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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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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7. 15. 16:41 횃불/1993년

장애물로 만들어진 거울

이 춘 원

주님의 은혜의 말씀을 항상 사랑하고 순종하므로 저희에게 큰 기쁨과 평안함이 있습니다. 그 누구도 아무것도 주님 안에 있는 저희를 넘어뜨릴 수 없습니다. 비록 눈앞에 여우들이 올무와 함정을 파놓고 요술을 부리고 또 사자들이 숲 속에 포복하고 있어도 전혀 두려워 아니함은 저희 집이 사반처럼 바위 사이에 있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주님의 의로우신 말씀을 항상 어디서나 온종일 묵상하고 하루 일곱번씩 주를 찬양하고 아침 점심 저녁으로 세번씩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를 드립니다. 때때로 이 세상 비바람이 휘몰아치고 우박이 쏟아지고 번개가 쳐도 저희 집이 무너지지 아니함은 그 기초를 반석에 놓았기 때문입니다. 저희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어 있고 저희가 받은 구원은 주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날마다 의롭게 빛나고 있습니다. 저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심을 받고 생명의 성령님이 심장을 뛰게 하시고 지시하신 식양대로 성막을 짓고 주님의 가르치신 온갖 교훈들을 멸시치 않고 저희의 삶 속에 실천합니다. 위로 여호와 하나님을 아버지로 경외하고 인도자들의 지팡이를 따라 격려하며 옆에 있는 모든 성도와 모든 사람들을 주님의 생명으로 여겨 사랑하고 섬깁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저희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날마다 은혜의 잔을 넘치게 하시고 시간마다 영적인 깨달음을 주시고 성령님으로 입을 열어 그리스도의 덕()을 선전케 하십니다. 저희는 성전 안에서 성전을 사랑하고 끝없이 사모하여 병이 들었고 협착하고 외진오솔길에서 의인들을 만나 구원의 기쁨을 노래 합니다. 저희는 저희에게 닥쳐왔던 태산 같은 장애물을 믿음의 인내와 순종으로 인하여 사라지게 하고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안위하심으로 그 올무에서 벗어나게 하신 주님의 은혜를 찬양합니다. 깊은 대해와 같은 죽음 건너편에 찬란한 본향 집이 꿈처럼 펼쳐지고 영원한 생명의 나래 소리가 들립니다. 영원한 소망은 믿음의 발로입니다.

 

그러나 여기 이스라엘을 보십시오. 저들은 자기 앞에 가로놓인 어두운 장애물로 인하여 계속 방황하고 있었습니다. 저들은 태산같은 절벽 위에 하늘을 보지 못했고 구름 위에 항시 있는 태양을 잊고 있었습니다. 사랑과 자비와 긍휼이 풍성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침 삼킬 동안도 잊지 아니하시고 낮엔 뜨겁고 밤엔 추운 한없이 위험한 허허 광야에서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시고 바위 속에서 터져 나오는 생수와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와 지면에 덮이는 메추라기 고기로 먹이시고 또 저희 옷과 신발을 무려 사십년 간이나 떨어지지 않게 하셨으나, 오오- 저들은 목이 곧고 이마가 뻔뻔한 백성이라 하나님과 그의 종 모세를 원망하기를 쉬지 않고 죄에 악을 더하기를 즐겼습니다. 이로 인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의 함정과 올무에 길려 넘어졌고 수 없는 바위와 모래와 바람에 시달렸고 이방과 불뱀에게 물렀으며 결국 두 사람을 때고 모든 구세대는 모래 밭에 매장이 되고 말았습니다

저희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신 고로 저희가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그런 일은 우리의 거울이”(고전 10:5,6) 되었습니다.

역사적 성경적인 입장에서 볼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기까지 무수한 장애물이 있었는데:

