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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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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9. 2. 17:32 횃불/1994년

나실인의 서원(1)

도날드 로비

이 글은 1994년 노량진교회에서 강연한 내용을 지면에 옮긴 것입니다.

 

여러분과 함께 하게 되어 대단히 기쁩니다. 제가 한국에 방문한 것은 4년 전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많은 즐거운 추억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순결한 생활, 거룩한 생활은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사는 사람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본문 말씀은 민수기 6 1절로 8절에 있는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남자나 여자가 특별한 서원 곧 나실인의 서원을 하고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거든 포도주와 독주를 멀리하며 포도주의 초나 독주의 초를 마시지 말며 포도즙도 마시지 말며 생포도나 건포도도 먹지 말지니 자기 몸을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에는 포도나무 소산은 씨나 껍질이라도 먹지 말지며 그 서원을 하고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은 삭도를 도무지 그 머리에 대지 말 것이라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는 날이 차기까지 그는 거룩한즉 그 머리털을 길게 자라게 할 것이며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는 모든 날 동안은 시체를 가까이 하지 말 것이요 그 부모 형제 자매가 죽은 때에라도 그로 인하여 몸을 더럽히지 말 것이니 이는 자기 몸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표가 그 머리에 있음이라 자기 몸을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 그는 여호와께 거룩한 자니라.”

 

이것을 가리켜서 나실인의 서원이라고 합니다. 히브리어의 나실인이라는 말씀의 뜻은 성별한다, 분리한다는 뜻입니다. 오늘날 이 분리라는 말을 들을 때 보통은 부정적인 의미에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와같은 분리를 얘기할 때 당신은 참으로 율법적이고 편협적이다는 평을 하곤 합니다. 다시 말하면 이 세상의 많은 쾌락을 다 거부하고 산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정적인 생각으로 매우 편협한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이 분리라는 말을 그렇게 듣기 좋은 말로 생각지 않습니다.

저희 동네에 한국 사람이 살고 있는데 그 사람은 빠를 경영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 우리 모임에 나오고 있는 한국 대학생에게 그 모임에 나가서는 안된다고 충고했습니다.

그는 대학생에게 우리 교회에 나오라. 우리 교회에 나오면 술도 자유롭게 마실 수 있고 마음대로 행할 수 있으니까, 우리교회에 나오는 것이 좋을 것이다이렇게 충고했습니다.

이와 같은 생각이 오늘날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습니다. 비록 여러분이 주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믿을지라도 네 자신의 생각대로 살아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너무 극단적이 되지 말고 또 광신적이 되지 말라고 충고하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이 분리라는 말 자체는사람들에게 그렇게 인기있는 말이 아닙니다.

저는 먼저 이 분리를 하나님께 대한 분리 혹은 하나님께 대한 성별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여기에 남자나 여자가 특별한 서원 곧 나실인의 서원을 하고자 할 때 이렇게 하라고 하나님께서 명하셨습니다. 이것은 남자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닙니다. 남녀에게 동일하게 적용이 되는 말씀입니다. 자기를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입니다. 성별이라고 말할 때 이것은 매우 적극적인 일로써 하나님 앞에 우리 자신을 바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여기 어떤 사람이 내가 이 기간 동안 하나님 앞에 내 자신을 온전히 드리겠다고 서원하는 것입니다. 이 서원은 일정한 기간, 몇 주 동안이라든지 몇 달 동안 하는 서원입니다. 그러나 이 서원의 정신은 그의 일생을 통해서 지속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는 주님 앞에 성별된 사람입니다.

