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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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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려거든 생축 중에서 소나 양으로 예물을 드릴지니라 그 예물이 소의 번제이면 흠 없는 수컷으로 회막문에서 여호와 앞에 열납하시도록 드릴지니라

1:10-17 “만일 그 예물이 떼의 양이나 염소의 번제이면 흠 없는 수컷으로 드릴지니

6:9-13 “아론과 그 자손에게 명하여 이르라 번제의 규례는 이러하니라 번제물은 단 위 석쇠 위에 아침까지 두고 단의 불로 그 위에서 꺼지지 않게 할 것이요

 

1. 다섯 가지 번제 제물

번제는 신약에서 예배에 해당합니다. 번제에 관한 규정과 규례들 중 레위기 1장에서 5장까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것이고, 6장부터 7장까지는 주로 레위인들에게 주는 것입니다. 번제의 태움은 제물을 태워 없애기 위함이 아니라 제물에서 향기를 끌어내기 위해서 태우므로 속건제와는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제물을 요구하실 때 세 가지 영역에서 다섯 가지 제물이 요구됩니다. 소는 단독으로 요구되어지고 떼 중에서 양과 염소가 요구되었습니다. '새에서 두 가지 즉 하나는 산비둘기, 하나는 집비둘기 새끼가 요구됩니다.

하나님께 드려질 때 집비둘기는 항상 새끼입니다. 어떤 사람이 가지고 있는 능력에 따라 소를 구할 수 있으면 소를 내고, 소를 낼 수 있는 능력이 안 되면 양이나 염소를 내며, 양이나 염소를 낼 능력이 안 되면 새를 내게 하였습니다. 이처럼 그 사람의 능력에 따라서 하나님께서 예물을 따로따로 요구하십니다. 

우리들에게 교훈이 되는 것은 율법시대에도 하나님께서는 은혜로서 가난한 사람도 부자도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예물을 준비하도록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이처럼 새를 드릴 수밖에 없는 형편에 있는 사람에게 절대 소를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거꾸로 소를 드려야 할 사람에게 산비둘기나 집비둘기 새끼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앞에서 그 사람이 있는 그대로 정직하게, 형편에 따라 드리기를 원하셨습니다.

소는 당시에 사람들의 종이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종으로서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것이 소가 갖고 있는 의미입니다. 부지런하게 묵묵히 계속 일을 하시는 순종하는 삶을 사셨던 그리스도의 모습을 나타냅니다. 양과 염소를 보시면 '떼라 하였는데 ''는 사람들 속에 계신 주님의 모습과 특징입니다.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가 말하는 바는 하나님 아버지께 언제나 헌신된 삶을 사시는 주님의 모습 가운데 영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2. 수컷이 드려짐

왜 사람들은 번제를 하나님께 드리려고 했을까요? 물론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로 이전까지의 생활보다도 영적으로 더 나은 삶을 살고 싶다는 사람들이 번제의 제물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완전히 드려지는 삶을 살고 싶은 사람들이 드리는 것입니다. 이 번제의 제물은 흠이 없어야 합니다. 또 수컷만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이것을 신약 성도들에게 적용시킨다면 예배입니다. 속건제와 속죄제가 그 사람의 죄를 처리하기 위함이라면 번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물이 된다는 목적을 가진 것이 다릅니다.

암컷은 안 됩니다. 12:5너희 어린 양은 흠 없고 일 년 된 수컷으로 하되 양이나 염소 중에서 취하고이처럼 유월절 어린양도 암컷은 안 됩니다. 왜 수컷만 요구하셨을까요? 12:46한 집에서 먹되 그 고기를 조금도 집 밖으로 내지 말고 뼈도 꺾지 말지며.” 그리고 유월절 양을 먹는데 왜 뼈도 꺾지 말라 하셨을까요? 19:31-36 “이 날은 예비일이라 유대인들은 그 안식일이 큰 날이므로 그 안식일에 시체들을 십자가에 두지 아니하려 하여 빌라도에게 그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 달라 하니이처럼 이미 죽으신 주님을 보고 뼈를 꺾을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왜 주님께서 좌우에 달린 두 강도들보다 먼저 죽으셨을까? 이것이 비밀입니다. 복음서를 보면 주님께서 계신 곳에서는 죽음이 있지 않았습니다. 어떤 죄인이라 할지라도 그가 믿으면 살아났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주님께서 왜 죽으셨을까요? 10:17아버지에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목숨을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스스로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그래서 뼈를 꺾지 않은 것입니다. 뼈를 꺾는 행위는 죽이기 위한 것인데 이미 주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스스로 죽으셨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죽일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수컷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교훈 받을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자발적, 의지적으로 죽음을 택하시고 죽음의 길을 가셨듯이 수컷의 의미는 자발적인 것입니다.

