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Recent Post

theWord Bible Software

Category

2013. 7. 15. 16:44 횃불/1993년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나이다(2)

-O.J. 깁슨

이 글은 1992 8 8~10일까지 동대문 교회에서 강연한 내용을 지면에 옮긴 것입니다.

 

1 하나님이여 나를 보호하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2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시오니 주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3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저희에게 있도다

4 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는 괴로움이 더할 것이라 나는 저희가 드리는 피의 전제를 드리지 아니하며 내 입술로 그 이름도 부르지 아니하리로다

5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

6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7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할지라 밤마다 내 심장이 나를 교훈하도다

8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9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쁘고 내 영광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거하리니

10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

11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시편 16)

 

6절에 보면 시편기자는 이 만족이라는 본연의 주제로 돌아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이 시편기자는 나의 과거로 만족한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나의 과거의 신자의 생활은 참으로 즐겁고 아름다운 곳에 있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그는 그의 상급을 봤을 때 참으로 즐거워했습니다. “내게 줄로 채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주님이 무엇을 내게 준 것만이 아니고 주님이 개인적으로 내게 만족을 주시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저는 지난달 시베리아에 가서 그리스도인이 아닌 부인의 가정에 머물렀습니다. 그는 대부분의 그리스도인 보다 더 친절하고 관대한 부인이었습니다. 물론 저는 그에게 복음을 전하고 주 예수님을 믿으라고 간청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주 예수님을 믿는데 이르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 부인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부인에게 제게 베풀어준 모든 친절에 대해 감사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정말로 감사한다고 사의를 표했습니다. 그때 나는 그에게 말하기를 당신이 준 것보다 주신 분에게 나는 관심이 더 있다고 말했습니다. 당신이 주신 분이 되셨는데 당신 자신이 저한데는 더 중요하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저는 그 부인에게 주는 자가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얘기해 주었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 생애에 말할 수 없는 축복을 주신 위대한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그 축복보다 여러분 자신에 더 관심을 가지는 분이십니다. 저의 과거의 경험은 이 시편 기자와 같다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그분은 과거에 저에게 아주 큰 축복을 준 분이십니다. 저는 변호사가 되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당신은 율법에 들어가려다가 은혜를 전하는 사람이 됐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전도자가 된다고 생각을 해 본적이 없습니다. 이런 그리스도인의 길은 저로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리스도인이 된 다음의 하루를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의 모든 날과 바꿀 생각이 없습니다. 이것은 제 생애에 있어서 주님이 무한한 축복이 됐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과거의 삶이 제게는 아주 만족스럽습니다. 나이가 어떻든 간에 저는 불행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필요한 모든 것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주님은 저의 평생을 통해서 저에게 자비하셨고 관대하셨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었습니다. 주님은 신실하셨습니다. 제 영혼을 참 선대해 주셨습니다. 제 마음 속에 기쁜 만족을 주셨습니다. 제 주위에 있는 세상 사람들은 다 불안 가운데 사는 것을 저는 보고 있습니다.

7절에서 9절까지 보면 시편기자가 계속해서 말하기를 내 과거도 만족하지만 현재도 만족하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할지라 밤마다 내 심장이 나를 교훈하도다. “하나님은 나를 훈계하신 분이라고 했습니다. 저도 사람들에게 많은 상담을 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근심을 가지고 옵니다. 결혼생활의 문제를 가지고 옵니다. 또한 자녀들의 문제로 찾아옵니다. 또한 직장의 문제로 찾아옵니다. 대인관계의 문제를 가지고 찾아오기도 합니다. 영적인 문제를 가지고 찾아옵니다. 저는 우리 모임에서 백화점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상담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제 상담자는 누구인지 여러분에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상담자가 되시는 분은 바로 주 예수님이십니다. 이 말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주님의 음성을 듣는다면 주님만한 상담자가 우리 가운데는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말씀에 귀 기울인다면 그 이상의 상담이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배우기를 원한다면 또한 여러분의 귀를 열고 있다면 하나님은 그와 같은 사람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이 나귀처럼 고집이 세지 않으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만큼 지혜롭지 못하다면 나귀 같은 사람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가질 수 있는 최선의 상담자를 잃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인도하시는지를 주목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안내하는 자로서 이러한 분을 모시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훌륭한 일입니다. 그분은 나의 상담자이실 뿐만 아니라 날 보호하시는 분이십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8).