저는 구별의 문제를 결혼과 관련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남자나 여자 청년은 자신의 상대를 찾기 위해서 주위를 바라볼 자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 청년이 많은 여자들을 바라보면서 내가 저 여자와 사귀어 보겠다 이런 생각을 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허용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결혼 서약을 한 후부터는 다른 여자들을 쳐다보는 이 행동이 중단되는 것입니다. 이제 결혼하겠다고 약속한 그 사람은 저들과 구별되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그 백성에게 그와 관련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과 관련해서 에스겔서 16장을 찾아보겠습니다. 1절로 14절의 말씀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예루살렘으로 그 가증한 일을 알게 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네 근본과 난 땅은 가나안이요 네 아비는 아모리 사람이요 네 어미는 헷 사람이라 너의 난 것을 말하건대 네가 날 때에 네 배꼽줄을 자르지 아니하였고 너를 물로 씻어 정결케 하지 아니하였고 네게 소금을 뿌리지 아니하였고 너를 강보에 싸지도 아니하였나니 너를 돌아보아 이 중에 한 가지라도 네게 행하여 너를 긍휼히 여긴 자가 없었으므로 네가 나던 날에 네 몸이 꺼린 바 되어 네가 들에 버리웠었느니라 내가 네 곁으로 지나갈 때에 네가 피투성이가 되어 발짓하는 것을 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라 다시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라 하고 내가 너로 들의 풀같이 많게 하였더니 네가 크게 자라고 심히 아름다우며 유방이 뚜렷하고 네 머리털이 자랐으나 네가 오히려 벌거벗은 적신이더라 내가 네 곁으로 지나며 보니 네 때가 사랑스러운 때라 내 옷으로 너를 덮어 벌거벗은 것을 가리우고 네게 맹세하고 언약하여 너로 내게 속하게 하였었느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물로 너를 씻겨서 네 피를 없이 하며 네게 기름을 바르고 수놓은 옷을 입히고 물돼지 가죽신을 신기고 가는 베로 띠우고 명주로 덧입히고 패물을 채우고 팔 고리를 손목에 끼우고 사슬을 목에 드리우고 코고리를 코에 달고 귀고리를 귀에 달고 화려한 면류관을 머리에 씌웠나니 이와 같이 네가 금, 은으로 장식하고 가는 베와 명주와 수놓은 것을 입으며 또 고운 밀가루와 꿀과 기름을 먹음으로 극히 곱고 형통하여 왕후의 지위에 나아갔느니라 네 화려함을 인하여 네 명성이 이방인 중에 퍼졌음은 내가 네게 입힌 영화로 네 화려함이 온전함이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것은 우리 주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만나시는 아주 놀라운 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이스라엘 백성을 묘사하기를 너희는 태어날 때에 버리움을 당한 어린 아이와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광야에 버려서 죽도록 버려진 자와 같다고 묘사하셨습니다. “내가 네 곁을 지나가다가 네 가엾은 모습을 보고 내가 너를 돌아봤다.” 그리고 자기 백성을 자라나는 소녀로 묘사하셨습니다 네가 자라매 내가 너를 내 곁으로 보호하고 또 내가 너와 언약하기를 너는 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씻기고 또한 너에게 옷을 입혔노라, 또한 많은 패물을 주었다, 내가 모든 면으로 너를 돌봐주었다, 네 명성이 이방인 중에 퍼졌던 것은 네가 화려한 모습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어찌할 수 없는 형편없는 상태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만나주시는 모습을 묘사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맨 처음에 그를 사랑의 돌봄으로 돌보시는 것입니다. 또한 그 사람과 약속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도 우리에게 똑같이 행하십니다.

요한일서 4장에 있는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요일 4:7~l 0).

 

우리가 사랑 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요일 4:19).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어떠한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관계에 있어서 하나님은 먼저 우리를 찾아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묘사할 때 내가 너를 처음 봤을 때 너는 광야에 버려진 어린 아이와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도 너를 돌보지 않았으면 너는 벌써 죽었을 것이다.” 여기에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나타났고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이끄셨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죽어가고 있었고 우리는 멸망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도 소망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무관심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우리 마음대로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도움이 필요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찾아 만나 주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하는 동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저는 사람들에게 왜 하나님을 사랑해야 되겠느냐고 질문합니다.

저희 동네 한 부인이 말하기를 하나님이 나한테 한 일이 하나도 없는데라고 말했습니다. 이 부인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해서 베푸신 이 모든 은혜에 대해서 온전히 눈이 멀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녀의 현생을 생각할 때도 하나님이 놀라운 인자를 베푸셨는데도 말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이 우리에게 나타나서 우리로 하여금 회개케 한다고 사도 바울이 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분의 선하심과 우리의 필요를 공급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회개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마음을 감동하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을 우리를 위해 희생시키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십자가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이끄는 위대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고 말씀했습니다. 십자가가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 앞으로 이끌어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십자가의 이야기를 잘 아실 것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한 강도가 그 옆에서 십자가에 달려 있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이 두 사람이 처음에는 우리 주님에게 욕을 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마음이 굳은 사람들이 고약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사형 당하는 것은 그들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 옆에서 죽는 분에 대해서 욕을 할 정도로 그 마음이 굳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향해서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거기에서 내려오고 우리도 내려달라고 얘기했습니다.

우리는 당신을 믿지 못한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당신은 거짓말장이다. 당신의 주장이 진실이라고 우리는 믿지 않는다. 당신이 죽는 것은 우리와 똑같은 이유로 죽는 것이다. 당신도 힘이 없다. 당신이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말하면서 이제 죽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당신이 누구를 도울 수 있겠는가?’

그런데 그 중에 한 강도는 마음에 크게 감동을 받고 돌이켰습니다. 강도가 예수님이 돌아가시는 모습을 보았을 때 참 놀라운 일이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입술로부터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가 하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하는 이 기도가 흘러나오는 것을 거듭거듭 듣게 되었던 것입니다.

또한 그 강도가 주님을 바라보았을 때 주님의 양손과 양 발과 옆구리에서 피가 흘러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굉장한 고통 중에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또한 돌아가시는 중에 사람들에게 조롱과 조소를 당하고 계셨습니다. 또한 사람들의 침 뱉음을 당하시고 가시관을 쓰시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중에서도 주님은 그의 원수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강도가 주님이 한 말을 믿는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주님의 사랑을 강하게 깨닫고 있었습니다.

