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Recent Post

theWord Bible Software

Category

속죄제

레위기 4:1-12절입니다. 속죄제는 속건제와 같이 사람 책임이 강합니다. 4 1절부터 2절까지는 속죄제에 관한 총체적인 말씀이고, 3절부터 12절까지는 제사장이 죄를 범했을 경우에 드리는 속죄제입니다. 13절부터 21절까지는 회중이 죄를 범했을 경우에 드리는 제사이고, 22절부터 26절까지는 족장 중 하나가 죄를 범했을 때 드리는 제사이며 27절부터 31절까지는 평민 중 하나가 죄를 범했을 때 드리는 제사입니다.

 

1. ‘누구든지’ ‘그릇 행하여’ 혹은 ‘부지중에’

속건제와 속죄제는 내용상으로는 비슷합니다. 그런데 이 죄를 주님께서 언급하실 때 속건제는 신분을 따지지 않았습니다. 속건제는 누구든지라고 하는 것이 다른 점입니다. 하지만, 속죄제는 정확하게 네 경우를 예를 들었습니다. 이와 같이 속죄제는 신분들을 중심으로 말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또 하나의 차이는 속죄제는 그릇 행하여부지중에라는 말이 자주 나옵니다.

4 2절을 보면 ‘그릇(다른 성경에 무지. 무의식)’ 이라고 했습니다. 13절에도 ‘그릇’이라고 돼 있습니다. 22절에는 ‘부지중에’ 라고 돼 있습니다. 28절에 보면 또 ‘부지중에’라고 돼 있습니다. 이것은 속죄제의 특징을 말해주는 것 중에 하나입니다. 그리고 죄를 생각 할 때 죄라는 것이 도대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어떤 결과를 파생시키는 지를 성경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속죄제는 기본적으로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명령하는 것 중에 자기도 모르게 내지는 부지중에 그릇 범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속죄제의 목적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성을 일러 주기 위함입니다. 일러 주시되 네 가지 그룹으로 나눠 주셨습니다. 이것은 신약의 성도들에게도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나 유익합니다. 놀랍게도 속죄제는 개인과 집단을 크게 둘로 나누셨습니다. 개인 중에도 신분으로 나누셔서 평민이 있고 족장이 있으며 회중이 있고 그리고 제사장이 있습니다.

 

2. 죄는 하나님의 것을 훔치는

이것은 신약의 성도들이 교훈 받기 좋게 속죄에 관한 구성을 꾸며 놓았습니다.

구원받은 성도가 죄를 지으면 지옥은 안 가지만 구원받지 않은 사람은 죄를 지으면 여전히 지옥에 갑니다. 그렇다면 구원받은 사람이나 구원받지 않은 사람이 죄를 범하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겠습니까? 말라기를 보면 구원받은 사람들이 죄를 범하면 어떻게 되는가요? [3:8-9]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냐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의 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3. 죄를 범한 사람은 저주를 받음

그러면 구원받은 사람이나 받지 않은 사람이나 죄를 범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무언가를 훔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무언가를 도적질 하는 것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신구약을 불문하고 신약의 원리나 구약의 원리나 죄를 범하게 되면, 첫째 그 사람은 하나님의 것을 훔친 것이고, 두 번째, 하나님께 죄를 범한 그 사람은 비참해지게 돼 있습니다. 성경적으로는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정녕 죽는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 비참한 내용이 죽음입니다.

죽음은 우리가 그것을 성경적으로 이해하게 되면 훨씬 더 비참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죽음이라는 말 한 마디로 언급 돼 있지만 여기에는 상당히 많은 내용들이 포함돼 있습니다. 그러면 8절은 레위기 4장을 놓고 보면 여호와의 금령 중 하나를 범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헌물을 안 드리면 안 된다고 하셨는데 이 사람들이 안 드렸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하나님의 것은 도둑을 당한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저주를 받게 됩니다.

