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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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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2. 2. 09:16 횃불/1995년

그러나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고전 14:19),

 

여기서의 문제는 물론, 교회의 집회에서 통역이 없이 방언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어떤 일이 그저 습관적으로 되풀이되는 것에 반대합니다. 그는 말은 알아들을 수 있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아무도 세움을 입지 못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본 절은 보다 넓은 의미에서 적용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말을 할 때 모든 사람이 들을 수 있도록 크게 말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외국어로 말하는 것과 다름없을 것입니다. 청중 속에는 연로한 때문이든, 뒷자리에 멀찍이 앉았기 때문이든, 듣기가 어러운 사람들이 늘 있기 마련입니다. 그들에게는 말하는 사람의 음성이 너무 작아 이야기의 흐름을 놓친다는 것이 큰 실망거리입니다. 사랑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생각하므로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크게 말합니다.

사랑은 또한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도록 쉬운 말을 사용합니다. 우리가 전하는 멧세지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멧세지입니다. 따라서 반드시 사람들이 듣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복잡하고 모호하고 난해한 논조를 사용한다면, 우리는 본래의 목적을 이룰 수 없습니다.

한 설교자가 말씀을 전하기 위해 통역인을 데리고 극동지역을 방문했습니다.

그의 멧세지의 첫마디는 비록 모든 것은 구체적인 영역과 추상적인 영역의 두 범주로 나눠지지만····이었습니다. 그러자 통역인은 이가 빠진 할머니들과 어리둥절해하는 아이들로 이루어진 청중을 내려다보며 저는 여러분에게 주 예수님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미국에서 건너왔습니다라고 통역을 했습니다. 그 때 이후로 줄곧 멧세지는 천사들의 손에 달려 있었다고 합니다.

어떤 기독교 잡지의 기사에서 저는 다음과 같은 표현을 우연히 접했습니다:

통시적인 목록의 표준 자료, 선택적이 아니라 실존적인 적합성을 지닌 작품; 정상에 이른 의식의 연속체; 정경적인 확증의 언어; 한계수준의 전형적인 우연성 이러한 난해하기 이를 데 없는 문구를 이해하도록 강요받는 사람들은 얼마나 가련한지요! 우리 모두 그러한 말로부터 건짐을 받기를!

TV나 레디오의 일반 프로그램은 초등교육 수준의 시청자들을 대상으로 편성된다고 합니다. 구속의 멧세지로 세상 끝까지 나아가고자 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명심해야 할 점이 그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받으신다는 멧세지를 분명하고 평이하게 전해야합니다.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1만 마디를 하는 것보다 이해할 수 있는 다섯 마디를 하는 것이 더 나은 것입니다.

 

(1995 9월호)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