 

3. 수소가 나타내는 주님의 아름다운 모습

 번제는 반드시 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려야만 합니다.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스스로 마음속에서 우러나야 합니다. 이는 으로서의 주님을 의미합니다. 주님은 사람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이었습니다. 사람을 섬기셨지만 사람의 종이 아닙니다 사람의 종이 된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소는 실제로 사람의 종입니다. 힘으로는 사람을 얼마든지 해칠 수가 있으나 소는 사람을 해치지 않습니다. 능력이 있어도 그 능력을 걸대로 다른 사람에게 절대로 쓰지 않는 것이 수소가 말하는 바입니다. 이처럼 주님께서는 마치 소가 사람의 종이듯이 하나님의 종으로 섬깁니다. 마가복음이 주로 증거하는 모습과 연결돼 있습니다. 

씨를 뿌릴 때에도 소가 동원되었고 밭을 갈 때도 소가 동원되었으며 추수 할 때도 소가 동원되었고 탈곡을 할 때도 소가 동원되었으며 짐을 운반 할 때도 소가 동원됩니다. 소는 완전히 사람의 종이었습니다. 그러면 수소를 예물로 요구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을 알게 되기를 원하셨을까? 영적인 수소인 주 예수그리스도를 요구하셨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가 영적인 수소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면 이 수소는 힘이 있지만 그 힘을 절대로 나쁜 곳에 사용하지는 않았습니다.

흔들림이 없는 견고한 의지를 가진 섬기는 자의 모습이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꾸준히 일을 하는 모습을 나타냅니다. 강력하지만 섬기셨던 주 예수그리스도를 수소가 나타냅니다. 주님께서는 활동 영역이 매우 넓으셨습니다. 이스라엘 전 영역에 해당됩니다. 유대, 사마리아, 시골, 산기슭, 도시, 작은 동네, 인성, 예루살렘 베다니 등을 바쁘시게 부단히 옮겨 다니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바쁘신 가운데 마침내 번제단에 수소가 드려진 것처럼 그렇게 열심히 일을 하시고 결국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는 것입니다. 아무 변명도 없이 마치 수소가 사람을 위해서 평생 일하고 어느 한날 갑자기 번제 제물이 돼서 번제 단에 태워지는 것과 똑같이 주님께서 복음서에서는 그렇게 바쁘시게 활동 하시는 가운데 마침내 십자가에 못 박히십니다.

마가복음에서의 주님께서는 쉴 새 없이 바쁘시게 일하시다가 마침내 십자가로 가셨습니다. 이것이 마가복음이 말하는 주님의 십자가에 드려진 모습입니다. 주님께서는 참으로 강력한 힘을 가지신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인내하시고 흔들리지 않으시고 그리고 마침내 그 생명이 십자가 위에서 드려집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위해서 그렇게 성실하게 섬기시다가 어느 한날 갑자기 붙잡혀서 십자가에 못 박혀서 돌아가셨습니다. 이 모습이 바로 수소가 번제 제물로 드려지는 모습과 관련 됩니다.

