스도인은 매일매일 순간순간 성령의 소욕을 따르느냐 육신의 소욕을 따르느냐 선택하여야 합니다. 아침에 육신은 더 자고 싶고 신문이나 TV를 보고 싶어합니다. 성령의 소욕은 말씀보고 기도하고 싶어합니다. 어느 쪽을 따르느냐는 자유 의지를 가지고 있는 내 자신이 선택하여야 합니다. 승리의 비결은 말씀과 기도로 주님과 교제함으로 성령충만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한번 충만했다고 계속 충만해있는 것이 아니며 오늘 능력있는 삶을 살았다고 내일 보장이 없습니다. 무슨 말씀을 깨달았다고 신령한 경지에 이른 것이 아닙니다. 순간 순간인격적인 주님과 교제하며 주님과 동행하는 생활입니다.

 

(1993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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