우리는 아주 위험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말세에는 사람들이 두려움으로 기절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현재 여러분의 나라에서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두려워할 이유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세상은 안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세상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많은 폭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 주위에는 여러가지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은 두려워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머지않아 두려움을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이럴 때 여러분에게 가장 위로가 되는 것은 주님이 여러분의 보호자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여러분의 방패가 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모든 악으로부터 여러분을 지키시기를 기꺼이 원하십니다. 여러분은 매일의 생활에서 보호를 구해야 합니다. 주님의 날개 아래 숨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주 예수님을 여러분의 피난처로 삼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분이 여러분을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정말로 놀라운 일이 아닙니까?

 

9절에 보시면 주님은 매일같이 우리를 돌보시는 분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쁘고 내 영광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거하리니.”

시편 기자가 말하기를 기쁘다고 했습니다 그는 안전한 가운데 거한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근심이나 고민 중에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 나라에는 고민과 근심 가운데 있는 사람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미국에는 안정제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것이 신경이 예민하지 않도록 안정을 주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심리학자나 정신과 의사를 찾아갑니다. 우리 나라는 종교가 굉장한 세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들마다 풍성한 부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는 죽을 때까지 근심하고 사는 사람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를 돌보시는 분을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살면서 그들에게 안전을 주는 분을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현재도 만족한다고 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상담자를 모시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보호자를 모시고 있습니까? 여러분을 사랑하고 돌보시는 분이 게십니까?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부유한 분들이 되셨습니다. 이 축복을 하나님 안에서 주장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안에서 만족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물을 저축치 못하는 웅덩이에서 물을 구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내 백성이 두가지 악을 행했는데 하나는 생명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또한 물을 저축치 못하는 웅덩이를 의지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수고하고 있습니다. 또한 만족하지 못하는 것을 위해서 은을 달아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 안에서 만족을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시편기자는 그의 장래도 만족하고 있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과거 그리스도 없는 삶보다 그리스도 있는 삶이 더 좋다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을 모시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 훌륭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더 좋은 것이 장래에 우리에게 임합니다. 우리는 이 좋은 것을 아직은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최선의 것은 장래에 우리에게 올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부활이 없습니다. 예수님처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는 것이 있습니다. 저는 주님과 함께 영원토록 살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소망을 갖지 않은 자의 장례식보다 더 슬픈 것은 없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없기 때문에 죽은 다음에도 소망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없이 죽는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주님과 함께 거하는 것이 어떤 것인가에 대한 사도 바울의 고백을 들어보십시오. 우리는 죽을 때 몸을 떠나게 됩니다. 그런 다음 우리는 수님과 함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것이 훨씬 더 좋다고 고백했습니다. 우리가 세상으로부터 떠나는 것이 더 좋은 것입니다. “에벤에셀이라고 하는 것이 이 땅에 있는 동안 좋은 것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장래에 기대해야 되는 것으로 그리스도와 그리스도께서 계신 곳에 함께 있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너무나 만족하고 있기 때문에 그날을 바라고 있지 않은지 모르겠습니다. 주님과 함께 거한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허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10).