 

4. 수양이 나타내는 주님의 아름다운 모습

은 물론 수양입니다. 양은 떼에서 나옵니다. 양의 모습은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양은 참으로 온유한 동물입니다. 주님의 온유함을, 그리고 순종하되 저항하지 않는 순종을 나타내는 모습입니다. 낮아지는 모습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53: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주님께서는 이처럼 끌려가되 저항하지 않고 아주 유순한 모습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1:36예수의 다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르다

예수님의 행하심을 보고 요한은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여러 이스라엘 사람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3년을 행하셨습니다. 이것은 소와는 또 다른 측면입니다. 3년을 행하시면서 사람들에게 어떤 분이신가를 여러 모양으로 증명하셨습니다. 물론 하나님 아버지께 증명하셨습니다. 주께서는 아주 조용하셨습니다. 어떤 경우에 길거리에서 주님의 소리를 못 들었다고 하는 표현도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많은 무리 속에 섞여있었지만 항상 두드러지지 아니하고 조용하고 온화한 주님의 모습을 양이 나타내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모습을 통해서 빌라도조차도 막 15:5예수께서 다시 아무 말씀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빌라도가 기이히 여기더라죄수를 수없이 많이 다루어본 경험이 많은 빌라도인데 이렇데 온화한 죄수는 처음 본 것입니다. 빌라도가 이상하다 생각합니다. 기적이다. 보통 사람의 경우에는 자기를 변경하기에 바쁜데 전혀 반항하지 아니 하고 조용히 끌려와서 재판을 받는 모습을 빌라도가 보았습니다.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주님은 참으로 하나님의 어린 양이었습니다.

 

5. 숫염소가 나타내는 주님의 아름다운 모습

잠언 30장을 보면 숫염소에 관한 힌트가 있습니다. 30:29-31 “잘 걸으며 위풍 있게 다니는 것 서넛이 있나니 곧 짐승 중에 가장 강하여 아무 짐승 앞에서도 물러가지 아니하는 사자와 사냥개와 숫염소와 및 당할 수 없는 왕이니라.” 숫염소가 제물로 드려지는 것은 무얼 의미하겠습니까? 여기서 보면 위풍 있게 라는 말과 연결되게 됩니다. 주님은 십자가를 향해 가셨지만 절대 비겁하시지 않았습니다. 항상 당당하셨습니다. 주께서는 위풍 당당하셨습니다. 십자가로 걸어가신 주께서는 절대 흔들리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의 발걸음은 확고했고 십자가를 향해 가실 때 한 번도 흔들리지 않으셨으며 한 번도 뒤로 물러나시지 않으셨습니다. 때로는 베드로가 시험했습니다. 16:23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도다하시고 주님께서는 단호하셨습니다. 십자가로 향하시는 주님의 위풍 당당하신 모습입니다. 즉 숫염소가 갖고 있는 모습과 관련됩니다.

9:51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이 모습이 숫염소가 나타내는 모습입니다. 결코 주님께서는 비굴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십자가를 겁내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예루살렘에서 기다리고 있는 일들을 모두 다 아셨습니다. 겟세마네 기도를 주님은 아셨고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에서 일어 날 모욕과 수치를 아시고 계셨습니다. 사람들의 조롱을 주님은 다 아시고 계셨습니다. 사람들이 주님의 얼굴에 침 뱉을 것을 아시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가시면류관을 씌울 것을 아시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가죽 끝에 채찍이나 쇠가 박힌 채찍으로 사람들이 주님의 등을 내리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럼에도 주님은 조금도 굴하지 않으셨습니다. ‘잘 걸으며 위풍 있게’ 이것이 숫염소가 번제물의 제물로 쓰이는 이유 중에 하나입니다. 복음서를 자세히 찾아보면 주님의 숫염소로서의 제물의 모습이 나와 있습니다. 이런 모든 어려운 일들이 있음을 아시고도 주님은 위풍 있게 잘 걸으며 조금도 뒤로 물러나지 아니하시고 십자가로 나가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숫염소가 나타내는 주님의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6. 산비둘기가 나타내는 주님의 아름다운 모습

산비둘기에 대한 견해는? 첫째 부드러움을 소개하는 분별들이 있습니다. 둘째 순수함을 소개하는 분별들이 있습니다. 산비둘기는 짝을 이루었다가 한 짝이 죽으면 절대 재혼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산비둘기를 정리하자면 부드러움” “순수함도 있지만 때를 알림(시기를 알리는 동물)”이 있습니다.

개역성경 아 2:12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의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반구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한글 kjv 2:12 땅에는 꽃들이 피고 새들이 노래하는 때가 왔도다. 산비둘기의 소리가 우리의 땅에서 들리는 도다.

