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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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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 4. 11:11 횃불/1996년

다아비의 신약성경개요-마태복음

24

왕국에 대한 은혜의 증거를 거절한 것이 예루살렘과 그 거민에게 임하는 심판의 원인임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24장에서 우리는(1)그러한 증거가 백성 한 가운데서 차지한 위치와 (2)이방인의 상태 및 그들이 제자들에 의해 주어진 증거에 대해 서 있는 관계와 (3)그 후에 메시아를 거절하고 그 증거를 멸시한 결과로 인한 예루살렘의 상태와 그리고 (4)말일에 임할 전세계적인 재앙-인자의 출현과, 이스라엘의 택한 자들이 사방에서 모이는 것으로 종식되는 상황-등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다가올 사건들 속에서 취해야 할 행동지침으로 제자들에게 주어진 예언이자 가르침이기도 한 이 괄목할 말씀들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성전을 떠나시되 영원히 떠나시는데 이는 그분이 방금 선언하신 심판을 집행하셨다고 우리가 말할 수 있는 엄위한 행동이십니다. 그 집은 이제 황폐화되었습니다. 제자들의 마음은 여전히 선입관으로 인해 그 집에 매여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 집을 이루는 장려한 건물들로 그분의 관심을 돌려보려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그 집의 완전한 파괴를 선언하십니다. 감람산 위에서 그분과 함께 따로 앉은채 제자들은 먼저 그런 일이 일어나며 그분의 오심과 세상 끝에는 어떤 징조가 있겠느냐고 묻습니다. 그들은 성전의 파괴와 그리스도의 오심과 세상 끝을 함께 분류합니다. 우리는 세상 끝이, 이스라엘이 옛 언약 아래서 율법에 복종하던 기간의 끝이라는 것을 유의해야 합니다. 그 때 마감되어 메시아와 새 언약에게. 자리를 내준 그기간말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지상통치와, 또 기존 시대를 마감 지을 그리스도의 강림시에 일어날 심판이 그 주제임을 주목해야 합니다. 제자들은 주님께서 성전의 파괴에 대해 말씀하신 것을 그 기간과 혼동했습니다. 주님은 그분의 관점에서(, 그분이 계시지 않는 동안, 또 세상 끝까지 제자들이 유대인과 관련하여 선해야 할 증거에 대해서) 그 주제를 다루십니다. 그분은 이미 선언하신 예루살렘의 파괴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더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의 강림의 시기는 의도적으로 숨기웠습니다. 게다가 디도에 의한 예루살렘의 파괴는 사실 주님의 가르침이 염두에 두었던 위치를 종식시켰습니다. 유대인들 가운데는 더 이상 심리(審理)되어야 할 시험이 없었습니다. 그 위치가 회복될 때 본문의 적용력 또한 재개될 것입니다. 예루살렘이 파괴된 후로 그 때까지는 오직 교회만이 다뤄질 것입니다.

주님의 강화는 세 부분으로 나눠집니다.

(1) 증거 기간 동안 제자들과 세상의 일반적인 상태(414).

(2) 그 기간은 멸망의 가중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서는 사실로 특징지워진다(15).

(3) 주님의 오심과 이스라엘 중 택한 자들의 함께 모임(29).

