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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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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 4. 11:14 횃불/1996년

이사야서에 나타난 그리스도

 

12: 바벨론을 빠져나오라

너희는 바벨론에서 나와서 갈대아인을 피하고 즐거운 소리로 이를 선파하여 들리며 땅 끝까지 반포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그 종 야곱을 구속하셨다 하라”( 48:20).

 

이제 우리는 이 놀라운 예언의 전반부의 막바지에 이른다. 그 전반부는 사실, 유다의 근원에서 나온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불리운 야곱의 집에 대한, 바벨론에서 일어나 나오라는 호소를 실은 45장 끝에서 마감된다.

하나님의 백성이 어두움의 도시와 동맹체, 혹은 음모에서 구현된 악의 중대한 원리와 정면으로 맞서지 않은 시대란 결코 존재하지 않았다. 형태만 다양할 뿐 늘 같은 영이 존재했고, 늘 하나님을 거스려 인간을 신격화했고, 늘 도덕적인 가치를 저버린 인간 지성을 헛되이 자랑했고, 견고성과 영구성을 부여할 수 있는 유일한 원천이 되는 하나님의 근본원리를 무시한 채 구조물을 세워보려는 인간의 대범한 계획이 늘 시도되었다.

그 거대한 조직은 과거에 육중한 바벨론 성벽이 수많은 백성을 포용하고 오만스레 세상을 다트리던 때와 같이 오늘날도 막강하기만 하다. 어떤 이들은 그것을 로마 교회, 혹은 교계에 만연된 자만의 영이라고 말하지만, 그보다는 인간사회에 늘 역사하고 있으며, “세상으로 불리우고, 바울 사도가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다고 표현한 그 요소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오랜 대적에 대한, 느리고 나오라는 호소에 주의할 것에 대한 묘사에 포함된 모든 요소는 현 상황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하겠다.

(1) “바벨론에 보냄받다”-선택받은 백성을 위한 하나님의 이상(理想)이 아름다운 비유로 묘사되어 있다(18).

네 평강이 강과 같았겠고····그 지상 생활의 즐거움에 젖어 콸콸 거리며 돌 사이를 빨리 흐르는 시내도 아니요, 넓은 밑바닥을 채우지 못한 채 옅게 흐르기에 물고기들이 좀더 높이 헤엄칠 수도 없는 실개천도 아니요, 깊고도 잔잔한 도도한 물줄기를 따라 끝없이 흐르며 그 깊이와 방대함과 그리고 인류에 대한 봉사에 있어 바다와 비견될 만한 자태를 갖춘 강과 같은 평강이라고 했다. , 폭풍에도 쓸려가지 않고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그칠 날을 염려하지 않고, 항상 짙푸른 하늘과 밤의 별을 반영하며 또 양분을 흡수하기 위해 뿌리를 내린 식물에게 날마다 수분을 공급하는데 만족하는 강이여! 여러분의 성장과 한결같은 충만함과 축복된 사역과 여러분의 외양과 내면세계를 통해서 여러분은 인간의 경험의 매 단계마다 생장하고 활짝 피어야 할 무한한 평강에 대해 인간에게 영원한 멜로디로 전파해야 한다! 적어도 그것이 이스라엘을 위한, 그리고 그분의 이름으로 맹세하고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시인하는 모든 이들을 위한 하나님의 이상이었다.

네 의가 바다 물결 같았을 것이며····썰물 시에 해변을 거닐면서 모래 위의 오물과 질척한 갯벌과 검은 바위들을 살펴보라.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어느 자녀에게도 그러한 모습을 기대하지 않으셨다. 그들의 의가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그들의 경험에 폐물과 구멍과 파편이 생기고, 능력과 순결과 미덕에 심각한 결함이 생기는 것은 결코 그분의 뜻이 아니었다. 대서양의 거대한 파도가 흰 거품을 일으키며 서로 쫓고 쫓기는 장면을 보노라면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게 된 모든 이들은 멀리 바다로 나가 소리를 높이며 하나님의 권능의 부요를 선포하는 파도처럼 신선하고, 광대하고, 그 움직임이 자유롭고, 그 속성이 순결한 도덕적인 특성에 사로잡혀야 한다는 하나님의 의도의 장려함을 깨닫지 않을 수가 없다.