아가서에서는 산비둘기가 새로운 시절이 바뀌는 것을, 즉 때를 알리는 새로서 나타나는데 ‘반구’라고 표현했습니다.

개역성경 렘 8:7 공중의 학은 그 정한 시기를 알고 반구와 제비와 두루미는 그 올 때를 지키거늘 내 백성은 여호와의 규례를 알지 못하도다 하셨다 하라

한글 kjv 8:7 실로, 하늘에서 황새는 자기의 정한 때를 알고 산비둘기와 두루미와 제비는 그들이 오는 때를 지키나 내 백성은 주의 심판을 모르는 도다.

 

산비둘기가 이처럼 시기를 알리는 특징이 있는 것과 같이 주님께서는 영적인 시기를 아시는 분이셨습니다. 언제 승천하실 때인지, 언제 하나님의 구원의 때인 지, 언제 심판의 때인지, 언제 교회가 형성 될 때인지, 언제 휴거 할 때인지, 하나님께서는 영적으로 때에 대해서 어떤 존재보다도 정확하게 아시는 분이셨습니다. 이런 것들이 반구(산비둘기)가 나타내는 면입니다. 반구는 주님의 영적인 삶을 나타냅니다. 사람들이 주님을 죽이려 할 때, 함부로 사람 손에 주님을 맞기지 않았습니다. 왜냐 하면 때를 아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돌에 맞아 죽으시면 안 됩니다. 성경을 응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나사렛 동네에서 주님을 절벽에서 밀려고 했으나 주님께서는 피하셨습니다. 이처럼 주님은 때를 아신 것입니다. 언제 죽으실 때이고 언제 피하실 때인지 아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처럼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를 정확히 아셨습니다. 그 때가 바로 겟세마네에서 잡히실 때이었습니다. 말씀대로 잡혀서 못 박히게 된 것입니다.

 

7. 집비둘기가 나타내는 주님의 아름다운 모습

집비둘기 새끼? 성경에 모든 제물로 나오는 집비둘기는 항상 새끼입니다.

어미는 없습니다. 항상 새끼였습니다. 최초로 언급된 창 15:9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취할지니라. 여기에서 참고할 것은 산비둘기나 집비둘기 새끼나 다 먹을 수 있는 짐승입니다. 하나님께 드릴 제물들은 대부분 먹을 수 있는 짐승을 드립니다.

먹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레위기 11장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정하신 기준이 있습니다. 두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만 됩니다. 하나는 위가 네 개1)이어야만 합니다. (혹 위, 벌집 위, 겹 주름 위. 주름 위) 또 하나는 굽이 갈라지는 쪽발이여야만 합니다. 이런 짐승들은 먹을 때 대부분이 실제 건강에도 유익한 동물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은 대부분이 먹을 수 있어야 하고 두 번째는 잡기 쉬워야 합니다. 하나님은 은혜로우시기 때문에 사람들이 구할 수 없는 예물을 절대로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원래 원어에는 생축으로 돼 있답니다.) 만약에 구할 수 없는 것을 요구하신다면 이것은 은혜에서 벗어납니다. 그래서 산비둘기나 집 비둘기 새끼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조사 해보면 식용이 가능 했고 대부분 잡기가 쉬웠다고 합니다. 특히 집비둘기 새끼는 더욱 잡기가 쉽습니다.