제자들의 증거의 때는 유대인 중에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고, 증거자들을 핍박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는 일로 특징지워집니다. 그러나 그 날들과 관련하여 한결 분명한 것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가운데 거짓 그리스도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전쟁과 기근과 온역과 지진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 일들이 일어나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닐 것입니다. 그것은 재난의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그들을 더 큰 시련에 빠트리고 보다 철저히 시험하는 다른 사건들이 있었으니 그것은 보다 내적인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은 환란에 넘기우고 죽임을 당하고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을 것입니다. 그로 인해 믿음을 고백한 자들 중에 많은 이들이 시험에 빠져 서로 배신할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할 것이며,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일들은 시험대에 오른 믿음이 행사될 기회를 제공할 것입니다.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그것은 특히 증거의 영역과 관계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바는 반드시 가나안에서의 증거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부터 증거가 퍼져나가므로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의 중심인 그 땅과 관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외에 천국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될 것이며, 그 때에 끝-이 시대의 끝-이 올 것입니다. 이제 왕국이 설립될 때 그 권위의 원천은 비록 하늘이지만 그 지상 중심은 가나안과 예루살렘입니다. 그러므로 왕국의 개념은 온 세계에 걸친 것이긴 하나 우리의 생각을 이스라엘 땅으로 돌리게 합니다. 그것이 여기에 언급된 이 천국복음입니다. 그것은 교회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선포하거나 주님의 승천 후에 사도들에 의해 전파되고 가르쳐진 그 완전한 형태의 구속을 선포한 것이 아니라, 세례요한과 주님 자신이 선언하신 지상에 세워질 왕국을 선포한 것입니다. 그들의 순종을 시험하고 또 들을 귀 있는 자들에게 믿음의 대상을 제시하기 위해 승천하신 그리스도의 우주적인 권위의 설립이 온 세상에 전파될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를 세운 선언의 주제에 들어가지 않은채 세상 끝까지 일어날 일의 일반적인 역사를 다룬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임박한 파멸과 유대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기를 거절한 것이 하나님으로 하여금 임박한 왕국의 진리를 철회하지 않은채 바울의 손을 통해 특별한 증거를 세우시도록 했습니다. 이어지는 내용들은, 왕국의 증거에 대한 그러한 전파가 끝날에 일어날 것과, 그 증거가 그 시대를 마감지을 그러한 심판이 오기 전에 모든 민족에게 미칠 것을 입증해 줍니다.

그러나 어떤 영역 안에서 (, 예루살렘과 그 인근 지역에서) 특별한 환란의 때가 이스라엘 안에서의 증거와 관련하여 개입되는 순간이 있을 것입니다. 멸망의 가증한 것을 말씀하시면서 주님은 그분이 하시는 말씀을 이해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다니엘을 상기시키십니다. 이제 다니엘서(이러한 환란이 언급된 12)는 우리를 말일 -미가엘이 다니엘의 백성, 즉 이방인의 지배 아래 있는 유대인들 편에 서게 될 때-로 인도합니다.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다시는 없을 환란의 때가 될 것이며 남은 자들은 구원을 얻을 그런 날로 말입니다. 다니엘 11장 후반부에서 그 때가 마지막 때로 불리우며 또 북방 임금의 멸망이 예언적으로 선언되어 있습니다. 이제 선지자 다니엘은 완전한 축복(여기에 참예하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이 오기 1335일 전에 매일 제사가 폐해지고 멸망케 할 미운 물건이 세워질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이 때로부터 1290(, 계시록에 언급된, 뱀을 피해 달아난 여자가 광야에 양육을 받는 기간인 1260일이나 다니엘 7장의 3년 반보다 한 달이 많은 기간)이 지날 것입니다. 종국에는 우리가 여기서 발견하는대로 심판이 임하고 왕국이 성도들에게 주어집니다.

