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Recent Post

theWord Bible Software

Category

2013. 9. 11. 10:48 횃불/1994년

요한계시록 강해(17)

11

- 어거스트 반린 -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되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저희가 거룩한 성을 마흔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11:1,2).

 

성전과 제단이 척량됩니다. 이러한 척량은 소유물을 취할 목적으로, 혹은 의도된 파괴를 피할 목적으로 과거에 시도된바 있습니다. 이것은 여기 지상의 문자적인 성전에서 있을 유대인의 예배를 가리키므로 교회는 더 이상 지상에 없음이 분명합니다. 우리는 이 성전이 믿지 않는 이스라엘인에 의해 장래에 세워질 것을 성경을 통해 알게 되는데, 하나님은 여기서 그 성전을 인정하시고 그 참된 경배자들을 주목하십니다.

성전 밖 마당은 이방인에게 주어진 것으로 그들이 밟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에게 등을 돌린 이스라엘이 처음에는 짐승의 보호를 받다가 후에 이방인의 압제 아래 넘어갈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계시록의 남은 장들이 밝히 보여주듯이, 이스라엘 백성은 3년 반 동안 짐승에게 핍박과 압제를 받을 것입니다. 다니엘서뿐 아니라 마태복음에서도 볼 수 있듯이, 예루살렘에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세워질 것이며, 큰 환란의 두려운 날이 그 가련한 이스라엘 민족에게 임할 것입니다.

본문은 유대 민족이 환란이 시작되기 전에 예루살렘에 성전을 세울 것을 암시합니다. 이제까지는, 비록 그것이 속히 발전될 수 있으리라 확신하지만, 그러한 계획에 대한 아무 암시도 없습니다. 현재 장소는 이스라엘 수하에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기 하나님의 말씀이 보여주듯이 언젠가는 그 일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우리는 중요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모쪼록 그분의 하늘 신부인 우리가 우리의 복스런 주님을 전하는데 힘쓰고 그분이 오셔서 우리를 본향에 데려가실 날을 날마다 고대하며 살 수 있기를!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저희가 굵은 베옷을 입고 일천이백육십 일을 예언하리라”(11:3).

 

본장에는, 계시록에서 처음으로 큰 환란의 기간이 주어져 있습니다. 11장에서 4, 12장에서 1, 13장에서 1번 우리는 그것이 삼년 반 동안 지속된다는 사실을 대합니다. 그것은 42개월(11:2), 1260(11:3), 삼년 반(11:9), 한때 두때 반때(12:14) 등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다니엘은 그의 기념비적인 예언기록에서(9:24~27) 이 삼년반의 의미를 설명합니다. 69이레 마지막에(1이레는 7년을 가리킴) 메시아가 죽고 예루살렘이 황폐되고 이스라엘 백성이 고토에서 쫓겨나 흩어질 것이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이 모든 일이 1900여년 전에 이루어졌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의 신분에서 밀려났으며 하나님의 천상백성인 교회가 이 은혜 시대 동안 하나님의 계획으로 나타났습니다. 유대인과이방인이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십자가로 한 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영원히 제쳐진 것이 아닙니다. 인젠가 소생할 로마 제국에 의해 한 이레, 혹은 7년 동안 이스라엘과 한 언약이 맺어질 것입니다. 7년의 중간에 멸망의 가증한 것이 예루살렘에 세워질 미래의 성전에 세워질 것이며 그와 더불어 유대인에 대한 무서운 핍박이 시작될 것입니다. 이것이 본 장이 지금 다루는, 대 환란으로 잘 알려진 후 삼년반의 일입니다. 이것이 예레미야 30:7에 언급된 야곱의 환란의 때입니다(물론 이스라엘의 대적도 응당한 징벌을 결단코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는 이 땅의 주 앞에 섰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니”(11:4)

 

4절은 스가랴 4장과 직접적으로 연결됩니다. 스가랴 4 14절은 그들에 대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기름 발리운 자 들이니 온 세상의 주 앞에 모셔 섰는 자니라.” 본문에서 그들은 삼년반의 이스라엘의 환란기 동안 예언을 하는 하나님의 두 증인으로 불리웁니다. 이 두 사람이 베옷을 입은 까닭은 그 때 이스라엘이 악하게 하나님을 떠난 일과 메시아를 십자가에 못박은 일로 인해 고난을 당하고 있기 때문임이 분명합니다. 배도한 이스라엘이 징벌을 당하는 동안 그들 중 참으로 하나님께 돌아온 자들은 성령의 능력으로 살고 있으며(감람나무비유에서 암시되어 있듯이), 어두움 속에 빛을 가져오는 촛대의 비유에서 암시되어 있듯이 그들의 하나님을 충성스레 증거하고 있습니다. 비록 하나님의 뜻과 목적대로 그 증거가 온전히 성취될 때까지 하나님을 위한 그들의 증거가 방해를 받지 않을 것이지만, 그 일을 위해 그들은 고난을 당할 것입니다.