물론 이것은 전혀 죽지 않는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것은 주님의 부활과 관련해서 말씀한 구절입니다. 하나님이 그분을 무덤에 두지 아니하시고 무덤에서 살려 내셨습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셔서 죽음을 정복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살아서 죽음을 정복할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의 장래의 부활을 보장하는 것입니다. 의학은 놀라운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의학을 통해서 많은 놀라운 사실을 발견해 냈습니다. 여러분의 생명을 연장시키는 법도 그들이 배웠습니다. 저는 이전에는 고칠 수 없는 의학의 수술을 받았습니다. 이 가슴을 열고 심장을 떼어서 이 심장 기계에 연결시켰습니다. 심장을 꺼낸 다음에 이것을 낡은 옷을 깁듯이 기웠습니다. 그 다음에 심장을 도로 갖다 맞추었습니다. 이렇게 저를 온전하게 만들었습니다. 참으로 놀라웠습니다. 의학이야말로 참으로 향상되었습니다. 그러나 의학도 고칠 수 없는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아무도 고치지 못할 것입니다. 죽음! 어느 의과대학에서도 죽음에 대한 연구는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부활시킬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떠나면 부활의 소망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또한 놀라운 일이 있습니다. 주님과 동행하시면 여러분의 영적인 생활에 있어서 예수님의 부활의 능력을 경험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죽은 자의 삶을 살 필요가 없습니다. 패배의 생활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게 살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과 살 때 여러분은 예수님의 부활의 능력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은 자를 살리신 그 능력이 여러분의 삶 속에 역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11).

어떤 사람들은 죽은 다음의 삶에 대해서 정말로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내세에 가면 무언가 권태가 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들이 항상 군중 속에서 가야금이나 치는 그러한 삶을 산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나라에 가면 주님은 그보다 더 많은 일을 하게 하실 것입니다. 주님은 여러분을 분주하게 만드실 것입니다. 현재 내가 알지 못하는 새로운 것을 가르쳐주실 것입니다. 주님과 더불어 영원한 사귐을 가지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실 것입니다. 하늘나라에서 가장 귀한 것은 예수님이 기기 세시다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에서 살 때 가장 놀라운 것은 주님을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본다는 것입니다. 오늘 저녁 저희는 그리스도인과 함께 훌륭한 저녁을 보냈습니다. 우린 서로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주 훌륭하고 재미있는 일이었습니다 우리가 주님과 한 식탁에 앉아서 하늘나라에 좌정한다고 하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것은 놀라운 전망이 아닙니까?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다고 했습니다. “주의 앞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주님께서는 다양한 것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아름다움을 주십니다. 도전을 주십니다. 성장을 주십니다 영원한 하나님과의 교제를 주십니다. 우리의 가장 큰 만족은 장래에 올 것입니다. 여러분은 물을 저축치 못하는 터진 웅덩이를 더 이상 파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뿌리를 하나님 앞에 더 깊이 박으시기 바랍니다. 시편 1편에 말씀한 시편 기자와 같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는 레바논의 백향목과 같이 물을 빨아 들이는 것입니다 그의 생애는 열매를 맺습니다. 또한 그의 입사귀는 마르지 않습니다. 영광스러운 열매가 가득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현재에서 여러분이 그와같은 삶을 살기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그저 하늘나라에 데려가는 분으로만 보시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이라는 것은 이 지구상에 있는 동안에 주님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따라 오라.” 여러분이 능동적으로 따라가지 않으면 여러분의 인생에 있어서 가끔 귀한 것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여러분에게 만족을 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이 세상에서는 얻을 수 없는 그런 만족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주님께서 이러한 교훈을 하신 다음에 제자들에게 물으시기를 이 모든 말을 깨닫느냐고 하셨습니다. 그때 그들은 항상 고개를 끄덕이면서 네 알아들었습니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런데 후에 보면 이해한 것 같지 않았습니다. 안다고 얘기는 했지만···· 저도 여러분에게 그렇게 묻고 싶습니다.

 

(1993 9월호)

 

'횃불 > 1993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두 차례의 죽음 끝에서 얻은 놀라운 구원  (0) 2013.07.15
우공(牛公)을 칭송한다  (0) 2013.07.15
내 입 앞에 파수꾼을 세우소서  (0) 2013.07.15
모이기를 힘씀  (0) 2013.07.15
부활과 휴거에 대하여  (0) 2013.07.15
장애물로 만들어진 거울  (0) 2013.07.15
남비(2)  (0) 2013.07.15
요한계시록 강해(8)  (0) 2013.07.15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