이상과 같이 본문은 마지막 때와 그때의 유대인의 위치를 가리키고 있음이 입증됩니다. 주님께서 그것을 말씀하신 이래로 지나간 때의 사건들이 그러한 개념을 확증해 줍니다. 디도 시대가 지난지 1260일이나 1260년 후에도, 또는 30일이나 30년 후에도 다니엘서에 나타난 그 기간을 성취할 만한 아무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 기간들은 오래전에 끝나버렸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구원받지 못했으며 다니엘서는 여전히 그 날들의 끝에서 제 몫을 찾지 못했습니다. 아울러 본문에는 예루살렘과 그 인근지역이 관련되어 있음이 분명한데 이는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피하라는 명령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 때에 그곳에 있을 제자들은 그들의 피신이 안식일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해야 하는데, 이는 그 예언의 대상이 유대인임을 보여주는 추가적인 증거입니다. 또한 그것은 주님께서 그분의 백성인 자들을 돌아보시되 유례없는 사건들의 와중에, 그것도 그들의 피신의 때가 겨울철이 될 것을 염려하실 정도로 세세히 돌아보신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이 외에도, 증거가 더 필요하다면, 본문이 염두에 둔 대상이 교회가 아닌 유대인 잔존자임을 입증할 만한 증거는 더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신자가 공중에서 주님을 만나기 위해 끌어올려질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 후에 그분과 함께 다시 올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지상에 거짓 그리스도들이 있으며 사람들은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골방에 있다고 말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공중에 끌어올려진 다음 주님과 함께 다시 올 성도들은 지상의 거짓 그리스도들과 하등 관계가 없는데, 이는 그들은 주님이 지상에 재림하시기 전에 그분과 함께 있기 위해 하늘로 올라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상적인 구원을 기대하고 있는 유대인들은 그러한 유혹을 쉬 받아들일 것이며 또 하나님에 의해 보호되지 않으면 그 유혹에 미혹될 것임은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의 예언은 마지막 날, 즉 인자의 강림시에 갑자기 쏟아부어질 심판 전 마지막 3년 반에 적용됩니다. 주님께서 번개의 번쩍임같이, 독수리가 먹이를 향해 하강하듯이, 그분의 심판의 대상의 발견되는 곳으로 잠자기 임하실 것입니다. 그 마지막 3년 반의 환란 직후에 모든 계급적 통치제도가 붕괴되고 완전히 무너질 것입니다. 그 때 하늘에 인자의 징조가 나타날 것이며 사람들은 안자가 능력과 큰 영광으로 구름을 타고 오시는 것을 볼 것입니다. 이 구절(30) 3절에 기록된 제자들의 질문에 두번째 부분에 대한 답을 담고 있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지침이 될 만한 경고를 주십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것이 지각있는 자들에게 아무리 선명하게 보일지라도 아무 징조도 보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징조는 주님께서 나타나시는 순간에 있을 것입니다. 그들이 멸시했던 그분의 영광의 빛남이 오신 이가 누구인지를 그들에게 보여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예기치 않은 일이 될 것입니다. 그들의 세상적인 자랑에 부합하는 메시아 대신 그들이 멸시했던 그 그리스도가하늘에 나타나신다니 얼마나 두려운 순간이 되겠습니까! 후에 그렇게 나타나신 인자께서 사방에서 이스라엘 모든 택한 자를 모으실 것입니다. 그것은 제자들의 질문에 답하여 유대인의 역사와 이스라엘의 역사를 마감짓는 것이며, 그것을 거절한 백성가운데서 그 증거와 관계된 하나님의 섭리를 보여주는 것이며, 그들의 극심한 환란의 때와, 예수께서 오실 때 그 현장에서 쏟아부어질 심판과, 그리고 크고 작은 모든 권력이 완전히 무너질 것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스라엘 안에 있는 그 증거의 역사와, 그분이 떠나간 후부터 다시 오실 때까지 그 백성들 자신의 역사를 제시하십니다. 그러나 그 동안은 백성도 성전도 성읍도 없을 그 기간이 얼마일지는 언급이 없습니다. 이 점이 예루살렘의 사로잡힘에 중요성을 부여합니다. 그것은 여기에 직접적인 표현으로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 주님께서 그것을 묘사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분의 강화가 적용되는 상황을 마감지으며, 그러한 적용은 예루살렘과 유대인이 다시금 전면에 나타날 때까지는 복원되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은 초기에 그것을 선언하셨습니다. 제자들은 그분의 강림이 동시에 일어날 줄로 생각했습니다. 그분은 예루살렘이 사로잡힐 때까지 그분의 강화가 그들에게 유용할 것이라는 식으로 그들에게 답변하십니다. 그러나 일단 멸망의 가증한 것이 언급되자 우리는 우리 자신이 마지막 날들로 인도되는 것을 발견합니다.