이것은 악인에 비유되는 요동하는 바다-해변을 따라 한숨과 신음을 발하며 더럽고 추한 오물을 토해내는 바다-와 얼마나 대조되는지. 옅고 모래가 많은 해변에 을씨년스레 출렁이는 파도보다 선선한 바람이 드넓은 해면을 잔잔히 감싸는 대양이 얼마나 더 좋은지. 후자는 중생한, 그리고 의롭다 함을 얻은 인성의 능력과 영광 중에 있는 의인과 같으며, 전자는 늘 요동하고 조바심내고 아무 유익을 주지 못할 것을 발산하는 악인과 같다.

그러한 이상은 하나님의 명령에 귀 기울이는 모든 자를 위한 것이다. 그러한 평강이 여러분과 저를 위해 흐르기 시작하고 또 그러한 의()의 파도가 우리의 영혼에 차고 넘칠 수 있는 쉬운 방법이 있다. 듣고 행하라. 그분의 명령을 가슴에 새기고 준행하라. 말씀의 빛으로 여러분의 삶의 표준을 높이라. 그러나 만일 우리가 거절하고 돌이켜 우리의 악한 마음의 궤계와 욕구를 좇는다면, 우리는 반드시, 그리고 철저히, 그렇지 않는다면 우리 마음에 음악과 우리 하나님께 멜로디를 만들어줄 그러한 목적의 실현을 상실하고 말 것이다. 어디서 어떻게 표현된 것이든 주님의 지극히 적은 바람에 순종하는 것이 우리가 그러한 평강과 그러한 의에 이를 수 있는 값진 비밀이다.

그러나 우리가 거절한다면, 우리는 이스라엘처럼 세상의 바벨론에서 고난의 용광로를 통과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나님은 그분의 목적을 실현하는데 있어 아무의 방해도 받으실 수 없다. 만일 우리가 완고하고 우리의 목이 곧고 우리의 이마가 단단하다면, 만일 우리가 우리의 우상과 신상을 의뢰한다면, 만일 우리가 듣지도 알지도, 우리의 귀를 열려고도 하지 않는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보다 길고 고통스런 길로 바벨론을 지날 것이며 그 과정을 통해 은이 풀무 속에서 정제되듯이 불순물과 혼합물이 제해질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얼마나 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기꺼이 순종했더라면 불필요했을 풀무 속에 있는지: 물론 풀무가 항상 불충성을 암시하지는 않지만, 그러나 만일 우리가 불충성하면 풀무를 예상해야 한다.

 

(2) “바벨론에서의 삶”-이 강력한 도성은 열국의 연인(Lady of Kings)으로 불리웠다. 우리는 그 견고한 성벽과 넓은 공간, 여러 계단과 복도가 딸린 웅장한 신전 입구를 지키는 거대한 짐승상, 피라밋, , , 인도양의 화물선이 들어오는 부두들, 세계의 상인들로 북적대는 시장들, 공물을 바치러 온 자들의 왕래로 붐비는 거리들 등을 상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화려한 외양 뒤에는 잔인과 사치와 악함과 사단숭배의 술집들이 진치고 있었다.

잔인함.”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을 바벨론의 손에 넘기셨을 때 바벨론은 그들에게 아무 자비도 베풀지 않았다. 그대신 바벨론은 그렇잖아도 짐으로 허덕이고 바벨론으로 향하는 그 두려운 행진으로 몹시 지친 노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웠다(47:7).

사치.” 바벨론은 쾌락에 탐닉하고 방탕에 빠졌다. 그 거민들은 빛나는 옷을 입고 금은 보석으로 장식했으며, 시장마다 비단과 진주와 보석과 상아와 각종 패물들로 가득했다(47:8).

악함.” 바벨론은 강포와 압제, 술취함, 자연숭배의 온갖 불결한 행위 등을 의지하여 모든 열방으로 그 가증한 행위의 포도주에 취하게 했다(47: 10).