믿지 않는 이스라엘은 본 장 1,2절이 밝히고 있듯이 예루살렘에 그들의 성전을 다시 세울 것입니다. 처음에 유대인들은 짐승의 보호 아래 그곳에 들어가 경배를 드릴 것이나, 대환란 동안은 그러한 보호가 철회되고 이스라엘의 대적들이 그들의 거룩한 도성을 짓밟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분 자신과 그분의 권리에 대한 증거를 폐하지 않을 것이며, 그들의 사역이 완수될 때까지 그분의 증인들을 독특한 방법으로 보호하실 것입니다.

 

만일 누구든지 저희를 해하고자 한즉 저희 입에서 불이 나서 그 원수를 소멸할지니 누구든지 해하려 하면 반드시 이와 같이 죽임을 당하리라 저희가 권세를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 오지 못하게 하고 또 권세를 가지고 물을 변하여 피 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5,6).

이 두 증인이 누구일까요? 6절 전반부는 엘리야와, 후반부는 모세와 관련있는 표현임이 분명합니다. 이런 이유에서 어떤 이들은 이 두 증인이 모세와 엘리야라고 믿는데 이는 불합리하다고 생각됩니다. 엘리야는 이 땅에서 다시 죽기로 되어 있었다면 죽지 않고 하늘에 올리우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것은 제가 믿기에, 단순히 이 두 증인의 증거는 모세와 엘리야의 경우처럼 이적과 대적에 대한 심판이 수반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져내어 약속의 땅으로 인도한 지도자인데 비해, 엘리야는 그 민족을 하나님께 대한 참 예배로 회복시킨 자였습니다. 이 두 가지 목적이 그 날에 모두 다시금 성취될 것인데, 이는 이스라엘이 고토로 인도되고 주님께 대한 참 예배로 회복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이 두 증인에게도 마찬가지 사역이 맡겨질 것이기에 이렇게 모세와 엘리야와 관계된 표현이 사용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두 사람은 누구일까요? 만일 그들이 실제로 두 사람이라면 우리는 물론 그들이 누구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 두 사람은 그 당시 두드러진 인물일 수도 있지만, 저는 그보다는 두 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증참케 하라는 말씀대로 유력하고 온전한 증거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그들의 시체를 사흘 반 동안 목도할 것입니다. 만일 이 두 사람이 문자 그대로 두 사람이라면 그들의 시체가 예루살렘에 사흘 반 동안 놓여있을 것이라는 기록은 불합리하게 보입니다. 그들의 시체가 예루살렘에 있을 기간을 언급한 목적은 무엇일까요? 반면에, 만일 석달 반, 1260일 둥과 같은 언급들과 관련하여 매우 논리적이라 여겨지듯이, 그것이 삼면 반의 대환란 기간을 가리킨다면, 그렇다면 모든 것이 분명해집니다. 그것은, 전체 환란기 동안이 유대인 증인들(당시에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모든 유대인들을 가리킴)

 

저희가 그 증거를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저희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저희를 이기고 저희를 죽일터인즉”(11:7).

여기 17절에 계시록 전체에 걸쳐 36회나 나오는 두려운 존재, “짐승에 대한 첫 언급이 있습니다. 그는 36, 혹은 6×6회 언급되어 있으며, 그 수는66입니다(13:8). 비록 이곳이 그가 무대에 등장하는 첫 장면이지만, 그는 잘 알려진 자 인양 자연스럽게 거명(擧名)되며, 사실 그는 그러합니다. 다니엘은 오래 전에 그에 대해 묘사했습니다( 7:7). 13:1에서 그는 바다에서 나오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비해 여기서는 무저갱에서 올라오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의 역사적인 등장은 인간적이고 이방적(그가 성경에서 항상 이방 열국을 상징하는 바다에서 나오므로)인데 비해, 그의 영적인 등장은 사단적(무저갱에서) 입니다.

본문과 13:7을 비교해 볼 때, 제가 믿기에, 우리는 이 두 증인이 실은 둘 이상이라는, 다시 말해서 그들이 대환란 동안의 모든 유대인 순교자들을 가리킨다는 저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확실한 논거를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는 본장 12절에서 그들이 하늘로 올리워가는 것을 보며, 그 다음에 그들이 하늘에 있는 것을 보며(15:2,3), 그리고 그들이 영광 중에 앉아 있는 것을 봅니다(20:4) 본 장에서는 그 짐승이 이 두 증인을 이기고 죽였다고 말하는데 13:7에서는 그가 분명 둘보다 훨씬 수가 많은 하나님의 성도들을 이겼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그들이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리워갔고 그 원수들은 놀라움 속에 구경했다고 한 12절을 통해 더욱 확증됩니다. 제가 보기에 이 두 사람은 마지막 날에 세상에 전파될 하나님의 증거의 온전함으로 보는 것이 다른 곳의 기록들과 한결 일치됩니다.