1) 초식동물 중에는 언제 공격을 받을지 모르기 때문에 우선 급히 풀을 뜯어서 씹지도 않고 배에 넣은 후, 소화는 뒤에 하는 〈반추(되새김질) 동물〉이 있다. 배가 불러지면 안전한 곳에 몸을 피해서 천천히 음식물을 다시 씹는다. 육식동물이 없을 때 빨리 음식물을 확보하여 저축한 다음 한가할 때 저금을 찾는 지혜인 셈이다. 그런데 이 반추동물은 인간에 가장 도움이 되는 가축이 대부분이다 소, , 염소, 낙타, 사슴, 영 양, 라마 등이 이 부류에 속한다. 이 반추동물의 위장은 4(낙타는 3)개로 되어 있는데, 씹지 않고 삼킨 음식물은 덩어리가 되어 가장 큰 제1의 위에 들어가고, 여기에서 음식물은 촉촉하게 되고 부드럽게 되어 제2의 위로 들어간다 여기에서 음식물은 적당히 좋은 크기로 나눈다. 한가할 때 음식물을 제2의 위에서 입으로 다시 가지고 와서 다시 씹기 시작한다. 그래서 하루 종일 무언가 씹고 있는 것이다. 씹어서 다시 삼키면 음식물은 제3, 4의 위로 이동해 간다. 4의 위가 진짜 위이다. 여기에서 음식물의 소화가 시작된다. <소의 소화 과정〉 식도를 통과한 음식물은 소의 4개의 위 가운데 첫 번째 위인 혹 위(흔히들 이라 함) 안에 들어가 일부가 소화된다. 그리고 소화가 되지 않은 나머지들은 작은 덩어리 모양으로 다시 게워 올린다. 소는 이것을 우물거려 다시 씹어서(이것을 반추라고 함) 두 번째 위인 벌집 위(생긴 모양이 벌처럼 생겨 서 붙여진 이름, 절창이라고도 부름)로 보낸다. 벌집위에 보내진 음식물은 알맞은 크기로 부서져서 다시 게워 세 번째 위인 겹주름 위 (흔히들 ‘천엽이라 함, 곱창 집에 가면 나오는 오돌도돌한 돌기가 박힌 검회색의 천처럼 생긴 물건이 바로 ‘천엽’)로 간다. 그리고 마지막 네 번째 위인 주름위(막창 또는 홍창, 모두 4개의 위(곰양, 천엽, 절창, 막창) 중 마지막 위)에 가서 완전히 소화된다. 이렇게 복잡한 과정을 거치는 데에는 3일 이상0] 걸리며, 소는 이런 소화과정을 통해 음식물에 들어 있는 모든 영양분을 섭취할 수 있다.

 

영적인 의미로 집비둘기새끼는 불평하지 않는 가난한 사람의 모습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예물로 드릴 때에 나중에 속건제에서 집비둘기새끼도 못 구하는 사람에게는 고운 가루 십분의 일을 드리는 것이 있지만 그것만 빼면 항상 주님께 드리는 사람 가운데 가장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 예비한 것이 집비둘기 새끼입니다.

주님께서 출생하시고 마리아와 요셉이 성전으로 주님을 모시고 갔습니다. 그때 반구 둘이나 비둘기를 가지고 드렸는데 그 비둘기가 바로 집비둘기 새끼입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얼마나 가난했는지를 알게 되는 것이지요. 주님의 출생은 정말로 가난했습니다. 양을 드리는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집비둘기 새끼를 드렸습니다. 그래서 첫 번째 집비둘기 새끼는 불평하지 않는 가난한 집비 둘기 새끼 모습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처럼 가난한데도 절대 불평한 적이 없습니다.

두 번째로 가난한 사람으로서 살다가 돌아가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얼마만큼 가난하게 사셨는지를 나타내는지 바로 출생 때 사람들이 깨끗케 되기 위해서 드리는 제물에 마리아와 요셉은 양을 구할 능력이 안 되어 반구 둘이나 집비둘기 새끼를 가져간 것을 보면 주님께서는 얼마나 가난했는지를 알 수가 있지요? 주님께 이 세상이 제공한 것은 태어날 때 말 구유였습니다. 돌아가실 때는 십자가 (나무) 위에서 ..... 그 구유는 사람이 태어날 때 사용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구유는 짐승의 밥그릇이었습니다. 이처럼 짐승의 구유인 짐승의 밥그릇에 어린아이가 뉘어져 있었습니다. 마치 짐승의 먹이로 주님께서 밥통에 들어있는 것 같습니다.

이것이 집비둘기 새끼가 나타내는 주님의 모습입니다. 또 십자가를 보면, 주님께서 친히 만드셨던 나무 중에도 사람들이 가공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셨는데 이것은 가난의 극치입니다. 고후 8:9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이처럼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부한 분이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온갖 송사를 받으셨으나 한 가지 송사를 받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돈에 관한 한 아무도 주님을 송사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욕심 많은 헤롯도 그 돈에 중독이 된 빌라도도 돈에 관해서는 주님을 송사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도 송사를 못했습니다. 이것이 집비둘기 새끼가 말하는 주님의 모습입니다.

