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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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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2. 14. 16:40 횃불/1995년

결혼과 가정(10)

솔로몬의 치료

A. J. 히긴즈

모든 사회가 훈육(징계)을 가치 있게 여긴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그것에 대한 철학이나 형태는 문화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결코 이의가 있을 수 없습니다. 비록 우리가 마치 정신분열증 환자와도 같은 현대의 서방 세계에 살면서 권위가위기에 직면해 있는 것을 보고 있을지라도 훈육의 미덕은 여전히 극찬합니다. 사람들이 잘 훈련된시범부대를 얼마나 높이 평가하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잘 훈련된군인들과 특공대를 만들기 위해 어떠한 수고가 투자되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렇기 때문에 이력서나 자기 소개서에 잘 훈련된 마음가짐과 생활방식을 소유하고 있다고 적는 것은 좋은 평가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자기를 훈련하는 힘은 도대체 어디에서 생겨나는 것일까요? 그것은 단지 적당한 개발만을 필요로 하는 선천적인 특성일까요? 아니면 그것은 생활의 경험을 통해 얻어지는 것일까요?

미국전쟁이 끝나자 그 후부터 훈육에 관한 어떤 새로운 철학이 대두되었는데 그것은 다름아닌, 어린이들을 합당한 이유 없이 혹독하게 억압하는 것에 대한 반동이었습니다. 그것은 어린이들에게 마음대로 표현할 수 있는 자유를 허락해야 한다라고 주장했으며, 응석을 관대하게 받아주어야 한다고 권장했습니다. 비록이 유행이 많은 선두(先頭) 심리학자들의 마음과 가르침으로부터 사라지긴 했지만 그 영향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과 가정에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부모들이 피해야 할 두 가지의 크나큰 위험성을 강조하고 있는데 그 중 첫째는, 그릇된 대안을 선택하게 만드는 위험성입니다. 지나치게 억압적인 훈육(징계)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라는 문제가 종종 제시되는 까닭에 많은 사람들은 결론을 내리기를, 다른 유일한 대안은 응석을 관대하게 받아주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두 가지는 다 그릇된 극단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균형을 줄 뿐만 아니라 올바른 방법으로 훈육(징계)에 접근하도록 해줍니다.

응석을 관대하게 받아주는 것이나 억압적인 훈육(징계)은 결국 문제를 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장()의 주제는 성경적인 대안이 있다는 사실인데, “권위적인 훈육으로 알려져 있는 이 대안은 부모로 하여금 합당한 기준을 설정하게 함과 동시에 또한 개성과 표현, 그리고 독립성을 장려하게 합니다.

두번째의 위험성은, 성경에 위배된 인간의 생각을 받아들이는 문제와 연관이 있습니다. 구원받지는 못했으면서도 지설적인 사람들 중에는 성경에 제시된 훈육의 원칙들을 부지중에 찬성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우리가 그들에게 동의할 수 있으나, 그들의 생각이 성경과 다른 경우에는 하나님의 가르침을 소신있게 따라야 합니다. 인간들의 견해와 개념들이 시대에 따라 변한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어떤 새로운 사상을 맹종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입니다. 대다수의 해로운 가르침은 주로 매우 그릇된 추정(가설)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이 추정은 다름아닌, 인간이란 근본적으로 선한 존재이기 때문에 이 선이 개발되도록 자꾸 격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성장하면서 그릇된 특징을 나타내 보이면 도대체 무엇이 잘못되었는가?”를 알기 위해 필사적인 탐구가 이루어 집니다. 자녀들의 선이 표현되지 못하도록 무엇인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인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 말씀의 가르침과 명백히 상반된다는 사실 앞에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이의가 없을 것입니다. 시편 51:5과 이사야 64:6은 인간이 나타날 때부터 문제들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으며, 신약성경에 기록된 바울의 가르침 역시 인간의 패역한 본성을 역설하고 있습니다.(사도행전 10장의 고넬료처럼) 인간이 혹 도덕적으로 올바른 행실을 보여줄 수는 있을지라도 인간의 타고난 본성은 악 쪽으로 향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으며, 하나님 보시기에 자신의 필요를 채울 수 있는 능력을 완전히 결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훈육의 원칙들을 가장 많이 역설하는 부분은 아마 잠언일 것입니다. 이 잠언의 가치를 더욱 두드러지게 만드는 것은 아버지가 자기 아들에게 주기 위해 잠언을 기록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잠언에는 대조법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흔한 것은 지혜로 자와 미련한 자의 대조입니다. 여러 경우에 있어서 그들의 주된 차이점은, 지혜로운 자는 자기 길의 결과들을 예견하는 반면에 미련한 자는 맹목적으로 그냥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합당한 책임의식을 자녀들에게 심어주는 일은 헤아릴 수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원인과 결과, 심는대로 거두는 것, 작용과 반작용 등 보편적인 도덕률을 깨우치는 일은 부모들이 경주해야 할 주요 목표 중의 하나입니다. 이렇게 귀중한 특성들은 가정 훈육의 열매들입니다. 그리고 솔로몬의 ”(징계)에 관한 교훈을 잠언에서 죽 더듬어 본다면 우리는 다음의 필요성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징계의 필요성

