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Recent Post

theWord Bible Software

Category

2013. 7. 30. 09:15 횃불/1993년

주의 만찬에 대하여

 

꼭 떡이나 잔에 대해 사례한 형제가 어디에 앉았든 간에 앞에 나와서 그 상징물들을 직접 건네주어야 할까요?”

 

제가 알기에 이 문제를 다루는 유일한 성경구절은 고린도전서 14:40 입니다. “모든 것을 적당하게 하고 질서대로 하라.” 이 구절은 앞의 26(“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과 함께 성도들이 집회소 내부 벽에 걸어두기를 좋아하는 구절입니다. 이 말씀들은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분명한 지침이 주어지지 않은 많은 세부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만찬상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거나 성도들 한 가운데 앉아있는 형제가 상징물을 취하기 위해 무리를 헤치고 나온다는 것은 위의 지침에 맞지 않는 듯 합니다. “질서대로”(in order)라는 표현은, 그런 상황에서는 편리한 위치에 있는, 그리고 동료 성도들의 신뢰와 존경을 받는 형제가 대신 나와서 상징물을 취할 수 있다는 의미를 시사해 줍니다.

 

사도행전과 그밖에 여러 곳에 떡을 떼다는 표현이 나오는데, 어느 것이 주의 만찬을 가리키고 어느 것이 그렇지 않은지 구분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어려움이 있다면, 그것은 다음 두가지 이유 중 어느 하나나 둘 모두에 기인합니다. 첫째로, 유대인의 일반적인 식사 방법에 따르면 으레 떡을 편리한대로 여러 조각으로 떼어놓고 식사를 시작합니다. 따라서 어떤 사람이 떡을 떼었다는 말은 단순히 그가 식사를 했다는 의미일 수 있습니다. 둘째로, 사도시대에 주의 만찬은 종종 성도들이 함께 교제하며 나누던 식사와 연관이 있었음이 분명해 보입니다. 따라서 떡을 떼다는 말이 음식을 먹는 것과 관련되어 있을 때는 주의 만찬을 의미하는지 일상적인 식사를 의미하는지 의문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사도행전 27:35, 주님께서 허기진 무리를 먹이시기 위해 떡을 떼신 것을 기록한 복음서의 구절들은 물론 의식에 대한 암시가 일절 없습니다. 저는 여기에 누가복음 24:30을 추가하고 싶은데, 비록 주님께서 떡을 취하여 사례하고 떼어서 두 제자들에게 주셨고, 그 때 그들의 눈이 그분을 알아보았지만, 그들은 이 일을 며칠 전에 제정된 만찬과 연관시킬 수 없었습니다. 그 당시는 사도들 외에 아무도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위 경우의 반대편에 우리는 사도행전 2:42, 20:7, 고린도전서 10:16 등을 놓을 수 있는데, 이 구절들은 주의 만찬을 가리킴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2:46 20:11이 남아 있는데, 이 두 구절에 대해서만 견해차가 있습니다. 두 구절은 각각 떡을 떼었다는 같은 표현이 앞에 나와 있는데 어떤 이들은 이 점을 들어 의식에 대한 암시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는 정반대의 결론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만일 일상적인 식사 외에 다른 아무 의미가 없다면 굳이 그 표현을 두번씩이나 따로 사용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그것이 단순한 식사를 가리킨다면 한번의 언급만으로도 족했을 것입니다.

사도행전 2:46, 성전 안에서는 다른 활동들은 가능했으나 떡을 떼는 일은 불가능했으므로 집에서 떼었음을 암시하는 듯 합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20:11은 대부분 고대 역본들에 의하면 앞에 관형어 가 붙어 있는 것으로 보아 7절과 관계가 있는 듯 보입니다. 이와같이 두 경우 모두 의식을 가리킨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 W. R

 

둘 이상의 잔을 사용하는 것은 비성경적이 아닐까요?”

 

비록 잔의 일체성이 그리스도의 보이지 않는 한 몸을 상징하는 백의 일체성(고전 10)과 같이 성경에 명시되어있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그것은 항상 그 잔”(the cup)-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하는 독특한 용기(容器)-으로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떡의 경우에도 참석한 각 사람에 의해 떼어짐으로 떡의 외적인 일체성은 보존되지 않습니다. 물론, 떡에 대해 감사한 형제가 그것을 떼어 편의상 여러 그릇에 나누기 전에 그것은 한 떡이므로 몸의 일체성에 대한 상징적 의미는 전혀 훼손되지 않습니다.

잔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잔도 원래 한 용기에서 편의상 여러 잔으로 부어지므로 여전히 한 잔입니다. 그러나 소위 각각의 참여자를 위한 각 잔이란 것이 도입되어 용기 자체가 많아질 때는 잔의 일체성이 완전히 상실되고 교제의 개념이 방해를 받습니다. 따라서 만찬예식을 실행할 때는 편의상 둘 이상의 잔을 준비하더라도 포도주를 하나의 용기에 담아둠으로써 그 잔”-그리스도의 피 -에 참여하는 의미를 살려야 할 것입니다. - W. H.

 

지역 교회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적은 신자들의 무리가 주님을 기억하기 위해 주의 첫째날에 함께 모이는 것은 성경적일까요?”

 

이 점에 대해서 제가 깨달은 바로는 주의 만찬은 우선적으로지역 교회의 예식으로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할 때마다(자주)”란 표현(고전 11:26)은 이 예식의 적용범위를 넓혀주는 듯 합니다. 한 예로, 일부 지역교회에서는 아침에 참석할 수 없는 성도들을 위해서 저녁에 떡을 떼고 있는데, 저는 이것이(비록 성경에 그런 예가 없지만)주님의 의도를 벗어났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주의 만찬을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그곳에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에서 떼어놓을 수 있을까요? 우리는 이 말씀이 교회의 모임만을 가리킨다고 추론할 수 있으나, 사실 그것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지역교회가 없는 곳에서 몇몇 주님의 백성들이 주일마다 함께 모여 떡을 떼는 모임에 참여하는데 아무 거리낌이 없습니다. 여러 해 전에 저는 중앙 아프리카의 밀림 속에서 단 크로포드(Dan Crawford)와 둘이서 주님을 기념했습니다. 그 때 우리는 문명사회에서 동떨어진 곳을 여행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상황 때문에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다는 식의 논리로 어떤 행동을 정당화해서는 안되겠지만, 기록된 말씀보다 더 지혜로우려 하는 것은 보다 더 큰 위험을 자초하는 것입니다.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할지니라”( 14:5)

 

주의 만찬은 장래 일의 그림자일까요? 다시 말해서, 그것은 우리가 그분과 함께 참예할 주님의 천상 잔치를 예표하는 것일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그것을 현재에 국한시킵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전하는 것이니라”(고전 11:26). 고린도전서 5장에서 우리는 그러므로 우리가 명절(잔치)을 지키되····라는 말씀을 볼 수 있으나 그 앞에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는 말씀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아울러 이 구절은 유월절에 따르는 누룩없는 떡의 잔치를 가리키는 것으로, 하나님의 자녀에 합당한 거룩한 삶을 살 것을 교훈해 줍니다. -W. H.

 

(1993 11월호)

 

'횃불 > 1993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0) 2013.07.30
거룩한 산 제사(2)  (0) 2013.07.30
노후 보장  (0) 2013.07.30
자기 정죄에서의 해방  (0) 2013.07.30
버림받은 남편(2)  (0) 2013.07.30
단 풍  (0) 2013.07.30
어떤 자매님의 눈물  (0) 2013.07.30
요한계시록 강해(10)  (0) 2013.07.30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