성경에 최초로 죄를 범한 사람은 하와였습니다. 그 다음에 아담이 가담을 했는데 그러면 죄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 이라면 에덴동산에서도 하나님 것의 무언가를 잃은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아마 이것을 다 세려고 들면 양이 굉장히 많게 될 것입니다. 놀랍게도 처음 시작된 아담의 그 범죄는 지금 까지도 계속 되고 있습니다. 자꾸 하나님은 무언가를 도둑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쉽게 이야기 해 보겠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존재는 훔치지는 못했습니다. 사단이 아무리 교활하다고 해도 초기의 아담과 하와에게는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은 불가능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관한 불신은 조작해도 하나님의 존재는 부인을 못했습니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진화론이 나오고부터는 이제는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게 된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초기에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 불가능했던 것이 지금은 가능해 졌습니다. 그러니까 죄가 얼마나 심해졌는지 알 수 가 있습니다. 초기보다도 죄가 점점 더 횟수가 많아지고 하나님의 무언가를 계속 훔치게 되는데 결국에는 어디까지 가는가 하면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부인합니다. 사실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자체를 훔쳐 가버린 것입니다.

진화론의 죄는 가볍게 볼 것이 아닙니다. 진화론은 그냥 하나의 과학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 숨어있는 영적인 비밀이 하나님의 존재를 훔치는 범죄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전혀 경계심을 갖지 않습니다. 심지어 성도들조차도 오히려 그 사람들의 이론이 맞는 것처럼 생각이 드는 것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진화론을 대처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믿음을 가지고 말씀대로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간단한 방법을 사람들은 버리는 것입니다.

문제는 오늘날 믿는 성도들도 명백한 말씀인데도 순종을 안 합니다. 그러면 점점 하나님의 것은 잃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이 도둑을 맞는 양 만큼 사람에게 저주가 커지는 것입니다. 사람은 더 비참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죄를 생각할 때 가져야 하는 하나의 기본적인 발상입니다. 폐일언하고 죄는 하나님의 것을 훔치는 것입니다. 사단도 처음에는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였습니다. 11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이 말을 보면 뱀은 하나님의 존재를 절대로 부인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기본 상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상식이 아닙니다. 계속해서 죄를 지으면 사람들의 몸도 파괴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영혼이 파괴됩니다. 심지어 자기 정체성을 가지지 못합니다. 전혀 다른 병이 없는 데도 즉 영혼이 하나님의 것을 자꾸 훔치게 되면 영혼 자체가 점점 더 파괴돼 갑니다. 성도들도 혹은 입술로는 구원 받았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주님과의 교통이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속죄제에서 ‘부지중에’ 라고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이 형제자매라고 불렸지만 죄를 범하고 있으면서도 영적으로 그것을 못 느끼는 상태가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속죄제의 무서운 점이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을 하셔도, 죄를 짓고도, 자기가 모르는 것이 문제입니다. 내가 뭘 잘못했냐고 말합니다. 그것이 말라기 사람들입니다.

말라기 사람들이 처음에 어떻게 시작했습니까? ‘내가 에서는 미워하고 야곱은 사랑한다.’ 하셨습니다. 그랬더니 사람들은 ‘하나님은 어떻게 우리들을 사랑했습니까? 이렇게 나오는 것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에 대해서 의심을 갖습니다. ’부지중에‘ 라는 상황에 즉 자기도 모르게 입에서 말이 나옵니다. 평상시에 그 생각을 늘 하고 있었습니다.

성도들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죄가 행해진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 그것을 일깨워 주는 것이 속죄제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속죄제를 언급하실 때 우리가 이해하기 쉽도록 네 가지 경우를 들어주셨습니다. 제사장, 회중, 족장, 평민이었습니다. 그래서 속죄제를 통해서 사람의 마음에 있는 상태가 얼마나 두렵고 무서운 상태인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우리가, 내가, 죄를 범할 수도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리고 내가, 죄를 범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눈치 채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만큼 비참한 경우가 없습니다. 간혹 사람들 가운데 이런 경우가 있습니다. 명백히 죄를 범하고도 내가 무슨 죄를 범했느냐고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자기가 위선적으로 가리기 위함이 아니고 ‘부지중에’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보이는 것이 이 속죄제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속죄제를 주께서 그냥 방치해 두시는 것이 아니고 ‘부지중에’ 그릇 행했다가 내가 죄를 범했구나. 라고 하는 인식을 갖게 될 때에 해결 책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임을 알 수 있습니다. ‘부지중에’ 범한 죄에 대한 해결책을 주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4. 속죄제는 자체보다도 죄를 범하게 사람 자체가 나쁘다는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죄를 범하게 되면 죄를 범한 그 사람보다도 죄가 더 나쁜 것이기 때문에 그 사람을 용서해 달라고 보통 말을 합니다. 그래서 많은 경우에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그럽니다. 그런데 속죄제를 보면 거꾸로 입니다. 주님께서 속죄제를 어떤 의미로 말씀하셨냐 하면 내가 범한 그 죄보다도 죄를 범한 내가 더 나쁘다는 것을 인식시키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자기는 늘 좋은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성도들도 그럴 수 있습니다. 자기는 늘 좋은 사람인데 자기는 늘 피해를 입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를 범한 그 죄 자체보다도 죄를 범하게 된 그 사람 자체가 더 나쁘다는 것을 일러주는 것이 바로 속죄제입니다. 속죄제 문제를 가장 잘 깨달은 사람이 사도 바울입니다.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습니까?

