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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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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7. 30. 09:17 횃불/1993년

거룩한 산 제사(2)

-O.J. 깁슨-

이 글은 1993 8 21~23일까지 서울복부 교회에서 강연한 내용을 지면에 옮긴 것입니다.

 

너희 몸을 산 제사로 드리라.” 구약에서는 죽은 짐승을 제물로 드렸습니다. 양이나, 염소나, 새를 죽여서 제물로 바쳤습니다. 수백만의 짐승들을 잡아서 피의 단에 뿌려야만 했습니다. 우리는 피의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 짐승의 피의 제사는 기념물로, 하나의 상징으로, 예표로 드려진 것입니다. 히브리서에 보면 이와 같은 짐승의 제사는 우리의 죄를 언제든지 없게 하지 못한다고 되어있습니다. 우리의 죄를 없이할 그 피가 흘려질 때까지 그림자로 드려졌던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이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공생애 초에 주님을 바라보았을 때 이렇게 외쳤습니다. “보라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1:29).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모든 죄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십니다.

무엇이 내 죄를 없게 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의 피밖에 없습니다. 나를 어떻게 건강하게 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의 피밖에 없습니다. 무엇이 하나님의 존전 앞에 나가서 기도할 수 있게 해 줍니까? 여러분의 죄에서 성결케 한 예수님의 피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은 전 세계의 모든 종교적인 사람들이 하나님, 내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는 것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해서 여러분의 죄를 용서해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피의 보호 아래 때문에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죄를 용서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해방시키실 때, 죽음의 천사가 애굽을 돌아다니며 애굽의 장자들을 죽이고 애굽의 모든 가축들을 다 죽였습니다. 그러나 양을 잡아서 그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피를 볼 때 내가 넘어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피가 여러분의 영혼에 발려져 있지 않다면 이 죽음의 천사가 여러분을 넘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육체적인 죽음만이 아니라 영원한 죽음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을 둘째 사망이라 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영원히 이별을 당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다시 회복의 길이 없습니다. 2의 기회가 없는 것입니다.

너희 몸을 산 제사로 드리라.” 여러분의 삶 자체를 드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현재, 매일같이, 여러분이 주님 앞에 여러분의 몸을 드리고 계십니까? 그렇게 고백하고 계십니까? 진정으로 그렇게 하십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은 거짓말하기에 참 좋은 사람이다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마치 유리창에 있는 사람과 같이 하나님은 여러분 속을 꿰뚫어보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의 참되고 성스런 기도가 아니면 하나님 앞에는 아무런 효력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여러분의 몸을 산 제사로 드렸는지 알고 계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제물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기 위해 만드셨습니다. 여러분을 구원하신 목적은 여러분을 기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물론 우리에게 큰 기쁨을 주시기도 하십니다. 하지만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이 충만케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기쁨이 영원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과 동행하시면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기쁨을 주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여러분을 구원하신 것은 여러분이 이 세상의 쾌락을 위해서 살라고 하신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기쁨을 드리기 위해서 구원하신 것입니다.

저는 과거에 위대한 인도 전도자가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박싱이라는 사람입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방문했을 때 그는 80세의 노령으로 복음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저에게 상당히 감명이 되는 것은 저도 멀지 않아 그의 나이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금년 여름에 집에 나흘 밖에 가보지 못했습니다. 저는 9개의 다른 나라를 다니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저는 한국에 8일 동안 방문하고 있는데 한국 교회는 이 8일 동안에 20번 설교하도록 계획을 세워놓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건강에 대해서 염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주님을 섬기기 위해서 여기에 왔습니다. 저는 주님을 섬기다가 죽고 싶습니다. 저는 일하다 죽고 싶습니다. 저는 그저 침상에서 높은 자와 같이 되기를 원치 않습니다. 저는 영적인 싸움을 싸우다가 전쟁터에서 죽고 싶습니다. 저는 전쟁터에서 세상을 떠나기를 원합니다. 저는 하나님 앞에 녹슨 자가 되어서 버림 받는 자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여러분,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기를 원하십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선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그분 앞에 여러분의 몸을 바치는 것입니다. “이것이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합리적인 예배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살아야만 삶의 의미를 느낀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위해서만 사는 사람은 어리 석은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지킬 수도 없는 것을 위해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간직할 수 없는 것을 위해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잃지 않을, 영원히 잃지 않을 것을 위해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 예수님은 이것을 가리켜 말씀하시기를 나를 위해서 네 생명을 잃는 것이 너를 위해서 생명을 얻는 것보다 낫다고 하셨습니다. 너희가 무엇을 세상에 쌓아놓든지 간에 그것을 두고 가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사는데 있어서 하나님 앞에 드려지지 않는 것은 영원히 없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영원히 있게 하는 유일한 방범은 그리스도안에 투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돈을 저축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영원히 저축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늘의 은행에 여러분의 돈을 저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것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를 위해서 보화를 땅에 쌓아두지 말라, 거기에는 좀과 동록이 먹는다. 또는 도둑이 들어와서 훔쳐간다. 너를 위해서 보화를 하늘에 쌓아두라. 거기에는 좀과 동록이 좀 먹지 못한다.”

