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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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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9. 11. 10:50 횃불/1994년

영국을 다녀 와서(2)

 

스코틀랜드 방문에 앞서 서울에서 막 도착한 병은 형제와 또 우리를 맞으러 나온 보이드 에이킨 형님 내외분과 전날 도착한 나는 런던 히드로 공항에서 반갑게 만나 서로 포옹의 인사를 하고 곧바로 에이킨 형님의 스테이션 왜곤 승용차로 「에코스 오브 서비스」(Echoes of Service), 우리 말로 번역하면 「봉사의 메아리」라고 하는 선교부 사무실이 있는 배쓰(Bath) 시를 향해 떠났다.

이날로부터(2 10) 스코틀랜드를 떠나 북아일랜드로 갈 때까지(2 21) 에이킨 형님이 내내 우리 일행을 안내해주었는데 얼마나 치밀하게 우리의 방문을 위해 계획을 세우고 준비를 하였는지 우리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에이킨 형님은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1950년대에 선교사로 동남아에 와서(보르네오, 대만을 거처 현재는 홍콩에서 주님을 섬기고 있음) 근 사십여 년간 선교를 하고 있는 분인데 1990년 싱가폴 국제 수양회를 통해 우리 한국 성도들에게 알려진 분이다(당시 국제수양회 주강사). 이것이 인연이 되어 우리 한국 모임들을 두 차례 방문하면서 한편으로는 그의 능한 가르침을 통해 우리들의 믿음에 많은 유익을 끼쳤는데, 다른 한편으로는 그 형님자신이 우리 한국 성도들을 통해 많은 감동을 받은 것이다. 한국 성도들, 특히 청년들의 말씀에 대한 사모심, 주님께 대한 헌신, 형제에 대한 사랑 등, 이런 것들이 그 형님께는 예사로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이 반사적으로 스코틀랜드 모임들의 쇠퇴해 가는 영적 상황을 생각하게 했던 것 같다.

이때부터 에이킨 형님은 한국 모임에서 누군가가 와서 그들의 입술로 친히 한국모임들 가운데서 일어나고 있는 주님의 활발한 역사를 스코틀랜드 모임들에게 증거하게 된다면 그로 인해 스코틀랜드 모임들이 조금이나마 각성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골똘히 하게 된 것이다. 사실은 이러한 배경에서 우리를 초청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한결같이 우리가 그러한 목적으로는 갈 수 없고 그러나 만약 우리가 주님의 인도하심이 있어 가게 될 경우 우리는 배우러 갈 것이다 라고 누차 줄다리기를 벌였던 것이다. 그런 까닭에 에이킨 형님은 가능한한 스코틀랜드의 더 많은 모임들과 더 많은 성도들이 우리를 초청하여 선교보고를 듣도록 주선했던 바 우리가 그곳에 머무는 십여일 동안에 각기 다른 지역의 각기 다른 모임에서 일곱차례 선교 보고회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거의 각 보고회 때마다 연합 집회로 모여 사실상 스코틀랜드의 사십오개 모임들이 우리의 보고를 들었다고 에이킨 형님은 후에 술회하며 아주 만족해 하였다

다른 한편, 에이킨 형님은 계획 속에 우리의 희망사항도 포함시켰는데, 그 중에는 영국과 스코틀랜드에 있는 선교 단체들과 주님께서 사용하시는 말씀의 사역자들, 그리고 기독교 출판사 등에 대한 방문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와같이 에이킨 형님은 이 양쪽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세밀한 계획을 세우고 그대로 안내하느라 얼마나 애쓰고 수고했던가! 그리고 에이킨 형님 부인 불란취(Blenche) 자매님도 연약한 몸으로 우리를 접대하느라 식사를 우리의 입맛에 맞추려고, 또 세탁과 다림질을 위해 얼마나 수고 했던가!

우리는 지금도 그 고마움을 감출 수가 없다! 에이킨 형님 내외분은 그런즉 너희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 위하여 하라”(고전 10:31). 또는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유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앎이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3:23,24)는 주님의 교훈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그대로 실천하는 분들 같아 보였다.

 

1. 해외 선교회 위대성과 그 특권

 

드디어 우리는 에이킨 형님 내외분의 안내로 첫 방문지인 에코스 오브 서비스선교부가 있는 배쓰(bath) 시에 오전 11시경에 도착하여 회장 피터 그로스브너(Peter Grosvenor) 형님과 아프리카 쟘비아에서 십여년간 의료 선교사로 선교 일선에서 수고하다가 일년 반 전에 이곳에 와 회장 형님과 동역하는 버네스(J. H. Burness) 형님의 따뜻한 영접을 받았다.

