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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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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2. 2. 09:14 횃불/1995년

잊혀진 명령 - 거룩하라

윌리암 맥도날드

3 : 그리스도를 생각케 하는 사람들

전장에서 우리는 진실한 그리스도인들과 명목상의 그리스도인들이 때로 세상에 그리스도를 크게 잘못 제시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이는 참으로 실망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것만이 전부가 아닌 것에 대하여 감사한다. 세상에는 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신실한 하나님의 아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자들이 있다.

나는 나와 가까운 친구였던 한 학생을 생각해 본다. 그는 흑생종의 병으로 죽어가고 있었지만 그의 침실은 그야말로 하나의 작은 천국이었다. 정기적으로 그를 돌보았던 한 간호사는 그에 대하여 (Rob)은 나에게 예수님을 생각케 해준다라고 말했다.

로버트 차프만(Robert. C. Chap-man)은 겸손하게 다음과 같은 큰 목표를 그 앞에 두었다. “그리스도를 전하는 자들은 많지만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자들은 많지 않다. 그래서 나는 그리스도처럼 살도록 노력하겠다.”  나중에 죤 넬슨 다비 (John Nelson Darby)는 그에 대하여 그는 내가 가르치는 대로 살았다라고 말했다.

월리암 아르놋(William Arnot)에 대하여 그 친구는 그의 가르침도 좋았고 그가 쓴 글도 참 좋았다. 그러나 그의 삶은 그것들보다 더 좋았다라고 말했다. 힌두교 교도였다 예수님을 믿은 사두 씽(Sadhu Singh )이 한 그리스도인 가정의 초인종을 눌렀을 때 문을 열어주러 나온 여종은 흥분하여 그 안주인에게 달려가 그리스도께서 오셨다고 말했다. 다른 한 가정에서는 그가 어린이들과 함께 마루에서 기도했는데 아이들은 큰 감명을 받아 잠잘 때에 그 어머니에게 그 예수님이 우리 방에 와서 잘 자라고 말해 주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그의 전기를 쓴 작가는 이에 대하여 이는 그를 만난 모든 자들의 그에 대한 표현일 뿐이다. 그리스도를 닮은 그의 모습은 온유함과 영육간에 나타나는 그의 권위와 좋은 조화를 이루었다하고 말했다.

 

작은 예수

로버트 머레이(Robert Murray Mccheyne)의 전기에서 메케니의 거룩은 심지어 그가 말하기 전에도 두드러지게 나타났는데 그의 모습이 곧 그에 대하여 말해주고 있었다. 북스코틀랜드에서 그와 함께 밤을 보내게 된 한 사역자가 있었다. 그는 그에 대하여 깊은 감명을 받고 맥케니가 방을 떠날 때 눈물을 흘리며 ! 저분은 내가 지금까지 본 중에서 예수님을 가장 많이 닮은 분이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곳에서 스튜워트(Stewart)멕케니는 지성소 안에 들어가 수 시간을 기쁨의 찬양과 경배를 드리고 갈보리의 사랑으로 목욕을 한 다음 집집을 방문하며 그리스도의 살아있는 향기를 풍기기 위해 하나님의 존전에서 나온다. 그가 그의 교구의 거리를 걸을 때에 -영국의 다른 어떤 거리를 걸을 때에도-사람들은 그의 얼굴에서 예수님의 얼굴을 보고 놀란다라고 말했다.

샬리(Sally)는 스코틀랜드의 유명한 육상 선수이자 선교사인 에릭 리델(Eric Liddell)에 대하여 그가 일본군의 포로수용소에 있었을 때 그의 모습이 주님 같았다고 말했다.

사람들을 계속 그에게로 모이게 하는 것은 그의 그리스도인의 삶이었습니다. 싱가폴의 중국인 포로수용소에서처럼 에릭이 이곳에서 그리는 모습은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는 창녀들과 멸시받는 사업가들에게 친절했으며 약한 자들을 위해 석탄을 나르고 젊은 자들을 가르치며 금시계를 팔아 어려운 자를 돕고 자신의 침대 시트를 찢어 하키 스틱을 감아 주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특별한게 아니라 보기에 지극히 평범한 에릭이었습니다.”