 

1) 죄인 중에 괴수

사도 바울은 처음에 죄를 깨닫고 [고전 15:9]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내가 하나님 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로라” [3:8]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딤전 1: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입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이렇게 낮아지는 것은 어디에서 온 결과일까요? 다름 아닌 속죄제를 깨달은 결과에서 오는 것입니다. 바울 스스로의 범죄나 자기의 영역을 변호하지 않고 주님 앞에서 올바르게 속죄제물을 가지고 나가니까 무엇을 보게 됐습니까? 자기가 연약했다고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자기 자신이 나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바울은 심지어 죄인 중에 괴수라고까지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속죄제를 깊이 깨달았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 중에, 주님 외에 가장 죄를 잘 아는 사람으로 기록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에 있는 모든 죄인 중에 괴수라고 할 정도로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깨달아지면 자기를 의지하지 않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속죄제를 가장 잘 깨달은 사람 중에 한 사람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속죄제를 말씀으로 올바르게 받게 되면 내 자신이 얼마나 비참한 자인지 압니다. 내가 실수한 실수의 잘못보다 더 처참한 것은, 다른 사람은 다 아는 데 정녕 내 자신은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이것도 속죄제를 깨달은 바울의 한 면입니다. 그리고 속죄제를 깨달은 상태에 이르렀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얼마나 처참한 가를 고백하고 인식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속죄제를 알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바울이 그리스도를 속죄제 제물의 하나로 보고 인식하기 시작한 대목이 바로 로마서 7장임을 알 수 있습니다.

 

2) 제사장

속죄제에 네 가지를 주셨습니다. 첫 번째는 제사장입니다. 제사장이 죄를 범하게 되면 하나님의 예배를 훔치게 되는 것입니다. 신약에서 구원받은 모든 사람들이 제사장이므로 하나님께 드려져야 할 예배를 안 드리면 그 사람이 도적질 하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그라고 그만큼 자기 자신은 비참해지는 것입니다.

 

3) 회중

두 번째 회중이 죄를 범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지 보겠습니다. 구약에 이스라엘을 놓고 보면 이스라엘은 국가 전체가 회중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회중이 작은 무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신약으로 갖고 오면 구약보다 회중은 훨씬 더 신약적입니다. 신약에서는 집단적으로 모임이 범죄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어떤 모임 내에 출교를 당해야 될 성도가 있는데 출교하지 않는 경우를 이런 경우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모임은 죄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모임은 도대체 무엇을 주님께로 훔치는 것이 되겠습니까? 주님의 주권을 훔치게 되는 것입니다.

 

4) 족장

세 번째 족장이 죄를 범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지 보겠습니다. 다른 나라 성경에는 위에 선 자’. ‘다스리는 자라고 표현합니다. 그러면 족장이 만약에 죄를 범하게 되면 무엇을 훔치게 되는가? 하나님의 통치를 훔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중에 하나가 사울 같은 사람입니다. 사울이 죄를 범하니까 하나님의 통치가 도둑을 맞게 죄는 것입니다. 다윗이 왕위에 오를 때는 하나님의 통치가 섭니다. 다윗은 목표를 성전으로 삼았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다스리는 다스림을 나타내겠다는 것입니다. 모든 이스라엘 가정들을, 모든 개인을, 다윗은 예배자로 삼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세상 왕이 도저히 꿈꿀 수 없는 놀라운 족장으로서의 왕임을 알 수 있습니다.