그들은 결국 순교를 당하지만, 하나님을 위한 그들의 증거는 그 대적들에게 치명적인 손상을 입힙니다. 그들은 모세와 엘리야처럼 대적들을 멸할 권세를 가지며, 여기에 아마도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불에 의해 암시된 듯한,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그들의 멧세지의 저주하는 힘이 더해질 것입니다.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무서운 불과 같은데, 부자가 음부에서 후회하며 그 사실을 증거한바 있습니다( 16).

 

저희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저희 주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곳이니라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그 시체를 사흘 반 동안 목도하며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하리로다 이 두 선지자가 땅에 거하는 자들을 괴롭게 한고로 땅에 거하는 자들이 저희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 하더라”(11:8~l 0)

이 성도들의 시체가 예루살렘 길가에 놓인 삼일 반은 삼년 반 동안의 대 환란기와 일치하며, 그 전 기간 동안 그 유대인 순교자들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충성으로 인해 죽임을 당할 것입니다. 그 수는 아마도 수만을 헤아릴 텐데, 이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대적들이 그 때에 하나님을 상기시키는 모든 이들을 극도로 증오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증인들이 대적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생각나게 한다는 사실은, 그 증인들이 땅에 거하는 자들을 괴롭게했다는 10절 후반부의 기록 속에 암시되어 있습니다. 전에 언급했듯이 본서에서 땅에 거하는 자들이란 표현은 짐승과, 그 때에 지금처럼 하나님께 속한 모든 이들을 증오하는 적그리스도를 경배하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진리의 전파가 그들에게 괴로움으로 여겨진다는 것은 얼마나 당황스런 일인지요!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를 거절하는 영혼에게 분명하고도 꾸밈없는 하나님의 진리보다 더 마음을 괴롭히는 것은 없습니다. 신자에게는 하나님을 뵙고 그 음성을 듣는 것이 가장 감미로운 음악과도 같은데 비해 악한 죄인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목전에서 얼마나 괴로워하게 되는지! 확실히 14:10에 나오는 영원한 괴로움은 그리스도 안의 하나님의 온전한 사랑을 거절하는 영혼들이 영원히 당하게 될 고통을 포함합니다. , 저들이 장차 올 진노에서 피할 수 있기를!

 

삼 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저희 속에 들어가매 저희가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있어 이리로 올라오라 함을 저희가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저희 원수들도 구경하더라 그 시에 큰 지진이 나서 성 십분의 일이 무너지고 지진에 죽은 사람이 칠천이라 그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여 영광을 하늘의 하나님께 돌리더라 둘째 화는 지나갔으나 보라 셋째 화가 속히 이르는도다”(11:11 ~l 4)

우리는 20:4에서 이 동일한 휴거된 성도들을 봅니다. 그들은 짐승이나 그 상()에게 절하지 않은 자들이요, 하나님께 대한 충성으로 인해 죽임을 당한 자들이요, 그로써 첫째 부활의 마지막 단계에 참예한 자들입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첫째 부활은 신자들만 참예하는 것으로 성경에 적어도 네 단계로 나타나 있습니다.

첫째로, 그리스도 자신-고전 15:23

둘째로, 마태복음 27:52~63의 성도들

세째로, 교회와 창세 이후 죽은 모든 성도들-살전 4:16

끝으로, 대환란기의 이 유대인 순교자들.

분명 주님께서 본향으로 우리를 부르실 때의 휴거는 비밀한 사건이나, 여기 본문에 나오는 승천은 그 대적들에 의해 목격됩니다. 그리고 그들이 영광의 구름 속에 하늘로 올리워가는 이 엄청나고 절정적이고 충격적인 기적이 대적들로 두려움과 놀라움에 사로잡히게 합니다. 이 성도들의 휴거와 더불어 큰 지진이 일어나며(우리 주님의 부활시처럼), 이 순교자들의 축복과 그들을 핍박하던 자들의 처참한 운명이 좋은 대조를 이루는데, 이는 오늘날 매우 불공평해 보이는 모든 일들을 최종적으로 바로잡는 대 역사일 것입니다. 이 성도들은 이리로 올라오라는 초청을 듣는데, 이는 4:1에 상징적으로 나타나 있듯이 교회가 휴거시에 그러한 음성을 듣는 것과 같습니다. 이제 마지막이 거의 이르렀으며, 일곱째 나팔과 함께 그분의 큰 승리와 영광의 때가 이르럽니다.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가로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하니 하나님 앞에 자기 보좌에 앉은 이십사 장로들이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가로되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 노릇 하시도다”(11:15~l 7).