배쓰시는 일천 오백여년전 로마제국 시대에 건설된 고도로서 그 온천과 아름다움 경관으로 영국에서 제일급 휴양지로 알려진 곳이다. 죠지(George) 3세도 이곳에 종종 들려 온천욕을 즐기며 휴양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바로 이곳에 에코스 오브 서비스선교 본부가 있었던 것이다. 4층형 아파트의 한 쪽 전부를(1층에서 4층까지)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바로 이곳 아파트 한 층에서 지난 세기의 유명한 성경 학자인 W. E. 바인(Vine) 형님이 사셨다고 한다. 지금은 그 아파트 공간이 선교부 서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 선교회는 1872년에 설립된 선교 단체로서 현재 전 세계의 사백여명의 선교사들과 그들을 천거한 지역교회들 사이에서 교량 역할을 하며 선교사와 선교를 위한 뒷바라지라면 안하는 일이 없을 정도로 엄청난 분량의 일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한국에서도 해외 선교의 일이 시작된지라 선교에 대한 관심이 많은 터였다. 그리고 몇몇 선교지에 방문했을 때 유감스럽게도 한국인 선교사들이 선교의 경험이 없어 선교에 기여하기보다는 역행한다는 이야기도 들은 터이어서 우리는 간단히 질문을 던지면서도 그 형님들의 하는 이야기를 듣는데 치중하였다. 이는 그 형님들이 우리가 질문하기도 전에 우리의 궁금해하는 것이 무엇이며 또 우리가 선교를 시작함에 있어서 유의해야 할 점들이 무엇인지를 그들이 경험을 통해 이미 다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질문들 중에는 이 선교회를 누가 어떻게 시작해서 어떻게 운영해 오고 있으며 또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등 그 선교회의 내력과 운영 방법 및 사업이었다. 이 형님들은 그 날 오후 시간 전부를 우리를 위해 할애하여 선교에 관한 모든 이야기를 자세하고도 자상하게 들려주었다. 그리고 들이 제작한 선교 비디오(앤쏘니 노리스그로부스의 생애)도 보여주고 또 우리가 제작하여 가지고 간 한국 모임의 역사를 담은 비디오도 보았다. 그리고 사무실을 돌며 각 사무실의 기능이며, 직원들의 하는 일 등을 소개해 주었다.

이 선교회는 백이십여년 전에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은 한 형님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지금 이 선교회에서는 4명의 이사와 8명의 직원, 그리고 3명의 시간제 자원 봉사자가 일하고 있다.

4명의 이사는 신탁인”(Trustees)으로 불리우는데 아마 성경 용어의 청지기에 해당하는 듯싶었다 피신탁인이나 청지기는 다 같이 어떤 일이나 재물에 있어 소유자나 주인이 아니고 다른 사람의 일이나 재물관리를 위해 부탁받은 사람 또는 종을 가리킨다. 즉 이 이사들은 각 지역교회와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천거한 선교사 형님들을 섬기고 있기에 자신들의 종들의 종”(a servant of servants)이라고 몇번이고 강조하였다. 어느 면으로도 이 이사들은 어느 지역 교회나 어느 선교사에게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을 명령하거나 지시해서는 안되며 오직 봉사하기 위해서만 있다는 것이다. 4명의이사 중 2명은 선교회의 운영을 위해 전심사역을 하고 나머지 2명은 시간제로 봉사하고 있었다. 이 이사들은 다 그들의 맡은 일을 수행하기 위해 행정능력이나 경험에 장로나 전심사역, 또는 선교의 경험을 가진 신령한 형님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선교부가 하고 있는 일로써는 월간 선교지, 및 계간 선교 기도지 발간, 각종 선교를 위한 안내 책자 및 홍보비디오 제작, 모든 선교 서신 회답, 3개월마다 정기적으로 400여명의 선교사들에게 일일이 선교 편지 발송, 1 1회 청년들을 위한 선교 모임 개최, 안식년이나 병으로 귀국하는 선교사들을 위해 거취 및 병원 입원 수속 등 편의를 제공하는 일 등이다.

15명의 선교회 직원들은 각기 은사를 따라 분담 사역을 하고 있었는데 아주 팀웍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 듯 보였다. 그렇지 않다면 이 엄청난 분량의 일을 어떻게 다 해낼 수 있겠는가!

이 밖에 킬마녹(Kilmarnock) 시에 있는 선교 기금”(Lord’s Work Fund)선교회와 글라스고(Glasgow)시에 있는 국내외 선교회”(Home and Foreign Mission)도 방문했지만 이 기관들에 대한 이야기는 지면상 부득이 생략하기로 한다.