집비둘기 새끼는 말할 것도 없이 귀소본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께서는 어디서 오셔서 어디로 가셔야 할지 정확히 아시는 분이셨습니다. 13:1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1:9이 말씀을 마치시고 저희 보는 데서 올리워 가시니주님께서는 원래 계시던 곳으로 올리워 가셨습니다. 부활하신 몸을 가지고 가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집비둘기 새끼 이었습니다.

또 다른 집비둘기 새끼의 특징은 아무리 약한 사람도 붙잡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주님 안에서는 아무리 연약한 사람도 주님을 얼마든지 제물로 택할 수 있는 접근성이 매우 좋은 존재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집비둘기 새끼이기 때문에 빨리 도망도 못 갑니다. 누구든지 붙잡으려고 하면 금방 붙잡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면이 주님의 집비둘기 새끼로서의 제물의 모습입니다.

 

8. 다섯 가지 제물은 우열이 없음

주의할 점이 하나가 있습니다. 다섯 가지 제물은 절대 우열로 따져서는 안 됩니다. 전부 주님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어느 제물이 더 크고 어느 제물이 약하다고 상대 비교하면 안 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실 때 수소의 능력이 안 되면, 수양을 수양이 안 되면, 새를 말하였지만 이것은 차등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다 주님을 말하기 때문에 우열을 재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주님께 감사를 드리는 성도들의 우열을 매기면 안 됩니다. 어떤 분은 10분 감사하는데 어떤 분은 5초 감사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5초 감사하는 분이 10분 감사하는 분보다 열등한 것이 아닙니다. 그 제물이 주님이라면 그 사람이 몇 초간 언급 하더라도 아무리 작은 제물도 우열을 매겨서는 안 됩니다. 왜냐 하면 다섯 가지 제물은 동일한 효과를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주님 앞에 드리는 예배의 감사는 아무리 말이 짧아도 하나님 아버지께는 향기로운 냄새이기 때문입니다.

1:8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뜬 각과 머리와 기름을 단 윗불 위에 있는 나무에 벌여 놓을 것이며

한글 킹제임스 레 1:8제사장 아론의 아들들은 각 뜬 부분과 머리와 기름을 제단 위 불 위에 있는 나무에다 정연하게 놓을 것이나

대부분의 번역 성경에는 ‘질서 정연하게’라고 하는 부사가 들어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 절대 무질서하면 안 됩니다. 질서가 필요합니다. 고전 14:40모든 것을 적당하게 하고 질서대로 하라.” 이 말씀과 ‘벌여놓는 것’과 관련 있습니다.

1:8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뜬 각과, 머리와, 기름을, 단 윗불 위에 있는 나무에 벌여 놓을 것이며

1:9 내장과 정갱이를 물로 씻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전부를 단 위에 불살라 번제를 삼을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9. 제물을 부분으로 나눔

각을 뜨는 것은 껍질을 벗기고 제물을 부분적으로 나누는데 네 부분으로 나눠 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머리 기름, 내장, 정강이, 결국 네 가지로 나눴습니다. 신약성경에서 막 12:30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이 말씀과 연결 됩니다. 구약성경을 요약하면 십계명이 되는데 십계명을 요약하면 두 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하나님을 사랑하되 사랑하는 방법이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사랑하는 것입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는? 번제의 ‘내장’에 해당됩니다. 목숨을 다하고는? 번제의 ‘기름’에 해당합니다. 뜻을 다하고는? 힘은 ‘정강이’를 말한다면 뜻은 ‘머리’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음과 뜻을 생각 할 때 뜻은 그 사람이 행동이 나오기 전에 전 단계에 있는 생각입니다. 주님께서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해서 섬길 때, 이와 같이 마음, 목숨, 그리고 뜻, , 이 네 가지를 모두 써서 섬깁니다. 번제에 이 네 가지로 나눠지는 것은 주님의 헌신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제물로 드려진다면 우리의 마음이, 목숨이, 뜻이, 힘이 주님 앞에 드려져야 하는 것입니다. 네 가지 영역으로 나눠져 제물로 드려졌습니다. 주님께서 이와 같이 가르치신 이유는 주님께서 이렇게 행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올바른 모본이기 때문에 당신이 행하시는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내장과 정강이’를 씻게 되는데 사실 주님께서는 거룩하시기 때문에 씻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왜 제물을 드릴 때 씻게 될까요? 이것은 주님께서 안 밖 즉 내부와 외부가 모순되지 아니하는 깨끗함을 지니셨음을 말합니다. ‘내장’이 속을 말한다면 ‘정강이’는 겉을 말합니다. 주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행위는 사람에게 보임이 아니었습니다. 내장인 내면이 거룩했기 때문에 외면인 발걸음이 거룩했습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제물로 드려진 모습이었습니다. 즉 주님은 내면적으로나 외면적으로 모순되지 않고 일치되었음을 나타냅니다. 네 가지 다 제단 위에서 살라졌습니다. 홀로입니다. 그것이 하나님 아버지 앞에 향기로운 제물이 됐습니다.