리챠드 힐러리(Richard Hillary)는 그의 책 마지막 원수”(The last enemy)에서 그리스도인이며 또한 자기가 만나 본 사람 중에 가장 훌륭했던 피터피즈(Peter Pease)에 의해 도전을 받았으며 또한 약이 올랐다고 솔직히 고백했다. 그의 목표는 그를 조용히 따로 만나 무자비하게 그의 믿음을 찢어 놓는 것이었다. 그의 기회는 몬트로스에서 에딘브러그로 가는 기차 안에서 이루어졌다. 그는 그의 먹이 앞에서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당신의 종교는 가짜요 조상 때부터 내려오는 유전과 같은 것으로서 사회적으로 조금 유용한 하나의 부속물일 뿐 그 이상은 아니오라고 말했다. 피터는 입을 열어 부드럽게 몇 마디 하고는 그 공격자의 홍수같이 퍼붓는 비난에 잠잠히 그 입을 다물고 있었다. 힐러리는 그 자신이 설명할 수 없는 사실 즉 피터의 인격 때문에 그 자신이 그 공격에서 졌다는 것을 알았다. 그의 인격은 그의 종교와 분리할 수 없을 정도로 굳게 뭉쳐 있었으며 논리와 행동이 함께 작용하고 있었다

그래서 J. H 죠웹은 사람들은 당신을 다양한 논리로 공격할 것이다. 지적인 논쟁으로 당신은 고통을 당하며 또한 쉽게 패배할 수 있다. 그러나 구원받은 자의 변화된 삶은 논쟁의 여지가 없다. 주님이 병자를 고치셨을 때에도 온전케 되어 그들 앞에선 사람 앞에서 그들은 할말이 없었다라고 졌다

R. W 디한은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선교지에 새로 온지 얼마 되지 않은 한 선교사가 마을사람들을 모아놓고 처음으로 설교를 하게 되었다. 그는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를 원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제시하면서 예수님을 동정심이 많고 친절하며 사랑이 많고 사람들을 돌아보고 또한 선한 일을 행하신 분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그의 설교로 인하여 사람들이 웃음띤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면서 약간 흥분하여 제가 지금 누구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지 아십니까?’라고 물었다. 한 마을 사람이 곧바로 대답했다. ‘, 압니다. 당신은 지금 이곳에 자주 오는 한 사람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열을 내어 그들의 건강을 돌아보기 위하여 그곳에 자주 오는 한 의사인 선교사에 대하여 이야기를 했다. 사람들을 돌아보는 그의 삶이 그리스도를 아주 많이 많아서 그들은 그에게서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았다. 그는 정말 그리스도를 닮아가는데 있어 아주 좋은 본이었다.

헨리 스텐리(slr Henry M. Stanley)경은 이렇게 술회했다. “저는 런던에서 가장 고약한 불신자로 종교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아프리카로 갔습니다. 기자로써 전쟁과 큰 집회 그리고 정치적 모임이나 다루던 저에게 감상적인 것은 인연이 먼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랜 후에 내게도 반응이 왔습니다. 저는 속세를 떠나 한적 한 곳에서 데이비드 리빙스턴 (David Living-stone)이라는 한 노인을 만난 후 자문해 보았습니다 왜 이런 곳에 있을까? 그를 이곳에 있게 한동기가 무엇일까?’그를 만난 지 4개월 후에 저는 모든 것을 버리고 나를 좇으라는 말씀을 순종하는 이 이상한 노인의 말을 청종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조금씩 그의 동정과 온유함, 열심, 정직 그리고 은밀하게 그의 일을 하는 것을 보면서 그가 내게 전도하지는 않았지만 저는 그로 인하여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R. C. 스프로울은 빌리 그래함이 제랄드 포드(Gerald Ford) 대통령과 니클라우스(Nicklaus) 그리고 다른 프로 골퍼들과 골프쳤던 때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중에 한 골퍼가 그 친구에게 빌리 그래함의 종교가 자기에게는 필요하지 않다고 불평했다. 그리고 연습장에서 그의 골프공 통에다 분풀이를 했다. 그의 친구가 따라와 왜 빌리가 골프칠 때에 너에게 거칠게 굴었니?”라고 물었다. 그는 한숨을 내쉬면서 조금은 망설이며 아니야 그는 자기 종교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어라고 말했다. 스프로울의 설명은 이렇다. 놀랍게도 빌리 그래함은 하나님이나 예수님 그리고 종교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게임이 끝났을 때 그 골퍼는 마치 빌리 그래함이 그의 입에다 종교를 억지로 밀어 넣는 것 같았다고 고백했다. 어떤 일이 있었을까? 이 전도자가 그리스도를 너무 많이 닮아있어 그 골퍼는 그의 앞에 있는 것이 불편했던 것이다. 하루는 인도에 있는 선교사들이 그들의 동료 선교사 실라스 폭스(Silas Fox)를 초청하였는데 이웃에 있는 한 힌두교도가 찾아와 잠시 방문하고 돌아갔다. 그 힌두교도는 돌아와 흥분된 어조로 나는 하나님의 얼굴을 직접 보았다고 말했다. 많은 신을 믿는 그녀가 실라스 폭스의 얼굴에서 참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이다.