첫째로, 그들이 직면했던 문제는 이방에 객이 되어 타국의 노예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400여년 간이나 이스라엘은 애굽 제국의 바로 왕의 심한 학대 밑에서 중노동을 강요당하면서 비참한 종살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사단이 휘두르는 포악한 회초리와 맹렬한 멸시 천대와 이스라엘 자손들의 왕성한 자식 생산을 줄이기 위한 방해 공작 등, 온갖 고역을 다 당해야만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원하는 모든 희생과 제물을 여호와 앞에 나아가 드리고자 하는 뜻과 노력은 완전히 차단되고 도리어 더 큰 고역과 피땀을 흘리는 수고만이 강요되었습니다. 얻어맞으며 짚 없이 벽돌을 만들었습니다( 5:1~23).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 곤역을 통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게 되었고 여호와의 인도하심과 구원의 역사를 의지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둘째로, 이스라엘에게 부닥친 장애물은 도저히 건널 수 없는 바다가 저들 앞에 가로막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또 양 옆과 뒤로는 황량한 광야가 저들의 숨통을 조이고 있었습니다( 14:1~3). 그러나 앞에 가로놓인 절벽과 같은 홍해와 숨이 막히는 아득한 광야에서의 갇힘을 통하여 이스라엘은, 언제 어딜가나 자기들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불평과 원망은 백해무익한 것임을 깨닫고 오직 저들을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은 여호와께로 말미암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셋째로, 애굽에서 도망 나온 이스라엘은 오도가도 못하도록 광야에 갇힌 신세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저들의 뒤에는 무서운 바로의 군대가 맹렬히 따라오고 있었습니다( 14:4,10).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 절망적인 상태 속에서 여호와께서 애굽 군대를 전멸시키시고 애굽 사람으로 여호와가 어떤 신이신 줄을 알게 하고 모든 능력과 영광을 나타내시는 여호와로 가만히 서서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구원은 군대나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결코 아니고 오직 여호와의 팔의 능력으로 되는 것입니다.

넷째로, 이스라엘 백성들 자신들이 자신들에게 큰 장애물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내적인 죄악들로서 자신을 부패하게 하고 와해시키기에 족했습니다. 끝없는 불평과 원망, 멸시와 다툼, 불신과 불순종은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를 불러 왔습니다( 17:1~7, 11:1~3).

지도자에게 대한 원망과 비난은 하나님께 대한 범죄와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하나님이 불러 쓰시는 종들로 인하여 나타나기 때문에 사역자들을 불신하고 원망하고 비난하면 축복을 잃게 되고 징계를 자초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섯째로, 이스라엘은 탐욕으로 인하여 그 가나안 진행의 노정을 멈추게 하고 하나님을 시험하는 죄를 저지르게 만들었습니다( 17:1~17, 11:4~6).

특히 이스라엘 중에 섞여 사는 무리가 탐심을 품기 시작하자 이스라엘도 덩달아 탐심을 품고 양식과 물과 고기가 없는 사막에서 모세와 다투고 여호와를 시험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양식을 만드실 수 있을까, 여호와께서 회중에 계신가 아닌가, 왜 우리를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렇게 악한 말로 하나님을 시험하고 원망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진노하사 불뱀으로 저들을 심판하셨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다시 저들을 불쌍히 여기사 장대 끝에 달린 구리뱀을 보내셔서 쳐다보는 자가 살 수 있도록 구원의 길을 주셨습니다 또한 하늘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보내주셨고 바위 속에서 생수가 나오도록 하나님께서 저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여섯째로, 이스라엘의 우상숭배는 이스라엘을 부패하게 하고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기까지 하나님의 명한 길을 바르게 따르지 못하게 했습니다( 32:1~4)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 세상에 치우치는 것, 탐심은 우상숭배입니다. 탐욕으로 세상을 사랑하게 되면 믿음이 퇴보하게 되고 영성이 어두워지고 하늘나라로 직행하지 못합니다. 자기를 위하여 우상들을 만들되 그 모든 계획과 소망이 자기 본위주의로 흐릅니다. 갑자기 곧은 목이 부러집니다.

일곱째로, 이스라엘은 이방과 어울렀고 그들과 언약을 맺고 이방 여인과 음행하고 그들의 딸들을 자기 아들들의 아내로 삼았습니다. 이로 인하여 올무에 걸리게 되었고 우상의 희생 제물을 먹게 되었고 음란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34:12~17).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시는 우상숭배와 음행은 하나님의 진노를 우선적으로 받습니다. 이 죄악들은 검붉은 곰팡이가 핀 종이의 앞뒤와 같습니다. 그것은 죄악의 필연적인 연속 동작과도 같습니다. 징계와 저주가 따릅니다.

