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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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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7. 30. 09:16 횃불/1993년

노후 보장

 

수년 전에 몇몇 형제들과 함께 싱가폴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우리는 다른 몇 나라들을 방문하고 그곳에서 개최한 국제수양회에 참석하기 위하여 그곳을 방문하였는데 수양회 날짜보다는 며칠 더 일찍 도착하게 되어 그곳 모임에 있는 두 형제 집에 두명씩 나누어서 거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행동을 같이 했는데 그 두 형제는 우리를 위하여 직장에서 휴가를 내 며칠 동안 우리를 여러 곳으로 데리고 다니면서 관광도 시켜주고 그리스도 안에서 따뜻한 사랑으로 우리를 대해 주었습니다.

그 두 형제는 그리스도 안에서도 형제간이었을 뿐만 아니라 육신적으로도 형제간이었습니다. 그들은 둘 다 보험회사에서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차를 타고 다니면서 때로 보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곤 했습니다.

그 형제들 중에 젊은 형제가 저에게 그리스도인이 보험에 드는 것, 즉 생명보험이나 노후보장을 위한 보험에 드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는 목회하는 분들이 교회에서 은퇴할 것을 대비해 보험에 들고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지금은 한국 모임들 중에도 목회자들의 노후를 위하여 적금이나 보험을 들고 있는 곳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지만 그때만 해도 저로서는 생각해 본 적이, 아니 생각해볼 수도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답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른 곳은 잘 모르겠지만 우리 교회나 내 형편은 아직 거기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자기 교회는 목회자들의 노년이나 사고를 대비해서 보험에 들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안전을 원하는 것 같습니다. 젊어서 열심히 모아 눈 내리고 비 오는 날에 염려없기를 원하며 늙어서도 유복한 삶으로 인생을 마치기를 원합니다. 연세가 많으신 분들에게는 즘 죄송한 이야기입니다만 저도 이제 해마다 흰머리 숫자는 늘어가고 몸은 쇠하여 장래노년의 때를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나를 늙을 때에 버리지 마시며 내 힘이 쇠약할 때에 떠나지 마소서”( 71:9)라고 기도했습니다. 어느 날엔가 저는 이 시편을 읽으면서 사람의 마음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동일한 것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노년을 평안히 보내기 위하여 바쁘게 뛰고 있습니다. 나도 내 자신을 가만히 생각해 볼 때 지금 일하고 있는 교회에서는 나의 노년을 위하여 연금이나 보험을 들고 있지 않고 그렇다고 노년을 위해 쌓아둔 것은 전혀 없는 상태이니 이거야말로 하나님이 나를 버리시면 큰일입니다. 옛날에는 늙어서 자식을 의지하고 살려고 아들을 그렇게 선호한 것 같은데 다행이랄까 내게도 아들이 하나 있어 그를 의지하면 되겠지(?)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워낙 때를 잘못 타고 난지라 이제는 자식도 의지하기는커녕 속만 썩여주지 않으면 감사하게 생각해야 할 세상이 되어버리고 말았으니 이거야말로 하나님이 나를 버리시면 정말 큰일입니다. 여기에 시편기자도 오늘날 우리들처럼 그의 노년을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시편기자나 우리의 생각에는 몇가지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점이 있다고 봅니다. 첫째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은 서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솔직히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모든 것을 이용가치에 따라 평가할 때가 많습니다. 모든 영혼들이 그 가치에 있어 동일한 데도 우리는 때로 전도할 때 노인들보다는 젊은이들을 선호할 때가 있습니다. 이는 그들이 더 이용가치(?)가 있다고 보기 때문일 것입니다.

구약 성경 사무엘상 30:11~15에 보면 다윗이 블레셋 사람들과 하나가 되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나갔다가 블레셋 사람들이 싫어하여 다시 거하던 성으로 돌아왔는데 그 성이 불타고 모든 가족들이 사로잡혀 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은 군대와 함께 적들의 뒤를 따르다 아멜렉 사람의 종이었던 애굽 소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그의 도움으로 적들을 찾아 죽이고 빼앗겼던 것을 다시 찾아옵니다만 여기에서 보고자 하는 것은 그 애굽 소년의 말입니다. 그는 나는 애굽 소년이요 아멜렉 사람의 종이더니 사흘 전에 병들자 주인이 나를 버렸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아멜렉 사람은 자기 종을 데리고 전쟁터에 나왔으나 병들자 더 이상 이용가치가 없다고 보고 그를 버렸습니다. 인간 사이에는 이러한 일들이 너무나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시편기자도 자기의 힘이 쇠약하여 그리고 늙어서 더 이상 이용가치가 없을 때 하나님이 그를 버리시지는 않을까 염려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오늘날에도 돈이 없는 노인들은 이 집 저 집 자식들 눈치를 보며 옮겨 다니는 사람이 있고 그래서 형제간들끼리 서로 모시지 않겠다고, 또는 서로 모시라고 싸우며 언성을 높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돈이 많아 늙을 때까지 그것을 자식들에게 주지 않고 가지고 있는 노인들은 자식들이 서로 모시겠다고 싸우는 경우도 있습니다.