영국과 웨일즈와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를 순회하면서 우리가 한결같이 감명을 받은 것이 있다. 그것은 이 나라는 진실로 선교의 나라라고 하는 사실이었다. 방문하는 교회마다, 또는 만나는 사람마다 선교사나 선교지에 대한 이야기는 아주 흔한 화제거리였다. 마치 우리나라의거의 모든 가정마다 아들을 하나, 둘 또는 세 사람을 군대에 보낸 것처럼 또는 군대에 다녀온 것처럼 이 나라에는 선교사로 선교지에 니가 있는 사람들, 또는 선교지에서 돌아와 있는 은퇴한 선교사들이 그렇게 많고 흔했다. 참으로 놀랍고 감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면 어떻게 이렇게 놀라운 선교의 역사가 이 나라에서 일어날 수 있었던가? 그것은 아마도 우연한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것은 그 선조들이 심고 물준 신앙의 나무에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나타난 열매요 축복이었다고 믿어진다(고전 3:5~8).

그 선조들 가운데 14세기의 존 위크리프(John Wyclif)를 생각해 보자. 그는 중세의 암흑한 교황청의 횡포로부터 영국의 일반 대중을 일깨워 건져내기 위해서는 성경을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자국어(영어) 성경을 번역, 보급해야 된다고 믿었다. 그리하여 그는 많은 위험과 고생 끝에 1384년에 마침내 성경 전서의 번역을 완료하게 되었다. 이로서 그는 종교개혁의 기틀을 마련한 셈이다. 위크리프 성경은 그 후 15세기에도 계속 복사되고 그의 개혁 정신은 계속 번져서 저 유명한 롤라드(Lollard)(가난한 전도자들)들로 하여금 개혁에 불타게 했고, 또 보헤미아의 유명한 개혁자 죤 허쓰(John Huss)의 마음도 블타게 했던 것이다. 또 이 개혁의 불길은 계속 번져서 16세기의 저 유명한 용기백배한 영어성경 번역자요 보급자인 윌리암 틴델(William Tyndale)로 이어지고, 다시 이 불길은 저 스코틀랜드의 개혁자 죤 낙쓰(John Knox), 17세기의 비국교도 지도자들에게로, 18세기의 존 웨슬리(John Wesley), 19세기의 세계 선교운동으로 이어져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지난 세기에 본격적으로 시작된 영국의 세계선교운동의 풍성한 역사는 그 선조들이 눈물과 피로 심은 하나님의 말씀의 나무에 열린 당연한 열매였다고 믿어진다. 주님께서는 이것을 이렇게 친히 말씀하셨다.

볼찌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3:8).

이로서 우리는 해외 선교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아무나 누릴 수 없는 희귀한 축복이요 특권임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선교사의 삶이란 하나님의 특별하신 축복과 보호를 약속받은 삶이니( 12:1~3) 그 삶이 어찌 위대해지지 않을 수 있으며 창대해지지 않을 수 있으랴!

그런즉 우리 한국 모임의 성도들도 이 선교를 일생의 크나큰 축복이요 특권으로 알아 어느 면으로든 사용해 주시기를 위해 지역교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기도할 것이다.

 

2. 신앙투쟁의 위대성과 그 경각심

우리가 스코틀랜드를 방문하는 동안 또 하나 새로이 감동을 받고 또 우리의 마음속에 크나큰 경각심을 갖게 한 것은 이천여 년의 교회 역사상 유례없는 17세기의 대 박해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용감히 그리고 기꺼이 숭고하게 죽어간 스코틀랜드 비국교회 언약자들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또 그들에 대한 역사를 읽음으로부터였다.

스코틀랜드 교회 역사에 있어서 언약 즉 경건한 성도들의 신앙 서약의 역사는 1557년에 시작된 이래 1660년대에 이르기까지 장기간 계속되었는데, 그 내용도 그때 그때의 시대적 영적 상황에 따라 달랐다. 그러나 17세기 중반의 비국교도들의 언약 즉 신앙 서약은 찰스 2세가 왕위에 복귀하여 교묘히 정교(정치와 교회)차원의 전권을 합법화하면서 큰 시련에 부딪히게 되었다. 이는 찰스 2세가 1638년의 국민 신앙 서약 헌장”(The National Covenant) 1643년의 신성동맹 및 서약 헌장”(The Solemn League and Covenant)을 파기, 불법화시킴으로써 그 서약을 지지하거나 또 어떤 형태로든 찬성하는 것을 불법으로 규정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주님의 모든 종들에 대한 교구 추천권도 가지고 있어서 왕의 추천을 받지 못한 일꾼들로 그 교구를 떠나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이때 자기들의 교구에서 퇴진한 일꾼들이 300~400명 가량이나 되었다.