이 일곱째이자 마지막 나팔과 더불어 우리는 어린양의 진노의 큰 날의 마지막이 이르며, 이제 모든 시간과 영원이 대망하던 그 시간-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통치의 때-이 이르렀습니다. 모든 선지자들이 이제 매우 임박한 그 영광스런 날에 대해 기록하고 꿈을 꾸었습니다. 사람의 손에 의하지 않고 뜨인, 다름아닌 우리의 복스런 주님을 상징하는 다니엘 2:34의 큰 돌이 다른 모든 나라들을 분쇄할 것이며, 그분의 나라가 온 땅에 충만할 것입니다. 이 왕께서 의와 완전한 사랑으로 다스리시는 그 날은 얼마나 놀라운 날이 될 것인지! 정의와 거룩, 자비와 사랑이 오늘날 그토록 풍랑으로 요동하며 형언할 수 없는 두려움으로 가득한 세상을 다스리는 그 날은 얼마나 놀라운 날이 될 것인지!

본문의 이십사 장로들에게서 볼 수 있듯이 이제까지 이 땅의 모든 두려운 일들을 하늘에서 목격하며 놀라고 있던 하늘 성도들이 이제 하늘에서 하나님께 경배드리며 환희와 경배와 찬양 속에 이렇게 외치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닙니다: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노릇하시도다!” 비록 다스리시는 분이 그리스도로 언급되어 있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에 사람들이 멸시하고 비웃던 분, 그러나 하늘 성도들이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로 선포하는 분, 그리고 그들이 그 앞에 얼굴을 대고 그 거룩하신 이름을 경배드리는 분께 대한 또 하나의 성경적인 찬사가 있습니다.

 

이방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임하여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무론 대소하고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주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로소이다 하더라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과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11:18,19).

18절에는, 비록 제가 알지 못하는 어떤 이유에서 연대적인 순서는 주어지지 않았지만 그리스도-의로운 왕-의 의무와 권리들이 열거됩니다. 먼저 열방의 악함이 나오며, 그 다음에 환란 동안 쏟아 부어지는 그분의 진노가, 그리고 천년 후에 우리가 아는 대로 죽은 자들이 심판 받는 백보좌 심판이, 그리고(이 단계에서 이미 발생한) 그리스도의 심판대가,그리고 끝으로 그분의 재림시의 그 대적들의 운명으로 여겨지는 상황이 나옵니다. 이 모든 일들이 그분의 손 안에 있습니다. 그분은 심판과 보상을 모두 주관하십니다. 무론대소하고 모든 이들이 계시록 20장에 나타난 대로 그들의 죄에 대한 심판을 받기 위해 심판의 보좌 앞에 설 것인데 비해, 여기서는 무론대소하고 모든 이들(물론 성도들을 가리킴)이 보상을 받을 것입니다. 그분께서 자신에 대한 참 헌신의 지극히 작은 부분부분을 인정하시고 그 날에 보상하신다는 것은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이 슬프고 사악하고 불공평한 세상이 그분에 의해 바로잡아지며, 그분께서 완전한 공의로 다스리신다는 것을 아는 것은 얼마나 신자의 마음을 고무시키는지! 이로 인해 우리 모두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마지막 절의 성전은 분명 상징어인데, 이는 하늘에는 성전이 없다고 후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의 의미는, 모든 것을 통해서 하나님은, 조상들에 대한 무조건적인 약속에 기초하고 언약궤 위의 시은좌에 뿌려진 피-그리스도의 흘려진 피를 상징-로써 확증된, 이스라엘과 그분과의 언약을 기억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그것은, 그분의 모든 섭리는 우리의 보배로운 구주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에 근거한다는 것을 의미해 줍니다. 죄인들에 대한 심판과 성도들에 대한 보상, 이 모든 것이 갈보리에서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1994 6월호)

 

'횃불 > 1994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물 중심 성경공부-베드로  (0) 2013.09.11
선교사  (0) 2013.09.11
영국을 다녀 와서(2)  (0) 2013.09.11
나아만 장군을 통한 교훈  (0) 2013.09.11
요한계시록 강해(16)  (0) 2013.09.11
그리스도의 현재사역(3)  (0) 2013.09.02
긍휼과 제사  (0) 2013.09.0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0) 2013.09.02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