우리가 아는 것은 사람들에게 거룩은 노력 없이는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인간의 의지와 연관이 있다. 신자는 마땅히 거룩하기를 원하며 그것을 이루도록 그 자신을 훈련해야만 한다. 거룩은 동기가 주어져야 한다. 여기에는 한가지 의문이 있는데 무엇이 사람으로 하여금 거룩을 좇게 하느냐? “하는 것이다.

 

4 : 거룩에 대한 동기

왜 신자는 더 거룩해지기를 원하는가? 왜 신자는 주님을 더 닮기 원하네라고 노래하는가? 왜 그리스도를 더 닮기 원하는 열망으로 몸부림치는가?

첫째로 그것은 그가 구원받을 때 그 안에 주어진 것으로서 하나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그는 죄에 대한 새로운 미움과 성결에 대한 사랑을 받는다. 내주 하시는 성령이 그 안에서 성별된 인격을 형성하게 하신다. 개인적인 삶에서 승리의 삶을 살고자 하는 그 욕구가 바로 새로운 성품이다. 그러나 이에 더하여 그리스도인이 거룩을 좇고 세상과 육 그리고 사단의 시험을 물리쳐야 하는 데에는 더 강한 이유들이 있다. 심각한 죄의 결과 중에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 세상에서는 그 제자를 선생과 같이 본다. 만일 그 제자가 죄를 지으면 사람들은 선생을 비난한다. 제자들의 부끄러운 행동은 그 선생과(주님)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1987년 한 T. V. 목사가 섹스 스켄들에 연루되어 있을 때 무신론자로 유명한 사람이 이것은 왜 종교가 나쁘고 추하며, 더러운지에 대한 좋은 예이다라고 말했다. 다윗은 간음과 살인의 죄로 민하여 주님의 이름에 끝없는 훼방을 받게 했다(삼하 12:14). 빅터 잭은 다윗이 범죄했을 때 죽은 4가지 것에 대해 말했다. 먼저 하나님의 얼굴에 있는 웃음이 사라졌다. “소위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더라”(기뻐하지 않으심)(삼하 11:27). 다윗의 마음에 있는 기쁨이 사라졌다. “내가 죄를 지었나이다.” 다윗의 보좌의 안전성이 무너졌다. “칼이 네 집에 영영히 떠나지 아니하리라.” 세상에서 그의 간증이 소멸되었다. - “여호와의 원수로 크게 훼방할 거리를 얻게 하였으니.”

거룩에 대한 또 다른 이유는 우리의 죄가 그리스도에게 지불하게 한 값에 대한 기억이다(벧전 2:24), 생각이 있는 그리스도인이라면 그 누구도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못박히는 상태가 계속되기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 죄값을 지불하기 위해 그분의 피가 흘려져야 했다면 어떻게 그분을 따르는 자들이 죄에 대해 관용하거나 묵과할 수 있단 말인가?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로 하여금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붙들 수 있게 해야 한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분은 우리를 사랑하셨다. 그분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엄청난 값을 지불하심으로 그분의 사랑을 나타내셨다. 그분은 우리가 경건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준비하셨다.

그러한 사랑을 두고 우리의 옛 삶으로 돌아가 생활한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파렴 치한 행동이 아닐 수 없다.