이 주제에 대하여 우리가 이미 살펴보았지만 솔로몬의 관점도 경청해야 마땅합니다. 혹자의 생각에는, 매에 대한 솔로몬의 언급은 오로지 체벌의 개념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냐라고 여길지 모르겠습니다. ”(rod)에 대한 히브리 원어는 지파”, “”(), “권위로도 번역되어 있다는 사실은 주목할만합니다. (에 대한 히브리 원어가 성경에 제일 처음 나오는 곳은 창세기 49:10인데 여기에서 그 원어는 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 이런 모든 사실을 감안할 때 그 단어는 권위와 기준을 확립하는 개념을 지니고 있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개념을 솔로몬의 가르침에 적용해 보면 좋습니다

잠언 22:15에는 다음과 같이 나와 있습니다.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혔으나 징계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 쫓아내리라.” 여기에서 솔로몬이 가르치는 바는, 인간의 본성에게는 이것을 제어할 외부의 권위가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미련함이란 표현은 일시적인 우둔함이나 경박한 성향의 개념만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원어상 완고함, 고집, 거역의 개념을 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것은 반항과 불순종이며, 일시적인 우둔함이나 유치함이 아닌 것입니다.

고집과 반항으로 향하는 선천적인 성향은 일찍부터 제어되어야 마땅합니다. 솔로몬의 가르침과 아비들에게 권면한 바울의 말은 서로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고 혹자들은 종종 언급합니다.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격노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 3:21). 이 말씀에서 유념해야 할 위험성은 자녀의 고집이 꺾일 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상심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지나친 규율과 제약 속에 심한 벌을 가하면서도 칭찬은 거의 하지 않고, 자신의 잘못은 잘 보지 못하면서도 다른 사람의 잘못은 잘 잡아내는 엄격한 아버지는 바울이나 솔로몬의 조언을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결국 자녀를 상심케 하고 좌절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자녀들은 권위를 인정하고 복종하기를 마땅히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어디에서보다도 이것을 가정에서 먼저 배워야 합니다. 권위에 관한 가정교육의 목표 중 하나는 자녀로 하여금 하나님의 권위를 도덕적인 분야와 영적인 분야에서 인정하도록 준비시키는 일입니다. 솔로몬이 잠언에서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점은 바로 이것이었던 것 같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부모들이 가지고 있는 사고구조를 알게 되면 의외로 놀라게 됩니다. 징계 및 이것이 지니는 과정에서의 역할에 관하여 많은 사람들이 필자에게 질문합니다. 그들은 혹시 징계가 자녀들의 창의성을 억누르거나 자녀들의 심령을 파괴하지나 않을까 염려한 나머지 과연 자기들이 징계를 해야 하는지 어떤지 의문을 갖는 것입니다. 하지만 필자는 자녀가 여러 영역에서 권위에 복종할 줄 알아야 한다고 수시로 지적합니다. 교통순경의 신호는 필히 따라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그의 제복이 그에게 부여한 권위 때문입니다. 해마다 납부하는 세금도 정부의 권위 때문에 납부해야만 합니다. 직장과 사업에 있어서도 권위와 복종의 질서가 다소간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자녀가 가정에서부터 훈육되지 않는다면 어디에서 훈육될 수 있겠습니까? 가정 교육이 이처럼 필수적이라면 그 특징은 어떠해야 할까요?

 

훈육의 특징

아버지는 하나님이 부여하신 책임, 즉 가정에서 권위적인 분위기를 형성하는 일을 어떻게 하면 잘 수행할 수 있을까요? 경찰관의 제복을 입고 곤봉을 차면 될까요? 아니면, 아버지가 자기 가족의 안녕을 위해 사립탐정이 되면 될까요? 아니면, 명령에 대한 도전이나 이의를 용납하지 않는 전제군주처럼 행동하면 될까요?