제자들은 그분이 제시하신 징조들을 이해해야 했습니다. 저는 이미, 예루살렘의 파괴가 그 사실 자체로는 그분의 강화의 적용을 방해한다고 말한바 있습니다. 유대 민족은 제쳐졌습니다. 그러나 34절은 훨씬 더 넓은 의미이자 진정 그것에 적합한 한 가지 의미를 더 지닙니다. 믿지 않는 유대인들은 모든 것이 성취될 때까지 그러한 상태로 존재할 것입니다. 이스라엘에 대한 이러한 심판을 특히 염두에 두고 있는 신명이 32 5, 20절을 비교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그들의 종국을 보실 때까지 그들에게서 얼굴을 숨기실텐데 이는 그들이 매우 완고한 세대요 믿음없는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그 일은 이미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오늘날까지 구별된 민족입니다. 그 세대는 같은 상태로 존재하면서 하나님의 섭리와 주님의 말씀의 영원한 확실성을 증거해 줍니다.

결론을 내리자면, 그 백성과 관련하여 행사된 하나님의 통치가 그 종국까지 추적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오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이스라엘의 흩어진 택한 자들을 한데 모으십니다.

예언의 역사는 24 30절과 연관이 있는 25 31절에서 계속됩니다. 그리고 24 31절은 인자의 출현 뒤에 이스라엘이 함께 모이는 것을 언급하므로 25 31절은 이방인에 대한 심판에 있어서의 그분의 섭리를 선언합니다. 그분은 배도자들에게 번개같이 나타나실 것이며 그들은 그분 보시기에 죽은 몸같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이 자신의 지상적인 자리를 취하기 위해 영광 중에 엄위하게 오실 때는 번개같이 지나쳐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분은 자신의 영광의 보좌에 앉으실 것이며, 모든 민족이 심판의 보좌에 앉으신 그분 앞에 모여서 그들에게 왕국을 전하도록 보냄을 받은 왕국의 사자들에 대해 취한 행동에 따라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그 사자들은 형제들이며(40) 그들을 영접한 자들은 양이며, 그들의 멧세지를 멸시한 자들은 염소입니다. 그리고 2531절에서 시작되는 양과 염소의 분리 및 그 결과에 대한 기사는 그 사자들에 대해 취한 행동에 따라서 지상에서 심판을 받는 민족들을 묘사해 줍니다. 그것은 적어도 민족들에 관한한 산 자에 대한 심판으로서 이는 죽은 자에 대한 심판처럼 최종적인 심판입니다. 그것은 계시록 19장에 나타난 것과 같은 전쟁을 통한 그리스도의 심판이 아닙니다. 그것은 계시록 20 4절의 경우처럼 세상에 대한 그분의 통치권 안에 있는 그분의 최고의 심판절차입니다. 저는 그 심판의 원칙, 아니 그 보다는 그 성격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그 형제들이 제자들이 그러했듯이 유대인, 즉 그들의 증거에 있어 유사한 위치에 있게 될 자들이라는 것을 민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 멧세지를 받아들인 이방인들은 마치 그리스도를 그렇게 대한 것처럼 영접될 것입니다. 그분의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해 왕국의 즐거움을 예비해 두셨으며 그들은 그리로 들어갈 것입니다. 그곳은 이 땅에 있을 것인데 이는 그리스도께서 영생의 능력으로 내려오셨기때문입니다.