그 강도는 무지와 혼동 속에서 살아왔었습니다. 그는 죽는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아들을 조롱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조롱받은 이분은 자기를 사랑하셨습니다. 주님의 사랑의 음성을 들었을 뿐만 아니라 이 구주의 눈 속에 있는 사랑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성경이 말씀하시기를 그가 예수님을 향했다고 했습니다. 첫번째로 그 강도는 저쪽에 있는 다른 강도를 향해서 네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느냐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행한 바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어늘,” 이것이 회개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그렇게 느껴보신 적이 있습니까?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하나님 앞에서 느껴본 적이 있습니까? “나는 하늘 나라에 갈 권리가 없는 사람이다. 나는 죄 용서를 받을 권리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나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기에 마땅한 사람이다.” 이렇게 이야기 하기가 쉬운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다 우리를 변명하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행동을 변명하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정죄하지만 우리 자신은 변호하기를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강도가 회개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고는 구원은 없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은 내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실제 그들의 삶은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어떻게 하면 기쁘시게 하는지 생각하지 않으면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저도 과거에 그렇게 산 사람입니다. 또 교회를 다녔지만, 또한 저도 주기도문을 외우고 사도신경을 암송했지만 저는 하나님께 반역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교회라는 곳은 그저 일요일 한 시간 동안 가는 곳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 다음 시간은 내가 원하는 대로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하나님은 저에게 어떻게 살 것을 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 강도같이 반역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강도는 주님을 향해서 말하기를 주여 당신의 나라에 임할 때 나를 생각해 주십시오하고 애원했습니다. 이 강도는 하나님의 사랑이 그의 마음을 이끌고 있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는 믿음으로 주님을 향해서 부르짖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심의 사랑이 여러분의 마음을 이n는 것을 경험해 본 적이 있습니까? 또한 그 사랑에 여러분의 마음을 드려 본 적이 있습니까? 구원받을 때 이와같은 현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저 어떤 단순한 외적인 것이 아닙니다. 어떠한 외면적인 의식을 통과하는 것이 아닙니다. 손을 들고 이제 예수님을 믿겠습니다하는 이러한 것이 아닙니다. 또한 세례를 받고 교회에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에 달린 그 강도는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한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는 세례를 받은 적도 없고 또한 성찬에 참여해 본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그 강도를 향해서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 사실을 볼 때 놀랍지 않습니까? 이모든 사실이 강도의 마음 속에 일어났던 것입니다. 거기에 회개가 있었고 거기에 진실한 믿음으로 주님께로 향하는 일이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이 그를 이끄셨던 것입니다. 만일 주 예수님이 그를 배척한다고 생각했다고 할 것 같으면 그는 주님에게로 마음을 돌이키지 않았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를 도우실 것이라고 믿지 않았으면 그는 주님께로 마음을 돌이키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죽어가는 사람을 찾아가서 우리를 도와 달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면했지 우리가 그들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그 죽어가는 강도가 그와같이 했다는 것은 놀라운 믿음을 가졌다고 하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와같은 일을 해 본 적이 있습니까? 주 예수님의 사랑에 응답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이것이 우리의 마음을 감동하고 우리의 마음을 이끄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주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하나님 앞에 올바르지 못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유아 세례를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저의 부모님이 저를 교회로 데리고 가서 목사님이 제 머리에 세례 물을 끼얹었습니다. 그때 교회는 저한테 당신이 이제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하는 증서를 주었습니다. 첫째로 저는 어린 아기였기 때문에 이 모든 사실을 알 길이 없었습니다. 사실 물을 끼얹을 때 제 마음이 불편했을 겁니다. 그리고 제가 그것을 믿음으로 한 것이 아니었으니까요. 복음을 들은 적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구원받은 그날 오후에 저는 복음을 들었습니다. 저는 그때 하나님이 제가 죄인인데도 불구하고 저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저를 위해 죽으실 만큼 사랑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오후에 저는 눈물을 흘리면서 주님의 사랑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때 저는 주님 앞에 성별된 사람, 구별된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주님께 처음으로 마음을 돌이켜 주님에게 돌아왔을 때, 그때가 처음으로 여러분이 주님 앞에 구별된 때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하나님의 사랑의 이끄심을 받아서 주님 앞에 구별된 사람이 된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가 너와 언약을 세웠다고 말씀하셨는데 우리에 게도 똑같이 주님께서는 언약하신 것입니다. 이 언약, 약속을 할 때 여러분은 약속하는 사람과 언약하는 것입니다.

제가 제 아내에게 결혼하자고 청혼했을 때 저는 다른 모든 여자들로부터 구별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선택의 문제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 대해서도 똑 같은 선택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선택하노라. 나는 네가 내 것이 되기를 바란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제 아내를 만나서 내 아내가 되어 달라고 청혼했습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당신과 결혼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제 아내가 응답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에 어떻게 응답해야 되느냐 하는데 대한 좋은 실례가 됩니다.

우리 죄인도 그와 같은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우리를 찾아 주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사랑에 응답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감동해서 주님 앞에 구별되기를 원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거룩히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주님 앞에 구별된 자가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1994 5월호)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