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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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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8. 2. 09:45 횃불/1993년

탐심(1)

O. J. 깁슨

전도서 5장을 보겠습니다. 오늘 여기에 참석하신 여러분은 거의 다 신자인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신자로 알고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청중들 가운데는 예수님을 믿는다고는 고백하지만 성경적인 의미에서 볼 때 아직 확실한 신자가 아닌 사람들이 항상 끼어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에 속했는가 속하지 않았는가는 사실에 의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진실로 주님을 좇는 분들이라고 한다면 그 모든 가르침을 좇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참된 신자라고 한다면 위엣 것을 찾으실 것입니다. 거기에는 우리 주님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여러분이 참된 주 예수님을 좇는 자들이라고 한다면 그리스도인의 삶을 중화시켜서 여러분의 삶을 효력이 없게 만들고자 하는 위험물에 대해서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직면하고 있는 두가지 위험 가운데 첫번째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이것은 알바니아 사람들에게도 위험이 되는 것입니다. 알바니아 사람들의 80%가 실직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평균 수입은 한 달에 25달러 밖에 되지 않습니다. 또한 빵 한덩이가 25센트나 합니다. 이 나라 전체가 아주 어려운 사정입니다. 그들은 어떤 부()로 시험을 받고 있지는 않습니다. 미국은 부의 시험을 받고 있습니다. 또한 한국도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물질주의라고 하는 것에 그리스도인이 도전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사는 목적은 물질에 있습니다. 또한 세상은 부요한 나라가 되기를 원합니다. 이 물질을 위해서 살고 없습니다. 또한 부를 축적하기 위해서 살고 있습니다. 소유를 위해서 살고 있습니다. 또한 돈과 돈이 살 수 있는 것들을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가리켜서 물질주의라고 합니다. 인생이라는 것은 자기 소유의 넉넉함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전도서 5 10절의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이 글은 지혜있는 자가 쓴 글입니다.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함이 없고 풍부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함이 없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 또한 소유가 풍부하면 만족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전도서를 기록한 사람은 예수님께서 사역을 하시기 약 천년 전에, 세상의 물질에 대한 가치관을 책망하시기 전에 그 눈이 바라는 모든 것과 그 마음이 바라던 모든 것을 소유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의 이름은 솔로몬입니다. 그는 너희가 은을 사랑하면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은을 축적하든지 간에 만족이 없을 것이다. 또한 네가 축적한 그 소유로부터 만족을 얻으려 하면 이것은 마지막에 가서는 네 입의 껄끄러운 지푸라기와 같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솔로몬은 이 모든 것을 다 경험한 다음에 모든 것이 헛되다고 말했습니다. 여러분이 하는 모든 것은 바람을 잡는 것과 같다고 말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전서 6장에서 이러한 글을 써 보냈습니다. 이 물질에 관해서 사도 바울도 매우 엄격하게 얘기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딤전 6:7~11).

주 예수님께서 이 물질에 대한 주제로 많은 말씀을 하셨는데 특별히 누가복음 12장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3절부터 보겠습니다.

예수님을 찾아왔던 한 청년이 자기 아버지로부터 재산을 분배 받은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자기 형이 자기보다 많은 유산을 받았다고 그는 마음에 불평하고 있었습니다. 자기는 더 받았어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주님을 찾아왔습니다. 생명과 영광의 주님을 찾아왔습니다. 그의 죄를 용서하실 수 있는 분을 찾아 나왔습니다. 그에게 영생을 주실 수 있는 분을 찾아 나왔습니다. 그때 어떠한 질문을 주님에게 했을까요? “주님 저의 형한테 얘기해서 그 채산을 나와 좀 나누라고 해주십시오. 오 주님, 제가 유산을 공평하게 받도록 좀 해주십시오하고 호소를 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는 이 재산이 가장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영적인 것보다도 돈을 더 좋아했습니다.

이때 예수님이 어떻게 말씀하셨나요? “누가 나를 너희의 물건 나누는 자로 만들었느냐? 너희들의 그런 문제를 해결해 주기 위해서 내가 이 세상에 온 것이 아니다. 너는 잘못된 것을 바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주님은 이어서 어떤 말씀을 하셨습니까? 15절에 매우 놀라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너 한테는 문제가 있다. 그것은 탐심이라는 문제이다. 그것은 욕심의 문제다. 너는 네게 없는 그것을 가지고 싶어한다.” 그의 가치관은 물질주의인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것을 조심하라고 하셨습니다. 사실 주님은 이점에서 그의 구원의 문제를 제기하셨습니다.

