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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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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2. 2. 09:19 횃불/1995년

인물 중심 성경공부

발람-”그의 말과 길

W. W. 페러데이

주께서는 보셨나이다

발람과 그의 악행에 대해서는 여덟권의 성경-구약에서 5, 신약에서 3권에 언급되어 있다. 이 사실은 그의 행동의 심각성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발람(발락과 함께)에 대한 마지막 언급은 버가모교회에 보내는 서신에 나와 있다( 2:14). 여기서 우리는 발람과 발락의 악행이 기독교 내에서 재현되었음을 보게 된다. 따라서 주 예수님을 믿는 모는 성도들은 그 속에 내포된 의미를 이해하려고 힘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발람은 이스라엘의 40년간의 광야여행 말기에 무대에 나타났다. 40 5월 초하루에 아론이 123세의 나이로 죽었다. 백성들은 아론이 죽은 후에 여덟번째 진영에 이르렀는데 그때 발락과 발람이 그들을 거스려 모의를 했다( 33:38~48). 그러면, 어떻게 모세가 자신이 민수기 22~24장에 기록한 모든 일을 알게 되었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에 관한한 무대 뒤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스라엘을 대항한 동맹에 관한 모압과 아말렉 사이의 협정에 대해서는 이스라엘 진영의 아무도 알지 못했다. 또한 멀리 메소보다미아 지경에 있는 발람의 집에서 있었던 언행과, 나귀가 주인의 어리석음을 꾸짖은 그 이상한 여행에 대해서도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아울러,발람의 비유들이 모두 이스라엘 진영이 내려다 보이는 높은 곳에서 베풀어진 점으로 보아  그 진영 내에서는 위에서 어떤 일이 진행되고 있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슬프게도 사람들은 이런 저런 이유로 의구심을 부풀리는 데만 생각이 너무 몰두해 있다! 그렇다면 영감받은 역사가는 자신이 그토록 상세히 기록한 발람의 언행에 대한 기사를 어떻게 얻을 수 있었을까? 그 일들이 그의 생애 마지막 수주 동안 일어난 점으로 보아 모세는 필경 그 모든 정보를 신속히 얻었을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답은 간단한데, 그것은 모세가 하나님의 직접적인 계시를 통해 그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는 것이다. 그분의 백성은 모를지라도 하나님은 악인이 사단에게 충동되어 그분의 택한 백성을 거스려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것을 아셨다. 그리고 그들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으로 인해, 처음부터 보인 그들의 신실치 못함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그들 가운데 개입하사 대적의 모든 계획을 좌절시키셨다. 그분은 심지어 고용된 예언자로 하여금 자신이 원하는 말과 정반대 되는 말을 하게까지 하셨다. 우리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신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감찰하신다는 것과 그들의 행적이 이후의 모든 시대에 걸쳐 사람들에게 읽혀지도록 신적인 권위로 기록된다는 것을 사악한 음모자들은 얼마나 생각하지 못하는지! 벨릭스 총독에게 보낸 바울에 관한 그의 거짓서신이 그분의 거룩한 말씀에 삽입되기 위해 하나님에 의해 관찰되고 보존되었다는 것을 로마 관원 글라우디오 루시아가 생각하지 못했듯이 말이다( 23:25~30). 우리가 싫어하는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모든 언행, 그들이 듣지 못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한 모든 말이 모든 것을 보시는 하나님에 의해 관찰되고 기록된다. 모든 악한 말과 행동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 날에심문을 받아야 할 것이다( 2:16). 그 심판대에 앉아계실 그분의 말씀을 들어보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12:36).

직접적인 하나님의 계시는 민수기22~24장 외에 다른 장들에 대해서도 유일한 설명이 된다 예를 들어 창세기 1,2장을 생각해 보자. 거기서 우리는 인간이 거할 세상을 준비하시는 동안 하나님께서 날마다 말씀하시고 행하신 것을 듣게 된다. 그리고 인간이 창조될 순간이 임하자 하나님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모든 것을 다스리 게 하자고 말씀하셨다. 이 때는 창조주께서 그 놀라운 날들 동안 행하고 말씀하신 모든 것을 곁에 서서 기록할 서기관이 없었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만일 하나님께서 그 모든 문제를 역사가에게 신적으로 계시할 문제로 삼기를 기뻐하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그 모든 것에 대해 영원한 무지가운데 머물러 있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모든 것을 그 진정한 근원 -하나님-으로 추적해 올라가는 법을 배우게 된다. 신적인 계시의 가능성이나 실제성을 의심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으로 간주될 여지가 전혀 없는 사람이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 대한 악의에 찬 음모를 모세에게 알리셨을 때 모세는 시편기자처럼 이렇게 아뢰었는지도 모른다. “주께서는 보셨나이다 잔해와 원한을 감찰하시고 주의 손으로 갚으려 하시오니···· 악인의 팔을 꺾으소서 악한 자의 악을 없기까지 찾으소서”( 10:14,15). 모세는 그들을 위협했던 위험을 백성들에게 일깨워주면서 이렇게 회상했다. “그들은···· 메소보다미아의 브돌 사람 브올의 아들 발람에게 뇌물을 주어 너희를 저주케 하려 하였으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사랑하시므로 발람의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그 저주를 변하여 복이 되게 하셨나니”( 23:4,5). “여호와께서 너를 사랑하시므로!” 이 얼마나 귀한 말씀인가. 그러나 신실치 못한 인간의 마음은 얼마나 실망스런 반응을 보이는지!