 

5) 평민

네 번째, 평민 중에 하나가 죄를 범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지 보겠습니다. 여러 가지 중에 하나가 바로 교제입니다. 하나님과의 교제를 훔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평민이기 때문에 등급이 낮거나 수준이 낮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성경에 언급이 없다가 평민이 회복 될 때는 언급 될 때가 하나 있습니다. 평민이 회복 될 때만 언급 될 때가 하나님께 향기로운 냄새가 된다는 것인데 이것은 평민에게만 나와 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성도들의 하나님과의 교제의 회복이 얼마나 중요한 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제사장이나 회중이나 족장의 경우에는 언급이 없습니다. 평민의 하나가 회복 될 때만 언급 돼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개개인을 아주 중요하게 보십니다. 한 개인이 온전히 회복돼서 주님과의 교제가 회복되면 그것이 곧 나중에 족장과 연결되고 회중과 관계가 되고 제사장과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신약으로 보면 이 네 가지가 사실 한 사람 속에 다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구원 받은 성도들이 만약 죄를 범하게 되면 이 죄는 내가 범했던 죄보다도 죄를 범하게 된 나 자신이 얼마나 처참한 사람이고 얼마나 죄 많은 사람인가를 인식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네 가지를 가지고 각각 검증해 보라는 것입니다.

내가 제사장으로서 (예배) 죄를 범하는 경우가 없는가? 내가 회중 (주권)으로 무시한 경우는 없는가? 내가 족장으로서의 입장에서 (통치)를 무시하는 경우는 없는가? 내가 개인적인 측면에서 (교제)를 훔쳐가는 범죄가 부지중에 나에게 발생하지 않았나? 이렇게 생각하시면 속죄제에 관한 교훈을 받는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4장은 분명히 속죄제로 나와 있고 5장은 6절에 ‘속건제’라고 부르면서도 ‘속죄제를 드릴 것이요’ 라는 말이 나오는 것을 보니까 여러 분들 가운데 이런 견해를 가지시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속죄제와 속건제는 같이 다뤄야 한다는 견해들을 가지는 분들이 있습니다. 차이를 보시면 속죄제는 그 죄가 무엇인지가 나와 있지가 않습니다. 단지, ‘부지중에 그릇 범하여 허물이 있으나’ 이렇게 됩니다.

 

5. ‘무심 중에 입으로 맹세를 발하여’

그런데 그 죄가 무엇인지는 안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5장에는 구체적인 죄가 나와 있습니다. 그러면 4장과 5장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5장에 나와 있는 것을 보면 ‘무심 중에 입으로 맹세를 발하여’ 라고 말해서 마치 4장에 ‘그릇 행하여’ 또는 ‘부지중에’와 조금 닮지 않았습니까? 5장에는 이와 같이 구체적인 범한 행위가 나온 데 반해서 4장에는 구체적인 행위가 없습니다. 그냥 그릇 행했다고만 나와 있습니다.

 

6.4장은 ‘누가 범했느냐’ 5장은 ‘무엇을 범했느냐’가 중요한

그러면 4장의 핵심은 구체적인 내용보다 그것을 누가 범했느냐가 중요합니다. 제사장이 범했느냐? 회중이 범했느냐? 족장이 범했느냐? 평민이 범했느냐?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하지만 5장은 누가 범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무엇을 의미하느냐가 중요한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5장과 4장을 비교하면 확연히 비교가 됩니다.

4장은 확실히 그 사람을 다루는데 반해서 5장은 그 사람이 행한 죄를 다루는 것입니다. 5장은 그야말로 범죄를 다루는 것입니다. 물론 4장도 범죄이지만 범죄를 한 사람의 신분을 가지고 따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는 여러 가지 접근 방법이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죄는 하나님을 향한 죄입니다. 사람에게 죄를 지어도 사실은 하나님에 대한 죄가 먼저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사람에게 적용이 됩니다. 그래서 사람에게 죄를 지어도 하나님께서 그 죄를 짓지 말라고 하셨다면 사람에 대한 죄를 지어도 하나님에게 손해를 끼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에게 무언가를 훔쳐가는 것이 됩니다.

 

 

 

'레위기의 제사들 > 다섯제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령한 제사  (0) 2013.12.11
속건제  (0) 2013.12.11
화목제  (0) 2013.12.11
소제  (2) 2013.12.11
번제  (0) 2013.12.11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