사단숭배,” 바벨론은 마법과 많은 술사들을 의지했다(47: 12).

유대인들은 그러한 환경 속에서 긴긴 포로기간을 보냈다. 그들의 운명은 매우 비참했다. 그들은 바벨론의 노획물이요 먹이에 불과했다. 최근에 해독된 노예매매 문서는 유대인의 이름들을 담고 있다. 아마 그들 퉁 대다수는 그들의 선조가 수세기 전에 애굽을 위해 그러했듯이 바벨론성을 건설하는데 동원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극심한 징계를 통해서, 그들의 운명을 예고한 오래 전의 말씀들에 의해 형성된 보다 고결하고 차원높은 이상이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었다. 그들은 그들을 사로잡은 자들에게 오랫동안 붙잡혀있을 수 없었다. 그들은 세상에 복 주기로 정해진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아니었는가? 그들은 하나님의 법궤를 메도록 부름받지 않았는가? 옛적에 아브라함과 맺어진 언약은 그 모든 조항에 있어 여전히 중요하지 않았는가? 그렇다.  그들은 다른 많은 포로들 중에 있었지만 그 마음에 커다란 소망이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소망의 빛 안에서, 그들의 고난의 감찰하는 불 아래서, 그들은 우상숭배에 대한 사모심을 영원히 포기했다. 그들은 심도있는 도덕적 종교적 생활을 일구기 위해 외적인 예배의식에서 돌이켰다. 그리고 그들은, 그 후로 회당과 서기관을 그들의 민족생활의 없어서는 안될 요소로 만든 열정으로 그들의 영감된 성경에 대한 연구에 몰두했다. 유대인들은 다시는 우상숭배자가 되지 않았다.  그 후로 그들의 양심이 늘 그 문제에 대해 예민했다. 예외 없이, 유대인의 성경이 극히 정확하고 세심한 관심으로 보존되었고, 흩어진 민족의 거처마다 유대인의 회당이 세워졌다. 게다가, 하나님의 인간섭리에 대한 폭넓은 견해와 개념이 받아들여지고 관심사가 확장되어 하나님의 사랑의 보편성 및 인간의 형제의식과 관련하여 복음이 더욱 계시되기 위한 길을 예비해 주었다. 강물이 다양한 토양을 흐르면서 그 생산물로 풍요하게 되듯이, 유대 백성은 종종 그들의 눈물을 그 강물에 섞은 그 고통스런 바벨론 체류를 통해 영원한 축복을 받았다.

현재 이 말씀을 대하는 이들 중에는 그들의 바벨론에 처한 이들이 있으리라. 그들은 순종의 좁은 길을 벗어나지 않았더라면 계속되었을 그 행복했던 옛 시절을 돌아본다. 그 때 그들의 평강은 강 같았고 그들의 의는 바다 물결 같았다. 그러나 슬프게도 그 모든 것이 추억에 불과하다. 그들은 구원의 여망이 보이지 않는 환란과 곤경의 사슬에 스스로 얽매었다. 그 지리한 기간은 회복의 기약이 없이 그 느리고 고통스런 여정을 다 달려갈 것만 같다.  그러나 그러한 자들로 계속 하나님께 소망을 두게 하라. 그리하면 여전히 그분을 찬양하게 될 것이다. 그들로 그들의 죄를 회개하고 버리게 하라. 하나님의 성령께서 가르치기를 원하시는 깊은 교훈을 배우게 하라. 고통스런 징계로 인해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라, 그 암흑한 시간에, 의인에게 빛이, 마음이 정직한 자에게 기쁨이 뿌려질 것이다 곧 낭랑한 탈출의 외침이 울려 퍼질 것이다. “일어나 떠나라. 이는 여기가 네 안식처가 아님이라. 예루살렘을 향해 외치라. 그 복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의 사함을 입었느니라. 바벨론에서 나오고 갈대아인에게서 피하라.”