 

발락의 두려움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들은 홍해 해변에서 승리의 노래를 부르는 중에 이렇게 외쳤다. “열방이 듣고 떨며····모압 영웅이 떨림에 잡히며····놀람과 두려움이 그들에게 미치매····”( 15:14~16). 그 일은 모압 왕과 그의 백성이 40년 후에 여호와의 순례하는 무리가 그들의 변방에 장막을 친 것을 보았을 때 문자 그대로 성취되었다. 이스라엘 진영에는 무기를 소지할 수 있는 남자가 601,730명이었으며 여자와 아이들을 합치면 적어도3백만 명의 엄청난 무리를 이루었다. 발락은 놀랐다. 더군다나 이스라엘이 최근에 그들의 행진을 막으려 한 세 군사강국들을 쳐부쉈다는 얘기도 들은 터였다. 아랏왕이 쓰러졌으며 헤스본왕 시혼과 바산왕 옥도 그러했다( 21). 시혼은 최근에 모압과의 싸움에서 이겨 약간의 영토를 빼앗은바 있었다. 그럴진대 어떻게 발락이 그 강력한 이웃을 멸한 민족과 대항하여 싸울 것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곤란에 처할 때 합당한 태도는 하나님께 돌이켜 기도하는 것이다. 그분은 개개인의 문제뿐만이 아니라 국가적인 문제에도 진실로 관심이 있으시다. 그러나 발락은 하나님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만일 현 시대의 통치자들이 그들의 문제를 겸손히 하나님 앞에 아뢴다면 많은 불행과 파괴를 면케 될 것이다. 여호사밧과 히스기야는 국가적인 위기 순간에 겸손히 하나님께로 돌이킨 왕의 훌륭한 본보기이다(대하 20, 왕하 19).

사실 발락은 두려워할 이유가 없었다. 여호와께서 이미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모압을 괴롭게 말라 그와 싸우지도 말라 그 땅을 내가 네게 기업으로 주지 아니하리니”( 2:9). 여호와께서는 모압 땅보다 더 좋은 땅을 이스라엘을 위해 염두에 두고 계셨다. 모압은 평안하고 자기 만족적인 이 세상사람을 상징한다- “모압은 예로부터 평안하고 포로도 되지 아니하였으므로”( 48:11). “그의 거만하며 교만하며”( 16:6). 오늘날 하나님의 성도들은 그러한 자들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는데 이는 더 낫고 더 지속적인 기업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1:3). 아삽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벗어나 있을 때는 악인의 번성을 시기했으나 성소에 들어가서 하나님과 더불어 그곳에 있는 것들을 묵상할 때는 영적인 안정을 되찾았다( 73).

하나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채 발람은 미디안과 암몬과 더불어 서둘러 동맹을 맺었다( 22:4, 23:3,4). 그는 그같이 시혼과 옥을 물리친 자들을 쳐부술 만한 군사력을 갖추는데 만족하지 않고 메소포다미아에 사는 유명 한 예언가인 브올의 아들 발람에게로 사자를 보냈다. 이스라엘의 승리는 신의 도움 덕택이라고 이미 외부인들에게 알려지던 터였는데 이는 라합이 정탐꾼들에게 이렇게 말한 바와 같다.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것과 너희가 요단 저 편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라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2:10,11).

발람을 불러 보냄으로써 발락은 초자연적인 것으로 초자연적인 것에 대항하려 했다. 그 메소보다미아 예언자는 보이지 않는 세례에 대해 영향을 미치는 카로명성이 있었다- “그대가 복을 비는 자는 복을 받고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줄을 내가 앎이니라”( 21:6).

이 수수께끼 같은 인물은 하나님에 대해 약간의 지식이 있었으나 불행히도 마음으로 깨달은 지식이 아니었다! 그는 사자들에게 정중한 태도를 보일 양으로 유일하신 참 하나님의 이름을 자신의 사악한 의식에 삽입시켰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는 그의 전략 때문에 보다 쉽게 속았을 것이다. 발람은 오늘날의 소위 강신술사”(Spirltualist)였다. 그 명칭은 매우 오도된 것으로 귀신숭배자라고 해야 더 정확할 것이다. 현대의 강신술사는 두 분류로 구분되는데 하나는 공공연히 하나님을 배척하는 자들이고(이들은 적어도 정직하긴 하다) 다른 하나는 자칭 기독교 강신술사라고 하는 자들이다. 특히 후자의 부류가 위험한데 이는 오늘날 많은 영혼들이 성경을 읽는 대신 기독교인이란 이름만 듣고 쉽게 미혹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많은 경우에 목사들은 이 심각한 악을 가지고 실험을 하는가 하면 심지어 그것을 복음전도의 유용한 연결고리로 추천하기도 한다. 그러나 기독교와 강신술 사이에는 사실 아무 관계도 없다. 하나님의 말씀-특히 신 18:9~14-은 그것이 어떤 형태든 가차없이 정죄를 한다. 그것은 배도-하나님과 그분의 계시된 진리에서 돌이키는 것-이다. 그것은 귀신과 교통하는 것이며 그것을 행하는 모든 자를 파탄에 이르게 한다. 이스라엘 무리가 그리로 진행할 때 가나안 땅은 강신술로 가득했으며, 이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것을 멸절시키라고 명하셨다. 사실 이 악의 확산은 거룩하고 의로우신 하나님이 더 이상 가나안 일곱 족속을 참으실 수 없었던 주요한 이유 중 하나였다.

 

(1995 10월호)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