죄는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우리를 향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로 하여금 그분이 쓰실 수 있는 깨끗한 그릇이 되고자 하는 소원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야 한다. 만일 우리가 진정으로 그분을 사랑한다면 그분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를 원할 것이다. 죄는 하나님의 법을 깨뜨리는 것뿐만 아니라 거룩한 곳에 계신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주님은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14:15)고 말씀하셨다. 거룩은 하나님의 명령이다(벧전 1:15,16 12:14). 죄는 다른 사람들 즉 믿는 자뿐만 아니라 믿지 않는 자들도 넘어지게 만든다.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 죄를 짓는 것을 보면 복음이 사람의 삶에 전혀 변화를 주지 못한다고 결론을 내리고는 돌아선다. 성도들은 상처를 받는다. 그리고 특별히 젊은 그리스도인들은 성도들의 삶에 있는 죄로 인하여 환멸을 느끼기 쉽고 상처를 입기 쉽다. 그들은 주님을 따르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에 대해 대적한다. 마크 트웨인(Mark Twain)은 그리스도인들이 노예제도를 묵과하고 거친 언어를 사용하며 떳떳하지 못한 거래에 관여하는 것을 보고 기독교에서 돌아섰다. 모하메드는 유대교와 기독교에서 유일신에 대한 사상을 받아들였지만 그들의 삶을 인하여 그들로부터 돌아섰다. 브라이언 구드윈(Brian Goodwin)조금만 더 주님과 다른 사람들에 대한 사랑이 있었더라면 역사에 큰 변화 즉 오늘날 모슬렘계에 큰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우리가 죄를 지을 때 우리를 신뢰하고 있는 사람들은 상처를 입는다. 그들은 실망하며 또한 힘을 잃는다. 때로 젊은 그리스도일은 그를 주께 인도한 사람이 죄를 짓는 것을 보면 배신감을 느낀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을 믿어 주고 밀어주는 친구들을 생각해 넘어짐에서 자주 지을 유혹으로부터 구원을 받는다! 거룩한 삶은 영과 혼과 육에 있어 최상의 삶이다. 이는 정신적이나 육적인 건강에 아주 좋다. 거룩한 삶은 또한 후회나 죄책감, 부끄러움 그리고 다른 많은 질병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며 더 나아가 우리들에게 충만한 기쁨과 즐거움을 가져다 준다(요일 1:4, 16 11). 한 어린이가 슬픈 얼굴을 하고 있어 어떤 사람이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그는 거룩한 삶을 살면서 또한 동시에 행복하기는 힘든 것 같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사실은 거룩이 없이는 진정한 행복도 있을 수 없다.

우리의 몸이 성령의 전이라는 지속적인 자각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게할 수 있어야 핀다(고후 7:41). 우리는 절대로 하나님의 삼위 중에 한 분이 영구적으로 우리 안에 거하시며 또한 동행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며 금생과 내세에 약속이 있다”(딤전 4:8)고 말씀하고 있다. 이는 영원에 대한 가장. 좋은 준비이다. 앞으로 머지 않아 아마 곧 우리는 주님을 만나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그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이다. 이는 곧 우리가 지금부터 심판대 앞에 설 것을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다.

 

죄는 입을 막는다

죄는 입을 막지만 거룩은 우리에게 주님을 섬기도록 자유를 부여한다. 죄를 고백하지 않을 때 또는 고백하지 않은 죄가 있을 때 모든 죄책감과, 자신은 부적합하다고 느끼는 마음이 그 사람을 얼어붙게 만든다. 그는 성령의 자유를 즐기지 못한다.

거룩은 기도에 확신을 갖게 한다. “만일 우리의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요일 3:21,22). 반대로 만일 우리가 우리의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우리를 듣지 않으신다( 66:18). 죄는 기도의 사슬을 끊는다. 그리고 죄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단절시킨다. 별로 심각하게 들리지 않을지 모르지만 사실이다. 주님을 멀찌감치 따라가는 자는 늘 위험 가운데 있는 자이다. 그는 하나님과의 교제 가운데 다시 들어가든지 아니면 평생 그의 삶에 그늘과 구름이 끼이게 할 시험에 빠지든지 결정을 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또한 거룩에 대한 동기인데 이는 강한 동기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을 두려워함은 너무나 그 의미가 희석되어서 단순히 존경하는 것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앞으로는 이것이 정말로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아는 때가 올 것인데 이는 건전한 면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 그를 불쾌하게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징계에 대한 두려움을 말한다.

이러 한 것들이 바로 우리가 계속해서 거룩을 추구해야 할 이유이며 우리의 구세주를 삶이고자 하는 욕망의 이유이다. 이제 우리 성경에 대해 더 자세하게 점검해 볼 때이다. 그리고 성경은 거룩에 대한 또 다른 말이라는 것을 기억하라.

 

(1995 9월호)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