회개하지 않고 이런 죄악을 계속 행하는 죄인은 지옥 형벌을 받게 됩니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무서운 죄악들을 범할 때 교회로부터 내리는 하나님의 징계 곧 출교(黜敎)를 받게되고 특히 복음을 전하고 진리를 가르치는 사역자들이 음행과 같은 큰 죄악을 범했을 때는 버림을 받게 되고 멸함을 받게 됩니다(고전 9:27, 6:15~20, 3:16,17). 여기서 버림을 받는다는 뜻은 헬라어 adokimos로서 선수적부심사에서 자격 상실 곧 실격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교사와 집사와 장로와 목자는 그 직책에서 파면을 당하는 것과 같은 뜻입니다. 그리고 성전을 더럽히는 자가 멸하심을 당한다는 것은 지옥에 가는 멸망이 아니라 헬라어 phtheiro로서 정조를 잃은 여자가 온 동네 온 세상에 망신을 당하고 집에서 쫓겨나는 것과 같은 징벌을 뜻하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 성전을 더럽힌 자나 간통을 한 자는 사형을 받거나 백성에게서 끊어졌고 돌에 맞아 멸해졌습니다( 19:20, 22:22~24).

음행은 성령의 전인 몸을 창기처럼 더럽히며 몸 안에서 일어나는 죄이며 죄의 씨를 계속 만들어내는 무서운 죄악입니다. 반드시 금생과 내생에 심판을 받습니다. 음행을 멀리하고 삼가는 자는 잘되고 영육이 평강을 누립니다.

여덟째로,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 각 지파의 사람들은 모두 불신과 좌절과 나약함 속에서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다고 뒷걸음질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탐지하러 갔다 온 가나안 땅은 이스라엘을 삼키는 땅이요 그곳 모든 사람은 신장이 어마어마하게 큰 네피림 후손 아낙자손 대장부들인데 비하여 이스라엘은 메뚜기 같기에 그들의 칼에 모두 망할 수 밖에 없다고 간주하기 때문입니다( 13:30~33).

물론 피상적으로 볼 때 이스라엘 자손들은 이방인에 비하여 수호도 작고 국력도 미약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하심으로 능히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할 수 있다는 확신을 피력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시선으로 본 가나안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시기로 약속한 땅이었습니다. 믿음으로 나아가 취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확신하고(“너와 함께 하리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않고 버리지 아니하리라”- 1:5) 강하고 담대한 마음으로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을 발바닥으로 밟기만 하면 그 땅은 이스라엘의 소유가 되는 것입니다. 일어나, 나아가, 밟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 취하면 내 것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스스로 맹서하시고 또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모든 축복은 이스라엘의 기업입니다.

아홉째로, 이스라엘에 있어서의 장애물은 가나안으로 직진할 수 있는 길을 통과하지 못하도록 한 에돔왕과 그 원주민들이었습니다( 20:14~21).

이스라엘이 쉽게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 곧 40년 간 광야의 길을 계속 걷게 하신 이유는, 하나님의 섭리에서 볼 때 이스라엘 선민들을 사랑하시고, 저들을 낮추시고, 저들이 그의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고, 여호와의 말씀으로 사는 줄을 깨닫게 하려 하심이고, 그를 경외하고 찬송케 하려 하심이고, 마침내 저들에게 복을 주시려고 하심이었습니다( 8:1~16)

인간의 편에서 볼 때 이스라엘의 40년 간의 온갖 고난과 그 시련은, 그들의 불신앙과 불순종의 결과이었고, 그들의 죄악들 곧 불평과 원망과 탐욕과 우상과 음행과 교만과 완고함이었고, 하나님을 멸시하고 지도자 모세를 비난한 결과로 생긴 것입니다.

열째로, 이스라엘의 시련과 고난과 그 모든 화복(禍福)은 말세를 만난 우리에게 교훈과 경계를 주시기 위하여 기록된 것입니다. 그 모든 역사적인 사건들과 범죄와 시련의 장애물들은 은혜 시대에 자유스럽게 사는 교회 곧 모든 조직과 형식과 사상과 율법에서 벗어난 그리스도인들에게 자신을 살펴볼 수 있는 참된 거울이 되고 있습니다( 15:4, 고전 10:11).

인간 생활 내지 교회 생활을 하고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구약시대에 나타난 이스라엘 민족의 불신과 불순종, 모든 범죄와 하나님의 심판, 선민에 대한 하나님의 경륜과 종국적인 사랑의 회복과 축복 등은 신약시대 곧 은혜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큰 가르침이 되고 자신을 돌이켜 시험해 보고 확증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1993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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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