솔로몬의 다음 세대를 고찰한다면 아마 우리는 어떤 통찰력을 얻게 될지도 모릅니다. 불행하게도 솔로몬의 가족은 자기 아버지가 가르쳐 준 교훈을 잘 배우지 않았습니다. 르호보암은 왕위에 올랐을 때 권위 문제로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는데(왕상 12) 그것은 지금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것과 비슷한 권위를 확립하는 문제였습니다. 그 당시 젊은이들의 조언은 신하들을 위협하여 복종시킴으로써 왕의 권위를 세우라는 내용이었던 반면, 노인들의 지혜로운 권면은 백성들을 이해하고 섬김으로써 왕의 권위를 세우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왕의 잘못된 결정이 어떠한 결과를 초래했는지는 모두가 잘 아는 사실입니다.

여기에서 강조하고 싶은 귀중한 교훈은, 하나님을 떠나서는 어떠한 사람도 자신의 권위를 세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권위를 세울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말씀에 제시된 아버지가 되는 것입니다. 이보다 못하거나 지나친 것은 아버지의 권위를 약화시킬 것이며, 따라서 나의 권위는 하나님과 그 말씀으로부터 나옵니다. 그러므로 나는 부모의 역할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노 어머니의 권위 역시 자기 남편을 위한 돕는 배필의 위치를 지킬 때 얻을 수 있습니다. 아내는 자기 남편에게 순복할 때 권리를 잃지 않고 오히려 얻게 됩니다. 부부간의 마찰은 이 권위의 사슬을 조만간 끊고 말 것입니다. 처음에는 자녀들이 부모의 말을 양쪽 다 듣다가 결국에는 아무 쪽도 듣지 않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솔로몬과 르호보암의 사례를 감안할 때 우리는 이해심과 인내심, 그리고 애정을 통하여 권위를 확립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우게 됩니다. 그렇다고 필자가 응석을 관대히 받아주는 게 좋다고 장려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가정에서의 권위가 어떠한 성격을 지녀야 할 것인가에 대한 통찰력을 하나님의 말씀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먼저 여러분 자신에 관해서 잠깐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왜 여러분은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 순복하십니까? 모든 권세가 그분의 손 안에 있고 따라서 여러분이 불순종하면 징계가 뒤따르기 때문에 그렇습니까? 그 권세를 휘두르시는 분의 손과 마음을 여러분이 의뢰하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 아닙니까? 그분이 여러분을 사랑하시며, 여러분에게 가장 좋은 것만 주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기 때문에 그분에게 순복하는 것이 아닙니까?

만일 우리의 자녀가 징계 때문에 순종한다면 당장에는 순종을 잘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성숙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 종류의 순종은 성장 단계에 있어서 가장 초보적 인 것이 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자기 자녀들로부터 자발적인 순종을 얻어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그들보다 더 슬기로우며 그들에겐 좋은 것만 주기를 원한다는 사실을 그들이 알기 때문에 그들이 우리를 신뢰하고 사랑하는 가운데 순종하도록 인도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제 솔로몬의 잠언으로 돌아가 봅시다. 잠언 13:24에서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읽을 수 있습니다.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 흔히 우리는 이 말씀을 곡해하여, 우리가 자녀를 징계할 때 자녀에 대한 사랑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 말씀은 징계가 사랑에 입각해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따라서 징계는 분노심이나 복수심에서 이루어져서는 안됩니다. 분노심에서 징계하는 부모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다루기 전에 먼저 자기 마음을 다루는 게 좋습니다.

죄와 반항에 대한 분노 그 자체가 나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열쇠는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않는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사람을 심하게 꾸짖지는 않으면서도 행동에 대해서만 분노를 표현할 수 있다면 여러분의 태도가 효과적일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여러분이 자신의 분노를 제어하지 못한다면 위험합니다.

잠언 13:24은 징계(훈육)를 하는 동기에 대해서 말할 뿐만 아니라 그 방법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습니다. “근실히”(betimes)라는 표현은 때에 맞고 일관된 징계를 하라는 개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어떤 부모에게 물어 보아도 징계는 어려운 일임에 틀림 없습니다. 규정들은 나날이 강화되지만 그에 대한 도전들도 더욱 강화됩니다 자녀들에게 오늘 어떤 제약을 풀어 버리면 내일부터는 그것이 당연한 것으로 되어 버립니다. 우리 부모들은 말의 표현과 그 의미가 항상 일치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는, 부모들이 자기 자녀들에게 한두번 경고를 발하다가 마침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어 보았을 것입니다. “이제 진짜로 경고하겠는데 만일 내 말대로 하지 않으면 너는····이 표현은 자녀들에게 어떤 느낌을 전달하겠습니까? 그 전까지의 말은 진짜가 아니었다는 말입니까? 부모의 일관된 태도는 매우 중요합니다. 말이나 경고의 표현과 그 의미가 항상 일치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우리 부모들은 자녀 앞에서 자신의 권위를 스스로 떨어뜨리게 되는 것입니다.