24 31절에서 25 31절 사이의 모든 내용을 일단 지나친 것은 이 마지막 장의 마지막 부분이 세상의 통치와 심판에 관한 모든 것을 매듭짓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가 방금 언급한 그 두 구절 사이에 그들의 역사가 그 중요한 도덕적 특징 안에서 우리에게 제시된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한 가운데 주어진 증거 밖에 있으며, 그분이 그분의 부재(不在) 동안 그분의 일과, 그분 자신과 관계된 위치를 맡기신, 그리스도의 제자들입니다. 그 위치와 그 일은 그 일이 어디서 성취되든 간에 이스라엘이 아닌 그리스도 자신과 관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에 이르기 전에 제가 언급하지 않은 구절들이 있는데 그 구절들은 특히 그곳에 있는 제자들에 대한 경고로 적용되고, 그리고 말일에 유대인들 가운데 일어나는 분리의 심판을 묘사해 줍니다. 제가 여기서 그 구절들을 언급하는 이유는 강화의 이 모든 부분-, 24 31절에서 25 31절까지 -은 그분의 부재 동안의 그들의 의무에 대한 주님의 권면이자 교훈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말하는 본문은 24 32절에서 44절까지입니다. 이 부분은, 인자가 오시는 때에 대한 무지가 제자들에게 부과한, 그리고 그 안에서 제자들이 의도적으로 버림을 받은 끊임없는 기대를 말해 줍니다(그리고 심판은 지상적인 심판입니다). 반면에 45절 이하에서는, 주님께서 보다 직접적인 동시에 보다 일반적인 방식으로, 이스라엘이 아닌 그분의 소유-그분의 집-와 관련하여 그분의 부재 동안 그들의 행동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그분은 때를 따라 적절한 양식을 공급할 의무를 그들에게 맡기셨습니다. 이것은 교회 안에서의 말씀사역의 책임입니다.

첫번째 비유에서는 교회의 상태가 전체적으로 고려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열 처녀의 비유와 달란트의 비유는 개인적인 책임을 말해 줄지다. 불충성한 종은 끊어지고 외식하는 자들과 운명을 같이 하게 됩니다. 책임있는 교회의 상태는 그리스도를 기다림과, 그분이 더디 오신다고 말하는 그들의 마음에 달려 있었습니다. 그분이 다시 오실 때 기다리는 동안 그들의 충성도에 대해 심판이 선언될 것입니다. 그 날에 충성스러움은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반면에 그분의 오심을 잊어버린 것은 방종과 폭정을 초래할 것입니다. 여기에 암시된 것은 지적인 제도가 아닙니다.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그의 뜻이 관련되었습니다. 그 결과 육신적인 뜻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것은 더 이상 주인이 올 때 칭찬을 들을 마음을 지닌, 주인의 집에 대한 헌신적인 봉사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세속적인 품행이요, 그에게 맡겨진 봉사가 가져다 준 권위를 임의로 사용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취한 자들과 더불어 먹고 마시며, 세상과 짝하고 그 길에 참여합니다. 그는 동료 종들을 임의로 때립니다. 그것이, 그분의 부재 동안 마음에서 고의로 주님의 재림을 지체시키고 교회를 이 땅에 안주하도록 만류한 결과입니다. 충성스런 봉사 대신 세속적인 마음과 폭정, 그 얼마나 그 상황을 잘 묘사해 주는지요!

하나님의 집에서 봉사의 위치에 있는 자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양편에 일어난 결과는 이러합니다. 주인에 대한 사랑과 헌신으로 인해 그분의 집의 복지를 위해 자신을 바친 충성된 종은 주진이 돌아올 때 그분의 모든 소유를 다스리게 될 것입니다. 그 집을 돌보는데 충성을 다 한 자들은 주님께서 권세의 자리를 취하고 왕으로 행사하실 때 그분에 의해 만물을 맡게 될 것입니다. 만물은 아버지에 의해 예수님의 수하에 주어져 있습니다. 그분의 부재 동안 겸손히 그분의 일에 충성한 자들은 그분에게 맡겨진 모든 것, 즉 만물을 다스리게 될 것입니다. 만물은 다름아닌 예수님의 소유입니다. 반면에, 주님의 부재 동안 스스로 주인의 자리를 취하고 육신의 영과 그 스스로 짝한 세상의 영을 좇은 자는 세상의 분깃을 취할 뿐만 아니라 주인이 예기치 않게 오실 것이며 그는 외식하는 자들의 징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는 교회에서 봉사의 자리를 독차지하고 있는 자들에게 어떤 교훈을 주는지요! 여기서 그가 스스로 술취하지 않고 그렇게 하는 자들과 더불어 먹고 마신다고 한 점을 주목하십시오. 그는 스스로 세상과 손을 잡고 그 풍습을 좇습니다. 더욱이 이것은, 비록 악한 종의 마음은 악했지만, 왕국이 그 날에 취할 일반적인 국면입니다. 신랑은 실로 지체하실 것이며, 인간의 마음에서 예상될 만한 결과들은 꼭 실현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때 우리가 발견하겠지만, 그 결과 진정 그리스도의 은혜를 소유한 자들과 그렇지 못한 자들이 밝혀질 것입니다.