거기에는 도둑이 들어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해 산다는 것은 지각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섬긴다는 것은 지혜로운 일입니다. 여러분이 오늘날 여러분의 살아온 삶이 영원의 관점에서 봤을 때 지각 있는 삶을 산다고 믿습니까? 우리는 한 생애 밖에 없습니다. 머지 않아 이 생애는 끝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해 행하는 것만이 영원히 남게 될 것입니다. 그것을 여러분이 믿으십니까? 이 삶의 원칙이 여러분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지 스스로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추구하는 것을 우리도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좋아하는 것을 우리도 좋아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지 않는 사람들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볼 때 아무런 차이를 발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에 의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감동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차이를 보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여러분의 마음 속에 살고 계신다고 그들에게 말해 보십시오. 그 말이 설득력이 없습니다. 인류 역사에 있어서 오늘날처럼 이 지구에 그리스도인으로 가득찬 때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인류 역사상 기독교가 오늘날처럼 영향력이 없는 때도 없습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많은 핍박에도 불구하고 정말로 커다란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그들이 침례를 받으면 끌려가서 순교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로마 제국을 통해서 핍박을 당했습니다. 그들은 화형을 당하거나 또한 짐승들에게 먹힘을 당했습니다. 그들 주위에 있는 가족들과 친척들, 그리고 종교 지도자들로부터 그들은 핍박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핍박을 당할수록 더욱 빛이 났습니다. 2세기 말쯤 되었을 때는 세계 인구의 반 정도 되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그들은 로마 제국 시민들이 믿는 신을 다 파괴시켰습니다. 그들은 헬라신들을 다 망가뜨렸습니다. 애굽의 신들을 다 망가뜨렸습니다. 그 당시에 그들은 그와같은 신들을 더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의 간증과 증언을 그들은 말살시켜 버렸습니다. 총칼에 의해서 말살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초대시대의 부흥이 필요합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 어느 성경에 보면 여러분을 주물러서 이 세상을 닮도록 말라는 말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마치 토기장이가 진흙을 가지고 만드는 것처럼, 세상 사람들이 여러분의 사고와 여러분의 삶의 양식을 주물러서 세상 사람과 같이 만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세상을 여러분이 변화시키는 대신에 그들에게 변화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새로운 피조물이라 모든 것이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이것이 변화된 것입니다. 이것이 희랍어로 메타모피아라는 낱말입니다. 번데기가 나비로 변화되는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것은 완전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이번 여행에서 세인 나비 농장을 가보았습니다. 하나님의 경의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보기 흉한 조그만 번데기가 나무 잎을 먹으면서 누에고치로부터 나와서 아름다운 나비로 변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 중에 하나입니다. 하나님께서 보기 흉한 것을 가져다가 아름다운 것으로 변화시키는 역사입니다. 하나님께서 벌레들을 가져다가 아름다운 나비들로 만드십니다. 이것이 놀라운 일이 아닙니까! 이것이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입니다.

여러분에게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삶은 변화를 입으셨습니까? 무언가 아름다운 것으로 변화를 입으셨습니까? 주 예수님께서 성령 안에서 사용하실 만한 자로 준비가 되어 있으십니까? 여러분 속에 주님께서 사시도록,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여러분 자신을 완전히 소유하시도록 드리셨습니까? 여러분 삶 속에 그분의 성품을 이루시도록, 여러분의 성격과 삶에 있어서 그리스도를 닮은 자가 되게 하도록, 그래서 다른 사람들로 여러분의 삶 속에서 그리스도를 보도록 변화를 받으셨습니까?