 

10. 번제에 쓰는 나무

6:9 아론과 그 자손에게 명하여 이르라 번제의 규례는 이러하니라 번제물은 단 윗 석쇠 위에 아 침까지 두고 단의 불로 그 위에서 꺼지지 않게 할 것이요 첫 번째 번제단에 불을 꺼서는 안됩니다. 번제단이 식으면 안 됩니다. 우리 주님께서 그대로 그 위에서 꺼지지 않게 할 것입니다. 6:13불은 끊이지 않고 단 위에 피워 꺼지지 않게 할지니라이것은 의무이면서 명령입니다. 번제단은 재료가 없으면 성립이 안 됩니다. 아무리 제사장이 있어도 나무가 없으면 제사를 드리지 못합니다.

10:34또 우리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백성들이 제비뽑아 각기 종족대로 해마다 정한 기한에 나무를 우리 하나님의 전에 드려서 율법에 기록한 대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단에 사르게 하였고13:31또 정한 기한에 나무와 처음 익은 것을 드리게 하였사오니 내 하나님이여 나를 기억하사 복을 주옵소서

다른 나라 성경에는 나무 제물을 드리라고 번역 돼 있습니다. 성경에 두 번 나 옵니다. 번제는 개인이 드리지만 주변에 돕는 사람이 있습니다. 집단적인 예배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지역 모임이 집단적으로 모여서 예배드릴 때 반드시 해야 될 것이 첫째, 모여야 합니다. 그것이 나무입니다. 모이지 않으면 예배를 드릴 수가 없습니다. 이 나무를 갖고 오지 않으면 아무리 번제단에 제물이 있어도 드릴 수 없습니다.

 

11. 멱통은 제거해야

1:16멱통과 그 더러운 것2)은 제하여 단 동편 재 버리는 곳에 던지고 멱통을 제하라. (멱통은 모이 주머니를 말합니다) 모이 주머니 속에는 소화가 안 되는 모래가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러 나올 때 자기가 소화 안 된 것을 드리면 안 됩니다. 그것은 버려야 합니다. 반드시 자기가 소화한 것을 드리는 것입니다. 서툴러도 문제되지 않지만 꾸미거나 억지로 하는 것은 안 됩니다. 말씀을 보고 주님과 교제하는 삶을 통하여 자기에게 받아들여지는 것을 드리는 것입니다.

1:9그 내장과 정갱이를 물로 씻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전부를 단 위에 불살라 번제를 삼을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1:17또 그 날개 자리에서 그 몸을 찢되 아주 찢지 말고 제사장이 그것을 단 윗 불 위의 나무 위에 살라 번제를 삼을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은혜로우신 주님께서 다섯 가지 제물을 차별하시지 않으시고 향기로운 냄새로 받으셨습니다. 이것은 다 주 예수그리스도에 관한 것입니다. 형제들이나 자매들이나 주님의 만찬 때 각자 풍성히 가지고 나와 주님께 향기로운 냄새가 되도록 영적으로 드리면 주님께서 영광 받으실 것입니다.

2) his crop with his feathers 1:16 직역하면 그의 털들을 가진 모이주머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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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