물질적인 것에 대해서 마음이 빼앗기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정말로 주님을 아는 사람인가 하는 것을 검토해보셔야 합니다.

이 이야기를 하신 다음에 주님께서는 지옥에 간 부자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사실상 대부분의 부자들의 종말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대부분의 부자들이 지옥으로 끝난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쉽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이 이야기를 받아들이기가 어려우실지 모르겠습니다. 주님께서는 구원받은 사람의 수가 적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적고 그 길이 협착해서 찾는 이가 적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결국 구원받은 사람의 수는 아주 적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처하는 이 많은 사람들을 생각할 때 어떻게 그렇게 되겠습니까? 성경에 의하면 그들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자기는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지만 성경의 관점에서 봤을 때 그들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리스도를 좇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교인이 되어있기는 하지만 교회는 잘 다니기는 하지만 또한 성경을 소유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러나 예수님을 실제로 따르지는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많은 부유한 사람들은 마지막에 지옥에 간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지옥에 가면 1원도 소유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이 물질이 얼마만큼 하나님의 교회에 침범해 있을까요? 오늘날 많은 젊은이들이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 가운데는 교회당에 다니다 그만 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어디로 갔습니까? , 그들은 물질의 신을 좇아간 것입니다. 물질에 대한 자기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그 길로 간 것입니다. 그들은 세상에서 으뜸이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들은 다 떠난 사람들입니다.

그것도 나쁜 것이지만 더더욱 나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많은 물질을 가지고자 하니 설교의 말씀 가운데 사람들에게 관심있는 그런 말을 하자. 사람들에게 원하는 것을 주면 많은 사람들이 올 것이다. 저들은 와서 많은 돈을 벌 것이다. 그들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면 그리스도인이 되고자 할 것이다.” 이것을 가리켜서 부자를 약속하는 복음이라 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은 당신들이 다 부자가 되기를 원합니다라고 말합니다. 믿음만 충분히 가지고 있으면 부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런 말이 너무나 좋아 사람들은 그 사람을 좇는 것입니다. 이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당이 이 서울 도성 안에 있습니다. 그 교회 지도자가 바로 그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부자가 되는 복음이라고 합니다.

이 부자가 된 복음을 전하니까 많은 사람들이 좇았습니까? 저보다 여러분이 더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에게는 많은 군중들이 좇고 없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하고 잇습니까? 그는 돈에 대한 탐심을 가지고 그들의 돈을 많이 빼앗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100 $을 보내라고 합니다. “하나님 앞에 100$을 내면 하나님께서는 200$을 너에게 줄거야. 이것은 투자를 잘 하는 거야.” 한국의 은행들도 그렇게 많은 이자를 주지는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은행에 100$ 예금을 하면 200$ 이자를 주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TV에서나 이런 곳에서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이와같은 약속을 합니다. 이렇게 해서 많은 헌금을 받아내는 것입니다.

그들은 탐심에 호소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성품 가운데서 가장 선해 보이는 것에 호소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주 예수님은 가난하셨지만 누구에게서도 돈을 빌라고 하신 적이 없습니다. 한번도 그런 적이 없습니다. 주님은 조그만 동전을 빌린 적이 있었습니다. 주님이 그것을 빌려서 예화를 든 적은 잇지만, 빌린 동전은 돌려 주셨다고 저는 믿습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으면서 어떻게 예수님을 잘 믿으면 부자가 된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까? 저들은 규모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탐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탐심은 여러분이 가지고 있지 않은,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을 가지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이것을 가리켜서 우상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에서 이것을 살펴보겠습니다. 첫번째로 마태복음 6장입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6:19,20).

예수님께서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분은 주님이십니다. 여러분은 그분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이 그분을 따르는 사람이라면 그분께 순종하셔야 됩니다. 주님이 땅에 보물을 쌓아두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보화를 어디에 쌓아 두고 있습니까? 그것을 하늘나라에 쌓아두라고 하셨습니다. 이 세상 은행에 저축하지 말고 하늘 은행에 저축하라는 것입니다. 여기 이 말씀을 보면 여러분이 하늘에 가면 여러분이 저금한 그것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여러분이 영원한 처소로 들어갈 때 여러분을 영접할 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왜 땅에 보물을 쌓아두면 안됩니까? 그것이 슬기로운 일이 아닙니까? 저축하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닙니까? 왜 해서는 안됩니까? 그러면 더 안정이 되는 것이 아닙니까? 여러분이 없는 것을 앞으로 사게 해 주는 것이 아닙니까? 낡은 차를 버리고 새 차를 살 수 있지 않습니까? 또 더 큰 차를 살 수 있지 않습니까? 더 큰 집을 살 수 있지 않습니까? 옷이 하나 있으면 두벌 살수 있지 않습니까? 왜 안됩니까?