훈육은 어려운 일일 뿐만 아니라 전심으로 해야 하는 일입니다. 필자는 어쩔 수 없는 환경 때문에 직업을 가져야만 하는 가정주부들을 비난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녀 양육 문제를 다른 사람들에게 결코 맡기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 자녀에 관하여 잘 아는 것, 자기 자녀의 개성과 필요에 대하여 민감하게 보살펴 주는 것은 필자가 보기에 엄마의 모든 시간과 재능을 요구합니다. 가정에서 엄마의 역할을 잘하는 것은 직업세계의 여성들보다 더 많은 지혜를 요구합니다. 그것은 중역회의실보다 더 큰 도전입니다. 그러면서도 것은 세상의 어떠한 경제적 이익보다 더 큰 상급을 갖다 줄 것입니다.

하지만 징계는 일관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신속해야만 하는데 근실히라는 표현 속에는 이것도 포함되어 있다고 여겨집니다. 악한 일에는 징벌이 속히 실행되어야 합니다( 8:11). 나중에 혼내주겠다는 위협이나 경고는 자녀에게 별로 효과가 없습니다.

 

신속한 징계

솔로몬은 징계의 방법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습니다. 이미 말씀 드린대로 권위를 확립하는 일이 먼저 선행되어야 f’)지만 체벌도 역시 필요합니다. 이런 형태의 교정 방법을 나쁘다고 보아서는 안됩니다. 매는 정확한 부위에 신속히 가해져야 하지만 그렇다고 이 것만이 유일한 교정 수단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잠언 29:15은 채찍과 꾸지람이 함께 가해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으며, 때로는 이 두 가지가 필요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체벌이 필요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체벌이 필요한 경우에 기억해야 할 점은, 우리가 매맞는 자녀의 비행(非行)을 미워하는 것이지, 자녀 자신을 미워하여 화내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시켜 주어야 합니다. 잠언 22:15에서 징계를 받아야 하는 사항은 반항과 고집이지, 실패나 실책, 또는 실수가 아닙니다. 기준을 설정하거나 징계(훈육)를 실행함에 있어서는 부부간에 일치되어야 합니다. 만약 그렇지 못하는 경우, 일치하지 못하는 점들에 관하여 부부가 서로 조용히 대화하여야 합니다. 부모 사이의 분쟁만큼 가정의 권위와 훈육을 훼손시키는 것은 없습니다. 부모가 각기 자신의 징계(훈육) 방법을 고집하기 보다는 먼저 서로 절충하고 난 후에 일치된 모습으로 실행하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자녀를 양육하는 것 때문에 부부가 서로 나뉘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부모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 인기 측정 경연대회처럼 되어서는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자녀로 하여금 여러분 자신을 사랑하도록 만드는 것이 여러분의 책임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책무는 자녀들을 주님의 교양(모범과 실천으로 훈육하는 것)과 훈계로 잘 양육하는 것입니다( 6:4).

규칙들은 가능한 한 적게 만드십시오. 이것에 관하여 혹자는 다음과 같이 잘 표현했습니다. “많은 규칙에 많은 범죄.” 또 규칙들을 만들더라도 합당하게 만드십시오. 그리고 그 규칙들에 대한 이유를 성경에서 적절히 보여주면서 대화를 나누십시오. 어떤 제약의 테두리 안에서는 자유를 주어야 합니다. 무지한 말이나 노새는 자갈과 굴레로 단속해야 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들을 사용하려면 자갈과 굴레를 조금 느슨하게 해주어야 합니다( 32:9). 자녀들의 이해력이 성장하면 할수록 그 성장도에 따라서 고삐를 늦춰주어야 합니다.

 

징계(훈육)의 소홀

잠언 29:15 23:13,14에는 징계(훈육)를 소홀히 한 결과가 적어도 두 가지로 제시되어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이세상에서의 수치와 슬픔입니다. “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하게 버려두면 그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 또 다른 결과는 자녀의 영원한 운명입니다.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 영혼을 음부에서 구원하리라.”

징계(훈육)를 단념하는 것에 찬성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가족을 위하여 성경적인 훈육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하나님의 말씀에서 배워야 하며, 그런 다음에는 그것을 가정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1995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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