그러면 1638년에 제정된 국민 신앙서약 헌장이란 어떤 것이었는가? 이 신앙서약헌장은 일종의 신앙 선서의 선언문으로서 왕과 그 신하들이 교회에 대한 주님의 주권을 침해할 경우 그것을 끝까지 목숨을 바쳐 저지하겠다는 엄숙한 결의가 담긴 선언문이었다. 이 선언문은 영존하시는 하나님과 그 지고한 말씀을 높이 받들어 섬기겠다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또한 이 선언문은 하나님의 말씀을 성실하게 전파하겠다는 것, 성례전을 정당하고 바르게 집행하겠다는 것, 모든 거짓 종교를 타파하겠다는 것과 하나님께 대한 참 예배에 역행하는 모든 이단들을 근절하겠다는 내용도 포함하고 있다. 또한 이 선언문에 서명한 사람들은 그 서약이 정당하다고 믿어져 하나님께 대한 참 예배와, 왕되신 우리 주님의 위엄과 나라의 평화를 유지하고, 나아가서는 우리 자신과 우리 후손들의 공통된 행복을 위한 것이니만큼 우리의 대적으로부터 어떠한 중상이나 모략을 받아도 두려워하지 않겠다는 결의도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이 서약서에 서명 할 때 그들은 경건과 근신과 의와 기타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그들의 모든 의무를 수행함에 있어 타의 모범이 될 것임을 하나님 앞에서 엄숙히 서약하는 것이다. 이 서약은 또 이렇게 끝맺고 있다.

우리가 그 날에 주님 앞에 책임을 지겠기에 우리의 진정한 바램과 거짓없는 결의를 아시며,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이 서약을 어김없이 지킬 것을 엄숙히 선서하오니····이 결의를 이를 수 있도록 주의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강건하게 하여주옵시고 우리의 소원과 조처가 성사되게 하옵시며, 그 결과 경건과 공의가 이 나라에 풍성하게 하사 하나님의 영광과 왕의 명예와 우리 모두의 평안과 안녕이 도모되게 하옵소서.”

스코틀랜드 교회는 이렇게 그들의 굳은 결의를 선언했고, 이에 왕과 대주교는 마땅히 떨었어야 했으나 왕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그가 이미 수립한 정책대로 할 것을 결심했다. 그리하여 그는 마침내 교회의 영수(머리)가 되어 교회의 참 머리이신 주 그리스도의 자리를 박탈하게 되었다. 이에 경건한 신도들은 왕이냐 그리스도냐 하는 양자택일의 기로에 서게 된 것이었다. 물론 경건한 신도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와 그들의 머리와 주가 되심을 단호히 그리고 초연하게 선언했다. 이러한 경우이니 성도들은 어떠한 고난도 받기에 주저할 필요가 없었다. 교수대가 그들을 두렵게, 고문하는 각종 기구들이 그들을 주눅이 들게 하지 못했다. 그들은 동굴과 황야로 숨어 다니며 비밀 집회를 하는 비국교도들로 낙인이 찍혀 잡히기만 하면 목과 양팔과 양 다리를 잘려 스코틀랜드의 수도 에덴바라 중심가에서 장대에 높이 매어달아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등 온갖 잔학무도한 박해를 당했으니 이 당시의 박해는 주후 1,2세기에 있었던 이교 로마 황제 하에서의 박해나 중세 종교재판 하에서의 박해도 비교될 수 없는 이천여 년의 교회 역사상 유례없는 박해로 교회 역사가들은 평하고 있다. 지면 관계상 그 당시의 박해가 과연 어떠한 것이었으며, 또 그런 박해 하에서 우리 믿음의 선조들이 주님의 영광과 우리 후손들의 바른 신앙을 위해 어떻게 용감하고 선하게 투쟁했는지, 또 그들이 그런 상황 하에서 늠름하게 남긴 믿음의 고백들은 과연 어떠한 것이었는지 다 소상하게 전할 수 없는 것이 유감이다.

나는 우리의 믿음의 선조들이 이렇게 크나큰 댓가를 통해 나에게 지극히 거룩한 믿음의 도를 전해 준 것을 생각하며 내 모습을 바라다 보았을 때 너무나 부끄럽고 죄송하여 회오의 눈물을 금할 수가 없었다.

믿음은 이 언약자들에게 놀라운 응기를, 소망은 인내의 닻을, 그들의 마음에 부은바 된 그리스도의 사랑은 그리스도를 위해 받는 고난을 환영하도록 박차를 가해 주었고, 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나가게 해 주었다. 그들은 주님처럼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았고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했으니 생명의 면류관은 이미 그들의 것이 되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이르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저희 행실의 종말을 주의하여 보고 저희 믿음을 본받으라”( 13:7). (다음 호에 계속)

 

(1994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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