그것이 여러분에게 만족이 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개가 자기 꼬리를 물려고 빙빙 도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광고가들은 사람들이 왜 물건을 사는지 그 마음을 잘 읽고 있습니다. 그래서 광고하는 사람들은 우리보다 더 지혜로운 사람들입니다. 저들은 여러분이 필요하기 때문에 물건을 사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내적인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물건을 산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는 이 모든 물건들이 실제로 다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상점이 있는 거리를 지나가다 보면 세일”(Sale)광고가 붙어 있는 것을 볼 것입니다. 한국에도 세일이라는 광고가 붙어 있나요? 세일을 하면 그 유혹을 물리치기가 어렵죠. 정말 필요해서 세일을 찾아 다닙니까? “그렇지만 세일하잖아요. 그러면 돈을 절약하는 셈이죠.”

여러분의 내적인 만족을 얻기 위해서 물건들을 사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족을 주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필리핀 대통령이었던 마르크스의 부인을 잘 알고 게시죠? 부인에 대한 글을 읽어보셨을 것입니다. 그 남편이 대통령으로 있을 때 그 백성들은 가난하여 굶주리고 있는데 이 부인은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그 부인은 정말 마음에 만족이 없었던 여자였던 것 같습니다. 자기 남편이 대통령의 자리에서 쫓겨 났을 때 그 부인은 신발이 3,000켤레가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도 신어 보지 않은 것도 많았습니다. 또한 한번도 사용해 본적이 없는 고급 손가방이 300개나 있었습니다. 그 물건을 왜 샀을까요? 필요해서 산 것은 물론 아닙니다. 그 많은 신발을 가지고 평생을 신어도 다 신지를 못합니다. 마음에 만족이 없으니까, 또 마음에 기쁨이 없으니까 그래서 물건을 구입함으로써 마음의 만족을 얻고자 했던 것입니다. 뉴욕의 값비싼 상점에 가서 그런 것을 샀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여자는 만족해 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족이란 소유를 축적하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또한 소유가 여러분에게 안정을 준다고도 상상하지 마십시오. “은행에 많은 돈을 저축을 하면 노년에 우리는 걱정이 없을 거야.” 이것이 여러분에게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 줍니까? 사람들은 생명 보험에 가입합니다. 물론 그것에 반대하지는 않습니다만 그러나 그 생명 보험이라는 말은 정확한 표현이 아닙니다. 그것은 생명을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죽음을 보장해 주는 것입니다. 죽으면 다른 사람이 그 돈을 받는 것입니다. 오래 살지 못한다는 증거입니다. 누가 사망 보험을 사겠어요? 죽음 보험을 팔고 다니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들은 안정을 원합니다. 그러나 보험이 여러분의 장수를 보장하거나 행복한 삶을 보장해 주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몇 년 전에 우리 나라의 큰 부자가 죽었습니다. 그는 미화로 300만 불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가진 돈을 다 써 버렸기 때문에 병이 들었습니다. 저는 아내에 게 그 부자가 죽을 때 얼마를 남기고 갔냐고 물었습니다. 모든 것을 다 두고 갔다고 했습니다. 있는 것을 다 두고 갔습니다. 그는 거기에 전 생애를 다 바쳤는데 이러한 투자는 이익이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혜로운 투자가이십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에 저축하지 마시고 하늘나라에 저축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가장 좋은 이자를 주십니다. 얼마나 그분이 이자를 주시는지 아십니까? 백배의 이자를 주십니다.

저는 은행가 친구에게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저는 형제를 찾아가서 형제가 내게 1000$을 저축한다면 그 이자가 원금의 백배라면 일년이 지난 다음에는 1000$을 얻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이 옳으냐고 제가 물었습니다. 어느 은행도 그만큼 이자를 주는 데는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은행이 있다고 제가 말했습니다. 내가 10$을 예금을 하면 일년이 지난 다음에 백배로 이자가 늘어가는 것입니다. 십년 후에 얼마의 이자를 받을까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이 주시는 이자는 이렇습니다. 슬기로운 투자를 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하늘나라 은행에 예금하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우셨던 사람이 그렇게 하라고 충고를 하셨습니다.

 

(1993 12월호)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