(3) “바벨론으로부터의 탈출”-옛 질서는 변화되어 새 질서에게 자리를 내주고 있었다. 엄청난 재앙 가운데 처녀딸 바벨론은 제국의 권좌에서 내려와 땅에 앉으라는 소환을 받았다. 그녀는 더 이상 곱고 아리땁다고 불리울 수 없었다. 그녀는 곡식을 갈고 짐을 나르는 평범한 짐꾼의 수준으로 내려와야 했다. 어느 날 갑자기 자식을 잃고 남편을 잃는 불행이 몰아닥칠 것이다.  술사들의 마법도, 그녀와 함께 무역하던 자들의 노력도 그녀의 재앙을 돌이키는데 무용할 것이다(47:1 이하).

유대인들은 세상이 이제껏 목격한 가장 강력한 도시였을 바벨론에서 나오라는 명령을 듣는다. “너희는 바벨론에서 나와서 갈대아인을 피하라.” 고레스의 포고는 이미 발해진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부서 (副署)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매우 놀랍게도, 바벨론은 사라지고 역사의 기록 외에 아무 자취도 남기지 않은 반면에 그들이 70년간 노예로 소유하던 백성들은 지금도 존재할 뿐 아니라 국제적으로 주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으며 또한 장차 중요한 역할을 할 운명이다. 인간의 지혜와 힘으로 지어진 까닭에 진동할 수 밖에 없는 것들이 사라지는 중에 그들은 진동치 않을 나라-도덕적인 힘과 인격 및 영력으로 이뤄진 나라-를 받았다.

이러한 탈출 명령이 천상의 파수꾼들로부터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에게로 울려 퍼진다. 목격자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들으니 하늘로서 다른 음성이 나서 가로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18:4).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에는 모든 시대에 교회와 대면하는 인간사회의 불경건한 체제에 대한 적용과 함께 바벨론의 전복이 분명히 언급되어 있다. 과거에는 그것이 로마제국에 의해 대표되었으나 이제는 세상의 영()에 그것이 존재한다 : 바벨탑을 쌓은 자들은 소멸되지 않았다. 인간은 여전히 그 지성과 힘으로 하나님과 관계없이 건축물을 세우고 자진의 이름을 내고 홍수가 그 사역을 쓸어버리는 것을 막아보려 애쓰고 있다. 하나님의 성령을 떠난 인간의 모든 상상과 노력과 부단한 활동의 결과는 바벨, 혹은 바벨론 제국과 같은 구조물을 이룬다.

우리는 그 모든 것에서 나와서 따로 있으라는 명령을 듣고 있다.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하나님의 사랑의 영이 세상과 자신을 위하는 영을 불사르도록 하라. 죄악과의 모든 관계에서, 어두움과의 모든 사귐에서, 벨리알과의 모든 일치에서, 그리고 믿지 않는 자와의 모든 멍에관계에서 나오라! 바벨론 너머에는 예루살렘에 도달하기 전에 통과해야 할 광야가 펼쳐있으며, 우리는 통과하도록 부름 받을지 모를 시련들을 두려워한다. 그러한 두려움이 많은 유대인들로 하여금 고레스의 포고에 순종하기를 주저하게 했다. 그들은 포로 된 땅에 남았으며 그 결과 자치권을 잃고 세계 각지에 유랑하는 백성이 되고 말았다.

, 그리스도인이여, 그러한 두려움으로 인해 주저하지 않도록 하라! 그 광야는 기나긴 세월 동난 끝없이 지나야 할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용기를 내라. 그분이 그대의 광야 길을 인도하실 것이다. 그분이 반석에서 물이 나오게 하실 것이다. 그대가 생각지 못한 적절하고 풍성한 공급이 그대를 놀라게 할 것이다. 지금은 황량하기만 한 길에 꽃과 나무와 숲이 우거지고, 지금은 거친 모래밭에 샘이 넘쳐 흐를 것이다. 때가 이르고 그대의 훈련이 끝이 났다. 그대의 구속의 해가 왔다. 그토록 오랫동안 그대를 사로잡은 포로상태에서 자유롭고 고결하고 거룩한 삶에로 나오라.

 

(1996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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