여러분의 신앙 고백서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관심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교회 나가는 것으로 사람들은 감명을 받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으로 그들이 감명을 받지 않습니다. 우리 주위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는 게 하나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이 달라졌을 때, 최고의 의미로 삶이 달라졌을 때, 여러분이 삶이 이렇게 변했기 때문에 여러분이 가진 것을 그들이 가지고 싶어할 때 그때 여러분을 찾아 올 것입니다. 여러분의 말에 귀를 기울일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어떻게 해서 그렇게 아름다운 삶을 사느냐고 물어오게 될 것입니다. 왜 당신은 오늘 이렇게 훌륭한 사람이 되었느냐고 물어오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여러분은 여러분의 삶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할 수가 있습니다. 그 다음에 여러분은 이런 질문을 받을 때 간증을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어떻게 여러분의 삶을 변화시켰는지를 간증할 수 있습니다. 주 예수님께서 여러분의 삶을 정말로 변화시킨 사실을 간증할 수 있습니다.

저는 성인이 되었을 때까지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저는 제가 얼마나 이기적인 사람이었는가를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자기 중심적인 사람이었는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사람들에게 잔인하고 무정한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계속해서 저 자신과 쾌락만을 위해서 살았습니다. 그때 저는 교회 다녔습니다. 저는 그때 교회 다니는 교인이었지 변화 받은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복음도 몰랐습니다. 오늘날 교회 다니는 사람들대부분이 복음을 모르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당신은 전도자가 될 수 있겠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때 그를 비웃었습니다. “당신 농담하는 것 아니요하고 말했습니다. 그가 내가 전도자가 될 수 있겠다고 말했을 때 저는 변호사가 되겠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전도자가 될 계획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다른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분이 저의 생애 가운데 들어와서 저를 완전히 부수셨습니다. 저의 교만과 자족하는 마음을 부수셨습니다. 저의 직장 생활의 공허한 것과 아주 낮은 것을 보게 하셨습니다. 그분은 저의 존재 속에 커다란 공백이 있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모든 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 이 공허, 이것은 그리스도만이 채울 수 있는 공허입니다. 우리는 이 공허를 다른 것으로 메꾸려고 합니다. 우리는 분주함으로, 열심히 일하므로, 또한 쾌락으로, 성적으로, 마약으로, 재물로, 또한 여행으로 그저 항상 즐거움을 얻으려고 쫓아다니는 것입니다. 그저 즐기는 것은 공허한 마음을 무감각하게 만드는 마약과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이 계속해서 이 공허한 마음속에 여러가지를 집어넣습니다만 여러분의 영혼은 여전히 만족하지 못해서 계속 소리를 지르는 것입니다. 저는 그때 여러 번 제 삶이 그랬던 것을 알고 있습니다. 마치 터진 웅덩이에 물을 붓는 것 같았습니다. 아무리 물을 부어도 조금도 채워지지 않는 것입니다. “오 주님 저는 깨진 물 항아리를 의지하고 살았습니다.”

물을 찾았지만 물이 없었습니다. 제가 몸을 굽혀서 물을 마시려 할 때도 사람들은 저를 조롱했습니다. 제가 울었습니다. 이제는 그리스도 외에는 나를 만족케 하실 분이 없습니다. 예수님 이름 밖에는 다른 이름이 없습니다. 주 예수님 안에는 영원한 즐거움과 영원한 빛이 있습니다.

그런데 떡이 아닌 것을 위해서 너는 돈을 사용하느냐? 영원히 네 목을 해소하지 못하는 것을 위해서 수고하느냐?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면서 내가 말하는 것을 행치 않느냐? 이것은 그분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믿는다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는 것이고 좇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분이 여러분에게 권하시기를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 앞에 산 제물로 드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제물로, 그분의 기쁨을 위해서 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오 주 예수님 오늘 저녁 제가 그렇게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삶의 결정으로 과거의 경험만 의지하고 계속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이것은 극단적인 가르침이 아니냐라고 이 이야기에 귀를 막으면서 온갖 변명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여러분이 주님을 따르는 사람이 되기를 권하십니다. 매일같이 여러분의 삶을 그분 앞에 바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통해서 그리스도께서 사시도록,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도록 허락해 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축복을 위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말입니다. 아멘입니까?

 

(1993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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