 

25(1)

주님의 부재 동안 신앙고백자들은 여기서 신랑을 만나 집으로 인도하기 위해 나간 처녀들로 제시됩니다. 본문에서 그분은 교회의 신랑이 아닙니다. 아무도 하늘에서 열리는 그분과 교회의 혼인예식을 위해 그분을 만나러 나가지 않습니다. 이 비유에서는 신부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만일 신부가 소개되었다면 그것은 지상의 예루살렘이었을 것입니다. 교회는 이 장()들에서 그런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여기서는 그리스도의 부재 동안 개인적인 책임이 다뤄지고 있습니다. 이 기간에 충성된 자들을 특징지운 것은, 그들이 오실 주님을 만나러 가기 위해 세상과 유대교와 모든 것, 심지어 세상과 연결된 종교로부터도 나왔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유대인 잔존자는 있는 위치에서 그분을 기다립니다. 만일 그러한 기대가 실제적이라면, 그것의 지배를 받는 자의 특징은 오실 분을 위해 필요한 것 -등과 기름-을 마음에 생각하는 것일 것입니다. 기다리는 동안 신앙고백자들의 친구가 되어 함께 등을 준비하는 것이 그 마음을 만족시킬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모두 한 위치를 취했습니다. 그들은 밖으로 나갑니다. 그들은 신랑을 만나러 가기 위해 집을 떠납니다. 신랑은 지체합니다. 이 일 또한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모두 잠을 잡니다. 모든 교회들이 주님의 재림에 대한 생각을 잃어버렸습니다. 성령을 소유한 충성된 자들도 그러합니다. 그들은 편안히 잠 잘 곳-육신을 위한 휴식처 -으로 다시 들어갔음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밤중에 예기치 않게 소리가 납니다.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슬프게도 그들은 처음과 똑같은 외침을 필요로 했습니다. 그들은 다시 그분을 만나러 나가야했습니다. 처녀들은 일어나 등불을 준비합니다. 밤중의 소리와 신랑의 도착 사이에 모든 상황을 점검할 충분한 시간이 있습니다. 등잔에 기름이 없는 처녀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등불은 꺼져갔습니다. 슬기있는 처녀들은 기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기름을 다른 처녀들에게 나눠주기란 불가능했습니다. 기름을 소유한 처녀들만 혼인예식에 참여하기 위해 신랑과 함께 들어갔습니다. 신랑은 다른 처녀들은 받아들이기를 거절했습니다.

그들은 거기서 어떤 임무를 가졌습니까? 그 처녀들은 그들의 등에 빛을 제공해야 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잔치에 참여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그 자리에 참여할 수 있는 요건을 갖추는데 실패했습니다. 그 잔치에 참여하기 위해서 그들은 과연 자격을 갖추었을까요? 잔치에 참여한 처녀들은 신랑을 따라 들어간 처녀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허락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충성스런 처녀들도 그리스도의 오심을 잊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잠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들은 그리스도의 오심에 부합하는 필수적인 것은 소유했습니다. 신랑의 은혜가 그분의 도착을 알리는 소리가 들리게 합니다. 그것이 그들을 깨웁니다. 그들은 등에 기름이 있습니다. 신랑의 지체함은 불충성한 처녀들에게는 등불이 꺼지는 원인이 되는가 하면 충성스런 처녀들에게는 예비하고 그들의 위치를 지킬 시간을 허락해 줍니다. 그들은 비록 잘 잊어버리는 자들이었지만 신랑과 함께 혼인잔치에 들어갑니다.

 

(1996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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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