돈없는 부모가 병원에 입원하면 직장핑계, 사업 핑계로 병문안 한번 안오는 아들이 있는가 하면 돈 많은 부모가 병원에 입원하면 직장을 팽개치고 한 푼이라도 유산을 더 받으려고 아예 병원에서 자리를 잡고 사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고 합니다. 물론 이것은 우리 사회를 좀 부정적인 면에서 본 것입니다만 이러한 사람들의 생각이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그 영향을 끼치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의 관계나 계약은 상호 필요성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흔히 우리가 하는 대로 일반적인 생각을 가지고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보려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한 생각이 우리들에게 많은 염려를 가져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용할 가치가 있어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가치가 없을 때 버리시는 분이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확증하셨다고 말하며, 하나님은 인간의 생각하는 것이 악하고 그 안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않음을 아셨지만 우리를 위해 그의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필요할 때 우리를 만드시고 쓸모 없을 때 버리신다면 아직도 흙이 많은데 수많은 사람들을 더 만드실 수 있을 것입니다만 그분은 우리를 조건없이 사랑하셔서 우리 죄를 위한 대속물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다고 말하며 우리가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 오셨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에서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보면서 마음에 감동을 받습니다. “내가 너희를 무궁한 사랑으로 사랑한 고로····”( 31:3)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는 생각이라”( 29:11).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저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공의의 하나님이심이라 무릇 그를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도다”( 30:18).

여인이 어찌 그 젖먹이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49:15).

이스라엘아 돌아오라 나의 노한 얼굴을 너희에게로 향하지 아니하리라 나는 긍휼이 있는 자라 노를 한없이 품지 아니하느니라”( 3:12).

그는 너희 앞서 행하시며 장막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 행할 길을 지시하신 자니라”( 1:32).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 32:10).

이외에도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앞에 놓고 나의 노년에 하나님이 나를 버리시면 어쩌나 하고 염려하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입니다.

요셉이 그 형제들을 지극히 사랑하여 언제나 그들을 사랑으로 대했으나 그들은 야곱이 죽은 후 요셉이 자기들에게 보복하면 어떻게 하나 염려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요셉을 찾아와서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다 하라 하셨나니 당신의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의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50:15~17)라고 간청했습니다. 성경은 요셉이 이 말을 들었을 때에 울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아버지 때문에 요셉이 자신들을 사랑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르나 그들에 대한 요셉의 사랑은 조건적인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저도 때로 보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28:20)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10:28)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느니라”( 6:24~32)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을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7:11)는 말들을 앞에 놓고 시편기자처럼 하나님이 나를 버리실까, 다시는 그 은혜를 베풀지 아니하실까, 그 인자하심이 길이가 다하였는가? 그 허락을 영구히 폐하셨는가? 은혜 베푸심을 잊으셨는가? 노하심으로 그 긍휼을 막으셨는가?”( 77:6~9).

노년에도 하나님은 나를 버리지 아니하실까? 내가 병들어 전도하지 못하고 말씀 전하지 못할 때 내 허리가 구부러져 지팡이를 의지해야 할 때 하나님은 나를 버리시지는 않을까?”라고 생각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시편기자가 말한 것처럼 이는 나의 연약함이라”( 77:10)는 고백으로 끝나게 됩니다.

한 시편 기자도 내가 여려서부터 늙기 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37:25)라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신뢰하는 것을 봅니다.

우리가 우리의 노년을 위하여 보험을 들어야 하는지 아니면 들지 말아야 하는지 그것은 각자가 하나님 앞에서 알아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제게 있어 한가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서 레위 지파의 기업이 하나님이셨던 것처럼 저도 하늘에 노후보장을 위한 보험에 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때로 시편기자처럼 연약해 질 때에 우리의 노년이나 또 비오고 눈오는 날에 대하여 자신이 없을 때가 있지만 우리의 최후의 고백은 ····부족한 것이 없었더냐? 가로되 없었나이다”( 22:35). “ 40년 동안에(일생에) 너희를 인도하여 광야를(나그네 길을)동행케 하셨거니와 너희 몸의 옷이 낡지 아니하였고 너희 발의 신이 해어지지 아니하였느니라”( 29:5)가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들어있는 하늘나라의 보험 약관 하나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배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안겼고 태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품기운 너여 네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를 품을 것이라”( 46:3,4). 아멘.

 

(1993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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